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ark Knight in the Game RAW novel - Chapter (164)
공략
* * *
래파킨의 도적단은 나름 제대로 된 체계를 가지고 있었다.
험한 산 중턱에 산채를 지었고, 단단한 목책과 높은 망루로 수비해놓은 상태.
목책의 안쪽에는 여느 다른 마을처럼 농사지을 밭과 주민들이 거주할 저택이 어설프게 늘어서 있었고, 조잡하지만 대장간도 있었다.
처음. 소마는 도적단의 산채를 보고 감탄을 흘렸다.
“허어. 생각보다 규모가 큰데요. 정말 저희만으로 공격해도 되나요?”
그러나 데일은 심드렁했다.
“나 혼자서도 놈들을 모조리 죽일 수 있다. 시간만 있다면 말이지. 중간에 도망가는 게 문제지.”
실로 자신만만하다 못해 오만하기까지 한 말이지만, 소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흑기사가 딱히 허세를 부리는 게 아니라 진실을 담담히 말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소마. 네 도움을 좀 받겠다.”
“좋습니다. 뒤에서 구경만 하는 것도 좋은 음유시인의 태도는 아니니까요.”
“카리악. 너는 리자드맨 하나를 보내서 무르하탈과 본대를 불러오게 시켜라.”
“카룸.”
소마가 짧은 다리를 움직여 목책을 향해 접근했다.
워낙 키가 작은지라 수풀 속에 몸이 가려, 보초를 선 도적들에게 발각되지 않았다.
“하아암.”
보초는 나른하게 하품을 해대고 있었다.
설마 누군가 주위에서 이름을 떨치는 이 도적단을, 그것도 해가 중천에 뜬 대낮에 공격해올 거라고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거리가 충분히 가까워지자 소마가 휘파람을 불었다.
휘― 휘―
어딘가 새소리처럼 들리는 휘파람이 보초의 귀를 간지럽혔다.
늘어지게 하품하던 보초가 동료에게 물었다.
“뭐지?”
“왜.”
“뭐 새소리 같은 거 안 들려?”
“산이니까 새소리가 들리지 등신아.”
“아니. 그런 게 아니라…….”
그 순간. 보초의 눈동자가 탁 풀렸다.
그는 어기적 움직이며 망루를 내려섰고, 굳게 닫힌 문을 열었다.
“어어. 얌마. 왜…….”
휘― 휘―
말리려던 동료의 눈동자도 탁 풀렸다.
출입문이 열리자 데일이 성큼 안으로 들어왔다.
“재주가 좋군.”
“뭘요. 다만, 이 상태가 길게 유지되진 못해요. 5분이면 제정신을 차릴 겁니다. 그 전에 래파킨이 있는 곳을 찾아야 하는데, 제가 정보를 불게 만들게요. 시간이 좀 필요하긴 한데.”
“그럴 필요 없다.”
“예?”
푹!
데일은 도적의 몸에 건틀릿을 박아넣었다.
산채로 생기와 잔혼을 뜯어내 흡수했다.
기억이 흘러들어왔다.
대부분은 쓸모없는 정보지만, 이 산채의 구조 정도는 알아낼 수 있었다.
“가장 중앙에 있는 건물에 놈이 있다.”
“어, 음. 가차 없으시네요.”
“자비를 베풀어줄 이유가 없는 놈들이니까.”
소마는 섬뜩한 기분에 몸서리를 쳤다.
분명 방금까지는 영웅으로 보였던 이가, 지금은 두려운 언데드 기사로 보였다.
‘어, 음. 그렇지. 쓰레기들한테 무슨 자비야.’
소마는 억지로 마음을 진정시켰다.
그 사이, 데일은 리자드맨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카리악. 경로에 있는 도적들을 조용히 제거해라. 할 수 있겠지? 암살은 너희 특기니까.”
“카룸.”
자신만만하게 대답한 카리악과 리자드맨 병사들이 유연하게 움직였다.
신발을 신지 않은 그들은 어떤 소음도 내지 않고 조용히 움직였다.
늪지의 은밀한 사냥꾼답게, 리자드맨은 몰래 도적들에게 접근해 순식간에 몸을 날렸다.
“커읍!”
카리악이 운 나쁜 도적의 하나를 잡아챘다.
한 놈은 도적의 입을 틀어막았고. 다른 녀석들은 몸통을 난도질했다.
도적은 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숨이 끊어졌다.
대낮에 이뤄지는 완벽한 암살이었다.
데일은 죽은 산적들에게 영혼 지배를 가해, 죽음에서 되살렸다.
