I became Hitler RAW novel - Chapter (176)
176화 개와 늑대의 시간 (2)
1942년 8월 1일
도버해협 상공
짙은 감색 커튼이 드리운 하늘 위로 스무 대의 핼리팩스 폭격기가 날고 있었다.
“곧 프랑스에 도착한다. 마음 단단히들 먹어.”
조종간을 잡은 킴 에릭슨 대위는 착잡한 심정을 숨긴 채 최대한 무덤덤한 말투로 말했다.
그는 2년 전 코펜하겐 공습에 처음으로 전장에 투입되어 프랑스 상공에서 대공포에 피격되어 부상입을 때까지 22번의 전투에 참전했다.
강화조약 체결을 하루 앞두고 부상입은 그는 7개월 동안 병원 신세를 졌다가 대위 진급과 함께 퇴원해 원대로 복귀했다.
태평양전쟁이 발발했을 때, 에릭슨은 과거에 부상을 입은 전적 덕에 아시아 전장으로 차출되지 않고 본토에 남을 수 있었다.
그는 주말에 동료들과 함께 펍에 들려 진탕 마실 때마다 쪽발이들과 싸울 수 없어서 한이라고 자주 푸념하곤 했지만, 속으론 다시 전장에 가지 않아서 기뻐했다.
이대로 전쟁이 끝날 때까지 쭉 안전한 본토에서만 머물러 있었으면 싶었다.
그러나 갑작스런 정세의 변화는 그를 다시 전장으로 밀어 넣었다.
겉으로 덤덤한 척을 했지만, 그는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빌어먹을. 이대로 쭉 안전하게 훈련이나 하면서 지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에릭슨은 모든 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바로 직전까지 빨갱이들을 색출하라고 외치던 시민들이 벨파스트에서 IRA와 연관된 사건이 터지자 독일에 대한 응징을 들고 나왔고, 정부도 여기에 편승해 독일을 마구 비난하다니 결국 오늘 독일과 전쟁 상태로 돌입했다.
스위스에서 강화조약을 체결한 지 단 2년 만에.
“무슨 생각하십니까?”
부조종사의 질문은 에릭슨은 고개를 휘저었다.
“그냥. 옛날 생각.”
곰곰이 생각해보니 어처구니없는 일뿐이었다. 애당초 정상적인 사회라면, 처칠 같은 인간이 총리가 되어선 안 되었다.
갈리폴리 전투도 그렇고, 처칠이 독일의 철광석 수급을 막겠다는 이유로 스칸디나비아를 공격하는 바람에 영국이 상대해야 할 적군만 늘어나고 본인은 책임을 체임벌린에게 뒤집어씌우려다가 망신만 당했다.
그런데도 꾸역꾸역 한 자리씩 해 먹다가, 아군이 말레이에서 참패를 당하자 핼리팩스를 마구 비난해 그를 쫓아내고 기어코 자신이 총리직을 꿰찼다.
정작 말레이 전역에서의 참패의 책임을 묻는다면 해군장관인 그도 책임소재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런데도 국민은 처칠이 총리가 되는 것에 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물론 그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 자체는 정치계와 민간에서 꾸준히 나왔지만, 다수의 국민은 크게 상관없다는 듯이 행동했다.
처칠이 총리가 된 후에도 전황은 계속해서 나빠졌지만, 그에게 책임을 묻는 정치인은 한 명도 없었다.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내가 잘못된 건지 국민이 그냥 멍청한 건지….’
사람들은 처칠의 어느 구석을 믿고 그런 인간이 총리가 되는 것을 방관할 것일까?
에릭슨은 아무리 생각해도 그 이유를 알지 못해 답답한 심정이었다.
실제 역사에서도 처칠은 프랑스가 항복하고 유고슬라비아와 그리스, 북아프리카에 이어 말레이, 버마에서 연패를 당하는 동안에도 실각이나 책임추궁은커녕 국민의 변함없는 절대적인 지지를 받으며 포츠담 회담 때까지 총리직을 지켰지만, 에릭슨이 거기까지 알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 무렵 편대는 목표지점인 아브빌 상공에 도착했다. 목표지점에 도착하자 에릭슨은 상념을 잠시 접어두고 임무에 집중했다.
