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ark Knight in the Game RAW novel - Chapter (65)
숭배자
* * *
라팽이 쓰러지자, 저항하던 도적들은 대부분 항복했다.
다들 하나같이 생기가 없는 표정이다.
자신들의 믿고 따르던 대장이 아군과 적을 구분하지 않고 불태워버린 게 충격이었던 듯하다.
‘그게 악마의 무기가 지닌 무서운 점이지.’
악마의 힘이 깃든 무기는 사용자의 이성을 흐리게 만든다.
동료나 가족도 못 알아보는 괴물로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데일은 죽는 그 순간까지 유물 대포를 품에 꼭 안고 있는 라팽의 주검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문득, 이전에 싸웠던 상대가 떠올랐다.
유물 지팡이를 사용하던 여인.
여인 역시 죽는 순간까지 사악한 힘이 깃든 지팡이에 집착하곤 했다.
그때의 일과 지금의 일이 연관이 있을까?
데일은 라팽의 몸에 건틀릿을 박아 넣어 생기를 흡수했다. 잔혼과 함께 라팽의 기억 일부가 흘러들어왔다.
기억 속에 보이는 건 곱사등이다. 흰 가면을 쓴 곱사등이.
곱사등이는 라팽이 준비한 산제물을 손수 거둬들인 뒤, 라팽에게 유물 대포를 건네주었다.
‘흰가면?’
가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는 놈들은 대부분 뒤가 구린 놈들이다
심지어 산제물을 모으며 악마의 무기를 건네주는 이라면 더더욱.
‘악마 숭배자인 건가?’
데일은 이 기억이 비교적 최근의 것임을 깨달았다.
그렇다면 라팽에게 무기를 건네준 이 악마숭배자가 이 근처에 있다는 말이 되기도 한다.
데일이 생각을 정리하는 사이.
상회 직원들은 분주히 움직이며 상황을 파악했다.
“피해 상황은 어때?”
“사망자가 19명. 그리고 심각한 부상을 입은 쪽은 23명입니다.”
“마차는? 아까 불이 옮겨 붙었잖아.”
“3대는 완전히 불타 버렸고, 두 대는 그래도 절반은 건졌습니다.”
데일과 사제들의 활약으로 어떻게든 피해는 줄였지만, 무려 상행에 참여한 절반이 죽거나 크게 다쳤다.
심지어 일부 마차는 불타버리기까지 했다.
어마어마한 피해다.
당연히 상행을 맡은 직원들과 레베카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지금은 일단 해야 할 일이 많다.
마차를 수리하고, 시체를 모으고, 도적들과 아군이 떨어트린 장비를 수거하고, 휴식을 취하는 등등.
사람들은 부지런히 움직여야 했다.
원래라면 그중에서 가장 품이 많이 드는 건 바로 시체를 처리하는 일이다.
야외에서 시체를 처리하는 건 언제나 골치 아픈 문제였다.
하지만 이번엔 데일이 있었기에 얘기가 달랐다.
상회 직원들이 아군의 시체를 모두 치우자 데일은 주위에 검은 안개를 한 차례 흩뿌렸다.
안개가 주위 일대를 얕게 덮었다.
안개가 다시 걷히자, 남은 건 바짝 말라비틀어진 시체뿐이었다.
‘일일이 흡수 안 해도 돼서 편하군.’
몸 안에 생기와 잔혼이 차올랐다.
그 양이 많다. 어쩌면 이번에 신전으로 돌아가면, 큰 성장을 기대해봐도 좋을 것 같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음. 좀 그렇네.”
“그래도 시체 처리가 쉬우니까 뭐.”
“저분 아니었으면 우리가 죽었을 수도 있고. 괜한 소리는 하지 말자고.”
아무리 적군이라도 시체에서 생기와 잔혼을 거두는 게, 썩 좋아 보이지는 않았던 탓이다.
하지만 누가 뭐라 해도 이번 승리의 주역은 데일이다.
데일을 보고 대놓고 표정을 찡그리는 이는 없었다. 몇몇 사제들을 제외하면 말이다.
“세상에!”
“신이시여.”
신앙심 깊은 그들은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광경이었다.
몇몇 사제는 데일에게 다가와 핀잔을 주려 했다.
눈앞에 거대한 늑대가 지나가지 않았다면, 어쩌면 귀찮은 상황이 되었을 수도 있다.
“어어!”
“꺄악!”
갑작스럽게 튀어나온 하티 탓에 사제들이 크게 놀랐다.
하티는 그런 사제들을 심드렁하게 쳐다본 뒤, 기품 있는 걸음걸이로 데일에게 다가왔다.
녀석은 뭉툭한 코로 데일의 허리를 쿡 찔렀다. 늘 눈을 게슴츠레 뜨는 놈이, 제법 초롱초롱하다.
“이럴 때만 친한 척이지. 마음대로 해라.”
허락이 떨어지자 하티는 말라비틀어진 시체를 질겅질겅 씹었다.
그 광경에 사제들은 더더욱 경악했다.
그 시선에 하티가 불만스럽게 크릉 울었다.
