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ark Knight in the Game RAW novel - Chapter (64)
탈영병
* * *
쏘아 올려진 녹색 불꽃은 비가 되어 아래로 낙하하기 시작했다.
양측의 병사들은 그 광경을 멍하니 올려다보았다.
“대장이 뭔가 쐈는데?”
“……?”
도적들도 당황스러웠다. 이건 합의되지 않은 사항이다.
하지만 대처는 신속했다.
“방패 들어 이것들아!”
경험 풍부한 탈영병답게 곧장 하늘을 향해 방패를 들었다.
아군 측 사병들도 똑같이 따라했다.
당장 앞의 적들이 있지만, 하늘에서 날아오는 저 불꽃이 더 위험해 보였다.
다음 순간. 여유롭게 낙하한 녹색 불꽃이 중앙의 병사들을 덮쳤다.
양측의 병사들은 방패를 굳게 쥐었다. 하지만…….
“어?”
방패에 불꽃이 닿았다.
그러자 마치 냄비 속 버터처럼, 방패가 부드럽게 녹아내렸다.
방패를 먹어치운 불꽃은 곧장 그 아래 있는 사람까지 집어삼켰다.
“크아아악!”
“으, 으억.”
병사들의 피부는 방패보다 더 빠르게 녹아내렸다. 단순히 뜨겁거나 그런 문제가 아니다.
저 불꽃에는 사악한 힘이 담겨 있다.
끔찍한 고통에 병사들이 허우적거렸다. 그들은 본능적으로 동료들이 있는 곳으로 달렸다.
“사, 살려줘! 제발!”
“가만히 있어봐! 불을 꺼줄……. 어억!”
도와주려던 동료들도 불꽃에 닿자, 순식간에 불이 옮겨붙었다.
사제들이 치유 기적을 통해 치유하려 했지만 역부족.
“살……려줘.”
“가까이 오지마! 가까이 오지 말라고!”
이 불이 전염성이 강하다는 걸 깨달은 사병들은 결국, 불에 붙은 동료들이 다가오지 못하게 무기를 휘둘러야 했다.
아비규환.
사람이 불에 타고, 동료가 동료를 찌른다.
에슬델이 이 끔찍한 광경에 당황해서 중얼거렸다.
“이게 대체 무슨…….”
“저 불꽃. 악마의 힘이 담겨 있다.”
옆으로 다가온 데일이 덤덤히 말했다. 그 차분한 태도에 덩달아 진정한 에스델이 물었다.
“악마의 힘이라고요?”
“내가 아는 불꽃 중에, 저리 전염성이 강한 건 악마의 불꽃 말고는 없다.”
“그렇다면 저 라팽이라는 사내가 쥔 대포는…….”
“악마의 무기쯤 되지 않겠나.”
최근 이 근방에서 악마 숭배자들이 활개 친다 들었다. 저들도 관련이 있지 않을까?
이제 해야 할 일은 명확하다.
조금이라도 빨리 라팽을 죽이고 대포를 부수는 것.
시간이 늦어질수록, 피해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것이다.
데일과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또 있었다.
가브리엘이었다.
그는 자기가 직접 키운 병사들이 녹아내리는 모습에 분개했다.
“이 역겨운 놈들이!”
몸에 마력을 끌어올린 가브리엘이 라팽을 향해 달렸다. 라팽은 적진의 정중앙에 있었다.
도적들이 다급히 가브리엘을 막아섰다. 하지만 거칠게 날뛰는 기사를 저지하기는 어려웠다.
무엇보다. 도적들 역시 방금 자신들의 대장이 일으킨 끔찍한 참상에 당황하고 있었다.
가브리엘은 홀로 도적들을 가로지르기 시작했다.
아무리 기사라도 무모한 행동.
지켜보던 데일도 달렸다.
라팽을 죽여야 한다는 목표가 일치한다면, 함께 행동하는 게 낫다.
데일은 가브리엘과는 반대편에서 도적들을 뚫고 들어갔다.
흑기사가 다가오자, 도적들도 정신을 차렸다.
자기 대장이 무슨 짓을 벌이고 있든 일단 지키는 게 우선이다.
“막아라!”
도적들이 데일을 막아섰다.
일전과는 다르다.
이들은 경험 많은 군인 출신이다.