에릭슨의 임무는 아브빌 인근의 독일 육군의 보급기지를 파괴하는 것이었다.
편대장의 지시에 맞춰 그는 폭탄창을 개방했고, 이윽고 폭탄을 투하했다.
스무 대의 핼리팩스가 투하한 폭탄은 칠흑같은 어둠에 묻힌 대지를 오렌지색 섬광으로 불 밝혔다.
폭격기 승무원들은 고도에서도 폭탄이 터지는 굉음을 들을 수 있었다.
폭탄을 모두 쏟아낸 폭격기들은 냉큼 기수를 돌려 자신들이 날아왔던 방향으로 날아갔다.
곧 독일군의 전투기들이 벌떼같이 날아올라 임무를 수행 중이거나, 혹은 마치고 귀환하는 폭격기들을 향해 달려들 것이다.
그래도 에릭슨은 운이 따라주는 편이었다.
영국에서 가장 가까운 아브빌의 적군 기지를 파괴하는 임무를 맡았으니. 그보다 운이 안 좋은 조종사들은 아브빌보다 더 먼 거리에 있는 독일군 기지를 공습하는 일을 맡았고, 운이 억세게 안 좋은 이들은 독일 본토까지 날아가야 했다.
하지만 에릭슨은 자신이 운이 좋다고 여기지 않았다. 정말로 운이 좋았다면, 전쟁 자체가 일어나지 않았을 테니까.
이제 행복 끝, 지옥 시작이었다.
***
1942년 8월 1일, 영국은 독일에 선전포고했다.
선전포고 사유는 독일의 강화조약 위반.
독일이 IRA에 무기와 자금을 대며 영국에 대한 테러를 사주하였으므로 이는 명백한 조약 위반이자 영국에 대한 도발이니 이를 좌시할 수 없다는 게 영국 정부의, 처칠의 입장이었다.
결국, 피하고자 했던 상황이 찾아오고야 말았다.
미국은 아직 중립을 지키고 있으니 그나마 최악은 피했다지만, 영국의 참전은 여간 골치아픈 일이 아니었다.
이제부턴 동부전선뿐 아니라 서부전선도 신경써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니.
처칠의 대독선전포고문이 BBC 방송을 통해 세계만방에 송출되던 날, 런던, 맨체스터, 버밍엄, 글래스고 등 영국 각지의 대도시들에서 일제히 시위가 열렸다.
친독파와 반전운동가들로 이루어진 시위대는 ‘대독전쟁 반대’와 ‘선전포고 철회’가 적힌 피켓과 플래카드를 들고 행진하며 전쟁을 선전포고를 강행한 정부를 규탄했다.
하원에서도 정부의 대독 선전포고를 놓고 격렬한 토의가 벌어졌다.
많은 의원이 민심과 대세를 거스르는 내각의 폭거라며 항의했지만, 전쟁 반대를 외치는 목소리보다 응징을 외치는 목소리가 더 많은 관계로 유의미한 결과를 이끌어내지 못했다.
많은 영국인이 대독전에 반대했지만, 그보다 많은 수의 영국인들이 대독전에 찬성을 표했다.
독일과 전쟁을 한다는 부담감보다, IRA를 지원한 독일을 어떻게든 응징해야 한다는 분노가 더 크게 작용한 것이다.
개전 첫날, 영국은 수백 대의 항공기를 동원해 북부 프랑스와 벨기에, 네덜란드의 독일 육해공군 기지를 급습했다.
이전부터 영국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기에 이에 대한 대비를 착실하게 해둔 덕에 피해는 크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또 없지는 않았다.
해군의 피해는 슈넬보트 1척 격침에 2척 손상, 기지 방어 인원 60명 사상. 육군은 차량과 전차를 합쳐 27대가 전소당하고 90여 명이 죽거나 중상을 입었고 공군은 폭격기와 수송기, 전투기를 합쳐 20여 대의 피해를 입었다.