밥 먹는 데 뭘 쳐다보냐는 의미였다. 사제들은 그제야 불편한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이제 데일에 대해 떠들어대는 소문에 식인 늑대의 이야기도 추가될 것이다.
작업을 마친 데일은 말라비틀어진 시체들을 한데로 옮겼다.
전염병이나 몬스터 먹이가 되는 걸 막기 위해서는, 깔끔히 태우는 게 좋다.
그렇게 홀로 옮기고 있자니 옆에 다가오는 사람이 있었다.
“제가 돕겠습니다.”
에스델이었다. 그녀는 직접 팔을 걷어붙여, 시체를 옮기기 시작했다.
지켜보던 사제들은 탐탁지 않아 했다.
“네 동료들이 별로 안 좋아하는 것 같은데.”
에스델은 어깨를 으쓱였다.
“이전에 말했잖습니까. 제가 누구랑 다니든, 그건 제 자유라고.”
“괜한 미움을 살 수도 있다.”
에스델이 움찔했다. 좀 찔리는 구석이 있긴 한 모양이다.
에스델이 풀 죽은 얼굴로 중얼거렸다.
“……괜찮습니다.”
괜찮지 않은 표정이었지만, 데일은 더 말하지 않았다.
대신 작업에 집중했다.
아군과 도적을 막론하고, 시체를 전부 모았다. 땔감을 찾아 불을 피웠다.
불길이 시체를 감쌌다. 녹색 불꽃이 아닌, 평범한 불이다.
사제들은 기도문을 읊으며 죽은 자의 사후세계에서의 복을 빌어주었다.
용병과 상회의 직원들은 침통한 얼굴을 했다.
하지만 눈물을 흘리는 사람은 없다.
목숨은 가볍고 죽음은 흔한 세상이다. 익숙해져야 한다.
일일이 슬퍼하다가는, 언제고 마음이 견뎌내지 못할 것이다.
‘울어주는 사람 하나 없는 죽음이라.’
당사자로선 꽤나 쓸쓸하지 않을까? 죽은 자는 말이 없는 법이지만.
‘아니.’
주위를 둘러보던 데일은 에스델의 눈가에 맺힌 희미한 물기를 발견했다.
데일은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생각했다.
오지랖 넓은 사제가 자신들을 위해 눈물을 흘려주니, 쓸쓸하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 * *
뒤처리를 마친 일행은 계속 이동했다.
죽은 가브리엘을 대신해, 가장 고참 병사가 책임자를 임시로 맡게 되었다.
그는 막대한 임무에 큰 부담을 느끼고 있었는데, 문제가 생길 때마다 데일에게 다가와 의견을 구했다.
“이, 이렇게 해도 될까요?”
몇 번 정도는 조언을 해주었지만, 슬슬 귀찮아졌다. 데일은 꺼지라는 의미로 말했다.
“난 용병이다. 알아서 해.”
“죄, 죄송합니다.”
상단은 파이도 마을을 지나쳤다. 원래는 하루 묵고 가기로 예정되어 있던 장소.
하지만 지금은 도저히 숙박할 수 있는 곳이 못 되었다.
에스델이 건조하게 말했다.
“지도상에서 마을 하나가 또 하나 사라지겠군요.”
수천 년을 이어오던 국가도 무너져내리는 데, 마을쯤이야.
상단은 마을을 지나쳐 적당한 평지에서 이동을 멈췄다.
야영 장소가 정해진 것이다.
모닥불과 솥을 앞두고, 언제나처럼 에스델과 하켄, 그리고 하티가 모여 앉았다.
무려 뛰어난 활약을 선보인 아름다운 여사제와 데일이 있는 자리다.
다른 용병 중에서 이곳에 함께하고 싶어하는 이가 몇 있었지만, 하티가 한차례 으르렁거리자 모두 겁을 집어먹고 물러났다.
하켄은 용병들이 부러워하는 시선을 한껏 즐기며 말했다.
“후우. 우리 파티가 명성을 떨치는 것도 먼 일이 아니겠습니다 이거.”
“파티라니. 무슨 말입니까?”
에스델이 마른 빵을 우물거리며, 무슨 이상한 소리냐는 눈으로 물었다.
하켄이 씨익 웃었다.
“나랑 데일 경은 뭐. 이제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영혼의 단짝이라 할 수 있고. 사제 양반도 아까 보니 엄청 실력이 늘었던데? 이렇게 셋이 함께 다니면, 적수가 없을 것 같지 않아?”
에스델이 빵을 내려놓으며 눈을 반개했다.
“……얹혀가려는 속내가 보이는 건 제 기분 탓입니까?”
“어허. 무슨 소리를.”
하켄의 시답잖은 소리를 듣다 못한 에스델이 화제를 돌렸다.
“그나저나 탈영병들이 이렇게 도적이 되다니. 전선 상황이 이상한 것 같긴 하네요.”
하켄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뭐, 이해는 돼. 4군단은 사막 옆에 있으니까. 날씨는 덥고, 모래도 휘날리고, 여러모로 오래 있을 만한 곳은 아니니까.”
