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ark Knight in the Game RAW novel - Chapter (31)
추격
* * *
살인 청부 혹은 납치 의뢰.
의외로 용병들이 자주 수행하는 유형의 의뢰로, 그 대상은 돈 떼어먹고 야반도주한 빚쟁이부터 사랑의 도피를 떠난 불륜 남녀까지 다양하다.
물론, 용병 길드는 기준 없이 살인 청부 의뢰를 허가하지 않는다.
현상금이 올라갈 정도의 흉악범. 혹은 지금처럼 그냥 내버려 두면 위험한 인물에 한해 청부 살인을 허가한다.
카달이 인상을 찌푸렸다.
“아주 위험한 년이다. 동물을 부리는 요상한 주문을 사용하는데, 그년을 잡으려다 경비병 셋이 죽고 다섯이 다쳤다. 그리고 기어코 도시를 탈출했지.”
그때가 생각났는지, 카달은 이를 으득 갈았다. 당장이라도 도끼를 휘두르고 싶어서 손이 근질거렸다.
“녀석은 반드시 다시 돌아올 거다. 표정이 그래. 그리고 다시 돌아왔을 때는, 수로에 악어를 푸는 것보다 더 끔찍한 짓을 벌이겠지. 그러니 이번에 반드시 사로잡아야 한다.”
데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대충 얘기를 들으니, 최근 도시를 쑥대밭으로 만들고 싶어하는 인물 중 하나인 듯싶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나는 이런 쪽으로는 전문이 아니오.”
그냥 싸우는 거라면 상관없다.
하지만 도망치는 상대의 흔적을 쫓아 추격하는 건 영 자신 없었다.
카달은 손을 휘저었다.
“걱정 마. 이미 전문가에게 부탁했으니. 놈이 추격하면 데일 경은 싸우기만 하면 돼.”
“그렇다면야.”
“사로잡으면 더욱 좋겠지만, 거기까지 바라면 너무 염치없는 거겠지. 부디, 죽은 내 부하들이 편히 눈 감을 수 있게 복수해줘.”
말을 마친 카달이 어서 가보라는 듯이 손을 내저었다.
이런 의뢰의 특성상 시간이 지체될수록 성공률이 낮아지기 때문이다.
데일은 용병 길드를 향해 성큼성큼 이동했다. 그 옆에서 따라 걷던 발튼이 말을 걸었다.
“은혜를 갚으러 왔는데, 이렇게 부탁을 또 하게 돼서 죄송하오.”
“아니. 오히려 내가 고맙다.”
카달은 이미 전문가를 수배해놓았다고 했다. 그런데도 일부러 데일을 그 의뢰에 끼워주었다.
‘경비 대장의 지명 의뢰를 수행했다는 실적이 나에게 생기겠지.’
이는 사실상 경비대장이 데일을 신뢰한다고 공언한 것과 다름없다.
흑기사를 선뜻 믿기는 힘들어도, 도시에서 영향력 있는 경비대장의 안목은 믿을 수 있다.
이번 의뢰만 성공시키면, 데일은 적지 않은 걸 얻어갈 수 있을 것이다.
‘조카를 살려준 빚은 신경 끄겠다고 하더니, 솔직하지 못하군.’
중간에 발튼과 헤어진 데일은 용병 길드 사무소로 향했다.
실내로 들어서자 이미 가란드가 기다리고 있었다.
“오셨군요. 데일 경. 카달 씨를 만나고 오는 길이시죠?”
“그렇소.”
“좋은 기회입니다! 도시 경비대와 적절한 관계를 맺어두면, 이래저래 편해지니까요.”
가란드는 마치 자기 일처럼 기뻐했다. 그런 가란드를 데일은 묘하게 바라보았다.
그가 게임을 통해 접한 가란드는 그렇게 이타적인 인물은 아니었다.
오히려 다른 용병처럼 자기 이익에 충실히 따르곤 했다. 그게 나쁘다는 건 아니다.
단지, 지금의 모습과 괴리감이 있을 뿐.
시간이 가란드를 바꾼 걸까? 아니면 가란드가 데일에게 무언가 바라는 게 있는 걸까.
‘지금 고민할 문제는 아니지.’
가란드는 데일을 데리고 서둘러 이동했다.
그의 걸음이 조급했다.
“촌각을 다투는 문제입니다. 이미 모든 준비는 끝내두었습니다.”