물론 공습 직후 아군도 즉시 반격하여 전투기 35대와 폭격기 32대를 격추하는 등 선전했다.
독일 영토인 빌헬름스하펜과 브레머하펜, 헬골란트에도 영국군의 공습이 있었지만, 피해는 경미한 수준에 그쳤다.
영국의 대독 선전포고는 영연방 소속 국가들에서조차 큰 혼란을 야기했다.
주권만 있을 뿐, 영국이 가자는 방향대로 움직이는 국가들이라 영국이 전쟁을 선언한 이상 이들도 자동 참전이었지만 내부의 의견은 크게 엇갈렸다.
“어째서 우리가 유럽에서의 전쟁에 목숨을 걸어야 하는가?”
“IRA는 영국의 문제지 캐나다의 문제가 아니다!”
수도 오타와를 시작으로 토론토, 몬트리올, 벤쿠버, 퀘벡에서 시위가 열렸고
“일본과 한창 전쟁 중인데 독일과 전쟁이라니!”
“우리 젊은이들을 애꿏은 전쟁터에서 죽게 할 수 없다!”
“런던이 신경써야 할 곳은 베를린이 아니라 도쿄다!”
앞마당에서 일본과 드잡이질을 하는 호주와 뉴질랜드는 반대의 목소리가 더욱 거셌다.
뉴펀들랜드와 남아공에서도 참전 반대시위가 전개되었고, 중립을 선언한 미국에서조차 영국의 대독전 개전을 반대하는 집회가 열렸다.
아무튼 영국이 참전했으니, 이제부턴 미국, 아르헨티나, 브라질 등 외국으로부터 물자를 수입해올 수 없게 되었다.
유보트를 사용하는 방법도 있지만, 애초에 유보트는 화물 운송용으로 만든 물건이 아닌 데다 선내가 좁은 유보트로 필요로 하는 양만큼의 물자를 옮기려면 독일에 있는 모든 유보트를 총동원한다고 해도 족히 수천 년은 걸릴 터였다.
그래도 아예 없는 것보단 낫지만 평소에 100만큼 수입해오던 걸 이제부턴 2~4 정도만 들여오는 게 한계이니 많은 어려움이 따를 것으로 예상되었다.
벌써부터 토트와 슈페어의 머리에서 머리카락 빠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군.
불행 중 다행으로 영국의 선전포고 이틀 전에 해외로 갔던 화물선들이 모두 추축국 해역에 들어섰다는 것이다.
뉴욕에서 출항한 화물선 5척은 킬에 도착했고, 아르헨티나에서 수입한 식량을 실은 1척은 스페인 비고에, 브라질산 커피와 고무를 실은 2척은 프랑스 라로셸 항에 정박했다.
두 척의 화물선이 독일로 오려면 좁디좁은 도버해협을 지나거나, 북대서양을 크게 우회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당연히 해당 구역에는 영국 해군과 공군이 눈에 불을 켠 채로 떼거지로 몰려다니고 있으니, 화물을 육로로 독일까지 옮기라는 지시를 내렸다.
“처칠 그놈이 기어코 일을 터뜨렸으니 이제 우리도 거리낄 게 없소.”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저놈들이 살기 싫다는데, 우리가 살려둘 필요가 없습니다!”
“총통 각하. 준비는 모두 다 끝났습니다. 명령을!”
“시작하시구려.”
***
1942년 8월 3일
영국 런던
영국이 독일과 공식적으로 전쟁 상태에 재돌입한 지 이틀이 지났다.
아직도 전쟁 반대파들은 시위를 이어나갔지만, 시민들의 반응은 대체로 정부의 결정을 지지하거나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
극렬 반공주의자 및 친독 성향의 파시스트들, 반전성향을 가진 이들은 벨파스트 사건이 시기상으로 너무 절묘하다며 의문을 표하며 대독전 개전이 케임브리지 5인조 사건을 덮기 위한 정부의 음모라고 주장하고 다녔지만, 다수의 영국인은 이번 기회에 독일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2년 전의 참패는 영국이 아직 전쟁할 준비가 끝나지 않아서 일어난 참사다,
사실 영국은 충분히 싸울 수 있었는데 핼리팩스가 지레 겁먹고 유약하게 구는 바람에 모든 것이 어그러지고 만 것이다,
지금 독일은 전력을 동부전선에 쏟아붓고 있으므로 아군이 내일 프랑스에 상륙한다고 해도 막을 수 없다,
그 외 기타 등등.