대열을 잘 유지했고, 서로 협동할 줄 알며, 개개인의 실력도 뛰어났다.
‘대부분 최소 3등급 정도는 되려나? 직업은 모르겠고.’
원래라면 시간을 들여 신중히 싸우는 게 좋다.
하지만 시간은 이쪽 편이 아니다. 대포가 다음 불꽃을 뿜어낼 시간을 주어선 안 된다.
데일은 도적들 사이로 과감히 파고들었다.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사방에서 무기가 날아와 데일을 두드렸다.
적지 않은 힘이 실려 있다. 단단한 갑옷에도 흠집이 났다.
데일은 신경 쓰지 않았다.
다른 놈은 무시하고, 가장 가까이 있던 도적에게 검을 찔러 넣었다.
“끄악!”
심장이 꿰뚫린 도적이 허우적거렸다. 데일은 검을 비틀었다.
맥 빠지는 비명과 함께 도적이 고개를 풀썩 숙였다.
데일은 그 몸속에 건틀렛을 박아 넣었다.
생기가 빨려 들어오며 찌그러졌던 갑옷이 원상태로 되돌아갔다.
반 언데드다운 우악스럽고 무식한 싸움 방법.
하지만 동시에 가장 위협적이기도 하다.
“이런 괴물 같은 새끼가…….”
“성수 있는 놈 없어?!”
“나, 나……. 억!”
도적 중 하나가 가방에서 성수를 꺼내려 했다. 데일은 곧장 단검을 꺼내, 도적에게 투척했다.
카창!
단검이 도적의 손과 성수가 든 유리를 동시에 꿰뚫었다.
도적은 손을 부여잡고, 비명을 내질렀다.
다른 도적들은 그 광경을 보며 당황했다.
‘우리만큼이나 전투에 이골이 난 놈이다.’
‘이런 녀석이랑은 안 싸우는 게 오래 사는 길인데…….’
그런 도적들을 보며 데일은 손가락을 까딱였다. 그리고 도발하듯이 말했다.
“빨리 와라. 시간 없으니까.”
“…….”
서로 시선을 교환하던 도적들은, 이내 외마디 기합성을 내지르며 데일에게 달려들었다.
* * *
가브리엘은 이를 악물었다.
그는 호쾌하게 도적들을 베어나가며 생각했다.
‘공을 세워야 한다. 내가 저 도적 우두머리를 잡아야 해.’
한때 이름있던 국가에서 기사로 살아가던 가브리엘이다.
나름대로 존경도 받고, 여유롭게 살아가던 그런 평범한 기사.
하지만 그의 조국은 악마들에 의해 멸망했다. 가문도 송두리째 날아갔다.
가브리엘은 살길을 찾기 위해 이레네로 와야 했다.
도시에 처음 왔을 때. 가브리엘은 당연히 자기가 상위 구역에 들어갈 수 있을 줄 알았다.
자신의 실력이라면, 당연히 황실 기사단에 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헛된 꿈도 꾼 적이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하다.
그는 여러모로 애매한 기사다.
출신이 고귀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실력이 특출나게 뛰어난 것도 아니다.
그저 운 좋게 기사 가문에 태어나, 교육을 받고 기사가 된. 그저 그런 평범한 사내였다.
상위 구역에서는 그를 쓸모 없는 사람으로 판단했다. 입장은 거부되었다. 가브리엘은 좌절했다.
하지만 절망하고 있을 시간은 없었다.
일단 먹고 살길을 찾아야 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지는 않았다.
가장 적합한 건 용병. 기사로서 갈고 닦아온 무력은 용병으로서도 쓸모가 있을 것이다.
차분히 실적을 쌓아 동패를 단다면, 금방 상위 구역으로도 갈 수 있을 터고.
하지만 그는 기사다.
자부심이 있다. 굶을지언정 천한 용병일 따위는 하고 싶지 않았다.
가브리엘은 그렇게 이리저리 방황했다.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려야 했다.
어쩌면 다른 가난한 기사들이 그랬듯. 강도 기사가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가브리엘은 우연히 레베카와 만나게 되었다.
레베카는 그의 실력을 높이 평가해, 제법 큰 금액을 주고 그를 고용했다.
탐탁지는 않았다.
명예라고는 조금도 찾아보기 힘든 상인 밑에서 일한다니. 심지어 레베카는 비천한 고아 출신이 아닌가?
