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ark Knight in the Game RAW novel - Chapter (135)
봄이 오다
* * *
전투는 끝났지만, 더욱 큰 문제가 남아 있었다.
바로 배신자들의 처분에 대한 문제였다.
군단장과 기사단장. 그리고 지휘관들은 꼬박 하루 동안 회의를 거쳤고, 결론을 내렸다.
“많든 적든 악마의 힘을 직접적으로 받은 이들은 전부 처형할 것이다. 그렇지 않고, 아직 인간으로 남아 있는 병사들에게는 기회를 주겠다.”
반란군이 전부 악마가 좋아서 아군을 배신한 건 아니었다.
개중에는 이 끝없는 전쟁에 지친 자들도 있었고, 황제에 대한 반감 때문에 돌아선 이들도 있었다.
자기 병사들을 사랑하는 군단장답게 꽤나 관대한 처분이 내려졌다.
하지만 이레네에서 온 지휘관들도 딱히 반발할 수 없었다.
함께 온 빅토르 백작이 악마에게 홀린데다가, 그 때문에 성문이 뚫리고 말았다.
이레네의 지휘관들로서는 면이 안 살았던 것이다.
하지만 기사단장은 오히려 기꺼워했다.
“놈이 악마를 섬겼다고? 그 짧은 사이에 배신하다니, 참으로 줏대 없는 사내구나. 마침 잘 됐다. 안 그래도 폐하께서 놈의 가문을 탐탁지 않게 여기시던 참이다. 이번 일을 문제 삼아, 악마와 붙어먹은 가문이라 이름 붙이고 싸그리 몰아내야겠어.”
기사단장은 살벌한 말을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말했다.
일이 일이었던 만큼, 빅토르 백작과 친분이 있는 귀족들도 감히 두둔하지 못했다.
전투를 마치고. 병사들이 충분한 휴식을 취한 다음 날.
대대적인 처형식이 거행되었다.
처형 방식은 교수형이었는데, 여기서 문제가 생겼다.
처형인이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저. 군단장님? 목에 밧줄을 걸어도 안 죽는데요?”
악마의 힘을 받은 추종자들은 평범한 사람이 아니다.
목에 밧줄이 걸려 숨을 못 쉬는 데도 계속 살아남아 버둥거렸다.
결국.
병사 중에서 도끼를 잘 다루는 이들을 선발해, 배신자들의 목을 베게 시킬 수밖에 없었다.
써걱.
도끼날이 목을 자르고. 흉측한 머리통이 데구르르 떨어질 때마다 병사들이 환호성을 내질렀다.
“와아아!”
“새끼! 아무리 그래도 악마한테 붙어먹냐?”
아무래도 악마의 추종자들은 옛 동료 취급조차 받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잔인한 광경에 에스델은 고개를 저으며 돌아가고. 하켄은 누구보다 앞에 서서 환호했다.
데일은 그저 조용히 서 있었다.
적어도 저기에서 목이 잘리는 이들 중에 무고한 사람은 없으니, 별 감흥은 없었다.
그때. 데일의 옆에 누군가가 다가왔다. 얼굴 한가운데에 깊은 흉터가 난 사내였다.
“아. 데일 경. 여깄었군요.”
“……누구?”
“벌써 잊어버리신 건가요?”
그제야 병사의 얼굴을 유심히 본 데일은 그가 누구인지를 깨달았다.
“아. 내 옆에 서 있던 신병.”
“하하! 역시 기억해주셨군요. 정신 똑바로 차리면 살 수 있다는 말만 믿고, 정말로 정신을 차렸더니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어요!”
‘설마 진짜 살아남을 줄은 몰랐는데.’
당연히 죽을 줄 알았다.
꽤나 격렬한 싸움이었고, 풋내기들이 살아남을 만한 전장은 아니었다.
하지만 눈앞의 신병은 살아남았다.
‘운이 좋은 건가?’
그렇다면 앞으로도 계속 살아남을 수도 있을 것이다.
게다가 얼굴에 저 커다란 흉터를 보라.
누가 봐도 노련한 병사의 모습이 아닌가?
신병은 한 번의 전투로 전사가 되었다.
“앞으로도 열심히 해라.”
“예! 신전에 가서 헌금도 많이 낼게요!”
“아니. 이상한 데 낭비하지 말고, 그 돈으로 맛있는 거나 사 먹어라.”
“예?”
“밤의 여신도 그걸 바랄 거다.”
“……예!”
멋대로 밤의 여신의 이름을 들먹였지만, 무슨 상관인가.
남들은 데일을 여신의 기사라 부를 텐데.
사제장 에리얼은 왜 아까운 헌금을 마다하냐고 툴툴거리겠지만 말이다.
그런 식으로 처형은 순조롭게 이어졌다.
하지만 문제는 반란을 주도한 참모격 인물들이다. 이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악마의 힘을 받았는데, 인간의 모습을 한 이는 없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는 흉측한 괴물들.
그중에는 베른바르트의 손자도 있었다.
