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ark Knight in the Game RAW novel - Chapter (68)
숭배자
* * *
사람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을 맞닥뜨리면 굳어버리고 만다.
연회에 참석한 이들도 그랬다.
가신의 목이 썩둑 잘려나갔지만, 순간적으로 반응하지 못했다.
그 짧은 찰나.
흰 가면을 뒤집어쓴 이들은 주문을 완성했다.
“역시 연회의 마무리에는 춤이 제격이죠! 다들 함께 춤춥시다!”
휘오오오!
연회장의 중앙에 공기의 소용돌이가 휘몰아치더니, 이내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칼날 같은 바람이다.
데일은 에스델을 뒤로 끌어당겨 자기 몸으로 가렸다.
카각!
칼날 바람이 데일의 몸을 훑고 지나갔다. 단단한 갑옷에 깊은 상처가 패였다.
마법의 위력이 상당했다.
에스델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이, 이게 무슨. 이, 일단 감사…….”
데일이 횡설수설하는 에스델에게 말했다.
“정신 차려라. 악마 숭배자들이다.”
“예?”
옆에서 솜씨 좋게 방어벽을 만들어낸 페일이 으득 이를 갈았다.
“여길 직접 공격해오다니, 어지간히 만만하게 보였나 보네요.”
데일은 피해 상황을 확인했다.
첫 기습은 제법 치명적이었다.
가신과 저택의 사용인들이 토막이 나, 이곳저곳에 굴러다녔다.
하지만 이단 심문관들은 나름대로 실력은 있는지, 사제들을 보호하는 데에는 성공했다.
악마 숭배자는 그 사실이 마음에 안 든 모양이다.
“쓸데없이 튼튼하기만 해서는. 바로 다음으로 갑시다!”
가면을 쓴 악마 숭배자 일곱이 일제히 주문을 외기 시작했다.
데일은 곧바로 주변의 식탁을 양손으로 붙잡았다.
음식 접시가 가득 올려진, 원목 식탁이었다.
페일은 당황하며 물었다.
“데일 경! 그건 사람 혼자서 들 수 있는 물건이……. 들리네?”
데일은 원목 식탁을 번쩍 들어 올렸다. 접시가 바닥에 이리저리 떨어졌다.
음식이 몸에 쏟아졌지만 데일은 신경 쓰지 않았다.
무릎을 구부렸고. 용수철처럼 다시 무릎을 피며 식탁을 힘껏 던졌다.
쾅!
식탁이 모여 있던 악마 숭배자들을 덮쳤다. 아무리 악마 숭배자라도 계속 주문을 외고 있을 수는 없었다.
그들은 사방으로 산개하며, 눈을 빛냈다.
“오호라! 소문의 주인공이 여기 와 있구만!”
“듣던 대로 특이한 놈이다.”
“우린 운이 좋아! 주인님께 바칠 수 있겠어!”
사방으로 퍼진 그들은 제각각 주문을 읊기 시작했다.
데일은 곧장 자리를 박차, 앞으로 튀어나갔다.
가장 가까운 녀석에게 달렸는데, 그 입꼬리가 슬쩍 올라가 있었다.
주문이 거의 완성되었다는 증거다.
으레 마법사들이란 주문을 완성하기 전에 기쁨을 느끼는 변태들이니.
데일은 식탁에 놓인 포크를 집어 들었다. 손에서 가장 가까이에 있는 쇳덩어리였다. 데일은 감각에 의지해 손을 뻗었다.
포크가 비수처럼 날아가, 그대로 가면의 왼쪽 눈구멍으로 파고들었다.
“크악!”
악마를 따르는 놈들 특유의 보석같이 반짝이는 눈에 포크가 틀어박혔다.
당연히 준비하던 주문은 취소.
그대로 거리를 좁힌 데일은 검을 뽑아, 빠르게 내리쳤다.
퍼억!
정수리부터 틀어박힌 검은 그대로 목 아래까지 파고들었다.
