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ark Knight in the Game RAW novel - Chapter (71)
의식
* * *
곱사등이는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일단 묻겠는데, 그곳에 골렘의 핵이 있다는 건 어떻게 안 거죠?”
데일은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너희 마법사들은 창의성이 없거든. 늘 같은 자리에 핵을 숨겨두지.”
“……그건 창의성과는 전혀 관련이 없습니다. 골렘의 핵을 그곳에 배치한 건 그게 가장 효율적이고 우월한…….”
“그게 창의성이 없다는 거다.”
데일은 칼로 자르듯, 곱사등이의 말을 끊었다. 곱사등이의 가면 속 두 눈이 불온한 빛을 품었다.
녀석이 중얼거렸다.
“그래요. 인정할게요. 제 생각보다 뛰어나군요. 무식하게 생긴거랑 달리 요령도 있고 말이죠. 그러니 더욱 탐이나요. 당신을 가져다 바치면, 주인님께서 분명 고맙다고. 대견하다고 말해주겠죠?”
“할 수 있으면 해봐.”
“물론 그리 할 겁니다.”
곱사등이는 그렇게 주문을 사용하고도 마력이 남는지, 곧바로 다음 주문을 준비하려 했다.
두고 볼 데일이 아니다.
데일은 막아서는 다른 악마 숭배자들을 학살하며, 거침없이 전진했다.
곱사등이는 짐승처럼 손과 발을 모두 이용하며 네발로 기었다. 그러며 말했다.
“좋은 날이에요. 안 그런가요? 그믐달에 구름도 자욱하고, 안개도 끼어있어요. 일을 벌이기에는 최고의 조건이죠.”
데일은 쉬지 않고 검을 휘두르며 생각했다.
‘말이 많은 놈이군.’
으레 다른 마법사들이 그렇듯, 자기만 아는 내용을 줄줄 늘어놓는다.
데일은 그런 쓸데없는 데에 신경 쓰는 대신, 눈앞에 달려드는 악마 숭배자를 베는 데에 모든 집중력을 발휘했다.
저 곱사등이 만큼은 아니어도, 이 악마 숭배자들이 사용하는 주문은 성가시다.
무시할 만한 게 못 되었다.
그런 데일의 분투를 아는지 모르는지. 곱사등이는 쉴새 없이 중얼거렸다.
“준비는 거의 끝난 참이었어요. 마지막 한 조각이 부족했는데, 마침 당신이 와주었으니……. 뭐랄까. 이게 운명이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데일은 대답 대신 반토막 난 악마 숭배자의 몸을 힘껏 집어 던졌다.
곱사등이는 민첩하게 옆으로 굴렀다. 그러면서도 입은 쉬지 않았다.
“운명이 불렀으니, 저도 응답해야 겠지요! 취향에는 안 맞지만 도박을 해보겠습니다.”
그렇게 말하고는, 대체 어디에서 꺼냈는지 모를 지팡이를 하나 꺼내들었다.
데일은 그 지팡이마저 무시할 수는 없었다. 저 생김새. 이전에도 본 적이 있었다.
‘짐승을 조종하던 유물 지팡이.’
생김새는 비슷하나, 그 안에서 느껴지는 힘은 더욱 강력하다.
멀리 떨어진 이곳에서도 느껴질 정도다.
악마 숭배자를 막아서던 페일이 외쳤다.
“데일 경!”
가만둬서는 안된다는 의미의 외침이다. 데일도 동의했다. 그는 다른 악마 숭배자를 무시하며, 그대로 곱사등이에게 달렸다.
하지만 곱사등이가 더 빨랐다.
곱사등이는 지팡이를 머리 위로 들더니……. 그대로 바닥을 향해 내리쳤다.
콰작!
지팡이는 너무나 쉽게 부러졌다. 그 파편이 거리에 널브러졌다. 놀라운 건 그 다음이다.
부서진 지팡이 파편이 마치 물에 가라앉는 것처럼 지면 아래로 잠겨 들어간 것이다.
“최근 이 주위에서는 피와 죽음이 충분히 쌓여서 말이죠. 이런 것도 가능하죠.”
곱사등이가 왼발을 들어 땅을 한번 밟았다.
그러자 도로 위로 알 수 없는 문자와 기하학적인 문양이 빼곡히 새겨졌다.
분위기가 변한다. 바람이 멈추고, 안개가 요동친다.
‘이런.’
무언가가 일어나려 한다.
에스델을 미끼로 써서 악마 숭배자의 흔적을 쫓겠다는 계획은, 데일과 곱사등이와의 만남으로 이어졌으며, 이 만남에서 곱사등이는 어떤 운명을 보았다.
놈이 오래도록 준비하고 있던 계획이, 지금 발동하고 있었다.
우웅.
불온한 공기가 성 전체로 퍼져나갔다.
낮게 깔린 안개가 옅은 녹빛을 띄었다. 데일은 손을 휘저어 안개를 물러나게 했다.
