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ark Knight in the Game RAW novel - Chapter (114)
보물고
* * *
하켄이 제시한 가능성에 일행은 순간 굳어버렸다.
“이미 털렸다고?”
“음. 확실히. 위치가 잘 숨겨져 있지만, 지금까지 딱히 마법적인 장치가 있거나 하지는 않았지.”
안드레이가 수염을 가다듬으며 말했다.
“게다가 못해도 몇백 년은 된 보물고잖아. 아무리 강력한 마법이라도 시간이 지나면 그 힘이 쇠하기 마련이야.”
있을 법한 일이었다.
보물고에 걸린 보호 장치나 마법이 수백의 시간이 지나 제 기능을 상실했고, 우연히 이곳에 떨어진 사람이 보물고에 들어갔을 가능성.
엘레나가 얼굴을 굳혔다가, 이내 힘을 주어 말했다.
“설령 이 유적에 다른 자들이 운 좋게 들어갔다고 해도, 보물을 가지고 나왔을 확률은 적어요. 바이만의 보물고가 그렇게 허술하게 지어지지는 않았을 거예요.”
“하긴. 안쪽에 함정 같은 게 있을 테니…….”
이곳까지 길을 찾는 건 어디까지나 시작에 불과하다.
진짜는 저 안에 있을 거다.
“어쨌든 여기까지 와서 돌아갈 수는 없으니까. 일단 들어가보고 판단하자고.”
안드레이의 제안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앞장서겠다.”
데일은 반쯤 열려 있는 석문을 힘껏 잡아당겼다.
쿠구구!
석문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활짝 열렸다.
“보기보다 엄청 무겁군. 문이라기보다는 바위에 가까운데.”
“……혹시 이것도 원래 마법으로 옮기도록 설계되어 있는 거 아니에요? 무식하게 힘으로 움직이라고 만들어논 게 아닌 것 같은데.”
하켄의 지적. 다른 사람들도 미묘한 눈으로 데일을 쳐다보았다.
듣고 보니 맞는 말 같기도 했다.
“열렸으면 된 거 아닌가?”
“그건 그렇죠.”
가장 먼저 문으로 들어간 건 데일이었다.
문으로 다리를 집어넣자, 몸이 쑥 꺼지며 길고 좁은 통로를 빠르게 미끄러져 내려갔다.
마치 미끄럼틀과 같은 구조였다.
카가가각!
데일은 양옆의 벽에 건틀릿을 박아 적절히 속도를 조절했다.
그렇게 데일은 생각보다 긴 시간을 낙하했다.
‘깊게도 파놨네.’
혹시나 있을 외부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서일까?
바이만의 보물고는 상당히 깊게 땅을 파내려간 곳에 지어져 있었다.
한편으로는 감탄스럽기도 하다.
‘기술력이 대단하긴 했나보군.’
땅을 깊게 팔수록, 건설에 드는 비용이나 인력이 치솟는 건 당연한 일이다.
심지어 험지라고 불리는 카드라스 산 깊은 곳에. 남들에게 눈에 띄지 않으며 이런 보물고를 지어냈다.
마법으로 이름 높았던 바이만의 위상을 조금이나마 실감할 수 있었다.
마침내 낙하가 끝나간다.
어둠 속에서도 환히 볼 수 있는 데일은 저 앞에 조그만 입구가 있다는 것을. 이 미끄럼틀이 조만간 끝난다는 걸 알아차렸다.
데일은 자세를 잡았다. 그리고 미끄럼틀이 끝나는 순간.
정확히 낙법을 취했다.
쿵.
한 바퀴 구른 데일은 멋들어지게 바닥에 착지했다.
혹여나 있을 위협에 대비해 곧장 자리에서 일어나 검을 쥐었다.
하지만 우려했던 습격은 없었다.
후욱!
데일이 들어서자, 벽에 일정 간격으로 매달려 있던 횃불에 차례대로 불이 붙기 시작했다.
자연적인 불이 아닌, 마법으로 피워낸 노란색 빛이었다.