아무리 악마 숭배자라도 즉사에 이를 일격이다. 데일은 악마 숭배자의 몸을 걷어차 검을 빼냈다.
데일은 곧장 시선을 돌렸다.
이단 심문관과 사제들도 제법 능숙하게 싸움을 이어가고 있었다.
온몸에 찬란한 광휘를 두른 심문관이 묵직한 망치를 휘둘렀고, 눈 부신 빛을 뿜어내는 섬광이 숭배자들을 노렸다.
그럴 때마다 악마 숭배자들은 불꽃을 흩뿌리고, 차가운 숨결을 내뱉으며, 때로는 산성 안개를 뿜어대며 이단 심문관을 저지했다.
심문관은 몸을 감싸는 방벽으로 그 모든 마법을 맞아가며 악마 숭배자를 쫓았다.
언뜻 보면 이단 심문관의 우세다.
하지만 둘 간에는 명백한 목적의 차이가 있었단.
이단 심문관의 목표가 악마 숭배자라면, 악마 숭배자가 바라는 건 무차별적인 살육이다.
허공에 분사된 산성 안개는 미처 도망가지 못한 가신, 병사, 그리고 사용인을 덮쳤다.
“커억!”
“수, 숨이!”
산성 안개가 코로 들어가 호흡기를 녹여버리자, 버티지 못한 이들이 털썩 쓰러졌다.
심각한 부상.
하지만 이단 심문관들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오로지 악마 숭배자들에게 집중했다.
탈로스가 외쳤다.
“반드시 죽여라! 놓쳐서는 아니된다!”
그들이 지닌 무기와 부리는 기적은 오로지 악마 숭배자들만을 향했다.
그러다 보니 싸움이 계속될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픽픽 죽어 나갔다.
그러던 와중. 한참을 주문만 외우던 악마 숭배자 하나가 마침내 주문을 완성했다.
“헤! 됐다!”
퍽!
이단 심문관이 달려가 그런 악마 숭배자의 머리를 내리쳤다. 가면과 함께 두개골이 으스러졌다.
하지만 이미 완성된 주문은 끊어지지 않았다.
허공에서 불꽃이 피어올랐다.
녹색 불꽃. 일전에 봤던 유물 대포에서 발사된 것과 똑같은 불꽃이다.
불꽃의 파도는 아직 살아남은 사람들이 몰려 있는 곳을 향해 굽이쳐갔다.
“비, 빛이여! 방패를!”
사제들이 급하게 기적을 부려 방벽을 세웠다. 하지만 역부족이다.
사제들은 어떻게든 버티려 했지만, 점점 힘에 부쳤다. 사악한 불꽃은 너무나 강력하다.
‘신이시여. 이대로라면…….’
궁지에 몰린 사제들은 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그들의 신을 찾았다. 여기서 밀리면 끝이다.
그런 그들의 부름에 신이 응답한 걸까? 순간. 불꽃이 잘려나갔다.
“어?”
사제는 고개를 들었다.
당연하게도, 신이 그들의 기도에 응답한 건 아니었다.
앞에 선 건 흑기사다.
데일은 보기만 해도 불길해지는 마검을 들고 그들의 앞에 섰다.
후웅!
굳게 쥔 마검을 사선으로 휘둘렀다.
녹색 불꽃이 순간적으로 잘려나갔다가, 다시 파도처럼 짓쳐 들었다.
데일은 반대 방향으로 검을 휘둘렀다. 그리고 또 반대 방향으로. 다시 반대로. 팔이 흐릿하게 보일 정도의 속도로 반복했다.
검격으로 만들어낸 장벽. 불꽃은 그 장벽을 결코 넘을 수 없었다.
‘세, 세상에.’
사제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불꽃을 베어내는 검사라니. 그들이 지금 보는 광경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그렇게 데일이 불꽃을 다 잘라내었을 때.
몇 남지 않은 악마 숭배자는 서로를 쳐다보았다.