‘안개에 마력이 담겨 있어.’
안개는 특별히 산성이나 유독성을 띄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 안심할 수 없다.
안개가 괜히 마력을 품고 있는 건 아닐 터이니.
의문은 머지 않아 풀렸다.
거리의 한쪽에 조형물처럼 서 있던 저택의 문이 벌컥 열린 것이다.
저택에서는 사람이 걸어 나왔다.
아이 셋과 부모. 그리고 조부모로 보이는 가족이었다.
당황한 에스델이 외쳤다.
“무슨……. 위험합니다! 당장 안으로 돌아가세요!”
하지만 일가족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그저 흐릿한 눈으로, 죽은 사람처럼 비척비척 걸었다.
곱사등이가 외쳤다.
“자자. 저를 따라오세요! 위대한 분의 일부가 되실 영광을 안겨 드리겠습니다!”
그러자 일가족은 곱사등이의 뒤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곱사등이는 경쾌한 리듬감으로 손뼉을 치며 거리를 달렸다.
손뼉 치는 소리가 울리자, 집집 마다 문이 열렸고. 안에 숨죽이고 있던 사람들이 멍한 눈으로 걸어 나왔다.
다만. 모두가 홀린 건 아니었다.
“아, 아버님! 갑자기 왜 그래요! 정신 좀 차려봐요!”
중년 여성이 주름이 자글자글한 노인의 허리를 붙잡았다.
하지만 노인은 그런 여인을 매단 채, 맹목적으로 곱사등이를 향해 다가갔다.
곱사등이가 여인을 보며 감탄을 흘렸다.
“오호. 제법 정신력이 강한 사람이군요. 좀 더 젊었다면 제물로서도 훌륭했겠지만……. 아쉽습니다.”
“어?”
곱사등이는 여인의 이마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대로 마법을 일으켜 여인의 목숨을 거두려 했다.
여인은 그런 곱사등이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곱사등이의 손이 여인의 이마에 닿으려던 그때.
검은 안개가 곱사등이를 덮쳤다.
“칫.”
시야를 잃은 곱사등이는 일단 뒤로 크게 물러났다. 그는 어디까지나 마법사지, 전사는 아니었다.
모르는 곳에서 칼이 날아오면 곤란하다.
안개가 다시 걷히자, 당황하던 여인은 더욱 놀랐다. 흑색 갑옷을 입은 기사가 어느새 자기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어, 어. 사, 살려…….”
데일은 여인을 무시하고 곱사등이를 바라봤다. 한층 더 무기질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준비한 게 이건가? 온 성의 주민들을 홀리는 것.”
“물론, 이건 계획의 첫 단추일 뿐입니다. 부디 계속 지켜봐 주시지요.”
그렇게 말한 곱사등이는 익살스럽게 인사한 뒤, 거리를 빠르게 내달렸다.
마법에 홀린 성의 주민들이 그 뒤를 따랐다.
데일 속으로 쯧. 하고 혀를 찼다.
그때. 누군가가 데일의 손을 잡았다.
아까 구해준 중년의 여인이었다.
“아, 아, 아버님을 구해주세요. 남편이 죽고, 제게는 하나 남은 가족이에요. 그러니 제발…….”
데일은 간절한 여인의 모습을 눈에 담았다. 여전히 데일을 두려워하는 기색이 느껴진다.
하지만 그런 데일에게 부탁할 정도로 여인에게 저 사내는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을 터였다.
용기.
데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한 번 해보겠소.”
설마 긍정적인 답변이 돌아올지 여인은 입을 열지 못했다.
데일은 검을 들고 앞을 바라봤다.
가로막는 악마 숭배자의 수도 많이 줄었다. 대부분은 곱사등이를 따라갔기 때문이다.
페일과 에스델도 옆으로 다가왔다.
페일이 물었다.
“온 도시에서 불온한 냄새가 진동합니다. 저대로 저 악마 숭배자를 놓쳐서는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 바로 쫓겠다.”
그렇게 말한 데일은 거침없이 달렸다. 막아서는 악마 숭배자를 분쇄한 뒤, 곱사등이를 추격했다.
추격은 어렵지 않았다.
거리로 나온 주민들이 긴 줄을 만들어 이동하고 있었는데, 그들이 움직이는 방향에 분명 곱사등이가 있을 터였다.
그렇게 달리기를 한참. 일행은 줄지어 선 사람들이 멈춰 있는 곳에 도달했다.
그 끝에는 당연히 곱사등이가 있을 줄 알았지만……. 아니었다.
사람들이 멈춘 곳은 어느 한 구멍이었다.
도로에 난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커다란 구멍. 그 구멍 속의 공간은 기묘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아래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새까맣다.
하지만 줄지어 선 주민들은 어떠한 두려움도 없이, 한 명씩 차례대로 그 구멍에 몸을 집어넣고 있었다.
