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ark Knight in the Game RAW novel - Chapter (113)
카드라스
* * *
이레네에서 서쪽에 위치한 카드라스 산은 북서쪽의 뾰족 바위산을 거쳐 북쪽의 용뼈 산맥에도 연결되어 있다.
따지고 보면 산맥의 일부인 셈이다.
용뼈 산맥과 마찬가지로 카드라스 산에는 몬스터가 바글거린다.
하지만 그 종류에는 큰 차이가 있다.
북쪽의 용뼈 산맥에는 덩치가 거대한 몬스터들이 생태계의 최상위 포식자로서 활동한다면, 이곳의 포식자는…….
“또 얼음 정령이 온다! 바로 구워버려!”
“다른 동료들을 불러오면 성가셔진다. 곧바로 처리해야 해.”
정팔면체 얼음덩어리 일곱이 하늘을 부유했다.
놈들은 이내 공중에서 빙빙 돌더니, 일행을 향해 날카로운 얼음 조각들을 뱉어냈다.
“어딜!”
하켄이 방패를 앞세웠다.
최근. 데일과 함께 다니며 부쩍 실력을 키운 하켄은, 자기 체격만 한 타워 실드를 거뜬히 들고 다녔다.
투둥퉁!
단단한 타워 실드에 얼음 조각들이 튕겨나갔다.
하켄이 우쭐거렸다.
“하! 어때! 이번에 새로 산 방패다!”
“비켜요 하켄!”
주문을 완성한 엘레나가 양손을 앞으로 뻗었다.
그러자 손바닥에서 물줄기가 뿜어져 나와 얼음 정령들을 강타했다.
그대로 정령 셋이 파괴되었고, 나머지 정령들도 비척거리며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기회를 엿보던 데일이 뛰쳐나갔다.
굳이 검을 들 필요도 없다.
데일은 주먹으로 정령을 힘껏 내리쳤다.
파각!
경쾌한 소리와 함께 얼음 정령이 분쇄되었다.
데일은 재빨리 주위를 살펴 다른 정령이 있는지를 살폈다.
‘없군.’
이 정령이라는 몬스터의 가장 까다로운 점은, 언제든 동료를 불러모을 수 있다는 점이다.
신이 나서 사냥하다가는 아차 하는 사이 포위되어 몰매를 맞을 수도 있다.
게다가 정령이 싫은 점이 한 가지 더 있다.
“……아무것도 안 남기는군.”
정령은 마력으로 이루어진 몬스터다. 반쯤은 에너지 상태인 셈이다.
시체를 남기지도 않고, 하급 정령은 영혼이랄 것도 없다.
즉. 사냥해봤자 남는 게 없다는 뜻.
‘쓸모없기는.’
그런 데일의 무덤덤한 감상과 달리, 마법사들은 제법 흥미를 보였다.
“정령들은 늘 마법사들의 호기심을 자극해왔지. 특히 카드라스 산의 정령 생태계에 대해서는 궁금한 게 많아.”
“가장 원시적인 마법을 구사하는 게 바로 정령이니까요.”
“정령을 사역하는 방법만 알아낼 수 있다면 참 좋을 텐데요. 아직까지는 하이 엘프 외에는 정령을 못 다루니…….”
세 마법사는 언제 싸웠냐는 듯. 도란도란 학술적인 대화를 나눴다.
그냥 놔두면 하루종일 떠들어댈 것 같았기에, 데일이 말을 끊었다.
“엘레나.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고개를 끄덕인 엘레나가 입을 열었다.
“왕가의 핏줄이 카드라스에 오르면 길이 보이리라. 다섯 걸음에서 멈춰라. 마법사 셋이 함께하면 문이 열리리라. 파수꾼을 피해 수호자를 만나면 원하는 것을 거머쥐리라.”
일행의 시선이 엘레나에게 집중되었다.
“아버지와 헤어지기 전, 아버지께서 제게 들려주셨던 말이에요. 보물고를 찾아가는 단서가 되어줄 것이라고.”
“수수께끼 같은 건가?”
데일이 엘레나에게 물었다.
“보물고로 향하는 길이 보이나?”
왕가의 핏줄에게만 보인다는 길.
엘레나는 지그시 눈을 감고, 피부의 감각에 집중했다.
