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ark Knight in the Game RAW novel - Chapter (76)
되돌아오다
* * *
데일은 전투의 흥분을 가라앉혔다.
발아래에는 죽은 가니아고스의 시체가 꿈틀거렸다. 녀석의 몸이 천천히 녹아내리고 있었다.
죽음에서 부활한 가니아고스의 신체가 더는 버티지 못하고 붕괴하는 것이다.
데일은 그런 가니아고스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다, 투구를 벗었다.
색이 바랜 머리카락이 흘러내렸다.
급하게 다가온 에스델이 물었다.
“괜찮으십니…… 지금 뭐하시나요?”
데일은 가니아고스의 몸에 머리를 가까이 하며 말했다.
“가니아고스의 피는 맹독이다. 피부에 닿는 것만으로도 끔찍한 고통을 준다.”
“……그런데 왜?”
“동시에 가니아고스의 피는 마력이 듬뿍 담긴 영약이나 다름없다.”
그렇다. 가니아고스의 피는 마법사들이라면 환장할 보물이나 다름없다.
이런 걸 그냥 흘려보낼 수는 없다.
에스델이 미간을 좁혔다.
“잠깐. 맹독이라면서요.”
“나는 괜찮다.”
“괜찮다니 그게 무슨…….”
“나는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
“아.”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데일에게 가이아고스의 피는 부담 없는 영약에 불과했다.
비록 속이 조금 녹아내리겠지만, 데일의 신체라면 금방 나을 것이다.
‘직접 마시는 게 낫겠지.’
건틀릿을 박아 넣어 피를 흡수하는 수도 있었다. 하지만 데일은 혹시나 몰라 입가를 대 가이아고스의 피를 마셨다.
꿀꺽.
가니아고스의 피가 목구멍을 타고 넘어갔다. 끔찍한 냄새가 퍼져나 왔다.
데일은 지금 이 순간만큼은 자신이 미각을 잃은 데에 감사했다.
악마의 피는 냄새만큼이나 끔찍한 맛을 지녔을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생으로 피를 마시는 데일을 보며 에스델은 헛구역질했다.
옆에 다가온 탈로스도 살벌한 눈으로 말했다.
“악마의 피를 마시는 기사라니. 대륙에 있는 모든 이단 심문관에게 쫓겨도 할 말 없다는 걸 알고 있나?”
입가를 새빨갛게 물들인 데일이 고개를 들며 물었다.
“막을 건가?”
탈로스는 그런 데일을 쳐다보다, 죽은 가니아고스의 시체를 내려다보았다.
꽉쥔 손에는 땀이 흥건하게 베어나왔다.
탈로스는 알았다.
‘이 자가 아니었다면 이길 수 없었다.’
탈로스는 데일이 어떻게 싸우는지를 보았다. 자기 몸을 신경 쓰지 않고, 끝끝내 가니아고스의 아가리를 찢어버리는 광경을.
그 누구라도 그런 모습을 본다면…… 압도당하고 말 것이다.
숱한 사선을 넘나든 이단 심문관도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탈로스는 싫어도 인정 해야했다.
데일이 없었다면 더 큰 재앙이 벌어졌을 것이라는 걸.
탈로스는 눈을 감았다.
“악마의 피와 살점은 대지를 오염시킨다는 기록이 있다. 이대로 놔두면 이 지하 수로에는 또 다른 괴물이 생겨나겠지. 그걸 막기 위한 조치라고 생각하겠다.”
데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탈로스가 나름의 융통성을 발휘해줬다.
사실, 막았어도 상관없다.
데일은 탈로스를 때려눕히는 한이 있더라도 가니아고스의 피를 취했을 거다.
사투 끝에 가니아고스를 처치한 건 데일이었고, 승자는 패자의 모든 걸 취할 권리가 있다.
피를 될 수 있는 한 빨아들인 데일은 몸 안에 느껴지는 짙은 마력을 느꼈다.
다행히 가니아고스의 피는 예상했던 결과를 주었다.
기존의 마력보다 최소 두 배는 많은 마력이 몸에 맴돌았다.
물론. 당장 데일이 마력을 쓸 수 있는 기술은 검은 안개뿐이다.
하지만 데일은 진한 만족감을 느꼈다.