가란드가 멈춰선 곳에는 사내 두 명이 서 있었다.
한쪽은 익숙한 얼굴이다.
하켄이 뭣도 모르는 어벙한 얼굴로 서 있었다. 그는 데일을 보자 함박웃음을 지었다.
“오. 데일 경도 함께입니까? 이번 의뢰도 날로 먹……. 안전하게 할 수 있겠네요!”
하켄의 합류는 놀라운 일은 아니다. 쓸만한 방패수는 어느 조합에 넣어도 제 역할을 하니 말이다.
눈길을 끄는 건 하켄의 옆에 선 키가 멀대같이 큰 사내다.
가란드가 소개했다.
“이쪽은 마젤. 현상금 사냥꾼 겸 동패 용병입니다. 추적술의 달인입니다.”
데일과 마젤이 악수를 나눴다.
“데일이다.”
“…….”
마젤은 말없이 고개만 한번 끄덕였다.
그의 눈동자는 얼음처럼 차가웠고, 얼굴 절반을 가로지르는 커다란 흉터가 있었다.
그런 외모가 특유의 과묵함과 조화되어 날카로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표정 또한 무표정이라 데일을 환영하는지, 경계하는지 그 속마음을 알 수 없었다.
그건 데일도 마찬가지였지만.
인사가 끝나자 가란드가 일행을 재촉했다.
“자. 시간이 없습니다. 표적이 더 멀리 달아나기 전에, 부지런히 움직이셔야 합니다.”
고개를 끄덕인 마젤이 말없이 성큼성큼 걸어나갔다.
멍하니 있던 하켄과 데일도 그 뒤를 황급히 뒤따랐다.
하켄이 잠이 덜 깼는지, 늘어지게 하품을 한 뒤에 중얼거렸다.
“이런 의뢰는 오랜만인데. 그래도 뭐, 데일 경이랑 마젤 저 양반이 있으니 별문제는 없겠네요.”
데일이 물었다.
“아는 사람인가?”
“마젤요? 이쪽 업계에서는 유명하죠. ‘추적자 마젤’. 4등급 사냥꾼이자 동패 용병, 그리고 수많은 현상수배범을 잡아들인 경험 많은 현상금 사냥꾼. 그에게 한번 추적당해 무사히 도망친 놈은 단 한 명밖에 없어요.”
“그게 누군데.”
“누구긴요. 저 얼굴에 커다란 흉터를 만들어낸 사람이죠.”
“그러니까 그게 누구냐고.”
“저도 잘……. 그냥 동료 용병들이 떠드는 걸 주워들은 거라.”
별로 신뢰성 있는 얘기는 아니라는 소리지만……. 어쨌든 실력이 있다는 건 확실하다.
4등급 사냥꾼.
비록 사냥꾼은 전투보다는 추적과 정찰, 척후에 특화된 직업이지만 그래도 4등급은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적지 않은 경험과 노력을 쌓아왔다는 증거이니.
‘제법 실력 있는 놈이군.’
앞서가던 마젤은 돌연 뒤를 돌아보았다.
그의 가라앉은 눈이 하켄과 데일을 번갈아 쳐다보더니, 짧게 말했다.
“……준비할 게 있다면 지금 하시오.”
하켄은 어깨를 으쓱였다. 이미 데일을 기다리며 준비는 끝난 참이다.
데일은 신전을 들를까 잠시 고민했다. 저번 흑마법사와의 싸움 이후, 아직 신전을 찾아가지 않았다.
고민하던 데일은 고개를 저었다.
‘시간이 급하니 굳이 들를 필요는 없겠지.’
둘 다 괜찮다는 의사를 보이자, 무표정하게 고개를 돌린 마젤이 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자그마한 옷조각이었는데, 피가 묻어 있었다.
그는 옷조각을 코에 갖다 대 두어 차례 킁킁댄 뒤, 다시 아무 말 없이 걸음을 옮겼다.
하켄이 신기한 듯이 말했다.
“저거. 우리가 쫓는 놈의 옷조각 맞죠? 설마 진짜로 냄새를 쫓을 줄이야. 개도 아니고…….”
“그렇게 단순한 재주가 아니다.”
사냥꾼이 배울 수 있는 기술, 사냥감 지정.
한번 목표로 정한 상대의 흔적을 감지하는 건 물론, 사냥감을 사냥할 때 전투력 역시 증가시켜 주는 기술이다.