가면을 써 표정을 읽을 수는 없지만, 설마 불꽃을 막아낼 줄은 예상하지 못한 듯했다.
그들은 눈빛만으로 빠르게 의사를 교환했고.
이내 한 가지 결론에 이르렀다.
“후퇴!”
악마 숭배자 넷은 일제히 흩어졌다.
세 녀석은 연회장의 입구로.
하나는 창문으로 몸을 던졌다.
챙그랑!
악마 숭배자와 부딪힌 유리창이 산산이 조각났다.
그 귀를 긁는 소음과 함께 이단 심문관과 데일도 추격을 개시했다.
데일이 쫓은 건 창문으로 도망친 녀석이었다.
이단 심문관이 모두 입구로 달려갔기 때문인데, 이는 연회장이 3층에 있어서였다.
데일은 3층에서 떨어져도 멀쩡히 달아나는 악마 숭배자를 눈에 담은 뒤, 망설임 없이 창문으로 몸을 던졌다.
쿵!
거체가 떨어지며 자욱한 흙먼지를 일으켰다. 아름답게 가꿔진 화단은 엉망이 되었다.
낙하한 충격에 몸이 한차례 흔들린다. 상관없다.
데일은 달렸다. 악마 숭배자와의 거리가 빠르게 줄어들었다.
도망치던 악마 숭배자가 뒤를 돌아보았다. 그 보석 같은 눈에 기이한 빛이 일렁였다.
여유롭게 도망칠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그만 쫓아오시죠! 진심으로 충고해 드리는 거예요!”
악마 숭배자는 달리는 속도를 올리며 외쳤다. 어딘가 장난기가 가득한 어조.
데일은 대답 대신 단검을 꺼내 던졌다. 반사적으로 허리를 숙여 단검을 피한 악마 숭배자가 양손을 착 부딪쳤다.
“저는 경고했습니다?”
그러자 데일이 디딘 땅에 복잡하고 기하학적인 마법진이 생겨났다.
‘룬 마법?’
다음 순간.
불기둥이 마법진에서 피어올랐다. 멀리서도 느껴질 정도로 뜨겁고 강력한 불기둥이었다.
자기가 만들어낸 작품을 보며 악마 숭배자가 익살을 떨었다.
“그러게 남이 조언을 하면 들어야……. 어?”
불기둥을 뚫으며 데일이 걸어 나왔다. 온몸에 불이 붙고, 갑옷은 군데군데 녹았지만 치명상에 이를 피해는 아니다.
그거면 충분하다.
데일이 물었다.
“준비한 건 이게 전부인가?”
“……생각보다 튼튼하군요.”
그렇게 말한 악마 숭배자가 도망치려 했다.
하지만 데일의 검이 더 빨랐다.
수평으로 휘둘러진 마검이 악마 숭배자의 허리를 갈랐다.
졸지에 반 토막이 된 악마 숭배자가 땅에서 허우적거렸다. 단면에서 피와 내장이 흘렀다.
이들 역시 한때 인간이었다는 증거. 악마 숭배자의 가장 성가신 점이다.
데일은 악마 숭배자의 상반신에 고개를 들이밀며 말했다.
“알고 있는 걸 모두 말해. 네 동료들이 숨어 있는 은신처. 이곳에서 꾸미려는 계획. 전부다.”
“헤. 헤헤. 정말 말할 거라 생각하고 물어본 건 아니죠?”
물론 아니다.
이 악마 숭배자라는 놈들은 하나 같이 머리가 훼까닥 돌아 있어, 어지간한 고문으로도 입을 열 수 없다.
악마 숭배자는 데일을 비웃으며 말했다.
“우리가 따르는 분의 이름도 모르는 머저리들. 당신들은 머지않아 파멸을 맞이할 겁니다. 그때 당신이 내뱉을 고통어린 비명을 듣지 못해 참으로 아쉽군요.”
아마 그때가 되어도 데일이 비명을 지르는 일은 없지 않을까?
데일은 그렇게 대답하는 대신, 하나의 이름을 툭 던졌다.
