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ark Knight in the Game RAW novel - Chapter (116)
보물고
* * *
수호자는 망연자실한 기색으로 박살나버린 석문을 살폈다.
“침입자? 공성추 같은 거로 부순 건가? 대체 누가?”
“내가 부쉈다만.”
“……어떻게 말이죠?”
“주먹으로.”
수호자는 할 말을 잃어버렸다.
엘레나가 재빨리 앞으로 나섰다.
“그대가 이곳의 수호잔가? 나는 바이만 왕가의 마지막 계승자인 엘레나야. 내 권리를 행사하러 이곳에 왔어.”
수호자는 곧바로 고개를 숙여 예법을 취했다.
“보물고의 수호자가 계승자를 뵙습니다. 엘레나 전하. 전하의 권리를 인정합니다. 저와 이곳에 있는 모든 건 폐하의 것입니다.”
“저, 전하라니.”
그 익숙지 않은 호칭에 엘레나는 멋쩍어했다.
나라가 없는 왕에게는 과분한 호칭일 뿐이었다.
물론. 수호자가 엘레나가 지닌 핏줄의 힘을 알아보는 건 다행이었다.
정식으로 보물고의 재산을 양도받을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보물에 대해 얘기하기 전에 물어볼 게 있었다.
엘레나가 입을 열었다.
“근데 저 다섯 번째 방은 대체 어떻게 해야 문이 열리는 거야? 뭔가 오류가 있던 거야?”
“예? 이곳으로 오는 단서는 왕가에 대대로 내려왔을 텐데요?”
“왕가의 핏줄이 카드라스에 오르면 길이 보이리라. 다섯 걸음에서 멈춰라. 마법사 셋이 함께하면 문이 열리리라. 파수꾼을 피해 수호자를 만나면 원하는 것을 거머쥐리라…… 이 정도밖에 못 들었는데. 내가 모르는 게 더 있나?”
수호자가 떨떠름하게 말했다.
“아뇨. 그게 전부입니다.”
“그럼 왜 문이 안 열렸다는 건데? 다섯 걸음에서 멈춰라. 마법사 셋이 함께하면 문이 열리리라…… 여기에 마법사 세 명이 있어. 근데도 문이 안 열렸단 말이야.”
의아해하던 수호자는 이내 탄식을 내뱉었다.
“아…… 아무래도 수백 년이나 지난 탓에 말의 의미를 제대로 해석하지 못하신 것 같군요.”
“뭐?”
수호자가 조금 실망한 목소리로 말했다.
“마법사 세 명이 함께하라는 건…… 말 그대로의 의미가 아니라 ‘시끄럽게 굴거나 큰소리로 떠들다’라는 관용구입니다.”
“잠깐. 그러면.”
“예. 물이 쏟아지기 전에 큰소리로 문이 열리라고 외치면 됩니다. 마지막 방이니 만큼, 일부러 쉬운 수수께끼를 냈는데…….”
해답은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간단했다.
일행이 굳어있자, 수호자가 서둘러 설명했다.
“애초에 이 보물고는 마법이 없어도 헤쳐나갈 수 있게 설계되었습니다. 마법사가 3명이나 필요할리가요.”
안드레이와 한스가 당황했다.
“확실히. 마법사들이 활약할 기회가 없다시피 하긴 했지.”
“잠깐. 그러면 우리는 진짜로 처음부터 필요 없었다는 거야?”
분위기가 미묘해지자, 혼자서 지루하게 하품하던 프라우가 말했다.
“그러면 어떻고, 저러면 어떤가. 이렇게 도착했으면 된 거지. 너 유령아. 왕가의 정당한 계승자가 왔으니 썩 보물이나 토해내라.”
“저는 유령이 아닙니다. 굳이 따지자면 마법으로 만들어진 정령 같은 존재이지요. 게다가 왜 엘프가 폐하를 호위하고 있죠? 아무리 시간이 오래 흘러 세상이 변했다고 해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군요.”
“나를 모욕하는 건가!”
어쨌든 프라우의 말이 맞았다.
도착했으면 된 거 아닌가.
엘레나가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말했다.