그래도 한때 군단의 참모 자리에 있었던 만큼, 손자는 독방에 감금되어 있었다.
처형의 마지막 순서에 베른바르트가 직접 목을 자를 거라고 했다.
‘그래서는 안 돼.’
손자가 조부를 죽이는 일도. 조부가 손자를 죽이는 일도 있어서는 안 된다.
데일이 군단장에게 말했다.
“내가 처형하겠소.”
“……그래 주겠나?”
이번 승리의 주역이 그리 말하는데 굳이 거절할 이유는 없다.
병사들도 그러려니 해줄 터.
군단장은 데일의 마음 씀씀이를 알아채고 감사의 눈빛을 보냈다.
“고맙네. 못난 손자를 잘 부탁하겠네.”
데일은 지하 감옥으로 걸음을 옮겼다.
지하 감옥은 황실 기사들의 철통 같은 경계를 받고 있었다.
기사들은 데일이 다가오자 아는체를 해왔다.
“오. 무슨 일이시오.”
“밖에는 한참 처형이 이루어지고 있지 않소?”
데일이 목숨을 걸고 공중에서 아르구르와 격전을 벌이던 걸 똑똑히 본 기사들이다.
상대가 이교도든 뭐든, 데일은 전사로서 존중을 받을 자격이 있었다.
기사들의 호의적인 반응에 데일은 상황을 간단히 설명했다.
“아. 군단장이…….”
“하긴. 노인에게 혈육을 직접 처형하라는 건 가혹한 얘기지. 알겠소. 들어가시오.”
기사들은 별 추궁 없이 데일을 들여보내 주었다.
그만큼 데일을 신뢰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데일은 횃불 하나 없이 어두운 지하 감옥을 내려갔다.
이 습하고 음침한 공간에 다른 죄수는 없었다. 철창 안은 전부 텅 비어 있었다.
데일은 한참을 걸어 지하 감옥의 가장 안쪽에 다다랐다.
강철을 겹겹이 세워 만든 철창 속에서 누군가 조용히 앉아 있었다.
‘이놈인가?’
그 모습은 워낙 이곳저곳 비틀려서 한 단어로 설명하긴 어렵지만, 굳이 표현하자면 상어 인간이 그곳에 앉아 있었다.
조용히 눈을 감고 있던 상어 인간은 데일의 기척을 듣고 눈을 떴다.
보석 같은 녹색 눈동자가 어둠 속에서 기이한 빛을 내뿜었다.
데일이 물었다.
“너인가? 배신자의 우두머리가?”
“란돌. 내 이름은 란돌이다. 흑기사 데일.”
생각보다 더 침착하고, 듣기 좋은 음성이 들려왔다.
데일이 란돌을 가둔 철창 앞에 털썩 앉았다.
“나를 아나?”
“알다마다. 여러모로 믿기 어려운 소문의 주인공 아닌가. 이성을 유지하는 흑기사라거나, 숱한 업적을 이뤄낸 영웅이라거나. 당연히 헛소문인 줄 알았는데, 놀랐어. 아르구르와 싸우는 모습. 제법 훌륭했다.”
란돌은 진심을 담아 말했다.
설마 이렇게 솔직한 칭찬이 돌아올 줄은 몰랐던 데일은 잠시 멈칫했다.
란돌에게서는 결과에 승복하는 깔끔함이 느껴졌다.
그 얼굴에 후련한 감정이 서렸다.
데일이 물었다.
“후련해 보이는군.”
“지금 와서 생각하니, 반란을 준비하면서도. 악마의 힘을 받아들이면서도. 내심 내가 틀렸기를 바랐었던 것 같아. 누군가 나를 막아주기를 원했던 거야.”
“……처음부터 반란을 하지 않았으면 되는 거 아닌가?”
란돌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 꼭 해야만 하는 일이었어. 지금 이대로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어. 변화가 필요했고, 내가 그 역할을 맡았을 뿐이야.”
“후회는 없나?”
“전혀!”
당당히 외치는 란돌의 눈동자가 반짝거렸다.
데일은 그 눈동자에서 란돌이 인간이었을 적에 어떤 인물이었는지를 알 것 같았다.
게다가 놀라운 점이 하나 있었다.
“악마에게 홀렸는데도 이성을 유지하고 있군. 보통 괴물이 되어버리는 걸로 아는데.”
“인간성을 유지하는 흑기사도 있는데, 세상에 불가능할 게 뭐가 있을까.”
고개를 끄덕인 데일은 마검을 뽑아들었다.
란돌은 란돌 나름의 이유가 있어 배신을 한 것이다. 란돌 개인은 어쩌면 좋은 사람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살려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란돌은 책임을 져야 한다.
불길한 기운을 흩뿌려대는 마검을 바라보며, 란돌이 물었다.
“할아버지…… 아니. 군단장이 보낸 건가?”
“본인이 직접 하겠다는 걸 말리고 내가 온 거다.”
“하긴. 그렇지. 자기 일을 남에게 떠넘기는 일이 없는 분이니까. 고맙다. 할아버지의 손을 더럽히지 않게 해줘서. 이 은혜는…… 이제 갚을 길이 없지만. 그래도 너에게 감사하마!”
