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Hitler RAW novel - Chapter (339)
339
중국에서 일어난 군벌들의 반란은 큰 반전 없이 장제스의 승리로 끝났다.
반란을 일으킨 군벌들은 물론이고, 그들에게 동조해 중앙군의 진압을 방해하거나 비협조로 일관한 군벌들도 장제스가 휘두르는 숙청의 칼날을 피해 가지 못했다.
내전은 끝났지만, 본격적인 숙청은 이제부터였다.
지방에서 왕으로 군림하던 자들은 남의사의 표적이 되어 제거당하거나 압송되었다.
자신이 숙청 대상임을 눈치채고 외국으로 망명을 시도한 자들도 있지만, 대부분 성공하진 못했다.
장제스의 숙청은 해를 넘겨서도 진행되었고 숙청이 끝났을 무렵엔 중국에서 장제스에게 대항할 자가 남지 않았다.
이런 거 보면 장제스가 능력이 없는 인물은 아니라니까. 그놈의 땅 욕심만 부리지 않았으면 더 후한 점수를 받을 수 있었을 텐데.
아무튼, 내부의 불안요소들을 모두 제거하는 데 성공한 장제스는 본격적인 개혁을 선언했다.
더 이상 개혁에 반기를 들거나 방해할 놈들도 없어졌으니, 순탄하게 흘러갈 것 같으면서도 죽은 건 윗대가리들이고 밑에서 꼬붕짓하며 열심히 뇌물을 받아 처먹던 말단들은 그대로라 과연 개혁이 성공적일지는 말이 많은 상태다.
그래도 실제 역사에서도 개혁을 성공시킨 적 있는 양반이니 기대를 걸어봐도 나쁘진 않겠지. 측근인 다이리도 멀쩡하게 살아있고.
확실한 건 대약진운동이니 문화대혁명이니 하는 희대의 개뻘짓들은 일어나지 않겠지. 그렇고말고.
존더코만도와 형벌부대는 스페인 군복을 입고 모로코에서 반군과 싸우는 중이다.
징징거리는 프랑코의 입을 다물게 하기 위해 보낸 데다 이들에게 딱히 싸울 이유도 의지도 없다고 판단해서 전투력은 기대를 안 하고 있었는데 웬걸. 모로코에서도 상당한 전투력을 보여주며 맹활약 중이라고 한다.
우리가 보내긴 했지만, 형식적으로 스페인군 소속에 스페인 군복을 입고 있어서 그런지 이슬람 국가들 사이에서 아직까지 나온 얘기는 없다.
어쩌면 우리가 너무 무서워서 조용히 하는 걸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뒷말 안 나온다고 하니 그걸로 된 거겠지.
새로 발매된 독일군 미니어처 세트는 유럽과 세계에 인기몰이 중이다.
전쟁 중 격침된 전함과 격파된 전차, 전투기의 철로 만든 나이프와 각종 장식품도 불티나게 팔리는 중이고, 이렇게 해서 얻어낸 수익들은 독일 내 상이용사들의 치료비 및 생활비를 지원하는 데 사용될 예정이다.
1950년 가을이 끝나기 전, V4 로켓 개발이 성공했다.
V4의 사거리는 V3에서 600km 연장된 1800km. 유럽에서 미국까지 공격하기엔 아직 역부족이지만 기존의 V3보다 사거리가 600km나 연장된 것만으로도 충분히 괄목할 만한 성과였다.
V4 로켓 개발이 완료된 시점으로부터 대략 4개월 후,
“니체 프로옉트가 성공했답니다!”
“오오오!!!”
“드디어!”
1951년 봄에 독일은 인류 최초로 수소폭탄을 손에 넣었다.
“이걸로 저, 거만한 양키들의 콧대를 다시 납작하게 눌러줄 수 있겠군요.”
“하하하. 그러게, 말일세. 듀이는 아직 이 사실을 모르고 있겠지? 알게 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걸세.”
하이젠베르크를 위시로 한 독일 과학자들이 만들어낸 수소폭탄의 위력은 5Mt. 우파에 투하한 최초의 원폭 발퀴레의 위력이 15kt, TNT 1.5만 톤이고 1Mt가 TNT 100만 톤에 달하니 그 위력이 어느 정도인지 감이 대강 잡힐 거다.
실제 역사에서 미국이 비키니 환초에서 터뜨린 수소폭탄의 위력이 15Mt인 것을 감안하면 위력이 조금 약하지만, 실제 역사보다 일찍 개발한 데다 이 세계의 미국은 원폭밖에 없으니, 독일이 미국보다 한발 앞선 상태임은 변함이 없다.
