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ark Knight in the Game RAW novel - Chapter (66)
숭배자
* * *
이단 심문관.
빛의 신앙에 대한 광신적인 믿음을 지닌 그들은 변절자들을 잡아 죽이는 일을 숙명으로 삼는다.
과거의 변절자들이란 밤의 신도들이었다.
심문관들은 이 땅에 마지막 하나 남은 이교도까지 전부 죽이기 위해, 온 대륙을 헤집고 다니곤 했다.
하지만 시대가 변했다.
빛과 밤은 화해했다.
그리고 악마 숭배자와 하수인이라는 이름의 더더욱 끔찍하고. 더 강력한 이교도들이 등장했다.
이제 이단 심문관들은 악마와 그 추종 세력을 잡아 죽이는 걸 숙명으로 삼는다.
그리고, 그들은 이런 부분에서 절대 타협하는 법이 없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단 심문관을 꺼려하고 두려워하는 이유였다.
늘 건방지고 예의 없는 하켄조차 허리를 쭉 펴고 서, 시선을 땅으로 향했다.
그러고는 데일에게 다급히 말했다.
“뭐, 뭐합니까 데일 경. 이단 심문관들이랑은 눈도 마주치지 말라는 말 못 들어봤어요? 특히 데일 경은 더 위험하다고요!”
에스델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하켄. 호들갑 좀 그만 떠세요. 세간에 퍼진 과장된 소문과 달리, 심문관분들은 모두 좋은 분들입니다.”
하켄이 미간을 좁혔다.
“그래. 같은 식구라 변호한다 이거지? 악마 숭배자로 의심되는 마을을 심문관이 모조리 불태워버린 이야기 몰라?”
“그거야말로 뜬소문입니다. 과거라면 몰라도, 지금은 명확한 증거가 없다면 아무리 심문관이라도 처결을 진행할 권한이 없습니다. 교단의 규율에도 그리 나와 있죠.”
에스델의 반박에 하켄은 답답하다는 듯이 가슴을 툭툭 두드렸다.
“아니 이 순진한 사람아. 세상이 규율대로 돌아가면 얼마나 좋겠냐고.”
둘이 실랑이를 벌이든 말든.
데일은 이단 심문관을 빤히 쳐다보았다.
심문관은 머리를 짧게 깎은 깔끔한 인상의 중년이었는데, 시선을 끄는 건 바로 눈이다.
흰자위가 훤히 드러낸 사백안. 그와 어울리지 않게 호수처럼 맑은 눈동자.
이 두 가지가 조합되어 섬뜩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데일의 시선을 읽은 걸까?
심문관도 데일을 보았다.
그는 데일을 보고 어떤 표정의 변화도 짓지 않았다.
적의나 경멸도 없다.
하지만 그게 더 꺼림칙했다.
‘감정을 제어하는 데에 능숙하군.’
다시 고개를 돌린 심문관은 레베카에게 입을 열었다.
“반갑습니다. 이단 심문관 탈로스입니다.”
“고생이 많아요. 탈로스. 레베카예요.”
둘은 악수를 나누었다.
하지만 서로를 향하는 시선에 호의라고는 조금도 들어 있지 않았다.
레베카가 입을 열었다.
“이단 심문관이 이 주위에 파견되었다는 소식은 전해 들었어요. 악마 숭배자가 있다죠?”
“그렇습니다.”
“안 그래도 그 악마 숭배자에 대해 할 얘기가 있었어요. 우리가 싸운 도적 떼가 그와 관련이 있는 것 같아서요.”
“아. 그 얘기는 흥미가 가는군요. 나중에 자세히 얘기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럼……. 지금은 일단 지나가도 될까요?”
레베카는 성문을 가리켰다.
하지만 탈로스는 조금이 표정 변화도 없이 단칼에 거절했다.
“안 됩니다. 현재 이 성에는 악마 숭배자가 숨어 있는 것으로 판단되어, 봉쇄 조치가 내려진 상태입니다. 나오는 것도, 들어가는 것도. 결백하다고 증명된 사람만이 가능합니다.”