“확실히. 뭔가 느껴져요. 이 산 어딘가에 왕가의 마법이 서려 있어요. 너무 미약해 집중하지 않으면 알아채기도 어렵겠지만, 그 특유의 파장이 느껴져요.”
안드레이가 감탄했다.
“허. 바이만 왕족의 재능이 뛰어나다는 말은 들었지만, 산 어딘가에 서려 있는 마법까지 감지해낸단 말인가? 대단하군.”
“어쩌면 왕가의 일원만 느낄 수 있게 만들었을 수도 있죠.”
또다시 한스와 안드레이가 끼어들어 쓸데없는 말을 첨언하자, 데일은 조금 짜증난 기색으로 째려보았다.
“조용히 좀 해주시오.”
둘은 입을 다물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마법사들은 당최 입을 쉬지 않는 족속들이었다. 괜히 마법사 3명이 모이면 창문이 깨진다는 말이 있는 게 아니었다.
데일이 다시 물었다.
“그곳이 어딘지 찾아갈 수 있겠나?”
엘레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눈을 감고 집중하면, 시간은 좀 걸려도 찾아낼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러려면…….”
“업혀라.”
데일은 허리를 숙여, 엘레나에게 등을 내주었다.
엘레나가 당황하며 물었다.
“어, 업히라고요?”
“눈을 감고 이동해야 한다고 하지 않았나. 업히는 게 효율적이다. 이런 설산을 꼬맹이가 걷기에는 위험하기도 하고.”
“……꼬맹이 아니에요.”
엘레나는 부루퉁한 기색을 보였다. 옆에서 듣던 프라우가 끼어들었다.
“그거라면 제가 업어드리죠! 공주님도 데일 경보다는 공주님의 충실한 기사인 제가 업어드리는 게 좋지 않습니까?”
“아뇨. 데일 경께 업힐게요.”
“예?”
엘레나는 주저 없이 데일의 등에 업혔다.
데일은 엘레나를 들어 올려 목마를 태운 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생각보다 더 높은 시야에 엘레나는 멍하니 있었다.
“왜 그러나?”
“아, 아뇨. 잠시 옛날 기억이 떠올라서…….”
“옛날 기억?”
“아버지께서 제가 어릴 적에 이런 식으로 목마를 태워주셨었는데…… 아뇨. 아무것도 아닙니다.”
데일은 엘레나가 집중할 수 있게 단단히 고정해준 뒤. 말했다.
“방향을 손가락으로 가리켜라. 그쪽으로 가겠다.”
“예!”
“에스델은 만약 전투가 있으면, 엘레나에게 망설이지 말고 보호벽을 쳐주면 좋겠다.”
“아, 예!”
빛의 신성을 만들어낸 보호벽은 데일을 불태워버리겠지만, 이제 그 정도는 견뎌낼 수 있다.
왜인지 엘레나를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던 에스델이 붕붕 고개를 끄덕였다.
일행은 에스델의 안내를 따라 산을 헤매기 시작했다.
당연히 쉽지는 않았다.
발목까지 쌓인 눈은 발을 디딜 때마다 푹푹 꺼졌고.
다른 무엇보다 정령이 문제였다.
“이런 씨! 또 눈꽃 정령이야!”
하켄이 툴툴거리며 방패를 앞으로 내밀었다.
차가운 눈보라가 방패를 두드렸다.
방패가 하얗게 얼어붙고, 그 방패를 쥔 손에도 서리가 끼지만, 하켄은 어렵지 않게 버텨냈다.
“중급 정령이 둘. 하급 정령이 다섯이네요. 이번엔 제가 먼저 공격할게요.”
한스가 나서서 손을 내뻗었다.
손바닥에 하얀 전류가 파직 튕기더니, 독수리의 형상으로 바뀐 번개가 정령들을 덮쳤다.
“허. 맞추기 쉽게 하려고 형상을 바꿨다 이건가? 나쁘지 않은 발상이야.”
감탄한 안드레이도 마력을 일으켰다. 그러자 배낭 속에 들어 있던 종이 뭉치가 하늘을 향해 치솟더니, 하늘을 날아 도망가려던 정령들을 감싸버렸다.
정령들은 도망치지 못하고 그대로 고정되어버렸다.
