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ark Knight in the Game RAW novel - Chapter (95)
언데드
* * *
갑작스러운 소란에 데일 일행과 마을 주민들이 모두 밖으로 나왔다.
촌장이 귀족의 시종으로 보이는 남자에게 연신 고개를 꾸벅이고 있었다.
“묵을 곳이 없다고?”
“정말 죄송합니다! 이미 손님이 와 계신 터라 빈집이 없습니다…….”
시종은 곤란한 기색으로 슬쩍 뒤를 살폈다.
그러자 마차 문이 열리고, 웬 귀족이 한 명 내렸다.
평생 운동과는 담쌓고 지낸 듯.
살이 토실토실하게 오르고, 얼굴에 기름기가 반들거리는 귀족이었다.
실제로 귀족의 손에는 노릇하게 구워진 양다리를 손에 들고 있었다.
마차에서 고기 향이 주위로 훅 풍겨왔다.
‘마차 안에서 고기를 구우면서 온 건가. 여러 의미로 대단하군.’
귀족은 기름진 몸과는 어울리지 않게, 차가운 얼굴로 촌장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말했다.
“지금 우리가 잘 곳이 없다고 했나?”
귀족 특유의 고압적인 눈빛에 촌장이 움츠러들었다. 더더욱 깊이 고개를 숙였다.
“면목이 없습니다. 하지만 저희 마을은…….”
짝! 짝!
귀족은 늙은 촌장의 볼을 연달아 후려갈겼다.
뚱뚱한 체구에 어울리지 않는 재빠른 손놀림이었는데, 누군가의 따귀를 때리는 게 매우 익숙한 듯 보였다.
느닷없는 폭력에 촌장이 바닥에 엎어졌다. 입술이 터져 피가 흘러내렸다.
지켜보던 주민들도 크게 당황했다.
“아이고…….”
귀족이 늙은 촌장의 멱살을 쥐고 싸늘하게 말했다.
“빈집이 없으면, 너희가 노숙을 해서라도 집을 비우면 될 일 아닌가?”
“죄, 죄송합니다.”
“미안할 짓을 했으면 대가를 벌을 받아야지. 어디, 나를 귀찮게 했으니까…… 10대 정도로 봐줄까?”
귀족은 그리 말하고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그대로 촌장의 따귀를 연거푸 후려치려 했다.
그때.
누군가가 귀족의 팔을 붙잡았다.
“그만하지.”
“!”
감히 누가 자기 손목을 붙잡는단 말인가.
분노한 귀족은 고개를 홱 돌렸다. 그리고 눈을 크게 떴다.
새까만 갑옷의 기사가 어느새 자신의 바로 뒤에 서 있었다.
흑기사가 풍겨내는 싸늘한 한기와 불길한 기운은, 오금이 저릴 정도로 오싹했다.
마차에서 내리던 병사들도 이 갑작스러운 당황에 검을 뽑으려 했다.
“이, 이놈!”
데일은 차갑게 말했다.
“뽑을 건가?”
그리고 귀족을 향해 시선을 내렸다. 토실토실한 팔을 붙잡은 손에 더욱 힘을 주었다.
“아, 아악!”
검을 뽑으려던 병사들이 엉거주춤한 자세로 멈췄다. 그대로 무기를 뽑았다가는, 그들의 주인에게 좋지 않은 일이 벌어질 것 같았다.
그때까지도 팔이 붙잡혀 있던 귀족이 말했다.
“아, 알겠으니 이거 놓아라.”
“그보다 먼저 사과를 해야지.”
“뭐, 뭐?”
데일은 턱짓으로 촌장을 가리켰다. 귀족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당황한 촌장이 손을 내저었었다.
“저는 괜찮습니다. 이 정도로는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보, 본인이 괜찮다잖아. 네가 뭔데…… 아악!”
데일은 손에 힘을 더 주었다. 그리고 말했다.
“내가 안 괜찮다.”
귀족은 고통스러운 얼굴로 참아보려 했다. 척 봐도 오만해 보이는 귀족이 아랫사람에게 사과한다는 건,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다.
데일은 만약 귀족이 손목을 부러질 때까지 사과를 하지 않는다면, 그 나름대로 인정할 생각이었다.
그 정도면 단순한 우월의식이 아닌, 신념의 영역이었으니까.
데일은 신념 있는 사람을 존중하는 편이었다.
아쉽게도 귀족에게는 그런 강인한 정신이 없었다.
“아, 알았다. 미안해. 미안하다고. 그러니 어서 이거 놔라!”
그제야 데일은 귀족의 손을 놓아주었다.
빨갛게 부은 손목을 만지작거린 귀족은 급하게 뒤로 물러나 병사들 사이에 섞였다.
시종이 급하게 손목을 봐주려 했지만, 귀족은 도리어 시종의 뺨을 때린 뒤 성을 냈다.