“봉쇄 조치라니…….”
레베카는 미간을 좁혔다. 작은 마을도 아니고.
이런 거대한 성을 봉쇄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꽤나 극단적인 처방. 어지간한 상황이 아니라면, 카엘름 성의 영주가 허락하지 않았을 거다.
레베카가 물었다.
“뭔가 심각한 일이라도 있었군요. 그쵸?”
탈로스가 굳은 얼굴로 말했다.
“백작의 조카 딸이 악마 숭배자에게 살해당했습니다.”
“예?”
“정확히는 이틀 전. 사지가 비틀리고, 입에서 피를 토하는 모습으로 발견되었습니다. 최근 주민들이 그런 모습으로 발견되는 경우가 몇 번 있었지만, 백작의 가족이 그렇게 된 건 처음이었죠.”
“……백작께서 화가 많이 나셨겠군요.”
탈로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감사하게도, 악마 숭배자를 잡기 위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하아.”
레베카는 골치가 아파졌다.
안 그래도 도적들과의 전투로 다들 지쳐 있다.
이제 도시에서 쉴 수 있나 했더니, 귀찮은 일이 생겨버렸다.
레베카가 마른세수를 하며 물었다.
“그래서. 뭘 어떻게 하면 우리를 들여보내 줄 거죠?”
“본인의 결백을 증명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어떤 식으로요?”
“흠. 옛날이었으면 몇 가지 특별한 도구들을 사용하면 간단했는데 말입니다. 하하.”
그 특별한 도구란 고문 도구를 의미했다. 이단 심문관은 고문의 대가이니.
아무리 과묵한 이들도 진실을 모조리 실토하게 하는 재주가 있었다.
탈로스는 자기가 퍽 재밌는 농담을 했다는 듯, 실없이 웃었다.
정작, 눈은 웃지 않아서 더욱 섬뜩했지만.
“하하. 하하하하. 하하.”
“그만 웃으시죠.”
“이런. 농담이 재미없었습니까?”
“어디 가서 농담은 하지 않는 걸 추천할게요.”
“마음이 여유롭지 못한 사람들은 웃음에도 인색한 법이죠……. 하지만. 조언은 감사히 듣겠습니다.”
비꼬듯이 말하는 탈로스를 찌릿 노려본 레베카가 말했다.
“제가 데려온 사람들은 모두 믿을만한 사람이에요. 제가 보증할 수 있어요.”
“악마 숭배자들은 위장에 능한 법입니다. 겉으로 멀쩡해 보여도, 그 속에 어떤 걸 품고 있는지는 모를 일이죠.”
“아실 텐데요? 우리는 중요한 임무를 수행하고 있어요.”
“이것보다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이런 말까지 안 하려고 했는데, 제가 교단에 갖다 바치는 헌금이 얼마인지는 아나요?”
“늘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과 그건 다른 문제입니다.”
레베카가 다방면으로 설득해봤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아무래도, 탈로스는 순순히 들여보내 주지 않을 것 같았다.
‘결백을 증명하는 수밖에 없나.’
문제는 악마 숭배자가 아니라는 걸 증명하는 게 쉽지 않은 일이라는 점이다.
악마가 이 대륙에 나타난 시간은 짧다.
그들을 확실하게 감지해내는 기술은 아직 개발되지 않았다.
단순히 직감에 의존하는 방법은 있지만……. 그것만 가지고 판단했다가는 무고한 죽음이 너무 많이 생길 것이다.
과거처럼.
레베카는 속으로 한숨을 삼켰다.
‘말로 해서는 안 되겠네.’
설득은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무력으로 뚫을 수도 없다. 그녀 역시 일단은 신도였고, 교단에 검을 들이밀 수는 없었다.
‘이렇게 되면 백작을 직접 설득하는 수밖에.’
백작에게 성안으로의 진입을 허가받는 수는 그것밖에 없었다.
레베카가 말했다.
“그렇다며 일단 확실한 사람만이라도 들여보내 주세요. 일단 저는 통과죠?”
“물론입니다. 감히 평의원을 의심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그다음으로는……. 교단의 사제들도 들여보내 주세요.”