멍하니 일어난 망자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너희들이 앞장서서 네 동료들의 시선을 끌어라.”
“그어.”
망자들이 비척비척 앞으로 걸어나갔다.
주위를 순찰하던 도적들은 그런 망자와 마주치면 크게 당황했다.
“어어. 뭐야. 너희 그 상처는 뭐…… 컥!”
망자에게 시선이 쏠리면, 리자드맨이 처리한다.
데일은 죽은 도적을 또다시 망자로 되살려 다시 앞세웠다.
그렇게 일행은 적진의 한 가운데를 너무나 당당하게 걸었다.
위험을 알리는 종소리도. ‘적이야!’ 고함을 지르는 도적도 없이, 거침없이 나아갈 수 있었다.
가끔 도적들에게 사로잡힌 노예들을 마주칠 때도 있었다.
대부분은 한쪽 발목이 잘려있었는데, 그들은 데일과 마주치면 힘없이 털썩 주저앉았다.
데일은 도적들한테와는 달리, 자상하게(적어도 소마는 그리 느꼈다) 얘기했다.
“잠시만 조용히 해주시오. 금방 풀어주겠소.”
저 서늘한 음성에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었고, 노예들은 말없이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그렇게 이동하다 보니 데일은 웬 사내가 여자 두 명을 질질 끌고 가는 모습을 발견했다.
“조용히 따라와. 그러면 다칠 일 없어!”
“제발요. 제발 봐주세요. 저는 남편이랑 자식이 있다고요.”
“……그래서 끌려가는 거라고 멍청한 년들아.”
도적들에게서 흡수한 기억으로, 데일은 저자가 래파킨의 시종이라는 걸 알아보았다.
카리악이 데일을 돌아보았다.
명령만 내리면 죽이겠다는 눈빛.
데일은 고개를 저었다.
대신. 자기가 직접 땅을 박차 사내의 옆에 내려섰다.
“뭣…….”
“쉿. 조용히 하도록.”
데일은 사내의 입을 틀어막았다. 사내는 뭐라고 외치려 했지만, 손가락에 힘을 주어 이빨 몇 개를 부러트려 주자, 금방 얌전해졌다.
영혼 지배로 여인들이 비명을 내지르는 걸 막은 데일이 말했다.
“다시 돌아가시오. 가족들이 있는 곳으로.”
“가, 감사합니다.”
“고마워요.”
여인들이 빠르게 사라지고.
데일은 사내에게 말했다.
“대충 상황은 알겠지? 살고 싶다면 네 두목에게 안내해.”
사내는 필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사내는 래파킨이 있는 곳으로 데려갔고, 똑똑 문을 두드렸다.
이름을 날리던 도적단이 순식간에 접수당한 경위였다.
* * *
소식을 들은 무르하탈은 곧바로 병력을 이끌고 달려왔다.
이미 목책이 뚫린 순간, 나머지 도적들을 처리하는 건 일도 아니었다.
처음에 숫자를 믿고 용감하게 덤벼든 도적들은 이내 압도적인 격차에 하나둘 무기를 놓고 항복했다.
도적단 측 사망자가 100.
아군은 하급 언데드 외에는 피해가 전무했다.
무르하탈이 순조롭게 상황을 정리하는 사이.
데일은 죽은 래파킨에게서 기억을 엿보았다.
‘그냥 도적 나부랭이인 줄 알았는데…… 흥미로운 기억들이 있군.’
용병왕.
그리고 대마법사와의 만남.
래파킨의 기억 속 그들의 모습은 데일의 기억과도 일치했다.
‘그리고 래파킨은 어째서인지 황혼의 석상을 보고 그들을 떠올렸다.’
단순히 눈빛이 비슷해서일까?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을까.
‘어쩌면 내가 황혼에게서 기시감을 느끼는 것과 관계되어 있을지도.’
마침 무르하탈이 래파킨을 언데드로 되살렸다.
이제 래파킨은 절대 데일을 거역할 수 없다.
데일이 래파킨에게 물었다.
“용병왕과 대마법사를 만났더군.”
래파킨은 이전과는 180도 다른 태도로 공손하게 답했다.
“그, 그렇습니다.”
“너는 왜 황혼의 석상을 보고 그들을 떠올렸지?”
“직감이었습니다.”
“직감?”
“황혼께서 그 둘과 관계가 있다. 저는 그렇게 느꼈습니다.”
“다른 근거는 없고?”
“예. 죄송합니다.”
“흠. 더 정보를 얻으려면 간부들을 털어야 하나.”