“가니아고스.”
“……예?”
반 토막이 나도 여유롭던 숭배자의 눈에 충격 어린 감정이 드러났다.
“어, 어떻게?”
“짐작하는 건 어렵지 않지.”
얼굴을 가린 흰 가면. 갖가지 변칙적인 주문을 다루는 숭배자. 마지막으로 전염성이 있는 녹색 불꽃.
그 특징들은 하나의 악마를 가리키고 있었다.
“내가 네 주인을 많이 만나봤거든.”
갖가지 주문을 사용하며 상대를 농락하는 가니아고스의 싸움 방식은 굉장히 까다롭다.
게임에서도 유독 애를 먹이던 악마였으니, 데일의 기억에 선명히 남아 있을 수밖에 없다.
당황한 악마 숭배자가 화를 냈다.
“우, 우리 주인님을 많이 만나봤다니……. 거짓말하지 마라!”
“일단 네 주인이 가니아고스라는 건 인정한 건가?”
그제야 아차한 악마 숭배자가 입을 다물었지만 이미 너무 늦었다.
데일은 생각에 잠겨 들었다.
‘얼추 예상은 했지만……. 진짜였다니.’
데일이 악마의 정체를 짐작한 건 라팽을 처단했을 때다.
그때에도 가니아고스라는 이름을 떠올리는 건 어렵지 않았다. 짐작할만한 증거들이 제법 많았으니.
하지만 의문점이 한 가지 있었다.
‘가니아고스는 이미 죽었다.’
과거. 드워프들의 유적에서 사도 하시나와 싸울 때 데일은 물었다. 마법사인 주제에 왜 가니아고스 말고 다른 악마를 따르냐고.
하시나는 답했다. 가니아고스가 죽은 지는 이미 한참이 지났다고.
그때 데일이 얼마나 놀랐던가.
‘악마를 아무나 죽일 수 있는 게 아닌데.’
어쨌거나 가니아고스는 죽었다. 하지만 지금 그 죽은 악마를 섬기는 숭배자들이 난동을 부리고 있었다.
데일이 물었다.
“네 한심한 주인이 죽었으면 얌전히 있을 것이지. 아니면 다른 악마에게 붙거나. 뭐 하려고 난리나 피우고 있는 거지?”
데일의 질문에 악마 숭배자의 몸이 파들파들 떨렸다. 굴욕감과 분노가 전해진다.
악마 숭배자는 가래 끓는 듯한 쉰 목소리로 외쳤다.
“그분은……. 그분은! 위대하신 분이다! 너 같은 송장이 입을 놀릴 분이 아니란 말이다!”
“죽은 건 가니아고스니, 송장은 내가 아닌 그쪽이 아닌가?”
악마 숭배자는 데일의 말을 무시하며 고함을 내질렀다.
“그분은 돌아올 것이다! 우리가 그렇게 만들 것이다! 그때가 머지않았단 말이다!”
그렇게 외친 악마 숭배자가 분을 이기지 못하고 팔을 뻗었다. 날카로운 손톱을 데일의 투구로 향했다.
데일은 곧바로 주먹을 휘둘렀다. 더 늦게 출발했지만, 더 빨리 목표에 맞닿은 건 데일이었다.
주먹이 가면과 함께 숭배자의 머리통을 박살냈다.
숭배자의 몸이 허물어졌다.
데일은 곧장 건틀릿을 박아넣었다.
만족스러울 만치 많은 양의 생기가 차올랐다. 신체도 곧바로 회복되었다.
다만, 악마 숭배자의 기억은 너무 흐릿하고 혼란스러워, 도저히 읽을 만한 것이 못 되었다.
데일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안개가 가득 낀 카엘름의 밤하늘을 보았다.
안개 속에서 불길한 그믐달만이 희미한 빛을 뿜고 있다.
‘돌아온다……라.’
비로소 숭배자들의 목적을 알았다.
놈들은 가니아고스를 부활시킬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