“그것 역시 당연한 겁니다. 기적을 부리는 것 그 자체가 의심할 수 없는 증거이니 말입니다.”
마지막으로 레베카는 고민했다.
이대로 가다가는 호위 병력 없이 홀로 성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이단 심문관이나 성의 병사들이 있다지만 믿을 수 없다.
당장 백작의 조카딸도 살해당했다지 않는가?
그때. 레베카의 머리에 한 가지 묘안이 스쳐 지나갔다.
그녀는 당당히 말했다.
“마지막으로 데일 경도 같이 들어가겠어요.”
“데일 경이 누구……. 아.”
탈로스는 데일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흰자위가 드러난 눈을 한층 더 희번덕 뜨며 말했다.
“제법 재밌는 얘기를 하시는군요. 레베카 님. 이렇게 재밌는 농담을 하시는 분이, 아까 제 농담에는 왜 안 웃으신 겁니까.”
“농담 아니에요.”
레베카는 데일에게 어서 오라고 손짓했다.
데일은 그리했다.
탈로스의 앞으로 걸어가, 그와 마주 섰다.
레베카가 설명했다.
“그는 밤의 여신을 섬기는 기사예요. 교단으로 치면 성기사와 다를 바 없죠. 사제님들이 들어갈 수 있다면, 데일 경도 들어갈 수 있어야 하죠.”
“……그것참. 흥미로운 견해군요.”
혹여나 마찰을 빚을까 따라온 에스델도 데일을 두둔했다.
“탈로스 형제님. 데일 경에 대해서는 제가 보증하겠습니다. 경은 사도 하시나를 직접 처단했습니다. 그것 외에 더 명백한 증거가 없지 않습니까.”
“에스델…….”
못마땅한 기색으로 에스델을 내려다보던 탈로스는 다시 데일을 쳐다보았다.
두 사람은 서로를 빤히 바라보았다.
아무리 명목상 빛과 밤이 화해했어도, 그 아래 패인 감정의 골까지 메워진 건 아니다.
과거에 그러했듯. 탈로스는 여전히 데일을 사냥꾼의 시선으로 쳐다보았다.
데일은 그 시선을 마주 노려봐 주었다.
‘불만 있으면 무기 뽑던가.’
그러길 잠시. 탈로스는 콧숨을 내뿜으며 말했다.
“마음대로 하십시오. 지금은 이런 일로 다툴 정도로 한가한 상황은 아니니.”
“고마워요.”
허가를 받은 레베카는 상단의 직원들에게 지시를 내린 뒤, 사제들과 데일을 이끌고 성안으로 들어갔다.
그런 에스델의 등에 대고 탈로스가 말했다.
“에스델 자매님. 본인의 위치를 자각하시길 바랍니다. 누구랑 어울려 다녀야 할지도 신중히 생각하시고요. 애도 아니지 않습니까.”
우뚝 멈춰 섰던 에스델이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충고 고맙습니다. 탈로스 형제님.”
일행은 탈로스를 지나쳐 성안으로 들어갔다. 경비병 하나가 그런 일행을 안내했다.
“바로 백작님께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성안은 바깥에서 보는 것보다 더 고요했다. 무려 영주의 조카딸이 죽었다.
주민들은 괜한 불똥을 뒤집어쓰지 않기 위해, 집 안으로 들어가 빗장을 걸어 잠갔다.
데일은 조용한 거리를 걸었다. 오래된 도시인 카엘름 성은 그 나름의 고풍스러운 풍경을 지니고 있었다.
주위에 지어진 건축물의 양식을 구경하던 데일은 문득. 지면으로 시선을 내렸다. 그리고는 고개를 조금 갸웃했다.
갑작스럽게 데일이 멈춰서자 레베카가 물었다.
“왜 그러세요 데일 경.”
“이 아래에 지하 수로 같은 게 있소?”
“오래된 도시니, 그런 게 있어도 이상하진 않죠. 근데 그게 왜요?”
“아니. 아무것도 아니오.”