“흠흠. 그래도 수고했어. 수백 년간 침입자를 격퇴하며, 이 보물들을 지켜낸 너의 노고를 인정할게. 이제 우리를 보물고로 안내해주겠어?”
“……사실 딱 한 번이지만 도굴꾼들한테 털린 적이 있긴 한데.”
“뭐?”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황급히 고개를 돌린 수호자가 서둘러 화제를 바꿨다.
“그나저나 이곳에 전하께서 왔다는 건, 왕국이 위태롭다는 거겠죠? 역시 반란입니까? 아드레이 가문? 카라스토스 가문? 만약 반란을 일으킨 게 팽 가문이라면, 저는 그럴 줄 알았다! 하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놈들이 다루는 마법은 워낙 반항적인 구석이 있었으니까요.”
엘레나가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수호자의 등에 대고 말했다.
“왕국은 멸망했어. 이제 백성들도, 용맹했던 기사단도, 그대가 말한 명문 가문들도 전부 사라졌어.”
“……예?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수호자는 단호히 부정하려 했다.
그의 머릿속에 입력된 상식으로는 바이만이 몰락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차라리 대륙을 호령하는 제국이 멸망하는 게 더 빠르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엘레나의 서글픈 표정은 증명해주었다. 그녀의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걸
다른 일행도 입을 다물었다.
수호자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대체. 대체 어째서?”
“악마……라고. 먼 곳에서 찾아온 침략작들이 침공해왔어. 대륙의 많은 왕국이 무너져 내렸고, 바이만도 그중 하나였지. 지금도 우리는 힘겹게 버티고 있는 처지야.”
수호자의 눈빛이 흔들렸다.
수백 년이라는 시간을 이곳을 지켜왔을 수호자다. 사실 왕국은 이미 멸망했다는 진실을 듣는다면 어떤 기분일까.
잠시 입을 다물었던 수호자가 말했다.
“그렇군요.”
놀랄 만큼 덤덤한 목소리.
“해가 뜨면 해가 지고. 달이 차면 기우는 법이죠. 저희 바이만 왕국도 그 운명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나 봅니다.”
“……그래.”
“하지만 바이만이 멸망했다는 건 틀린 말입니다.”
“뭐?”
“이렇게 전하께서 살아계시지 않습니까.”
수호자는 엘레나를 향해 양팔을 벌려 보였다.
“전하께서 곧 바이만입니다! 전하께서 계속 살아계시는 한. 그리고 그 고귀하고 특별한 피가 계속 이어지는 한 바이만은 건재한 겁니다. 그러니 멸망이라는 말을 입에 담지 마십시오.”
수호자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던 엘레나도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
“응. 알았어.”
“그럼 이제, 이곳에 온 목적을 이룰 시간이군요. 저 벽에 있는 문들이 보이시죠?”
수호자가 손가락을 들어 가리켰다.
널따란 공동의 벽에는 석문 수십 개가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각자 방을 하나씩 골라 들어가시죠.”
하켄이 물었다.
“어…… 저 안에 들어가면 뭐가 있는데?”
“각자에게 꼭 필요한 것들이 들어있을 겁니다. 그게 지식일 수도, 보물일 수도, 강력한 유물일 수도 있죠.”
이번엔 데일이 물었다.
“우리가 고를 수는 없는 건가?”
“원하신다면 고를 수야 있죠. 하지만 장담할게요. 직접 고르는 것보다는 선택에 맡기시는 게 나을 겁니다.”
그렇게까지 말하니, 서로 눈치를 보던 일행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하나둘 흩어져서 마음에 드는 석문 앞에 섰다.
“역시 가장 첫 번째가 제일 좋을 것 같은데.”
“이 안에서 예사롭지 않은 기운이 느껴져…….”
데일도 적당히 남는 문 앞에 섰다.
그리고는 문고리를 힘껏 잡아당긴 뒤, 안으로 들어갔다.
사람 두셋이 들어갈 수 있을 만한 정사각형 방이었다.
그리고 방 안에는…….
‘아무것도 없는데?’