예전이었으면 상상도 못 했던 일이다.
그래도 대우가 좋았기에, 가브리엘은 그냥 참기로 했다.
레베카도 그런 가브리엘을 존중해주었고. 그럭저럭 생활이 안정되었다.
한데. 그런 그의 생활에 불청객이 들어왔다.
‘이교도 놈!’
최근, 도시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는 흑기사. 데일이 이뤄낸 업적들은 사람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곤 했다.
하지만 그는 데일의 소문이 과장되었다고 생각했다.
‘운 좋은 놈.’
운. 그래, 운이 좋았을 뿐이다.
결투로 이긴 크리스틴이라는 놈도 실은 별거 없었고, 나머지도 다 운이 좋게 작용한 결과일 뿐.
그 자리에 가브리엘 자신이 있었다 해도 달라질 건 없었다……. 라고 믿었다.
그런 운만 좋은 놈을 레베카가 고용했다. 심지어 호의적으로 대한다.
가브리엘은 위기감을 느꼈다.
그 위기감은, 도적들의 함정에 빠져 말과 기병을 잃었을 때 더더욱 커졌다.
가브리엘은 바보가 아니다.
자기를 쳐다보는 레베카의 눈이 이전보다 싸늘하다는 것쯤은 안다.
요즘 부하들이 자기 얘기보다, 그 흑기사에 관한 얘기를 하는 것도 안다.
그래서 가브리엘은 다급하다. 이번에 공을 세워야 한다.
라팽을 베고, 실추된 명예를 다시 회복해야만 한다.
그런 집념으로 가브리엘은 도적들을 베어나갔다.
그리고 마침내. 라팽이 보인다.
“이 사지를 찢어 죽일 비천한 도적놈아! 나 레판토의 기사, 가브리엘이 너를 단죄하러 왔다!”
“으음?”
천둥 같은 고함에 라팽이 고개를 돌렸다.
라팽은 그때까지도 자기가 만들어낸 참상과 손에 든 대포가 자아내는 아름다움에 홀려 있었다.
기회라 여긴 가브리엘이 곧장 땅을 박찼다.
라팽은 그 모습을 멍하니 쳐다보더니, 돌연 대포를 가브리엘에게 향했다.
대포의 주둥이에서 녹빛의 화염이 일렁이기 시작한다.
‘발사된다!’
가브리엘은 두 눈을 부릅떴다. 놀라운 반사 신경으로 몸을 옆으로 굴렀다.
라팽의 부하들이 있는 곳이었다.
가브리엘은 아무리 악독한 사람이라도, 부하들을 불태우기 전에 조금이라도 머뭇거릴 것이라 생각했다.
틀렸다.
라팽은 망설이지 않았다. 대포가 불꽃을 또 한번 토해냈다. 이번에는 불꽃을 한번 뱉고 끝내는 게 아닌, 연속해서 토해냈다.
주위가 순식간에 불바다가 되었다.
그 속에 가브리엘도 있었다.
“으으윽!”
녹색 불꽃이 가브리엘의 갑옷을 녹였다. 하지만 그는 기사다. 다른 이들처럼 무력하게 녹아내리지는 않았다.
끌어올린 정신력으로 그대로 라팽에게 달렸다.
“하하! 하하하!”
라팽은 그저 즐거워했다. 계속 대포의 불꽃을 가브리엘을 향해 발사했다.
가브리엘은 이를 악물고 한 걸음씩 앞으로 다가갔다.
하지만 아무리 마력으로 몸을 보호한다 해도, 한계는 있다.
몇 걸음 더 나아가던 가브리엘은 제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라팽과의 거리는 불과 열 걸음이었지만, 닿을 수 없었다.
하지만 가브리엘의 행동이 아무런 의미가 없었냐? 한다면 그건 아니었다.
라팽이 가브리엘에게 집중하고 있던 그때. 시커먼 마검이 불바다를 반으로 갈랐다.
“!”
놀란 라팽이 당장 포구를 뒤쪽으로 돌렸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늦었다.
데일의 왼손의 유물 대포를 단단히 붙잡았다.
그리고 도적들을 죽여 잔뜩 모아 놓은 생기를 대가로 바쳐, 유물 장갑의 힘을 발동했다.
강력한 충격파가 발생했다.