‘이번에 반드시 등급이 오를 거다.’
본래 힘에 절반조차 미치지 않았다 해도, 악마는 악마다. 그 생기를 취했으니 등급이 오를 건 정해진 것과 다름없다.
‘4등급에서는 제법 괜찮은 기술을 배울 수 있지.’
4등급은 5등급을 달성해 특성화를 들어는 가기 직전 단계로, 흑기사의 공용 기술을 배울 수 있다.
흑기사의 공용 기술은 하나 같이 준수한 성능을 지녔다. 하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다.
성능이 좋은 만큼, 기술을 사용하는 데에 드는 마력의 양도 많았다.
자칫 잘못하면 기껏 기술을 배워놓고 활용하지도 못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번에 가니아고스의 피를 마셔 마력이 늘었으니, 그 걱정은 한시름 놓았다.
피 빠는 걸 마친 데일은 에스델에게 부탁했다.
“내 팔 좀 가져와 줬으면 좋겠군.”
“예? 아, 예.”
“기왕이면 다리도.”
“……예.”
에스델이 분주하게 주위를 뒤져 찌그러진 팔과 잘려 나간 다리 따위를 가져다주었다.
데일이 덤덤히 감사를 표했다.
“고맙다.”
“이 정도로는 고맙기는요. 오히려 제가 더 감사합니다.”
“그래. 이제 가봐도 된다.”
에스델이 고개를 저었다.
“아뇨.”
“?”
“몸이 낫는 걸 보고 가겠습니다.”
“나는 괜찮다.”
“보고 가겠습니다.”
데일은 의아해했다. 에스델이 왜 고집을 부리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어깨를 으쓱인 데일은 하나 남은 팔을 가니아고스의 시체에 찔러넣었다.
강한 생기와 잔혼이 몸에 홍수처럼 흘러들어왔다. 제어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한 힘이었다
생기를 흡수하며 찌그러졌던 갑옷이 말끔해지고, 잘린 팔도 달라붙었다.
하지만 생기를 중간 정도 흡수했을 때, 데일은 멈출 수밖에 없었다.
데일은 본능적으로 가니아고스에게서 건틀릿을 빼고 물끄러미 자기 손바닥을 펼쳐 보였다.
에스델이 물었다.
“왜 그러시나요?”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본능이 외쳤다. 여기서 더 흡수해서는 안 된다는 걸.
어떤 본능인지는 모르겠다. 데일의 내면에 있는 언데드로서의 본능인지 아니면 인간으로서의 본능인지.
어쨌든 데일은 멈췄다. 데일은 욕심을 절제할 줄 아는 사내였다.
‘기분 탓은…… 아닌 것 같은데.’
데일의 몸이 멀쩡해지자, 에스델은 데일의 갑옷 이곳저곳을 유심히 살폈다.
혹시나 흠집이라도 있나, 눈을 날카롭게 뜨고 집중했다.
너무 진지해서 선뜻 건드리기도 어려웠다.
그러고는 멀쩡한 걸 확인하고는 안심한 듯.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음! 이제 다 나으셨네요. 그럼 전 이만 주민분들을 도와드리러 갈게요.”
“그러니까 괜찮다니까.”
에스델은 이제 막 깨어나기 시작하는 주민들을 향해 종종걸음으로 다가갔다.
저럴 거면 굳이 왜 낫는 걸 확인하고 가는 건지. 데일의 몸은 사람의 그것처럼 나약하지도 않은데 말이다.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데일은 남은 가니아고스의 시체를 살폈다.
그중에서 눈에 들어오는 게 있었다. 가니아고스의 송곳니에 맺힌 짙푸른 맹독.
이 맹독은 가니아고스의 피와 같이 닿는 상대에게 끔찍한 고통을 주는데, 어디서도 쉽게 구하기 힘든 귀한 물건이다.
저런 귀한 걸 그냥 버릴 수는 없었다.
‘병이 필요해.’
다행히 페일이 성수가 든 유리병을 가지고 있었다.
데일은 유리병 안에 든 성수를 버린 뒤, 그 안에 가니아고스의 맹독을 한 방울씩 담았다.
데일이 작업을 모두 마쳤을 때쯤.