그런 노란 횃불이 저 멀리까지 이어져 있었다.
‘복도…… 인가?’
보물고는 긴 복도형 구조의 유적처럼 보였다.
일단 위협이 없는 걸 확인한 데일은 내려온 구멍에 대고 외쳤다.
“안전하니까 내려와라!”
조금 뒤.
일행이 데일처럼 미끄러져 내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처음은 하켄이었다.
“으아아아악!”
잔뜩 겁에 질려 요란하게 비명을 지르던 하켄이 굴러 내려왔고, 그 직후 바닥에 추락해 그대로 널브러졌다.
그다음으로는 프라우를 시작으로 하나둘 내려왔고, 하나같이 하켄을 쿠션 삼아 바닥에 착지했다.
마지막으로 하티가 멋들어지게 미끄러져 와, 하켄의 몸통 위에 착지하는 것으로 마무리.
데일이 하켄에게 물었다.
“괜찮나?”
“……차라리 죽여주세요.”
다행히 튼튼한 하켄은 멀쩡해 보였다.
다른 일행은 그런 하켄을 무시하고 주위 관찰하는 데에 집중했다.
“호오. 이 횃불은 사람이 오면 알아서 불이 붙는 마도구인가?”
“와. 벽에 걸려 있는 횃불이 전부 마도구라고요? 당장 보이는 것만 해도 100개는 넘는데. 바이만 왕국은 돈이 썩어넘치는 곳인가 보네요.”
“당연하죠. 저희 왕국이 어떤 곳인데.”
“공기 질도 나쁘지 않아. 지하에 수백 년간 묵은 공기라기에는 너무 산뜻해. 공기를 정화하는 마법이 어딘가에 걸려 있는 건가?”
마법사 셋을 내버려두니, 또다시 자기들끼리 끝도 없이 떠들 것 같았기에, 데일이 끼어들었다.
“됐고. 바로 이동하자.”
이런 지하 시설에서 오래 있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데일은 성큼성큼 복도를 걸었다.
복도의 끝에는 또 다른 석문이 있었다.
석문에는 검과 책을 짓누르고 있는 사자의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바이만 왕국을 상징하는 문양이었다.
문양의 아래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안드레이가 미간을 좁혔다.
“파수꾼? 뭘 말하는 거지?”
모두의 시선이 엘레나에게 향했다. 하지만 엘레나는 고개를 내저었다.
“저도 잘 모르겠어요.”
“직접 부딪혀보는 수밖에 없다는 건가.”
한스가 머리를 긁적였다.
“어쨌든. 이 문을 열면 되는 거겠죠? 마법사 셋이 필요하다고 했으니, 무언가 마법적인 처리를 해야 하지 않을까요?”
“드디어 우리가 밥값을 할 때가 온 거 같군.”
쿠구구구.
데일이 문을 힘껏 열자, 이번에도 석문이 열렸다.
“그냥 열리는데?”
마법사들은 다시 조용해졌다.
데일은 성큼 앞서나가며 말했다.
“내가 가면 뒤에서 거리를 두고 따라와라. 함정이 있을 수도 있으니.”
“예.”
석문 너머는 정사각형의 방이었다. 데일이 먼저 발을 들이고, 나머지 일행이 모두 방으로 들어오자. 뒤쪽 문이 저절로 닫혔다.
쿵!
“꺄악!”
화들짝 놀라는 에스델. 갇혀버렸단 사실에 다들 순간 당황했다.
“이게 대체 무슨…….”
하지만 멍하니 있을 시간은 없었다.
다음 순간. 사방의 벽이 뒤집히더니, 시위에 볼트를 건 쇠뇌 수십 대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하켄이 불안한 듯이 중얼거렸다.
“설마?”
“뭉쳐!”
데일이 크게 외치자, 일행이 중앙으로 모여들었다.
데일은 혼자서 멍하니 있던 엘레나의 몸을 잡아 동료들을 향해 힘껏 던졌다.
프라우가 그런 엘레나를 멋들어지게 잡아냈다.
“훌륭한 투척 솜씨군 데일 경!”