그런 정령들을 날카로운 화살이 꿰뚫고 지나갔다.
“음! 내 실력도 녹슬지 않았군.”
프라우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인 뒤, 활을 다시 등에 멨다.
그러고는 아쉬운 듯이 중얼거렸다.
“하지만 손맛이 없는 건 아쉬운데. 정령들은 베어봤자 피가 튀지도 않고, 내장이 흘러내리지도 않으니 참 상거워. 어디 강력한 몬스터는 안 나타나나? 내 새로 산 단검, 카락이 피에 굶주렸다네.”
“재수 없는 소리 하지 마라.”
사실 프라우가 아쉬워하는 것도 이해는 갔다.
지금까지의 전투는 싱거우리만치 수월했다.
방패수인 하켄과 전투에 익숙한 한스. 보조 역할에 충실한 안드레이와 뛰어난 재능을 지닌 엘레나.
근접 전투와 원거리 지원이 모두 가능한 프라우와 강력한 기적을 부리는 에스델까지.
데일은 나설 틈조차 없었다.
‘이게 파티의 안정성인가.’
완벽하게 조합이 갖춰진 파티는 어느 상황이 와도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법이다.
게다가 이 파티에는 무려 마법사만 셋이다.
이렇게 호화로운 구성이 있을 수 있을까.
데일은 실로 오랜만에, 누군가한테 ‘업혀간다’는 감각을 느꼈다.
‘내가 나설 것도 없겠군.’
그렇게 일행은 계속해서 산을 탔다.
데일이 다섯 걸음 이동할 때마다 엘레나가 새로 방향을 가리켰는데, 그 손가락은 보통 위쪽으로 향했다.
즉. 산 중턱쯤에 보물고가 숨겨져 있다는 뜻이었다.
산속 깊숙이 올라갈수록 저항은 더 거세졌다.
기껏해야 하나둘 튀어나오던 중급 정령이 무더기로 나타나는 건 기본에 가끔 재수 없으면 상급 정령을 마주칠 때도 있었다.
중급 정령 다섯 개를 연결해 놓은 것처럼 생긴 상급 정령은, 나무 사이를 조용히 배회하고 있었다.
“어우. 상급 정령은 처음인데. 번개로 저격해볼까요?”
한스가 나서려고 하자, 데일이 막아섰다.
“아니. 그냥 왔던 길로 돌아갔다가 우회하자.”
“예? 왜요?”
“상급 정령은 이 영역의 우두머리 같은 놈이다. 놈이 쓰러지면, 곧바로 영역 내의 모든 정령들이 몰려들 거다.”
못해도 수백 기의 정령이 일행을 포위할 것이다.
그쯤 되면 일행도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 특히 마법사들은 몸이 약한 편이니, 자칫 재수 없으면 골로 가버릴 수도 있었다.
그러한 데일의 설명에 일행들은 납득했다.
“그, 그렇군요. 상급 정령이 죽으면 다른 정령들을 끌어모은다는 사실은 몰랐어요.”
“아무래도 정령은 알려진 게 많이 없다보니…… 네가 그런 것까지 알고 있다는 게 신기하군.”
안드레이의 감탄에 데일은 적당히 대답했다.
“어쩌다 알게 되었소.”
게임을 하던 시절에 이미 터득했던 지식이다.
개떼처럼 달려드는 정령들에게 몇 번 시달리다 보면, 싫어도 그 기억이 남을 수밖에 없다.
“경이 없었으면 큰 곤욕을 치를 뻔했네요. 그럼 일단 내려갔다가, 우회하는 길을 찾아보죠. 제가 방향을 다시 잴게요.”
엘레나의 말을 끝으로 일행은 다시 이동을 시작했다.
그녀의 말마따나, 데일이 없었다면 꽤나 곤란한 상황이 벌어졌을 것이다.
* * *
“이봐! 마젤! 왜 이렇게 오래 걸리는 거야!”
바닥에 난 흔적을 살피던 마젤에게 성기사가 벌컥 화를 냈다.
누군가를 추적한다는 건 인내심을 요구하는 작업이다.
걷다가 흔적을 살피고, 또 몇 걸음 가다 흔적을 살피는 과정의 반복.
시간이 오래 걸리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성기사는 그런 수고를 참아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이 추운 설산에서 계속해서 헤매는 게 짜증 날 뿐.