그때. 갑자기 벽을 뚫고 수호자의 머리가 쑤욱 튀어나왔다.
“아무것도 없는데? 라고 마음속으로 당황하고 계시죠. 분명?”
“……그렇다만.”
“하지만 당신은 이미 이 보물고에서 물건을 하나 챙기셨습니다.”
“뭐?”
“바로 그겁니다.”
수호자는 데일이 맨 망토를 가리켰다. 그리고 어딘가 화가 난 어조로 외쳤다.
“아까부터 계속 신경 쓰였는데, 그 물건은 대체 어디서 얻으신 거죠?!”
“선물 받았다만. 이게 원래 이 보물고의 물건이란 말인가?”
수호자는 괜스레 주위를 휙휙 둘러보며 눈치를 살핀 뒤,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솔직히 말할게요. 사실, 전하께는 부끄러워서 말 못 했지만, 이 보물고에 침입자가 들어온 적이 있습니다.”
“…….”
데일의 눈빛이 싸늘해지자 수호자가 황급히 말했다.
“다, 단순히 운이 나빴다고밖에 볼 수 없어요. 왕가의 마법을 감지할 수도 없는 놈들이, 설마 이런 외진 곳까지 들어올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그 누가 험난한 카드라스 산. 그것도 깎아지르는 듯한 절벽 아래를 살펴볼 생각을 했을까.
“단 한 명. 여러 명이서 들어왔지만, 다섯 방을 지나쳐 여기까지 온 건 한 명이었습니다.”
“그 함정들을 다 헤쳐나가다니. 꽤 실력이 출중했나 보군.”
“아뇨! 그냥 평범한 용병이었습니다. 조금의 재치와 운으로 그 모든 함정을 지나친 거죠!”
운으로 여기까지 당도했다라.
선뜻 믿기 어려운 말이다.
하지만 긴 세월이 흐르다 보면, 가끔 어이없는 일도 벌어지는 법이다.
‘그러고 보니 이 망토…….’
데일은 이 망토를 선물해준 노인에게, 망토를 어디서 얻었는지 물어봤었다.
그때 노인은 용병일을 하던 선조가 우연히 유적에서 주웠다고 했는데…….
‘이게 이렇게 이어지는군.’
수호자는 이를 잘근잘근 깨물었다. 물론. 특정한 형체가 없기에, 깨무는 시늉을 하는 것뿐이었지만.
“그렇게 운 좋게 들어온 놈이 감히 저에게 보물을 내놓을 걸 요구하더군요. 또 눈치는 어찌나 귀신 같은지, 망토가 귀한 물건임을 곧바로 알아보더라고요. 전투 능력이 없는 저는 결국, 그 망토를 내주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쯧. 파수꾼 놈들만 제대로 일했어도 그런 굴욕은 없었을 텐데.”
“그래서. 일부러 망토의 힘을 봉인해 둔 건가? 순순히 보물을 주기 싫어서?”
“바로 맞췄습니다! 자격도 없는 자가 감히 욕심을 부렸으니, 조금 골탕을 먹여주었죠. 하지만 설마 이런 식으로 되돌아올 줄은 몰랐군요.”
수호자는 데일의 망토를 어루만졌다.
“당신께는 다른 보물 대신, 이 망토의 봉인을 해제해드리겠습니다. 하지만 섭섭해하지 마세요. 이 망토야말로 이 보물고에서 가장 중요한 물건이니까.”
“대체 무슨 힘이 잠들어있길래?”
“마법 반사.”
수호자는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힘을 주어 말했다.
“이 보물고는 바이만 왕국이 위기에 처했을 때를 대비해 만든 곳입니다. 하지만 저희가 예상했던 왕국의 멸망은 하나입니다. 내부 분열.”
바이만 왕가를 지탱하는 강력한 마법사 가문들.
그들의 배신이 있지 않으면 절대 몰락할 리 없다고. 오만한 바이만의 왕가는 생각했다.
“애초에 이 보물고는 내부의 반란을 대비해 만들어진 셈입니다. 그래서 이 안에 준비한 함정들도 마법으로 쉽게 파훼하지 못하도록 만들었고요. 이제 이 망토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 이해하십니까?”
