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ark Knight in the Game RAW novel - Chapter (69)
숭배자
* * *
데일은 바싹 말라버린 악마 숭배자의 시체를 가지고 돌아왔다.
연회장에는 사람들이 망연자실하게 앉아 있었다.
백작의 가신과 병사가 많이도 죽었다.
그들이 흘린 피로 연회장은 엉망이 되어 있었다.
데일이 돌아오자 에스델과 페일이 맞아주었다.
“아. 데일 경.”
“몸은 좀 괜찮으십니까?”
“문제없다.”
데일은 악마 숭배자의 시체를 내려놓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물었다.
“피해는 어떤가?”
페일이 탄식을 내뱉으며 말했다.
“못해도 스무 명은 죽었습니다. 저희가 지키고 있었는데도 말이죠.”
무려 이단 심문관과 사제들이 모여 있던 자리다.
아무리 예상치 못한 기습이었다 해도, 피해가 너무 컸다.
“저희가 더 잘 대처했어야 하는데……. 아무래도 상대를 얕보고 있던 건, 우리 쪽이었던 것 같네요.”
데일은 주위 참상을 눈에 담으며 말했다.
“백작이 더욱 겁을 먹겠군.”
“저택 한복판에서 이런 학살이 일어났으니까, 백작 성격에 호위 병력을 늘리겠죠. 어쩌면 이게 놈들이 노리는 결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백작의 공포를 자극해, 병력을 저택 안에 틀어박히게 만든다.
악마 숭배자를 쫓거나 도시를 순찰하는 병력은 더욱 줄어들 테니, 놈들은 훨씬 편하게 활개 칠 수 있을 것이다.
그때쯤.
다른 악마 숭배자를 쫓아 나갔던 이단 심문관들이 돌아왔다.
그들은 악마 숭배자의 시체를 어깨에 들쳐메고 있었는데, 가면을 벗은 악마 숭배자의 얼굴은 놀랍도록 평범했다.
눈이 보석처럼 반짝이지도 않고, 뒤틀린 부분도 없다. 어디서나 볼 법한 그런 평범한 사람이었다.
탈로스도 그 부분을 의식하는 듯했다.
“당장 하인과 그 가족들의 신원부터 확인해야 합니다. 모든 심문관은 저를 따라오세요.”
“네!”
발걸음에 망설임은 없다.
연회장에서 사람이 몇이 죽었든, 그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이단 심문관은 처단하는 역할이지, 보호하는 이들은 아니므로.
이단 심문관들이 탈로스를 따라 우르르 밖으로 나갔다. 마지막으로 연회장을 나서려던 탈로스는 고개를 돌렸다.
“무엇합니까 페일. 어서 오지 않고.”
“탈로스 님…….”
페일은 주위를 둘러보고, 데일의 얼굴을 한번 쳐다본 뒤,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저는 이곳에 남아 뒤처리나 맡겠습니다.”
“음?”
“어차피 저는 수습이라 별로 도움도 되지 않으니까요. 이렇게라도 손을 거들고 싶습니다.”
탈로스는 감정을 읽기 힘든 눈으로 페일을 응시하다, 이내 고개를 돌렸다.
“뜻대로 하십시오.”
탈로스가 떠나가자, 페일이 데일에게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말은 이렇게 했지만, 저는 데일 경을 돕겠습니다.”
“뭐?”
페일이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얘기 들었거든요. 데일 경이 탈로스 형제님께 악마 숭배자에 대한 정보를 알려 달라 했는데, 거절당했다는 걸요. 그 부분을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데일이 물었다.
“그래도 괜찮겠나? 들키면 문제가 될 수도 있다.”
“저는 악마 숭배자가 선량한 사람들에게 해코지하는 걸 막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이단 심문관이 되었죠.”
페일은 올곧은 눈으로 말했다.