한 번에 한 대상밖에 지정하지 못하는 단점이 있지만, 지금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마젤은 망설임 없이 걸음을 옮겼다. 도시의 남문을 나가 빈민가를 빠르게 지나쳤다.
비가 워낙 거세게 내리는 터라 빈민가는 쥐 죽은 듯이 고요했다.
조용한 분위기를 견디기 힘들었는지, 하켄이 일부러 마젤에게 말을 걸었다.
“이봐요 형씨. 그놈……. 아니. 그년인가? 어쨌든 지금 어느 정도 떨어져 있습니까.”
과묵한 마젤은 짧게 답했다.
“……하루 반.”
“그거 다행이네. 듣기로는 경비대에서 놈에게 큰 상처를 입혔다는데, 금방 따라잡겠네요?”
마젤은 고개를 저었다.
하켄은 다음 설명을 기다렸지만, 마젤을 말없이 흔적을 찾는 데에 집중했다.
무안하게 머리를 긁적인 하켄이 말했다.
“거 과묵한 양반이네. 사람이 대화를 나눌 줄 알아야 하는데. 그렇지 않습니까 데일 경?”
“너는 좀 과묵해지는 법을 배워라.”
“엑. 이래 봬도 저, 우리 마을에서는 과묵한 하켄이라 불렸습니다. 아, 제가 우리 마을 얘기한 적 있습니까? 남쪽에 있는 늪지대 근처 마을인데…….”
데일은 하켄의 시답잖은 말을 무시하고 마젤의 뒤를 따랐다.
가도를 따라 계속 걷던 마젤은 어느 지점에서 길을 벗어나 숲으로 들어섰다.
‘길을 따라 걷던 놈이 일부러 숲에 들어왔군.’
아무래도 지금 쫓고 있는 사냥감이 말을 타고 다가올 추격자를 의식한 듯하다.
‘영리한 놈이야.’
좋은 소식은 아니다.
사냥감이 영리할수록, 추적은 어려워지기 마련이니.
‘게다가 능력도 뛰어나다.’
동물을 조종하는 데다가, 경비병의 추격을 피해 도시 밖으로 도망칠 정도의 실력.
전자는 그러려니 해도 후자는 쉬운 일이 아니다.
어중이떠중이 마법사라면 이미 카달의 도끼에 허리가 반토막이 났을 것이다.
‘어쩌면 이전에 상대했던 네크로맨서랑 비슷하거나 더 뛰어난 수준일 수도 있겠군.’
그렇다면 카달이 그토록 경계하는 것도 이해가 되었다. 그런 영리한 놈들은 보통 실패에서 교훈을 얻는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 더 은밀하고 교묘하게 일을 꾸미기 마련이다.
지금 기회가 왔을 때 확실히 죽여둬야 후환이 없다.
일행은 흔적을 쫓아 비에 젖은 숲길을 이동했다. 그러길 한참. 갑자기 마젤이 제자리에 멈췄다.
맨 뒤에서 따라오던 하켄이 물었다.
“무슨 일입니까. 갑자기 그렇게 우뚝 멈춰 서고. 하하, 뭐 곰이라도 나타났어요?”
마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앞을 가리켰다.
나무 사이로 커다란 흑곰이 침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당황한 하켄이 떨떠름하게 말했다.
“……나는 그냥 한 말인데.”
데일이 핀잔을 주었다.
“오래 살고 싶으면 입을 조심해라.”
반면. 마젤은 조용하고 신속하게 뒤쪽으로 물러났다.
어느새 손에는 등에 메고 있던 활이. 왼손가락에는 화살 두 대가 끼어 있었다.
마젤이 말했다.
“이 곰. 흔적도 안 남기고 이 자리에서 계속 기다리고 있었소.”
“평범한 곰은 아니라는 거군.”
“마법사에게 조종당하고 있는 것 같소.”
추격자를 대비해 도주로에 맹수를 준비시켜 놓다니.
귀찮게 구는 적이었다.
마젤은 시위에 화살을 메기며 말했다.
“그냥 곰이 아닐 수도 있소. 둘이 앞에서 상대해주시오. 내가 지원 사격을 해주겠소.”
“그럴 필요 없다. 시간 없으니 빨리 끝내지.”
“?”
“데일 경?”
데일은 성큼 앞으로 걸어나갔다. 하켄과 마젤은 그런 데일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흑곰은 그런 데일을 향해 낮게 울부짖었다.