“저를 물건처럼 던지다니…….”
“에스델! 보호벽!”
“알겠어요!”
에스델이 빠르게 기적을 읊기 시작했다.
찬란한 빛을 뿜는 반구형 장벽이 일행을 감쌌다.
그와 동시에 사방에 설치된 석궁에서 수십 발의 볼트가 날아들었다.
퉁! 투투퉁!
볼트가 신나게 장벽을 두드렸다. 그 기세가 사나우나, 에스델의 벽을 뚫을 만큼 날카롭지는 못했다.
홀로 장벽 바깥에 있던 데일은 그냥 볼트를 맞아주며, 주위를 살폈다.
‘볼트가 한 번 발사되고, 자기가 알아서 장전까지 하는군.’
그냥 놔두면 끝도 없이 볼트를 발사할 기세였다.
데일은 한 발 앞으로 나서, 마검을 크게 휘둘렀다.
콰작!
날아오던 볼트와 함께 벽에 설치되어 있던 쇠뇌가 반 토막이 났다.
데일은 쉬지 않고 검을 휘둘렀다. 수십 대에 이르던 쇠뇌의 숫자가 빠르게 줄어들었다.
마지막 쇠뇌를 박살 내고. 마침내 볼트 세례가 멈추자, 놀랍게도 닫혀 있던 석문이 다시 열렸다.
이곳으로 올 때 사용한 문과, 그 반대편에 있는 다른 문.
방패를 쥐고 서 있던 하켄이 자리에 주저앉았다.
“후, 후우. 인사 한번 화끈하구만.”
데일도 고개를 끄덕였다.
“침입자에 대한 대처는 확실한 것 같다. 엘레나를 침입자로 간주하는 게 문제지만.”
“바이만의 왕족이라면 이 정도는 거뜬히 헤쳐나가야 한다는 게 아닐까? 내가 아는 바이만 놈들은 하나같이 오만하고 자신감이 넘쳤으니까.”
안드레이의 말에 엘레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에는 안 들지만, 그 점은 저도 인정해요. 바이만의 계승자로서 이 정도 시련은 넘어서라는 거겠죠. 다섯 걸음에서 멈추라는 말은…… 어쩌면 이런 방을 다섯 개 지나쳐야 한다는 말일지도 모르겠네요.”
“겍. 이런 걸 다섯 개나?”
하켄이 기겁했지만, 지금으로선 엘레나의 추측이 그럴듯해 보였다.
하지만 데일은 큰 걱정은 하지 않았다.
‘무리해서라도 에스델을 데려오길 잘했군.’
방금 전도 에스델의 방벽 덕에 일행이 무사히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이런 안정감이야말로 사제라는 역할이 가진 힘이자 가치였다.
데일이 사람들을 다독였다.
“어서 가자. 이런 방을 네 개나 더 지나야 하니, 서두르자.”
“예…… 그런데. 그래서 결국 파수꾼은 어딨죠?”
다들 그 부분을 의아해했지만, 마땅한 답은 떠오르지 않았다.
하켄은 머리를 긁적였다.
“거참. 이놈의 보물고는 뭐하나 속 시원하게 알려주는 게 없네요.”
그런 하켄의 툴툴거림을 뒤로하고. 데일을 선두로 일행은 다음 방으로 통하는 문을 지나쳤다.
맨 뒤에서 따라오던 하티와 함께 따라오던 하켄은 걸음을 멈췄다.
왜인지 하티가 뒤를 지그시 노려보고 있었다.
하켄이 물었다.
“왜 그래 이 녀석아.”
하티는 고개를 휙 돌리며 크릉 울었다. 신경 쓰지 말라는 듯이.
그러고는 우아한 걸음걸이로 동료들을 뒤따랐다.
“흠.”
홀로 남겨진 하켄은 혼자 머리를 긁적이며 하티가 쳐다보던 방향을 응시했다.
그러고는 고개를 젓고는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하켄이 사라지자 석문이 자동으로 닫혔다.
그리고 밀폐된 방안에는 다시 어둠과 정적이 내려앉았다.