에스델과 페일은 사람들의 혼란을 수습하는 데 성공했다.
공동의 모두가 데일을 보고 있었다.
호기심. 경계. 두려움. 그리고 경의.
이들 역시 저 괴물을 누가 쓰러트렸는지,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다.
데일은 그런 시선들을 조금도 신경쓰지 않았다. 페일에게 물었다.
“준비는 끝났나?”
“예!”
“그럼 돌아가자.”
“예. 이제 지하수로는 지긋지긋하니까요.”
데일을 선두로 일행이 걸음을 옮겼다. 이제 지상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 * *
이 초유의 사태에 카엘름 성은 들썩였다.
악마 숭배자가 주민들을 산제물로 써 악마를 부활시키려 했다.
지금껏 이런 사건은 없었다.
주민들은 가족과 이웃의 죽음에 슬퍼했다. 아무리 데일이 활약했어도, 모두를 구해낼 수는 없었다.
하지만 주민들은 이렇게 살아 숨쉴 수 있는 것에 안도했다.
무엇보다 지하에 이야기로만 들었던 두려운 존재가 강림했다 하니, 등골이 오싹했다.
주민들은 연신 쑥덕거렸다.
“가니아가사? 가리오스? 아무튼 그 악마는 이제 완전히 없어진 거 맞지?”
“예. 그렇다네요. 정말 큰일 날 뻔했어요.”
좀 더 세속적인 이유로 들떠하는 주민도 있었다.
“잠깐. 그럼 악마를 죽였으면 여기도 성스러운 장소로 지정되고 그러는 거 아니야?”
“그러면 대단한 영광인데 말이죠.”
“순례자들도 많이 오고 교단에서 지원도 많이 온다면……!”
하지만 사리에 밝은 이들은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 없다.”
“예?”
“이번에 악마를 토벌한 게 누군지 알면서 그래?”
“아…….”
데일은 흑기사. 밤의 신도였다.
밤의 신도가 악마를 사냥한 장소가 빛의 교도들의 순례지가 될 것 같지는 않았다.
어쨌거나 많은 소문이 돌았고, 그 소문에 빠지지 않고 나오는 건 바로 데일의 이름이었다.
공주를 위해 결투에 나섰던 것으로 유명했던 데일은, 이제 악마를 토벌한 기사로 더 이름을 날렸다.
다만, 사람들은 데일의 이름 앞에 영웅이라는 칭호는 선뜻 붙이기를 꺼려했다.
데일이 다른 종교의 신자라는 이유 때문도 있겠지만…….
“이전 세대의 영웅들의 활약은 너무나 뛰어났네! 숱한 악마를 죽여나가던 그들의 업적은 눈이 부실 정도였지!”
카엘름 백작이 포도주가 든 잔을 들고 거창하게 연설했다. 얼굴은 마치 앓던 이를 빼내기라도 한 듯, 몹시도 후련한 표정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다른 이들에게 선뜻 영웅이라는 칭호를 붙이지 못했네. 하지만 이제 시대가 변했네!! 영웅들이 종적을 감춘 지금, 우리는 새로운 영웅이 필요하네! 그리고 나는 확신할 수 있네. 그 새로운 영웅에, 데일 경만 한 인물은 없다는 걸! 그렇지 않나?”
백작의 가신과 혈육이 ‘옳소! 옳은 말입니다!’ 따위의 말을 내뱉으며 호응했다.
데일은 시큰둥했다.
가니아고스를 처치했다고 백작은 잔뜩 기뻐하며 성대한 연회를 열었다. 대낮부터 방탕하게 마시다니.
‘지금은 뒷수습을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사람도 많이 죽었고, 지하 수로도 엉망이 되었을 거고, 처리해야 할 일이 한둘이 아닐 것이다.
한데, 방에만 틀어박혀 벌벌 떨던 백작은 마치 자기가 악마를 사냥하기라도 한 것마냥 잔뜩 으스댔다.
어깨에 힘이 바짝 들어간 게, 카엘름 성에서 악마가 죽었다는 게 어지간히도 자랑스러운 눈치였다.
백작은 데일에게 다가와 은근한 어조로 말했다.
“경. 우리 성에는 자네 같은 영웅이 필요하네. 어떤가. 원한다면 내가 가진 영토를 하사해주겠네.”