“내가 잡혀 있을 때 뭐했어? 나를 지켰어야지.”
“죄, 죄송합니다…….”
“쯧. 쓸모없는 것들.”
그 모습을 보던 하켄이 중얼거렸다.
“이야. 요즘 보기 드문 귀족다운 귀족인데요?”
데일도 동의했다.
꽤나 고위 귀족의 자재인 걸까?
데일은 에른스트에게 물었다.
“아는 사람인가?”
에른스트는 마음에 안 든다는 듯. 이를 으득 악물고는 말했다.
“칼리 자작가의 차남, 이고르다.”
“칼리 자작가?”
“모르나? 대대로 제국에서 행정 관리를 지내는 가문이다.”
에른스트는 당연한 상식인 것처럼 말했지만, 그런 걸 데일이 알 리가 없다.
“행정관 가문이 친위대 단장을 하겠다고 이 먼 곳까지 왔다고?”
“능력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놈이야. 돼지처럼 처먹고 노는 것밖에 모르는 쓰레기지. 이제 상위 구역 밖으로 쫓겨날 일밖에 없으니,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이번 시험에 참가한 거 아니겠어?”
에른스트가 신랄하게 말하는 중.
자기 부하들에게 화풀이를 마친 이고르가 이쪽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데일 옆에 서 있는 에른스트를 발견했다.
“이거 누구야. 누가 건방지게 내 숙소를 차지했나 했더니, 머저리. 너였냐?”
이죽거리는 이고르에게 에른스트가 맞받아쳤다.
“돼지. 긴말하지 않겠어.”
돼지라는 말에 이고르가 얼굴을 와락 구겼다.
아무래도 이 둘. 사이가 심히 좋지 않은 듯하다.
에른스트가 이어 말했다.
“우리는 이미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하룻밤 묵고 가기로 합의를 보았어. 그리고 이 작은 마을에는 너희들을 더 받아줄 여력이 없어. 그러니 얌전히 물러나.”
“글쎄. 난 조금 생각이 다른데?”
이고르가 으르렁거리듯이 말했다.
“당장 꺼져. 험한 꼴 당하고 싶지 않으면.”
둘이 사이가 좋았다면.
어쩌면 문제를 좋게 해결할 방법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촌장 집은 꽤 넓은 편이니, 함께 하루를 보내는 것도 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둘의 사이는 너무나 나빴다.
설상가상.
무언가가 하켄의 이마 위로 툭 떨어졌다.
“앗 차가…… 비?”
가을비.
이런 날씨에 비를 맞으며 밖에서 야영한다는 건, 과장이 아니라 목숨과도 직결되는 문제다.
즉. 여기서는 더더욱 물러날 수가 없다는 거다.
주위 분위기는 차가운 비만큼이나 싸늘하게 가라앉기 시작했다.
에른스트와 이고르는 표정을 굳혔다.
양측의 사병들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주위에 선 주민들은 불안하게 눈동자만 굴렸다. 싸움이 벌어진다면, 애꿎은 그들에게 불똥이 튈 확률이 높았다.
이대로라면 언제까지고 서로를 노려볼 것 같은 분위기였다. 데일이 에스델에게 조그맣게 말했다.
“네가 중재해라.”
“……예? 저 말씀인가요?”
“어찌어찌 잘 합의해서 같이 집을 쓴다면, 비를 피하는 건 가능하다. 조금 좁겠지만.”
양측 다 싸움을 원하지는 않을 거다.
에른스트는 단장 자리에 관심이 없고, 이고르 역시 이쪽 전력이 만만치 않음을 잘 안다.
싸워봤자 서로 손해다.
문제는 서로의 자존심이다.
이렇게 대립 해 놓고, 손을 먼저 내미는 건 자존심이 몹시 상하는 일이다.
하지만 에스델이 중재한다면 다르다.
교단의 사제라면 귀족들도 못 이기는 척,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다.
“해, 해볼게요.”
떨리는 목소리로 말한 에스델이 앞에 나섰다.
그리고 에른스트에게 말했다.
“에른스트 님.”
“에스델 님…….”
정적 속에서 에스델의 맑은 목소리가 선명히 울렸다.
“서로 양보하면 어떻겠습니까. 조금 좁더라도, 서로 어깨를 맞대고 부대끼면 비는 피할 수 있을 겁니다. 신께서도 언제나 이웃에 대한 배려를 잊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지금이 그 조언을 실천해야 할 때가 아닐까요?”
에른스트는 끙. 하고 신음을 삼켰고, 사병들은 서로 눈치만 살폈다.
말이야 맞는 말이긴 하지만…….
이고르가 툭 내뱉었다.
“밤중에 습격하지 않을 거라는 보장이 있나?”
“서로 믿고 배려한다면…….”
“그 잘난 배려가 칼을 막아주지는 않을 것 같은데. 그보다 제대로 된 사제가 맞긴 한 건가? 사제라면 어떻게 저런 이교도랑 함께 다니는 거지? 사제복을 훔쳐 입고 사칭하는 거 아니야?”