“탈로스 형제님의 방식은. 음. 때로는 지나칠 때가 있죠. 지금은 데일 경을 돕는 게 악마 숭배자를 잡을 가장 빠른 방법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제 개인적으로 마리아에 대한 빚을 갚고 싶기도 하고요……. 만약 잘못된다면, 그때는 이단 심문관 같은 건 그만둬 버리죠. 뭐.”
페일은 별거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 정말로 그만두어도 상관없다는 듯한 태도다.
데일이야 반가운 얘기다.
안 그래도 정보가 없어 곤란해하던 차다. 게다가 성안을 돌아다니려면 길잡이는 필수다.
왜냐하면……. 데일은 지독한 길치다.
언제나 길을 이끌어주는 하티가 없는 지금, 혼자 낯선 곳으로 나섰다가는 영원히 도시를 배회할 수도 있다.
“그러면 바로 이동하지.”
“예. 한시라도 빨리 놈들을 잡아야 하니까요.”
“아! 저도 따라가겠습니다. 제가 도움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에스델 자매님이 도와주신다면 든든하죠.”
페일과 에스델이 앞장서서 걸어갔다.
데일도 그 뒤를 따랐다. 이 둘은 악마 숭배자를 찾는 데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그때. 누군가가 데일을 불렀다.
“저, 저기!”
걸어가던 데일과 에스델은 뒤를 돌아보았다.
사제들이 데일을 보며 우물쭈물하고 있었다.
이레네로부터 이곳까지. 2주일에 가까운 시간을 함께했지만, 데일은 이 사제들의 이름도 몰랐다.
그들은 데일을 탐탁지 않아 했으며, 말도 섞고 싶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사제들이 데일을 불러세웠다.
데일은 말없이 턱을 까딱였다. 어서 말하라는 뜻이었다.
사제 중 대표 격인 인물이 말하기 힘들다는 듯. 몇 번 입을 뻐끔거렸다.
참다못한 데일이 말했다.
“할 얘기가 없다면 가겠다.”
사제가 다급히 말했다.
“고마워요.”
“뭐?”
“아까 그 불꽃에서 저희를 지켜주신 점. 고마워요. 그뿐이에요.”
말을 뱉은 사제는 겨우 해냈다는 듯. 깊은 숨결을 토해냈다.
꽉 막힌 사제들이 이교도에게 감사를 표한다는 게, 분명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데일은 무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오히려 옆에 있던 에스델이 환한 표정을 지었다.
마치 자기가 감사받은 것처럼 기뻐했다.
“제가 말했잖아요. 보기보다 괜찮은 분이라고.”
“보기에는 안 괜찮다는 건가?”
데일이 묻자 에스델은 입을 다물었다.
쓴웃음을 지은 사제가 데일에게 한걸음 다가왔다. 그리고 양팔을 내밀었다.
“받으세요. 감사의 의미로 선물해드리는 거예요.”
“이건……?”
사제가 뿌듯한 얼굴로 내민 물건은……. 묵직한 성경이었다. 그것도 표지가 고급 가죽으로 만들어진, 고가품이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읽어보세요. 삶의 방향을 잃을 때, 분명 답을 알려줄 거예요.”
데일은 상대의 순수한 미소를 봤다. 악의는 조금도 없었다.
당황한 에스델을 흘끗 살핀 뒤, 차갑게 말했다.
“그냥 돈으로 줘라.”
* * *
에스델은 연신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자매님께 나쁜 뜻은 없었을 거예요.”
“이해한다. 너도 예전에 똑같이 행동하지 않았나?”
과거.
에스델이 식사하기 전에 식전 기도를 올리자고 했던 게 기억에 남는다.
그때가 떠올라 창피한지, 에스델은 얼굴을 빨갛게 물들였다.
“그, 그때 일은 잊어주세요.”
셋은 페일이 묵는 방으로 들어갔다. 본격적으로 악마 숭배자를 찾기 전에, 우선 의견을 교환해야 했다.
페일이 입을 열었다.