영토를 준다니. 뭇 기사들이 선망하는 일이었지만, 데일은 땅 같은 것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제안은 고맙지만 거절하겠소.”
“그러지 말고. 다시 생각해보게. 으스대는 이레네 놈들보다는 여기가 낫지 않나? 안개가 조금 자주 껴서 그렇지, 카엘름이 살기도 좋네.”
백작은 데일에게 매달렸다.
옆에서 지켜보던 다른 이들은 그 모습을 보고, 첫사랑한테 매달리는 사춘기 같다고 평했다.
한번 죽음의 공포를 겪으니, 백작에게는 든든한 무력이 절실했다.
하지만 데일은 단호했다. 조금의 틈도 주지 않고 철벽을 쳤다.
결국. 시무룩해진 백작이 말했다.
“알겠네. 자네의 뜻이 정 그러면 어쩔 수 없지. 그러면 마지막으로 부탁 한 가지만 들어주겠나?”
“말해보시오.”
“그…… 악마를 토벌하는 데에 내 도움이 있었다고 말해주면 안 되나? 많이 말할 필요도 없네. 그냥 내 이름만 언급하면 된다네.”
“알겠소.”
데일이 흔쾌히 답하자 백작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하지만 이어지는 데일의 말에 인상을 확 찌푸려야 했다.
“맨입은 아닐 거라 믿소.”
“으레 기사도란 재물을 탐하지 아니하며…….”
“나는 그런 거 모르오.”
“…….”
세상에 공짜는 없다.
데일은 백작과의 긴 협상 끝에 악마를 처치하는 데에 백작의 도움이 되었다는 얘기를 하는 대신, 그에 대한 금전적인 보상을 약속받았다.
모든 귀찮은 행사들과 칭송과 호들갑을 끝내고.
데일에게 배정된 호화로운 방으로 돌아왔을 때는 정신적으로 몹시도 피로한 상태가 되었다.
‘차라리 악마랑 싸우는 게 나을 정도군.’
나중에는 교단의 조사관이 와서 사건에 대해 조사한다고 하니, 여러모로 귀찮기만 했다.
지치지 않는 데일에게도 휴식은 필요하다. 데일은 침대에 걸터앉아, 눈을 감았다.
그리고 과거의 기억을. 특히 즐거운 기억들을 곱씹었다.
그의 인생에서 즐거웠던 경험은 주로 조부나 보육원의 아이들과 관련되어 있었다.
데일은 그 당시의 기억을 곰곰이 되새겼다.
그러다가 일순. 그런 기억들이 너무나 선명해져 현실과 구분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데일은 이걸 꿈이라 불렀다.
* * *
무더운 여름이었다.
한여름의 땡볕 아래에서도 보육원의 아이들은 활기차게 돌아다녔다.
조부는 그런 아이들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사람은 서로 도와야 한다. 서로 돕고 살아야 하는 거야. 돕는 데 이유는 필요 없어. 그냥 사람이면 남을 돕는 게 당연한 거야.”
데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상적인 얘기였지만, 데일은 단 한 번도 조부의 철학을 나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게. 조부는 자기가 말한 대로 행동하는 사람이었다.
자신이 하지 못하는 일은 결코 남에게 강요하는 법이 없었다.
조부가 말했다.
“도움에 대한 보답을 받지도 못할 수도 있다. 때로는 감사도 못 받을 수도 있지. 하지만 그런다고 실망하면 안 된다. 알겠니? 세상사 사필귀정이다. 결국, 다 뿌린 대로 다 되돌아오는 법이다. 네가 한 행동은 모두 되돌아오게 되어 있어!”
이날 조부는 유독 열정적으로 열변을 토했다.
무더운 더위가 피를 뜨겁게 달군 걸까?
어쨌거나 이런 별 볼 일 없는 기억의 한 자락도 데일에게는 너무나 소중한 것이었다.
그렇게 한 것 여유를 느끼던 데일은, 돌연. 뒤쪽에서 인기척을 느꼈다.
그것도 사람 하나둘의 인기척이 아니었다.
“…….”
데일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인상을 찌푸렸다.
‘뭐야.’
있어서는 안 될 존재가 그곳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