독일의 수소폭탄 실험 성공 소식이 알려지자 미국 사회는 충격과 공포에 휩싸였다.
이젠 자기들도 원폭이 있다고 희희낙락거리고 있었는데 1년 만에 독일이 원폭보다 훨씬 강력한 수폭을 손에 넣었으니 놀랄 수밖에.
풍문으론 듀이가 원폭 실험에 참여했던 과학자들을 백악관으로 불러서 자기 임기가 끝날 때까지 수폭을 개발하라고 닦달했다곤 하는데, 미국의 어느 찌라시 전문 신문사에서 낸 기사라 별로 믿을만한 소식은 아니다.
허나 듀이가 지금 똥줄이 타서 죽으려고 한다는 것은 아마도 사실일 것이다.
입장을 바꿔 생각해봐라. 돈과 인력을 쏟아부어 겨우 원자폭탄을 만들어냈는데 얼마 못 가 상대가 원폭은 애교 수준으로 보일 정도 강력한 폭탄을 손에 넣었다.
나 같아도 밤에 잠이 안 올 거다.
물론 나는 미국과 전쟁을 할 생각이 전혀 없으므로 수폭 개발이 완료된 직후에 대국민연설에 나섰다.
“친애하는 독일 국민 여러분. 저는 독일 총통으로서 여러분께 이틀 전 독일이 인류 최초의 수소폭탄 개발 실험에 성공했다는 소식을 전해드리는 바입니다. 이 수소폭탄이라는 물건에 간단하게 설명을 해드리자면-”
이런저런 말을 많이 하긴 했어도 내용 자체는 별거 없다.
원폭도 강력하지만, 수폭은 훨씬 더 강력하다. 그러니 미국이 원폭 만들었다고 불안해할 필요는 없다. 우리가 더 센 놈을 가지고 있으니까.
그리고 미국이 독일을 먼저 공격하지 않는 한 워싱턴이나 뉴욕에 수폭을 떨어뜨리는 일은 없다. 진짜로.
“핵전쟁이 벌어지는 순간, 전쟁의 승패와 관계없이 인류는 공멸을 맞이할 테니 말입니다. 도시란 도시는 죄다 파괴되어 잿더미만 남은 세상인데 전쟁에서 이겨봤자 무슨 이득이 있겠습니까? 전쟁에서 이겼다는 알량한 성취감과 이제 세계에서 독일에 대항할 국가는 남지 않았다는 고양감? 그딴 것들을 얻기 위해 세상을 불지옥으로 만드느니 겁쟁이로 손가락질당하며 평화로운 세상에서 평생을 사는 게 훨씬 낫습니다. 내 말이 틀립니까?”
독일의 수폭 실험이 침략이 아닌 방어를 위한 것이라는 말을 강조하며 연설을 끝냈다.
내 연설이 보도된 후 뉴욕 타임스에선 이번 연설로 얼마나 많은 미국인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을지 모른다며 나를 칭찬하는 기사를 내보냈다.
딱히 칭찬받으려고 한 일은 아닌데. 어찌 되었든 결과는 나쁘지 않으니 그걸로 된 거겠지.
-라고 생각하기 무섭게 또 일이 터졌다.
***
본래 전쟁이 일어나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가장 흔한 3가지 이유로는 영토, 종교, 자원이 있고, 자국을 강대국으로 만들기 위해서, 이미 강대국인데 힘자랑 좀 하려고 등등 여러 이유가 있다.
앞의 경우보다 사례가 적긴 하지만 다소 뜬금없는 이유로 일어난 전쟁도 있다.
그중 단연 압권은 축구전쟁. 문자 그대로 축구 때문에 엘살바도르와 온두라스 두 국가가 치고받고 싸운 전쟁인데 1969년 7월 14일부터 7월 18일까지 100시간 동안 싸워서 100시간 전쟁이라 불리기도 한다.
축구전쟁이라는 말의 어감이 더 강력해서 압도적으로 많이 쓰일 뿐.
엄밀히 말하자면 온전히 축구 때문에 전쟁이 일어난 건 아니고 이전부터 두 나라 사이의 악감정과 분쟁이 누적되다가 축구가 계기가 되어 전쟁이 터진 것이지만, 전쟁이라는 초대형 사건이 시작된 계기가 겨우 축구 경기라는 사실이 황당하기 짝이 없다.
그리고 축구전쟁 만큼은 아니지만, 그 못지않게 황당한 전쟁은 또 있다.
대구 전쟁.