그때.
무르하탈이 되돌아왔다.
“주인님. 정리가 완료되었습니다.”
“모두 항복했나?”
“예. 죽인 동료를 언데드로 되살리니까, 곧장 무기를 버리더군요. 클클클.”
“혹시라도 도망친 인원은 없겠지?”
“물론입니다. 한 명도 놓치지 않은데다, 도마뱀 녀석들을 시켜 밖에 돌아다니는 보초들도 추적해 죽이라 명령했습니다.”
깔끔한 일처리에 데일은 만족했다.
“훌륭하군. 수고했다.”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다. 소식이 전해지기 전에, 알브헤임 쪽도 공격해야 해.”
“……조금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그 무르하탈조차도 우려를 표했다.
성벽을 끼고 있는 상대를 공략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를 잘 알았다.
데일은 래파킨의 어깨를 툭툭 쳤다.
“그걸 위해서 이놈을 되살린 거다.”
“으음. 그래도 여전히 너무 위험한 계획이 아닌가 싶습니다만. 아무리 주인님께서 실력에 자신이 있으시다 해도, 적들에게 둘러싸이면 어찌 될지 모릅니다.”
“그럼 달리 괜찮은 방법이 있나? 놈들의 성벽에 그냥 들이박는 건, 별로 좋은 생각 같지 않은데.”
“그건 그렇습니다만…….”
무르하탈은 주저했다.
그는 여전히 도시를 공략한다는 생각 자체에 회의적이었다.
1천조차 되지 못하는 병력이 아니던가.
하지만 데일은 단호했다.
“됐고. 사람을 모아 놨겠지? 그곳으로 안내하도록.”
“……알겠습니다.”
무르하탈은 래파킨과 데일을 데리고 공터로 향했다.
무장해제 된 도적들과 노예들이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도적들은 래파킨을 발견하고 뭐라 말하려다, 뻥 뚫려버린 심장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데일이 입을 열었다.
“대충 상황을 짐작했을 거라 본다. 너희들은 졌고, 이제 내 명령을 따라야 한다.”
“…….”
“그간 너희들이 어떤 죄를 저질렀는지, 스스로가 가장 잘 알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억울한 사람도 있겠지.”
도적 떼에 제 의사와는 관계없이 억지로 붙잡혀, 도적이 되어버린 자도 분명 존재할 거다.
노예들에게도 최소한의 인간성과 예우를 갖춘 이들도 소수나마 있을 것이고 말이다.
그렇기에.
“기회를 주겠다. 우리는 지금 곧바로 북쪽의 알브헤임을 치러간다. 너희들도 거기에 동참할 거다.”
“!”
“도, 도시?”
“황혼의 추종자들이 다스리는 곳을 말하는 거야? 이 정도 병력으로? 그냥 죽으러 가라는 거잖아.”
경악하는 도적들에게 데일이 말했다.
“내키지 않는 자. 그리고 스스로 억울하다고 생각하는 자는 지금 말해라.”
슬쩍 눈치만 보던 도적들 중, 몇몇 용감한 자가 일어났다.
“저, 저는 억울합니다…….”
“그래?”
“저희는 래파킨이 시키는 대로 했을 뿐입니다.”
“이름이?”
“벤자민입니다.”
데일은 노예들에게 시선을 주며 물었다.
“여기 벤자민의 말이 사실인가? 그에게 아무런 죄도 없나?”
그러자 잠자코 있던 노예들이 울분을 담아 외쳤다.
“아닙니다! 저 새끼가 제 남편의 발목을 잘랐습니다!”
“제 딸을…… 흑흑.”
“씹어죽일 놈입니다!”
벤자민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이, 이것들이. 평소에는 쥐 죽은 듯이 있다가 기회가 생겼다고……!”
“썩 결백한 것 같지는 않은데?”
“아닙니다. 저들이 모함을…….”
“무르하탈. 새 언데드 병사다.”
“예.”
무르하탈은 벤자민의 얼굴을 손으로 쓸었다. 그러자 벤자민이 고통 어린 비명을 지르며 썩어들어가더니, 그대로 스켈레톤이 되어버렸다.
데일은 무심하게 말했다.
“달리 억울한 사람 있으면 손을 들도록. 기회를 주겠다.”
“…….”
도적들은 두려움 몸을 떨 듯, 감히 손을 들지 못했다.
* * *
리치와 언데드. 리자드맨. 그리고 도적 무리까지.
데일이 이끄는 군대의 구성이 한층 더 다채로워졌다.