구멍에 몸을 닿으면, 주민들의 모습은 어둠에 둘러싸여 사라졌다.
주위에 곱사등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잠깐! 다들 멈추십시오! 이 안으로 들어가면 안 됩니다!”
“모두 정신 차리세요!”
페일과 에스델이 양팔을 벌려 구멍 안으로 들어가려는 사람들을 막았다.
하지만 단단히 홀린 사람들은 마치 고향으로 돌아가려는 물고기 떼처럼. 맹목적으로 구멍 안으로 들어가려 버둥거렸다.
소용없다는 걸 깨달은 페일이 입술을 깨물며 구멍을 살폈다.
“언제 이런 구멍을……. 지하실? 아니면 지하수로?”
도시의 지하 구조물을 악마 숭배자가 점거한 것일까. 마치 예전 하시나처럼?
페일이 데일에게 다급히 물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 정도로 요란하게 굴었으니, 탈로스 님과 이단 심문관 분들도 이변을 알아차렸을 겁니다. 머지 않아 이쪽으로 오겠죠. 그분들을 기다리는 게 어떻습니까.”
커다란 구멍.
무엇이 도사리고 있을지 모르는 저 마굴에서는 지금껏 데일이 맡아온 그 무엇보다도 위험한 냄새가 풍겼다.
저런 곳에 이 셋이서 들어가는 건 분명 위험한 모험일 것이다.
침착한 페일과 달리 에스델은 불안하게 말했다.
“그러면 저희가 여기서 기다리는 동안, 주민들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그야…….”
페일은 말을 흐렸다.
확신할 수는 없다. 하지만 시간이 늦어질수록 희생은 커질 것이라는 게 자명했다.
둘은 이윽고 데일에게 시선을 돌렸다.
“데일 경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데일은 구멍을 조용히 내려다보았다. 칠흑처럼 어둡다. 불길한 냄새가 퍼져 나온다.
위험한 적이 저 아래에 기다리고 있다는 걸, 데일은 본능적으로 알아차렸다.
‘일부러 나를 유인하는 건가?’
곱사등이는 데일을 탐냈다. 데일을 죽여 제물로 바치고 싶어했다.
그랬던 주제에, 이 구멍만을 대놓고 보이는 곳에 남기고 사라져버렸다.
마치 이렇게 도발하는 것 같다.
용기가 있으면, 어디 한번 들어와 보라고. 감히 데일을 조롱하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그러나 데일은 차분히 고민했다.
‘의식이 시작되었어.’
아마도 악마 가니아고스를 되살리기 위한 의식. 지금 홀린 듯이 걷는 성의 주민들은 그 의식을 위한 제물일 터.
‘의식은 완성되기 전이 가장 취약하다.’
마법사의 주문과 마찬가지다.
의식은 한번 완성되고 난 후에는 돌이킬 수 없다. 가장 좋은 방법은 의식이 완성되지 못하게 하는 것.
부활한 가니아고스를 상대하는 것보다는 부활하기 전에 막는 것이 가장 좋았다.
이제부터는 시간 싸움이다.
‘함정일수도.’
어쩌면 곱사등이는 함정을 파고 데일을 끌어들이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내게도 지금이 가장 승산이 높아. 그러니.’
데일은 한차례 주위를 둘러보았다. 홀린 듯이 구멍으로 들어가는 주민들을 페일과 에스델이 필사적으로 막고 있었다.
역시, 저대로 두어서는 안 된다.
상념을 마친 데일이 입을 열었다.
“지금 당장 안으로 들어간다. 놈을 막아야겠다.”
“…….”
굳은 얼굴로 데일을 보던 페일과 에스델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저희도 함께하겠습니다.”
“위험할 거다. 죽을 수도 있어.”
“상관없습니다. 저희의 신께서는 이럴 때 도망치라고 가르치시지 않았습니다.”
에스델도 결의를 다지며 말했다.
“저도 발목 잡지 않을게요.”
데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려운 싸움이겠지만, 이번 싸움을 극복한다면 페일과 에스델은 더 높은 경지로 나아갈 것이다.
데일 역시 마찬가지.
이제 결심을 내렸으면, 주저할 이유는 없다. 남는 건 행동하는 것 뿐.
데일은 페일과 에스델의 허리를 팔로 단단히 휘감았다.
에스델이 멍한 얼굴로 물었다.
“……데일 경?”
“바로 가겠다.”
데일은 이내 둘을 들고, 구멍을 향해 뛰었다.
몸이 붕 떠오르는 부유감에 에스델이 새된 비명을 질렀고, 그러거나 말거나 데일은 구멍에 시선을 고정했다.
이윽고, 구멍 속 기묘하게 일그러진 공간에 몸이 닿았고, 셋의 모습은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이변을 깨닫고 이단 심문관과 병사들이 모여든 건, 그로부터 시간이 꽤 지난 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