사실 전쟁이라 불릴 정도는 아니라서 전쟁으로 포함하기에도 애매하지만, 거의 전쟁에 준할 정도로 심각한 분위기인 데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분쟁의 원인이 생선 대구라는 사실로 사람들을 놀라게 만든다.
이 역시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아이슬란드 근해에서 많이 잡히는 대구를 영국 어선들이 무단으로 잡아가는 일이 이어지자, 아이슬란드와 영국 간의 외교분쟁으로 이어졌고 급기야 양측이 해군력을 동원해 충돌하기까지 했던 일이다.
대구 전쟁은 총 3번에 걸쳐 일어났다. 1958년 9월부터 11월 사이에 한 번, 1972년 9월부터 1973년 11월 사이에 한 번, 1975년 11월부터 1976년 6월에 한 번. 이렇게 총 3번.
18년 동안 3번에 걸쳐 일어난 분쟁은 아이슬란드의 판정승으로 끝났다.
패자인 영국은 어획량 감소로 북대서양 어업에 막대한 타격을 입어 약 9천 명에 달하는 어부 및 해양업 관련 직종 종사자들이 실직해 사회 분위기가 흉흉해졌다.
그런데 승자인 아이슬란드도 대구 어획량이 감소하고 분쟁 중 소련을 끌어들이려 한 짓 때문에 한동안 나토 가맹국들 사이에서 눈총을 받는 등 끝이 좋지만은 않았다.
아무튼, 역사에 벌어졌던 이 황당한 분쟁이 여기서도 반복될 줄이야.
그러나 이번의 경우에는 실제 역사처럼 아기자기하지 않았다.
***
전후 미국에 합병된 그린란드와 달리 아이슬란드는 독립국으로 남았다.
그런데 영국이 독일에 점령되면서 영국인들과 영국으로 피난 온 프랑스, 체코슬로바키아, 폴란드 등 유럽 각국의 피난민들이 아이슬란드로 오게 되었다.
전쟁이 끝난 후 나치의 독재를 피해 아이슬란드로 가는 이들의 수는 꾸준히 늘었다.
이민자들의 대다수는 체코인과 폴란드인. 괴뢰국 신세긴 해도 독립국이라는 껍데기라도 남은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같은 국가들과 달리 조국이 독일의 일개 보호령으로 전락해 지도에서 존재 자체가 사라져 버린 이들은 독일 치하에서 영원히 사느니, 차라리 아이슬란드로 가는 것을 택했다.
독일 역시 놔둬봤자 도움도 안 되고 사회불안만 야기할 뿐인 이들의 이민을 막지 않았다. 오히려 이들의 이민이 독일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해 적극적으로 이민을 장려했다.
아이슬란드로 이민 오는 유럽인들의 수는 꾸준하게 늘어만 갔다. 대다수는 아이슬란드를 거쳐 미국이나 캐나다로 넘어갔지만, 아이슬란드에 그대로 눌러앉는 이들도 많았다.
전쟁 전부터 아이슬란드에서 살아오던 주민들은 1951년 기준으로 14만 명 남짓.
반면 아이슬란드로 이주한 유럽인들의 수는 50만 명 이상.
졸지에 아이슬란드인들은 자신들이 살던 나라에서 자신들이 소수로 전락하고 말았다.
냉전의 최전선이 된 아이슬란드는 제3차 세계대전을 대비해 연합군이 상시 주둔 중이었고 아이슬란드인들은 연합군의 통제를 받았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그중에 가장 큰 이유는 이들이 적국 덴마크와 독일에 협력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었다.
“X발, 여기가 프라하인지 바르샤바인지 모르겠네. 여긴 레이캬비크라고.”
“내가 태어난 나라에서 내 마음대로 돌아다니는 것도 못 한다니…….”
“대체 검문이 몇 번이나 있는 거야?”
연합군의 통제. 그리고 늘어난 이민자들.
아이슬란드인들의 불만은 쌓여만 갔다.
이러한 현실에 염증을 느낀 주민 일부는 본국 덴마크로 이민 가기도 했지만, 대다수는 아이슬란드에 남았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고향에서 내가 왜 떠나? 나갈 거면 저놈들이 나가야지.
독립국이 된 아이슬란드에 독자적인 정부와 헌법이 존재했지만 어디까지나 존재만 할 뿐 아이슬란드의 실질적인 통치자는 연합군, 그것도 연합군 중에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미군이었다.
미국은 아이슬란드인들의 민심을 사기 위해 자국에 남아도는 물자를 대량으로 뿌렸지만, 이러한 조치도 아이슬란드인들의 마음을 돌리기엔 역부족이었다.