데일이 고개를 내젓자, 주위를 휙 둘러본 레베카가 작게 속삭였다.
“경. 이곳에서 제가 믿을 건 경밖에 없어요. 그러니 부탁드려요.”
잠깐 고민한 데일이 말했다.
“근데. 이미 성에 도착한 순간 내 의뢰는 끝난 것 아니오?”
의뢰 내용은 어디까지나 이 카에름 성까지의 호위였다.
레베카의 입꼬리가 움찔했다.
“……이런 상황에서 협상이라니. 경께는 상인의 재능이 있군요.”
“그저 진실만 말했을 뿐이오.”
“어려운 부탁을 하려는 건 아니에요. 그냥 만약에 무슨 일이 터지면, 그때는 저를 우선해주세요. 당연히 사례는 할 거고요.”
데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기억해두겠소.”
돈을 더 준다면야 어려운 일도 아니다.
데일은 이 악마 숭배자들을 찾아내 잡아 죽일 생각이니 레베카를 신경 쓸 시간이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일단은 머릿속에 기억해두었다.
병사는 고요한 거리를 지나쳐 곧장 영주성으로 안내했다.
영주성은 또 다른 이단 심문관들이 지키고 있었는데, 그들은 자초지종을 전해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들어가십시오. 그리고 되도록 외출은 삼가십시오.”
딱딱하게 말한 심문관이 일행을 들여보내 주었다.
성안으로 들어가니 넓은 정원이 보였다.
정원사의 솜씨가 훌륭한지, 꽃과 나무가 조화롭게 가꾸어져 있었다.
하지만 주위의 우중충하고 고요한 분위기 탓에, 오히려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만 감돌았다.
정원을 순찰하는 병사들 탓에 그런 느낌은 배가 되었다.
일행은 정원을 가로질러 고풍스러운 저택으로 안내되었다. 사각형에, 한쪽 면이 뚫린 모양을 한 저택이었다.
병사에게서 일행을 인도받은 저택의 집사가 말했다.
“사제님들께는 방을 내어드리겠습니다. 레베카 님께서는 곧장 백작님을 찾아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 그리고 데일 경도요.”
“나를 아시오?”
데일의 질문에 집사가 반가이 미소 지었다.
“알다마다요. 어쨌건, 따라오시죠.”
영주가 있는 장소는 저택의 꼭대기 층이었다. 문 앞을 지키고 있는 기사가 데일을 보며 말했다.
“무기를 전부 놓고 가시오.”
데일은 마검을 손에 쥐며 주저했다. 귀한 물건이니, 선뜻 몸에서 떼기 망설여진 것이다.
하지만 이내 결정을 내렸다.
‘어차피 나 외에는 쓸 수도 없겠지.’
순수한 불신자인 데일이 아니라면 이 마검을 다룰 수도 없으리라.
게다가 무기가 없다고 데일이 싸울 수 없는 것도 아니다.
이 몸뚱이는 그 자체로 하나의 흉기나 다름없었다.
기사는 데일에게서 무기를 모두 받아들고, 그 무게에 살짝 놀랐다.
검이라거나 다른 무기들이 생각보다 무거웠던 탓이다.
‘이것들을 전부 들고 싸우지는 않겠지?’
기사는 바로 표정을 되돌리고, 얼른 문을 열어주었다.
“들어가시오. 백작님께서 기다리고 있소.”
레베카와 데일은 영주의 집무실로 들어갔다. 문을 닫으며, 집무실에 발을 디뎠다.
그러자 누군가 데일에게로 냅다 달려들었다.
데일은 반사적으로 주먹을 휘두르려다 말았다.
결과적으로 말하면, 옳은 선택이었다.
만약 그대로 주먹을 휘둘렀다면……. 데일은 꼼짝없이 감옥에 가야 했으니까.
“기다리고! 기다리고 있었네! 왜 이제 왔나!”
다짜고짜 다가온 왜소한 노인이 데일의 손을 마구 흔들었다.
이 잔뜩 겁에 질린 노인은 이 성의 영주이며……. 왜인지 데일을 굉장히 반가워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