“왜 탈영한 걸까요?”
에스델의 의문에 데일은 얼마 전, 직접 심문했었던 피셔를 떠올렸다. 그가 마지막에 내뱉었던 말을.
데일은 하켄에게 물었다.
“하켄. 악마를 본 적 있나?”
“예?”
갑작스러운 질문에 머리를 긁적인 하켄이 말했다.
“제가 전선에 있었던 건 맞지만, 비교적 안전한 곳에서 지냈거든요. 운이 좋았죠. 그래서 악마를 직접 본 적은 없습니다.”
“그래?”
“하지만 악마를 봤다는 녀석들은 몇 명 봤어요. 그놈들은……. 하나같이 병신이 되어 있었어요. 머리 어딘가 망가지던가, 아예 미쳐서는 악마 편에 붙는 놈들도 있었고요.”
어딘가 망가지거나, 악마의 편에 붙어버리던가.
데일은 넋이 나갔던 피셔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는 악마에 대한 기억을 상기하는 것만으로도 극심한 공포에 시달렸다.
“악마란 게 어지간히도 무서운 적인가 봐요. 사실, 저랑 퀼이 기회 되자마자 이레네로 돌아온 것도 그런 꼴 되기 싫어서 그랬던 거거든요.”
“그렇군.”
그런 두려운 적들을 수십 년간 상대해왔으니, 전선의 군인들이 변하는 것도 이해는 간다.
‘머지않아 균형이 깨지겠어.’
아슬아슬하게 유지되는 지금의 균형은 오래지 않아 무너질 것이다.
소강상태는 끝이 나고. 악마의 군대는 언제고 진군을 재개할 터.
이렇게 후방에서 날뛰는 도적 떼나 그림자 속에서 암약하는 악마 숭배자들이 그 증거다.
‘아직은 시간이 필요해.’
아직 데일은 충분히 강하지 못하다. 여전히 악마를 마주치면 이길 수 없다.
성장할 시간이 필요하다.
지금의 아슬아슬한 균형은 유지되어야 한다.
그걸 위해서도 이 근방에 있다는 악마숭배자는 미리 제거해두고 싶다.
놈들은 가만히 놔둬서는 안 되기도 하지만……. 사냥했을 때 짭짤한 보상도 기대된다.
놓칠 수 없는 사냥감.
‘악마 숭배자라.’
하지만 악마숭배자라고 다 비슷한 건 아니다.
그들은 자기가 섬기는 악마에 따라 다루는 힘의 종류와 크기 다르다.
이번 같은 경우에는…….
‘유물 대포. 흰 가면. 전염성 있는 녹색 불꽃.’
데일은 단서들을 가지고 천천히 기억을 더듬었다.
악마에게는 각각 뚜렷한 특징이 있다.
데일은 게임을 여러 번 해본 만큼, 그 특징을 대부분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방금 본 악마숭배자들에 대한 특징으로 그들이 섬기는 악마를 추측하면…….
의외로 정답은 금방 나왔다.
하지만 데일은 선뜻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건 좀 이상한데.’
예상치 못한 결과였다.
* * *
상단은 그 이후로 큰 문제 없이 이동해, 목적지인 카엘름 성에 도착했다.
이레네와 4군단 사이의 중간 지점에 해당하는 카엘름 성은 우중충한 곳이었다.
한낮에도 안개가 자욱하게 깔려 볕이 잘 들지 않았는데.
그래서인지 주민들의 얼굴이 창백하게 느껴질 정도로 하얗다.
마치 옛이야기 속 흡혈귀들이 모여 사는 성을 연상케 하는 모습이라 해야 할까.
심지어 성은 아주 고요했다. 성문에도 사람이 한 명도 나다니지 않았다.
그 광경에 레베카가 얼굴을 찡그렸다.
“조용하군요. 이상할 정도로.”
“원래 이런 곳 아니었소?”
“그럴 리가요. 날씨가 좀 우중충해도 이렇게 고요하지는 않았어요.”
상단은 성문 쪽으로 다가갔다.
병사 여럿이 삼엄하게 경계를 서고 있었다.
그들은 상단이 다가오자, 험악한 얼굴로 말했다.
“멈춰라! 신원을 밝혀라!”
레베카는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외곽 구역의 상인 길드장, 레베카에요. 카엘름 백작께도 미리 말을 해놓았어요.”
신원을 보증해주는 증서를 확인한 병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 실례했습니다!”
“고마워요. 고생이 많아요. 이제 들어가도 되죠?”
“아……. 그게.”
병사가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당연히 들여보내 줄 거라 생각한 레베카는 그대로 상단을 이끌고 도시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
하지만 그때.
누군가 도시 안에서 걸어 나오며 외쳤다.
“멈추십시오! 우리 허락 없이는 아무도 도시로 들어갈 수도. 나갈 수도 없습니다!”
잘 단련된 신체에 새빨간 법복. 왼쪽 옷 소매에 새겨진 흰색 고리와 반대편에 새겨진 붉은색 고리.
레베카는 상대는 정체를 알아보고 얼굴을 찡그렸다.
교단의 이단 심문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