란돌은 고개를 앞으로 숙여 목을 쭉 내밀었다.
푸르딩딩한 가죽에 둘러싸인 두꺼운 목은 여간한 일격으로는 베어내기 쉽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데일이라면 가능하다.
데일은 철창을 열었다.
란돌의 앞에 서서 마검을 양손으로 쥐고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란돌은 아무 말도 없이 지그시 눈을 감았다.
그대로 내리치면 그걸로 끝.
하지만 데일은 우뚝 멈춰선 채, 다시 검을 거두었다.
아직 물어야 할 게 남았다.
란돌은 의아해하며 그런 데일을 올려다보았다.
“왜 그런가?”
“물어볼 게 있다.”
“내가 답할 수 있는 거라면 모두 말해주겠다.”
“대마법사. 그리고 다른 영웅들. 너희 반란군이랑 연관이 있다는 소문이 돌던데.”
“……”
그 말을 꺼내는 순간. 란돌의 눈동자가 빠르게 명멸했다.
데일은 경험적으로 이런 상태의 추종자나 하수인은 위험하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걱정했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상어 인간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분이야말로 우리 인류의 희망이자, 진정 섬김 받을 자격이 있으신 분이지! 거짓된 왕관을 쓰고 있는 저 황제 따위보다. 천상에서 방관하는 저 오만한 여신들보다 우리의 주인으로 더 어울리는 분이시란 말이다!!”
사람이 바뀐 것 같다.
침착하고 차분하던 지금까지의 분위기가 마치 거짓말처럼 느껴질 정도로, 란돌의 행동이 순식간에 변했다.
마치 신을 섬기는 광신도와도 같다고 해야 할까.
‘잠깐. 근데 왜 그분들이 아니라, 그분이라 부르는 거지?’
란돌이 쇠사슬에 묶인 팔을 앞으로 움직여 데일의 다리를 붙잡았다.
반사적으로 칼을 휘두르려던 데일은 간신히 팔을 멈췄다.
란돌에게는 여전히 적의가 없었다.
“그분을 믿고 따르는 것만이 우리에게 남겨진 유일한 선택이야. 이것이야말로 의심할 나위 없는 진리지!”
“……아까는 네 선택이 틀렸길 바란다고 하지 않았나?”
“내가? 그럴 리가! 내 선택은 옳았어! 그분을 따르지 않으면, 어느 누구를 따를 수 있으리!”
틀렸다.
상태가 맛이 갔다.
데일은 내렸던 팔을 다시 들어올렸다. 마검의 검날이 란돌의 안광을 반사해 흉흉하게 빛났다.
하지만 란돌은 여전히 미소 지을 뿐이다.
“이미 끝났어. 이 전장에서 승리하고 패배하고는 애초에 중요하지도 않았다고. 너희들은 속은 거야! 황제는 기사단장을 이곳에 보냈으면 안 됐어!”
“뭐?”
“이레네로 돌아가 봐. 재밌는 걸 볼 수 있을 테니!”
란돌은 더 입을 열지 않았다. 고문을 한다고 해도 열 거 같지도 않았고.
데일은 마검을 내리쳤다.
썩!
란돌의 머리가 바닥을 굴렀다. 녹색 피가 튀었다.
그 입가에는 끝까지 미소가 맺혀 있었다.
데일은 그런 란돌을 내려다보았다.
“…….”
란돌의 말이 단순히 미치광이의 헛소리는 아니리라.
‘이레네로 돌아가라고?’
대체 무슨 소리인가.
속았다는 말은 또 무엇이고.
아르구르의 기억에서도 시선을 끌라느니, 미끼니 하는 얘기를 들었는데…….
무언가 불안하다. 데일은 란돌의 시체를 수거해 성큼성큼 계단을 올랐다.
감옥의 입구를 나선 데일은 무언가 이상한 점을 깨달았다.
‘호위가 없어?’
호위를 맡은 기사들이 사라졌다.
아무리 데일이 들어갔다고 해도 그 자리를 지키는 게 그들의 임무였을진대.
데일은 걸음을 빠르게 옮겼다.
배신자들의 처형이 끝이 났는지 더는 병사들이 환호성을 내지르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성은 불길한 침묵에 휩싸여 있었다.
빠르게 걸음을 옮긴 데일은 한데 모여 얘기를 나누는 지휘관들을 발견했다.
그곳에 심각한 표정의 기사단장과 군단장도 있었다.
데일은 군단장을 붙잡고 말했다.
“마치고 왔소.”
“아…… 녀석은 전사답게 깔끔히 죽음을 받아들였나?”
“그렇소. 근데. 한 가지 이상한 말을 들어서 급히 달려왔소. 란돌이 이레네를 언급했소. 우리가 속았다고 말하더군.”
“안 그래도 그 이야기를 하고 있었네.”
베른바르트는 전서구가 전해준 급보를 펼쳐 보였다.
그 자그마한 종이에는 다급한 필체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이레네가 공격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