처칠은 매일같이 방송에 나와 독일이 사람들이 생각하는 무적의 괴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식시키려 부지런히 노력했다.
영국은 독일 해군보다 훨씬 큰 규모의 해군과 세계 각지에 걸친 동맹국과 식민지들을 가지고 있으며 인력과 자원도 세계 어느 나라보다 풍부하다.
반면 독일은 인력과 자원이 부족해 담배꽁초조차 재활용하며 부족한 병사 수를 메꾸기 위해 여자들까지 징집한다.
머지않아 독일은 1차대전 때처럼 식량 부족에 허덕이며 동맹국들을 수탈하다가 결국에는 반란으로 무너지고 말 것이다. 1918년처럼.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위기의 순간에도, 하늘은 늘 대영제국을 저버리지 않으셨다는 것을! 승리의 여신은 우리를 향해 미소 짓고 계시다는 것을!”
어떻게든 국민에게 전쟁의 당위성을 설파하고 지지를 끌어내려는 정부와 그런 정부를 비난하며 개전 반대를 외치는 시위대의 대립이 이어지는 가운데 정치에는 일절 신경을 쓰지 않고, 묵묵히 일상을 보내는 사람들도 있었다.
23세의 간호사 마거릿 폴린도 정치에 관심이 전혀 없는 전형적인 소시민 중 하나였다.
신문과 라디오에선 연일 독일과의 전쟁에 대해서 떠들어대고 있지만, 정치에 관심이 없는 그녀에겐 외국의 일이나 다름없었다.
그녀는 여자였기에 징집대상도 아니었고, 남자친구나 남자 형제들도 없었기에 그들을 전쟁터로 떠나보낼 걱정도 없었다.
친척들이 있긴 하지만 사이가 좋지 않아 지금은 교류를 끊은 상태였다.
“마거릿!”
마거릿의 10년지기 절친 케이시 그레이슨이 손을 들어 보였다.
어려서부터 동네 아이들에게서 ‘딸기’라는 별명으로 불린 그녀는 별명답게 얼굴에 주근깨가 가득했다.
“오늘 좀 늦었네?”
“교대까지 10분을 앞두고 갑자기 응급환자가 들어왔거든.”
마거릿은 피곤하다는 듯 어깨를 으쓱거렸다.
“무슨 환자였는데?”
“음주운전 차량에 치인 40대 공무원이었어. 의식이 없었고, 피가 많이 나더라고.”
“저런. 그래서?”
“다행히 살았어. 의식도 돌아왔고. 정신을 차리고 캐비넷을 열었더니 6시더라.”
“고생했어. 간호사라는 직업상 어쩔 수 없잖아.”
케이시는 마거릿의 등을 토닥였다.
“오늘은 내가 살께. 뭐 먹을래?”
“밥은 됐고, 맥주나 한 잔 하자. 남자친구랑은 요즘 어때? 잘 돼가?”
“그럭저럭. 그런데 며칠 전에 문제가 생겼어.”
“무슨 문제인데?”
“며칠 전에 집에 경찰이 찾아온 거 있지. 글쎄 남친이 BUF 당원들이랑 친하다는 이유에서 말이야. 지난 달에 시위에 참여했다가 기물파손 혐의로 조사를 받은 전적도 있고.”
“저런.”
시국이 시국이니 경찰의 반응도 이해가 안 되는 일은 아니었지만, 케이시 앞에서는 말을 삼갔다. 그녀는 적어도 하고 싶은 말과 할 수 있는 말의 차이를 아는 사람이었다.
“남친도 너처럼 정치에 관심을 끊고 살면 좋을 텐데. 그런데 그게 안 되는가 봐.”
“뭐, 알아서 잘 하겠지. 나야 원래 세상 일에 관심이 없-”
저 멀리서 들려오는 폭음에 마거릿은 말을 멈추고 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바라보았다.