아이슬란드 내부적으로도 문제가 잔뜩 쌓여만 가고 있는 와중에 외부에서도 새로운 문제가 발생했다.
문제의 원인은 대구.
브리튼 섬의 영국 어부들은 아이슬란드 근해까지 와서 조업했다.
여기에 독일 어선들도 아이슬란드까지 와서 대구를 잡기 시작했고, 이러한 행위는 아이슬란드에 주둔 중인 연합군의 신경을 건드리기에 충분했다.
전쟁이 끝난 지 수년이 지났다지만 여전히 독일은 미국의 가장 큰 위협이자 제1 가상적국. 독일의 조종을 받는 영국 역시 마찬가지로 가상적국.
가상적국의 어선들이 코앞에 와서 알짱거리는 데 불편하지 않으면 그게 이상한 법. 조업을 핑계로 와서 무슨 짓을 할지 아무도 모르지 않는가?
“아아, 중대발표가 있겠습니다.”
“오늘부로 아이슬란드의 어업전관수역은 50해리로 확정되었습니다. 이 구역에서 아이슬란드 국적 및 허가받은 선박이 아닌 선박들의 조업은 엄격히 금지할 것입니다. 이를 어길 경우-”
“50해리? 지금 장난해?”
“이 새끼들 순 날강도 아냐? 그럼 우린 어디서 고기를 잡으라고?”
“다 굶어 죽자는 거냐?!”
아이슬란드 정부-라 쓰고 연합군 사령부라고 읽는다-의 일방적인 발표에 영국과 독일의 어부들은 격한 반응을 보였다.
대구가 많이 잡히는 곳에서 대구를 잡지 말라고 한다는 것은 곧 굶어 죽으라는 소리나 다름없었기에.
하루아침이 밥줄이 잘릴 위기에 처한 어부들이 선택한 방법은 ‘개 무시’였다.
어부들은 여전히 아이슬란드 근해에서 대구를 잡았고 이는 연합군의 심기를 건드렸다.
“저 새끼들은 귓구멍이 처막혔냐? 고기 잡지 말라 했는데 왜 고기를 쳐 잡아?”
“경고한다. 지금 귀 선박은 아이슬란드의 어업전관수역 내에 무단으로 침입한 상태다. 지금 즉시 퇴거하도록.”
“X까 X발놈들아!”
“대구 잡아야 하는데 개X같은 소리만 하고 있네. X미 X발놈들아.”
“저 새끼들 안 꺼지는데요?”
“이런 개씹…….”
말로 해서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 연합군은 곧장 행동에 돌입했다.
퇴거에 불응하는 어선들을, 해군을 동원해 나포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손들어 X발놈들아!”
“고기 잡을 땐 좋았지? 이 X발놈들.”
“선장님! 저 새끼들 총 쏩니다! 진짜 쏜다고요!”
“기관 전속!”
일주일 사이에 60척이 넘는 어선들이 나포되었고, 어부 수백 명이 ‘포로’가 되었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영국 파시스트 정부도 행동에 나섰다.
“저 새끼들 또 왔…… 어어?”
“뭔데 그리 놀라?”
“저거 구축함입니다!”
“어느 나라 건데?”
“영국입니다. 나치들에게 붙은 파시스트 놈들 말입니다.”
파시스트 영국 해군이 아이슬란드 코앞에 나타나자, 연합군도 즉시 대응에 나섰다.
영국 해군이 끌고 온 함선은 1차대전에 사용된 구식 중의 구식 W급 구축함과 무장상선. 그에 반해 미 해군은 최신 기어링급 구축함.
누가 봐도 영국이 불리했지만, 영국 해군은 물러서지 않았다.
숨 막히는 대치 끝에 일어난 것은 무력충돌이었다.
퇴거를 거부하는 영국 해군에게 미 해군은 발포를 감행했고, 이에 질세라 영국 해군도 발포했다.
10분 남짓한 교전의 결과는 영국 무장상선의 피격.
“적함이 침몰합니다!”
“좋았어!”
“맛이 어떠냐, 홍차 새끼들아!”
북해에 가라앉는 무장상선을 보며 미 해군은 승리를 확신했다.
하지만 곧 확신은 경악으로 변했다.
“어뢰다!”
자국 무장상선이 격침되자 W급 구축함이 어뢰를 발사했다.
당황한 구축함은 서둘러 회피를 시도했다.
그러나 결과는 피격.
불행 중 다행으로 침몰은 피했지만, 세계 최대 해군의 신형 구축함이 구식 구축함에 당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굴욕적이었다.
우발적으로 일어난 연합국과 추축국 간의 교전은 어마어마한 파장을 몰고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