마젤은 속으로 짜증을 삼켰다.
‘신을 따르는 기사란 자가 이리도 참을성이 없어서야.’
문득. 마젤은 자신과 함께 범죄자를 추적했던 흑기사를 떠올렸다.
‘그 기사랑은 완전히 딴판이군.’
데일은 마젤의 전문성을 인정해주었고, 추적하는 과정을 전적으로 마젤에게 맡겼다.
아무리 시간이 걸리더라도 절대 재촉하는 법이 없었다.
게다가 실력도 출중하니, 함께하는 동료로서는 그보다 훌륭할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지.’
마젤은 한숨을 삼켰다. 용병 일을 하다보면, 가끔 이런 고용주를 만나기도 하는 법이다.
“눈꽃 정령 때문에 놈들의 흔적이 자꾸만 눈에 덮여버리고 있소. 시간이 조금 걸리더라도 양해해주시오.”
“끄응. 만약 놈들을 놓친다면, 네 목숨으로 갚아야 할 것이다.”
무표정하게 고개를 끄덕인 마젤은 다시 흔적을 살폈다.
그렇게 천천히 움직이기를 한참. 마젤이 걸음을 멈췄다.
“왜 그러나?”
마젤은 대답 대신 한쪽을 가리켰다.
상급 정령이 나무 사이를 조용히 부유하고 있었다.
“상급 눈꽃 정령이오.”
“이놈의 산맥은 정말 진절머리가 나는군. 모두 나를 따라라! 신의 뜻에 따라, 몬스터를 토벌할 시간이다!”
“예!”
성기사는 하얗게 빛을 발하는 메이스를 붕붕 휘두르며 앞으로 향했다.
그 뒤를 충직한 병사들이 뒤따랐다.
웬만한 몬스터들은 거뜬히 해치울 전력. 하지만 마젤은 왜인지 그 뒷모습이 불안하게만 보였다.
‘어쩌면 지금이라도 몸을 빼는 게 나을지도…… 기분 탓인가?’
* * *
앞장서서 움직이던 데일이 걸음을 멈췄다.
뒤따라오던 하켄이 물었다.
“왜 그래요? 뭐 있어요?”
“안 느껴지나?”
“뭐가요?”
“방금 산이 흔들린 것 같은데.”
“으음. 잘 모르겠는데. 어디 눈사태라도 난 거 아닐까요?”
그럴듯한 추측이다.
가끔 눈꽃 정령들은 이유 없이 발광하는데, 그들이 만들어낸 눈보라가 눈사태를 일으키기도 한다.
“그보다 경. 이 아래인 것 같아요. 이제 내려주세요.”
엘레나는 데일의 등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아래쪽을 향해 시선을 내렸다.
지금 일행은 깎아지르는 듯한 절벽 앞에 서 있었다.
반대쪽 절벽까지는 꽤 넓은 틈이 있었는데, 엘레나가 가리키는 곳이 바로 그 절벽 사이의 틈이었다.
“그러니까. 지금 여기를 내려가야 한다는 건가?”
“그런 거 같아요. 저 아래에서 강한 느낌이 나거든요.”
“알았다. 내가 한 명씩 안고 내려가겠다.”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게, 바로 발튼이 만들어준 도구다.
데일은 갈고리에 연결된 밧줄을 이용해 동료들을 한 명씩 실어 날랐다.
마지막 순서인 한스가 중얼거렸다.
“역시 부유 마법을 배워야 해.”
바닥에 다다른 일행은 주위를 수색했다.
이따금 운 없이 떨어진 짐승의 뼛조각이 이곳저곳에 널브러져 있었는데,
그때. 바닥을 유심히 살피던 하켄이 외쳤다.
“찾았다! 찾았어요!”
일행이 곧바로 몰려들었다.
회색빛 돌덩이들이 모여 있는 곳에 이질적인 구조물이 하나 있었다.
긴 바위를 그대로 잘라 만든 것 같은 석문.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생각에 일행이 기뻐하기도 잠시.
가장 먼저 발견한 하켄이 머리를 긁적거리며 말했다.
“근데 왜 문이 열려있지?”
“…….”
그리고는 설마 하는 마음으로 말했다.
“설마 이미 털린 건 아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