마법을 반사하는 망토.
그야말로 마법사들에게는 천적이나 다름없는 유물이다.
이 보물고에 있는 가장 귀한 물건이라는 건 결코 과장이 아니었다.
데일이 물었다.
“그런 걸 나한테 건네주어도 되겠나?”
수호자가 복잡한 감정이 깃든 미소를 지었다.
“제 손을 떠났던 망토가 당신의 손에 들어갔다면, 그건 분명 운명이겠죠. 이제 이 망토로 혼내줄 반란 분자도 사라지고, 지켜야 할 왕국도 무너졌지만…… 당신이 전하를 지켜주세요. 언젠가 바이만이라는 불길이 다시 타오를 수 있게, 그 불씨를 지켜주세요. 약속해주실 수 있나요?”
데일은 조용히 수호자의 시선을 마주한 뒤,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다. 확신은 못 하지만, 노력해보겠다.”
“그것만으로도 됐습니다.”
화아아아!
수호자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망토의 겉면이 빛을 발하며, 숨겨져 있던 문양이 드러났다.
포효하는 푸른 사자.
망토에서 느껴지는 강렬한 힘에 데일은 감탄했다.
‘대단하군.’
유물도 그 힘에 따라 상급과 하급을 나누는데, 이건 한 국가의 보물이라 불러도 손색없을 정도의 물건이었다.
데일이 물었다.
“어떤 마법이라도 되돌릴 수 있나?”
수호자가 자부심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이 망토가 만들어질 당대의 가장 강력한 마법조차 튕겨낸 물건입니다. 다만. 한 번 유물의 효과를 발동하면, 다시 사용할 때까지 긴 시간을 기다려야 합니다. 하지만 망토 자체로도 마법에 강한 저항성이 있으니, 요긴하게 사용할 수 있을 겁니다.”
“그렇군.”
“망토가 지켜주는 건 오로지 착용자 한 사람이라는 건 명심해주세요.”
데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여벌의 목숨이 새로 하나 추가된 셈이니, 굉장히 만족스러웠다.
데일은 푸른 사자가 새겨진 망토를 둘렀다.
데일의 흑색 갑옷과 연회색의 망토. 그리고 푸른 사자가 어우러져, 제법 그럴듯한 모습이 되었다.
마치 옛날이야기 속에 나올 법한 기사의 모습이었다.
아마도 주인공보다는 악역을 맡았겠지만 말이다.
원하던 소득을 얻은 데일은 문을 나섰다.
다른 일행 역시 하나둘 걸어나오고 있었다.
못 보던 물건을 가지고 나온 이도 있었고, 깨달음을 얻은 듯한 표정을 한 사람도 있었다.
공동으로 나온 일행은 각자 자기들이 무엇을 받았는지에 대해 자랑하려 했다.
그때. 수호자가 눈을 감더니, 입을 지그시 깨물었다.
“벌써 여기까지 왔다고? 쯧.”
수호자가 외쳤다.
“자자! 이제 그만 돌아갈 시간입니다! 시간이 없거든요.”
“시간이 없다니요?”
“파수꾼이 오고 있습니다. 석문을 부쉈으니, 금방 여기까지 도달할 거예요! 밖으로 향하는 문을 열게요!”
수호자의 태도가 워낙 다급해서, 일행은 질문조차 던지지 못했다.
수호자는 서둘러 움직여 바깥으로 향하는 통로를 열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때.
“어딜 그렇게 급하게 가려 하는 거지?”
부서진 석문으로 일단의 무리가 들어왔다.
새하얀 갑옷을 입은 성기사들과 병사들.
그리고 얼굴에 깊은 흉터가 난 사냥꾼.
그들은 천천히 걸어오다, 엘레나를 타는 듯한 눈빛으로 노려보았다.
“바이만 왕가의 계승자. 우리를 이곳에 가둔 가증스러운 핏줄아. 너는 우리와 같이 영원히 이곳에 남아야 할 것이다.”
성기사는 철퇴를 엘레나에게 겨누며 말했다.
“마침내 복수의 시간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