무슨 마법에 걸렸는지 모르겠지만, 누가 봐도 잔뜩 화가 난 상태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이윽고, 흑곰이 데일을 향해 달려들었다. 육중한 몸에 어울리지 않는 빠른 돌진이었다.
데일은 검을 뽑지 않았다.
그저 시시각각 가까워지는 흑곰을 응시하다……. 힘껏 뛰어올랐다.
공중에서 양 손가락의 깍지를 끼었고.
그대로 녀석의 머리를 향해 깍지 낀 주먹을 내리쳤다.
우득!
뼈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흑곰은 달리던 속도 그대로 저 옆으로 굴러갔다.
그리고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다.
즉사였다.
“아니, 무슨 곰을 일격에 죽여.”
“……!”
지켜보던 마젤의 눈이 크게 뜨였다. 마젤을 잘 아는 이들이었다면 그 모습에 신기해했을 것이다.
마젤은 어지간한 일이 아니면 놀라지 않으며, 그 놀라움을 표정으로 드러내는 경우는 더욱 드물기 때문이다.
반대로 하켄은 껄껄 웃었다.
“하하. 역시 데일 경이십니다. 곰을 이렇게 깔끔하게 잡다니. 이거 가죽 벗기면 값이 꽤 나가겠는데요?”
“시간이 없다.”
“뭐, 그건 그렇지만요. 그럼 다시 출발할까요?”
멍하니 있던 마젤이 퍼뜩 정신을 차렸다. 그는 데일을 쳐다보더니, 자기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마젤. 폴의 아들 마젤이오.”
자기소개는 이미 하지 않았던가?
데일은 의아해했지만, 마젤은 데일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다시 추적을 시작했다.
이 영리한 사냥감을 쫓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부지런히 움직여야 할 것 같다.
* * *
“헉. 헉헉.”
회색 망토를 몸에 걸친 여인이 다급히 숲길을 달렸다.
그녀가 입은 하얀 셔츠의 옆구리는 이미 피로 빨갛게 얼룩져 있었다.
카달에게 당한 상처다.
어서 빨리 치유해야 한다. 휴식이 필요하다.
하지만 여인은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추격자가 온다. 멈추면 안 돼.’
조금이라도 더 빨리 도망쳐야 한다.
하지만 피 냄새를 너무 풍긴 탓일까? 수풀 속에서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니, 큼직한 덩치를 가진 늑대 무리가 그녀를 향해 눈을 빛내고 있었다.
“쯧. 다이어 울프인가.”
짧게 혀를 찬 그녀는 등에 맨 지팡이를 꺼냈다. 오래된 나무를 꺾어 만든 듯한 지팡이였다.
여인은 오른손으로 지팡이의 매끄러운 몸을 한차례 어루만졌다.
그러자 여인의 눈이 붉은빛으로 번뜩였다. 그녀와 시선을 마주하던 늑대의 눈도 마주 번뜩였다.
“크르르르…….”
늑대는 괴로운 듯. 바닥을 굴렀다. 그러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가리를 쩍 벌렸고, 그대로 가장 가까이 있던 동료 늑대의 목을 물어뜯었다.
“켕!”
당황한 동료 늑대는 뭣도 모르고 바닥에 쓰러져 낑낑거리며 발버둥 쳤다.
다른 늑대들이 달려들어 늑대를 떼어놓았다. 목덜미에 상처 입은 늑대가 다급히 저 멀리 물러났다.
그때였다.
여인의 눈이 연이어 번뜩였다.
그럴 때마다 더 많은 늑대가 동료 늑대를 물어뜯기 시작했다.
결국, 처음에 가까스로 도망친 한 놈을 제외하면 십수 마리의 늑대는 모두 죽거나 그녀의 하수인이 되었다.
지팡이의 힘을 사용한 여인은 깊은숨을 내뱉었다.
“후우.”
강력한 힘이다.
하지만 아무런 대가 없는 힘은 아니었다. 여인은 극심한 공복을 느끼기 시작했다.
‘배고파.’
사냥. 사냥을 해서 먹이를 찾아야 했다.
여인은 하늘에 대고 코를 킁킁댔다. 그리고 고소한 냄새를 포착했다. 냄새가 풍겨오는 곳으로 달렸다.
이윽고 여인은 냄새의 진원지를 발견했다.
그곳은 자그마한 마을이었다.
지팡이를 든 여자는 늑대 무리를 이끌고 마을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