소마는 미묘한 얼굴로 군대를 훑어보았다.
‘누가 봐도 이쪽이 나쁜 놈인 것 같은데.’
쓰레기와 괴물들을 이끌고 다니는 흑기사라니.
이런 건 이야기의 주인공이라기보다는, 주인공 앞을 가로막는 악당에 더 가깝지 않은가!
그러거나 말거나, 데일은 무심하게 무르하탈의 보고를 들었다.
“새로 충원된 도적 떼가 423명. 하급 언데드가 112기입니다. 게다가 놈들이 제법 많은 재물을 숨기고 있더군요.”
“지금은 놔둬라. 도시 쪽에서 눈치채기 전에 놈들을 쳐야 하니.”
“알겠습니다 주인님.”
고개를 조아리는 무르하탈을 향해 데일이 말했다.
“무르하탈. 앞으로 우리는 이런 식으로 세력을 불릴 것이다. 쓰레기 같은 놈들을 받아들여서, 내 병사로 써먹을 거다.”
“자칫 반란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도중에 도망가는 놈들도 많을 거고요.”
“도망가는 놈들은 리자드맨을 시켜 사살하도록. 반란은…… 일어나도 상관없지만, 애초에 그럴 일 없게 네가 잘해라.”
“맡겨만 주십시오.”
공손히 대답한 무르하탈이 데일의 눈치를 살피다 물었다.
“궁금한 게 있습니다.”
“말하도록.”
“주인님께서는 저들에게 벌을 주길 원하시는 것 같습니다. 제가 짐작하는 게 맞습니까?”
“그래. 죄를 지었으니, 벌을 받아야지.”
“하면, 달리 좋은 방법들이 있지 않습니까. 가령…… 끔찍한 고통 속에 죽게 만든 뒤, 죽여서 언데드로 되살린다거나 말이죠. 그편이 그들의 죄에 대한 징벌로 더 알맞지 않겠습니까?”
무르하탈의 의문에 데일은 잠시 고민했다.
그의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괜히 훗날의 불안으로 남기느니, 죽여서 언데드로나 부리는 게 나을 수도 있다. 그래봤자 도적 나부랭이니까.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 건…….
“놈들에게도 한 번의 기회는 줘야지.”
“기회. 말씀시이십니까?”
“누구나 실수를 하니. 속죄할 기회를 받아야 한다. 도적으로서 악한 짓을 저질렀지만, 우리와 함께 싸우며 자신이 한 짓을 후회하고, 죄를 뉘우친다면 나중에 용서할 수도 있겠지. 물론, 용서하는 건 내가 아니라 노예처럼 부려 먹히던 사람들이겠지만.”
무르하탈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주인님. 지금까지 주인님의 사상에는 동의하지 못하나, 그래도 이해는 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건…… 도저히 이해가 안 가는군요. 주인님께서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시는 겁니까? 저들이 뉘우칠 거라고?”
“아니.”
데일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솔직히 말하면. 딱히 저들이 갱생할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아. 당장의 상황을 모면하려고 미안한척하는 자들은, 결코 뉘우치지 않거든.”
데일의 눈동자는 먼 과거를 담고 있었다.
조부를 죽인 자가 통쾌하게 웃던 그 얼굴을.
사람이 뉘우칠 수 있을까?
갱생할 수 있을까?
글쎄. 데일은 회의적이었다.
“그렇다면 왜?”
“자기를 죽인 사람까지도 용서하란 분이 있었거든.”
그리고 그 사람은 여전히 데일의 지향점이자, 마음의 버팀목이다.
그가 아는 가장 고결한 사람.
평생을 걸쳐 노력해도 닿을 수 있을까 확신할 수 없는 별 같은 존재지만, 데일은 그 별을 향해 손 뻗기를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적어도 흉내라도 내볼 생각이었다.
“자, 슬슬 가자. 도시로. 최소한의 병력은 이곳을 지키고, 나머지는 전부 따라와라.”
데일은 언데드 래파킨을 앞세우며 중얼거렸다.
“도시를 무너트리면, 내 군대가 2배 정도는 커지겠군.”
조용히 듣던 무르하탈이 안광을 호전적으로 불태우며 말했다.
“2배라니요.”
“?”
“알브헤임만 무너트리면, 못해도 4배로 커질 겁니다. 그때가 되면…… 정말로 군단이라는 이름이 우습지 않게 되겠지요.”
그렇다면 세상은 알게 될 것이다.
죽은 줄 알았던 흑기사가 지옥에서 되돌아왔노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