“뭐야, 뭐야?”
“무슨 일이지?”
평소처럼 길을 걷던 행인들도 그 소리를 들었다. 가느다란 연기가 보이자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커졌다.
“설마…. 공습?”
연기 기둥을 보는 순간 마거릿이 떠올린 것은 독일 공군의 공습이었다.
정말로 독일군의 공습이 시작된 걸까? 그런데 공습이라면 그 전에 공습경보가 울려야 했다. 하지만 공습 경보는 울리지 않았다.
혹시 테러? 세상 돌아가는 일에 관심이 없는 그녀였지만, 최소한 기본적인 소식 정도는 라디오 뉴스를 통해 들었다.
독일이 IRA 테러범들에게 무기와 자금을 지원했고, 독일로부터 지원받은 폭탄으로 IRA가 테러를 일으키려 한 것이 전쟁의 이유가 되었다는 것을 그녀도 모르지 않았다.
혹은 단순히 오래된 가스관이 폭발을 일으킨 것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두 번째로 들린 폭발음을 듣는 순간 마거릿은 머리에서 가스관 폭발 사고를 지워버렸다.
세 번째 폭음에 이어 공습 경보가 울리자 그녀는 IRA의 테러도 지워버렸다.
공습을 알리는 사이렌이 울리자 사람들은 다급히 지하철역으로 뛰어갔다. 상황 통제를 위해 나타난 경찰들이 휘슬을 불며 시민들의 대피를 유도하는 가운데, 폭음이 연속으로 이어졌다.
독일군의 공습 자체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일반적인 공습은 아니었다.
독일 과학자들이 개발한 세계 최초의 탄도 미사일, V2가 런던을 강타하는 최초의 순간이었다.
***
독일이 영국과의 전쟁에 대비해 북프랑스와 벨기에 일대에 건설한 V2 기지들은 영국 공군의 공습으로부터 거의 무사했다.
위치가 알려진 기지가 적은 것도 피해가 적은 원인 중 하나였지만 철근 콘크리트를 아낌없이 때려 부어 두껍고 단단하게 지었기에 웬만한 공습으로는 끄떡도 없었다.
마하 5의 속도로 날아가는 V2를 요격할 수 있는 방법이 1942년의 영국에는 전무했기에, 영국은 세계 최초의 탄도 미사일 폭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연료 주입 서둘러!”
“빨리! 빨리!”
“영국 놈들에게 본때를 보여줘야 하지 않겠나!”
SS 제500독립발사대대의 장교들과 병사들은 의욕이 넘쳤다. 공군 조종사도 아니고, 평범한 보병에 불과한 자신들이 영국의 국토를 불바다로 만들 수 있다는데 누가 흥분하지 않을 수 있을까?
세계 최초의 탄도 미사일 운용 권한을 두고 육군, 공군과 경합을 벌여 어렵사리 쟁취해낸 것이었기에 힘러가 V2 운용 인원으로 선발된 SS 장병들에게 특별대우를 지시한 것도 이들의 사기에 큰 영향을 끼쳤다.
발사 준비를 완료한 V2는 곧 꼬리에서 노란 꼬리를 늘어뜨리며 창공을 향해 날아올랐다. 발사대를 떠난 V2는 바다 건너편 영국에 도착해 오랜 역사를 가진 도시 런던의 거리를 파괴했다.
V2가 떨어진 자리에는 거대한 분화구에 불꽃, 파편 조각만 남았다.
폭격기들이 무더기로 도버해협을 넘어와 폭탄을 떨어뜨리는 것만 예상하던 영국군과 시민들은 생전 처음 경험하는 로켓 공격에 당황했다.
이런 류의 공격은 지금까지 당해본 적도, 상상해본 적도 없는 것이었기에 영국인들의 충격은 더욱 컸다.
그러나 앞으로 벌어질 일들에 비하면 V2는 맛보기에 불과했다.
대형마트 내부 시식코너의 잘게 잘린 소시지 조각들처럼,
영국인들이 겪을 고난은 이제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