* * *
사방에서 볼트가 날아들자, 마젤이 소리쳤다.
“이런! 씁! 이런 곳을 지나친다는 말은 없었잖소!”
“시끄러워! 나도 이런 덴 줄 몰랐다고! 방패진!”
“옙!”
병사들이 둥글게 모여들어, 방패를 들어 올렸다.
하지만 방패는 전신을 가릴 정도로 충분히 크지 못했다.
빈틈으로 볼트가 날아와 병사들의 몸에 틀어박혔다.
“컥!”
“커억!”
“이런…….”
이를 악문 성기사는 맹수처럼 땅을 박찼다. 갑옷으로 볼트를 받아내며, 하얗게 빛나는 메이스를 휘둘러 쇠뇌를 부쉈다.
그렇게 분투하길 한참.
악몽 같던 시간도 끝이 났다.
볼트 세례가 멈췄다.
“끄, 끝났다.”
“후아…….”
“부상자들을 곧바로 응급처치해! 상처 부위에 성수를 아끼지 말고 부어! 그러고도 낫지 않는다면, 나한테 데려와라. 내가 직접 치유할 테니.”
“옙!”
성기사가 지휘하자, 교단의 병사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마젤은 그런 성기사에게 따지려 했다.
“이건 미친 짓이오. 유적이라니. 이런 곳에 대비도 없이 들어가다가는 목숨이 열 개라도 부족할 것이오!”
“끄응. 나도 알아! 하지만 이제 와서 어디로 올라간단 말이야! 설마 우리가 내려올 때 쓴 그 통로를 거슬러 올라가자는 소리는 아니겠지?”
그의 말마따나.
미끄럼틀처럼 미끄럽고 가파른 그 통로를 거슬러 올라간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여기서 계속 전진하는 것도 마냥 따르기 어려웠다.
으레 유적이란 온갖 함정과 위험이 있는 법이고, 중심지에 가까울수록 더욱 치명적인 함정이 있기 마련이니.
마젤은 성기사에게 새로 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하려 했다.
하지만 마젤은 말을 멈췄다. 어느 한 곳을 조용히 응시했다.
“…….”
“뭐야. 왜 갑자기 말을 멈추는 거냐?”
마젤은 꼼꼼하고 냉정하기로 유명한 사내였다.
물론. 예전부터 이랬던 건 아니다.
마젤 역시 다른 용병처럼 화끈하고, 다소 호탕하게 살아오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방심과 부주의는 끔찍한 사고로 이어졌다.
마젤이 속한 파티가 전멸했고, 마젤 자신도 얼굴에 깊은 흉터가 생겼다.
그 뒤부터 마젤은 주위 상황을 사소한 것 하나까지 꼼꼼히 살폈고, 강박적으로 기억하려고 애썼다.
그런 마젤의 눈에 어느 병사가 다른 병사들의 상처를 치유하는 게 보인다.
‘저 자는 분명.’
교단의 병사들은 개인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똑같은 갑옷을 입고, 똑같은 투구를 쓴다.
누가 누군지 잘 구별이 안 가는 것이다.
하지만 사냥꾼 마젤은 관찰력이 뛰어나다. 그는 절대 사람을 헷갈리는 법이 없었다.
그런 마젤의 기억 속에, 저 멀쩡히 움직이는 병사는 분명 옆구리와 허벅지, 그리고 가슴에 볼트가 박혔었다.
한눈에 봐도 치명상이다.
설령 성수로 치료했다 해도, 저렇게 아무렇지 않게 움직일 수 있는 상처가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마젤은 시위에 화살을 메겼다.
그리고 병사를 겨냥했다.
“뭐, 뭐 하는 거야!”
“!”
성기사가 화를 내고, 병사들은 갑작스러운 상황에 하던 일을 모두 멈췄다.
싸늘한 정적이 공간에 내려앉았다. 따가운 시선이 마젤에게 집중되었다.
하지만 마젤은 얼굴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그저 병사를 겨냥하며 말했다.
“너 누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