까드득!
압력에 대포의 입구가 찌그러졌다. 뿜어져 나오려던 녹색 불꽃이 속에서 맴돌았다. 대포는 오래 버티지 못했다.
대포가 폭발하며 주위에 불꽃을 뿜어댔다.
가장 가까이에 있던 라팽은 불꽃을 그대로 뒤집어썼다.
“아, 안돼! 안돼!”
라팽은 비명을 질렀다. 고통에 의한 비명은 아니었다.
그는 유물 대포가 망가졌다는 데에 더 충격을 느꼈다.
“이 빌어 처먹을 개자식이!”
분노한 라팽은 자기 몸이 불타는 것도 신경 쓰지 않고 데일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근육이 녹아내려 라팽의 움직임은 몹시 굼떴다.
데일은 손도끼를 꺼냈다. 자연스럽게 휘둘렀다.
우적!
도끼날이 근육을 자르고 뼈를 끊었다. 눈을 부릅뜬 라팽의 눈동자가 세차게 흔들렸다.
그는 이내 옆으로 풀썩 쓰러졌다.
아마도 이것으로 싸움은 끝.
‘애먹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쉽게 처리했군. 기습을 먹인 게 유효했어.’
그리고 그건, 어느 한 저돌적인 기사 덕분이었다.
데일은 고개를 돌렸다.
가브리엘은 여전히 산채로 불탄 채, 바닥에 앉아 이를 악물고 있었다.
입으로는 비탄의 말을 중얼거렸다.
“내, 내가. 내가 어째서 이런 곳에서. 이건 잘 못 되었다.”
데일은 검을 들고 가브리엘에게 다가갔다.
안구가 전부 타버린 가브리엘이지만, 발걸음 소리만으로도 누가 다가오는지 알아차렸다.
“…….”
그는 입을 다물었다.
데일은 그런 가브리엘을 고통 없이 보내줄 생각이었다. 이 불꽃은 당장 사제들의 치유를 받는다 해도 가망이 없어 보였으니.
비록 이 못난 기사가 무고한 사람들에게 사격을 명했어도.
여러 바보 같은 짓으로 아군을 곤란하게 만들었어도.
최후에만큼은 자비를 베풀어줄 생각이었다.
데일이 검을 쥐며 말했다.
“결투다 가브리엘. 검을 들어라.”
이 기사는 아마도 자기가 기사라는 점이 자랑스러울 터.
그렇기에 기사로서 죽을 수 있게 해주기로 결정했다.
그게 데일의 자비다.
하지만 그 배려가 잘 전해지지 않은 듯하다.
다 타버린 눈을 부릅뜬 가브리엘은 이를 갈며 말했다.
“이, 이교도 따위가…….”
어쨌거나 그는 일어섰다. 검을 쥐고 달려들 태세를 취했다.
데일은 차분히 말했다.
“데일.”
가브리엘은 결투의 예를 지키지 않았다. 자기 이름을 외치는 대신, 기습적으로 땅을 박찼다.
가브리엘은 검을 휘둘렀다. 데일은 그 궤적을 차분히 읽었다.
‘평범하군.’
이런 평범함으로는 이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하물며 눈도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는 더더욱.
데일은 검로를 읽고, 정확하게 상대의 급소를 베어냈다.
가브리엘의 움직임이 실 끊어진 인형처럼 풀썩 쓰러졌다.
데일은 피 묻은 검을 땅에 박아 넣으며 말했다.
“유언을 말해라. 전해주겠다. 가족은 있나?”
가브리엘이 이를 악물며 말했다.
“거, 건방 떨지 마라. 나, 나도 너처럼 운만 좋았다면……!”
가브리엘의 마지막 말은 끝내 문장이 되지 못한 채 끊어졌다.
‘운?’
데일은 가브리엘의 얼굴을 확인했다.
심하게 녹아내려 잘 읽어낼 수는 없었지만, 무언가 굉장히 억울해하는 기색은 느낄 수 있었다.
‘마지막에 하던 말은 무슨 의미지.’
모른다. 모든 사람의 생각을 이해할 수는 법이니.
다만 확실한 건 있다.
데일이 베풀어준 자비 덕에 가브리엘은 적어도 기사로서 죽었다.
그리고 이 성격 더러운 기사는 데일의 성장을 위한 양분이 되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