“우선, 예. 정보 공유부터 하겠습니다. 최근 악마 숭배자들의 소행이랑, 저희 이단 심문관이 어디까지 알아냈는지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데일과 에스델이 고개를 끄덕이자, 페일이 천천히 설명했다.
“악마 숭배자가 나타났다는 목격 정보가 처음 나온 건 한 달 전이었습니다. 이곳 카엘름 성이 아닌, 근처의 파벤 마을이라는 곳 주민들이 모조리 실종되어 버린 사건이었죠. 그것 때문에 카엘름 백작이 교단에 수사를 부탁했고요.”
백작의 부탁을 받고 이단 심문관들이 파견되었다.
그들은 카엘름 근방의 마을들을 수색하며 악마 숭배자들에 대한 흔적을 추적해나갔다.
본격적으로 사건이 터지기 시작한 건 그로부터 일주일 후부터다.
“카엘름 성의 주민이 끔찍한 모습으로 살해된 채 발견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같이 끔찍한 몰골이었고, 시체 옆에는 흰 가면이 놓여 있었죠.”
“놈들이 쓰고 있던 그 가면이군.”
“예. 반대로 시체가 발견되지 않고, 실종만 된 경우도 많습니다. 그래서 고민해본 결과……. 한 가지 이상한 점을 알아챘습니다.”
이 부분에서 페일은 한번 말을 끊고 주위 반응을 살폈다. 긴장한 에스델이 침을 꿀꺽 삼켰다.
“이상한 점이 무엇입니까?”
“시체로 발견된 건 나이가 어린 아이거나 노인. 반대로 실종된 건 젊은 사람들 뿐이었습니다. 예외는 없었죠. 그래서 저희는 두 가지 가설을 세웠습니다. 하나는 놈들이 제물을 모으려 한다. 젊은 사람의 혼과 피는 제물로서의 가치가 있으니까요.”
데일이 물었다.
“두 번째 가설은?”
“동료를 늘리려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동료?”
“아무래도 그 흰가면. 사람을 홀리는 힘이 있는 것 같습니다. 당장 방금 우리를 습격했던 하인들도, 아마 평범한 사람들이었을 겁니다. 오늘 아침까지는 말이죠.”
평범한 사람도 그런 악마 숭배자로 만들어버린다면, 그건 확실히 곤란한 일이다.
‘제물 수집과 동료 늘리기가 목적인가.’
그리고 이 두 가지는…….
“서로 상충하지 않죠. 그래서 저희는 둘 다라고 보고 있습니다. 동료를 늘리면서, 겸사겸사 제물도 수집하는 거죠. 다만 놈들이 무엇을 위해 제물을 모으는지는 아직도 확정하지 못했습니다. 악마 숭배자들이 꼭 이유가 있어 사람들을 죽이는 건 아니지만……. 어쨌거나 제물이 아주 많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벌써 1달째 실종된 사람들만 엄청나게 많으니까요. 어쩌면 그 이전부터 준비하고 있었을 수도 있고요.”
지난 시간 동안 이단 심문관들이 놀고만 있던 건 아닌 듯하다.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착실하게 정답에 다가서고 있었다.
데일이 물었다.
“놈들이 어떤 악마를 숭배하는지는 특정해냈나?”
“그게 아주 곤란한 문제입니다. 다양한 마법을 구사하고, 가면을 쓰고 다니는 걸 제외하면 이렇다 할 특징이랄 게 없으니까요. 어쩌면 우리가 잘 모르는 악마를 섬기는 놈들일 수도 있습니다.”
데일은 의아함을 느꼈다.
‘이단 심문관들은 악마에 대해서 잘 알지 않나?’
악마의 특성에 대해 누구보다 빠삭해야 하는 게 이단 심문관일 것이다.
하지만 페일은 놈들이 숭배하는 악마가 누군지 짐작조차 하지 못하는 모습.
데일이 툭 말했다.
“가니아고스.”
“예?”
“놈들은 가니아고스를 섬긴다.”
“가니아고스라니…….”
그 이름을 몇 번 중얼거리던 페일이 눈을 크게 떴다.
“아. 과거에, 영웅들이 죽였다는 그 악마를 말하는 것이군요!”
“그래. 가니아고스에 대해서 잘 모르나?”
페일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죠. 영웅들께서는 가니아고스와의 사투에 대해서 발언하기를 꺼리셨으니까요. 그저 마법을 능숙하게 다뤘다는 얘기만 들어봤습니다.”
게임에서 가니아고스는 각양각색의 마법을 다루며, 매우 귀찮게 싸우는 녀석이었다.
더욱 성가신 건, 놈이 부하들을 아주 많이 부린다는 것이다.
그 부하들 중에서도 특히 강력한 심복들은 하나같이 가면으로 얼굴을 가렸는데, 덕분에 데일은 이번 악마 숭배자들의 정체를 어렵지 않게 유추해낼 수 있었다.
하지만 이단 심문관에게는 그런 정보가 전해지지 않았다.
‘일부러 함구했다라…….’
악마를 죽였다는 놈들이 악마에 관한 얘기를 일부러 밝히지 않았단다.
그렇다면 가니아고스는 자기 영역을 좀처럼 벗어나지 않는 놈이니, 이단 심문관들이 잘 모른다 해서 이상할 건 없다.
생각을 정리하는 데일에게 페일이 물었다.
“가니아고스를 섬긴다는 것……. 확신하십니까?”
“그래.”
“으음. 그런데 이미 가니아고스는 오래전에 죽은 악마 아닙니까?”
“놈들은 그 악마를 부활시키려 하는 거다. 그래서 동료와 제물을 모으는 거라고 생각한다.”
“아. 잠깐. 그러면 놈들이 제물을 많이 모으는 것도…….”
“악마를 되살리는 데에는 제물이 아주 많이 필요할 테니.”
죽은 악마의 부활.
예상을 뛰어넘는 심각한 얘기에 에스델과 페일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페일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만약 이게 사실이라면 큰일입니다. 탈로스 형제님께 말씀드려야겠습니다.”
“안 믿을 거다. 명확한 근거는 없으니까.”
잠시 머리를 굴려보던 페일이 다시 제자리에 앉았다.
“……그건 그렇군요. 오히려 터무니 없는 소리 하지 말라는 핀잔만 들을 것 같습니다. 사실, 저도 선뜻 믿기 어렵네요. 정말 확실하신 거 맞습니까?”
“확실하지 않더라도, 가만히 있는 것보다는 낫지 않나?”
“그것도 그렇군요.”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불확실한 가능성에라도 걸어보는 게 훨씬 나을 것이다.
페일도 일단 데일의 의견에 동의했다.
“어쨌거나, 저희가 직접 찾는 수밖에 없겠군요. 이단 심문관분들의 도움을 받기는 힘드니까요.”
“그렇겠지.”
“하지만 어떻게요? 이미 저희는 성안을 몇 차례나 뒤집었습니다. 하지만 놈들을 잡을 수 없었어요. 워낙 영악한 놈들이라 말이죠.”
그 의문에 대해 데일은 명쾌한 답을 내놓았다.
“우리가 가는 게 아닌, 놈들이 찾아오게 만들면 된다.”
“예?”
“미끼를 쓰는 거다. 제물로서 젊은 사람을 원하니, 미끼를 던지면 알아서 찾아오지 않겠나?”
“하지만 그 미끼를 누구로…… 아!”
페일과 데일의 고개가 동시에 돌아갔다.
에스델은 이야기를 따라가지 못해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녀는 갑작스럽게 쏠린 시선에 순진한 얼굴로 눈을 깜빡이더니, 이내 그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설마 그 미끼라는 게……. 저를 말하는 건 아니죠?”
데일은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