에스델이 사제라는 건 그 분위기만으로도 확실하지만, 이고르는 일부러 그렇게 이죽거렸다.
이교도와 다닌다는 점 또한 에스델에게는 불리한 점이기도 했다.
신실한 사제답지 못한 일이었으니.
‘저 돼지 말이 틀린 건 아니야.’
서로를 믿지 못하는 이상, 같은 마을에서 묵는 건 어려운 일이다.
밤중에 칼을 빼 들지 누가 알겠는가. 결국, 타협의 여지는 처음부터 없었던 셈이다.
에른스트가 짜증을 내며 말했다.
“그래서. 기어코 칼을 뽑자는 거야?”
“필요하다면.”
‘결국 이렇게 되는 건가.’
자존심과 체면은 사람을 어리석게 만든다.
스릉!
양측은 서로 누가 먼저랄 세도 없이 검을 뽑아 들었다.
숫자는 상대가 이쪽에 비해 두 배 정도 많다.
저 숫자야말로 이고르의 자신감의 이유다.
하지만 아군 역시 겁먹지 않았다.
반드시 이길 거라고 굳게 믿었다.
아군의 자신감의 이유는 데일이다.
‘……데일 경이라면.’
‘더 강한 기사들도 이겼어. 저런 돼지한테 질 리는 없지.’
병사들이 보기에, 데일을 상대하려면 못해도 황실 기사단의 기사는 데려와야 했다.
하지만 시험에 참여한 건 황실 기사단에 들지 못한 애매한 실력의 귀족이나 기사들뿐.
질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렇게 서로가 긴장 속에 대치하고.
주민들은 화를 피하기 위해 뒤로 물러나던 중.
가장 바깥쪽에 서 있던 주민이 코를 벌름거렸다.
“응? 이게 무슨 냄새지?”
“뭐가.”
“뭔가 썩은 내 안 나?”
“좀 씻으라니까…….”
“그런 게 아니라 뭔가 이상한데?”
그와 동시에 데일의 옆에 있던 하티도 낮게 울부짖었다.
데일도 이변을 알아차렸다.
‘무언가 오고 있다.’
확실한 건 사람은 아니다.
여전히 서로를 향해 대치하는 사병들을 무시하고, 데일은 등을 돌려 걸음을 옮겼다.
양측의 사병들은 그런 갑작스러운 움직임에 당황했다.
시종이 물었다.
“데, 데일 경. 갑자기 어디 가시는 겁니까.”
“일단 싸우는 건 나중으로 미뤄야 될 것 같다.”
“예?”
데일은 조잡한 목책을 나서, 저 멀리 있는 숲으로 시선을 향했다.
함께 따라온 하티 역시 잔뜩 흥분해 발톱으로 바닥을 긁어댔다.
어둠에 잠긴 숲. 곧게 선 나무줄기 사이로 푸른 빛을 내뿜는 안광 수십 쌍이 이쪽을 향해 가까워져 오고 있었다.
언데드.
대부분은 좀비나 스켈레톤 따위의 하급 언데드다.
하지만 저 중에 단 하나. 유독 거대하고. 압도적인 기세를 흩뿌리는 녀석이 있었다.
녀석이 이쪽으로 느릿하게 걸을 때마다 쿵, 쿵, 땅이 울렸다.
풀썩!
거대한 덩치의 괴물이 움직이자, 나무 한 그루가 옆으로 기우뚱 쓰러졌다.
넘어진 나무 너머로 녀석의 모습이 드러났다.
거인과 비슷한 신체 구조지만 유독 뚱뚱하고 짧은 다리. 옆으로 퍼진 몸. 단단한 근육.
무시무시한 모습의 외눈박이.
‘오우거군.’
오우거. 거인과 친척 관계라 볼 수 있는 몬스터.
하지만 눈앞의 상대는 평범한 오우거가 아니었다.
“쉬익. 쉬이익”
오우거는 무어라 외쳐댔지만, 반쯤 잘려 덜렁거리는 목에서는 바람 빠지는 소리만이 들렸다.
저건 살아있는 오우거나 아니다.
언데드 오우거.
데일을 따라 뒤늦게 튀어나온 사병과 주민들은 사색이 되었다.
그들은 살면서 저런 끔찍한 괴물을 마주한 적은 없었다.
“여, 여기 서북부 끝자락 아니었어? 왜 저런 괴물이 여기에 있는 거야.”
“뭔가 냄새를 맡고 온 거 아니야?”
“냄새?”
사람들의 시선은 일제히 이고르에게 향했다. 기름으로 번들거리는 얼굴. 마차에서 풍겨오던 진한 고기 냄새.
그런 류의 냄새는 바람을 타고 멀리 퍼져나가, 예상치 못한 불청객을 불러들이곤 한다.
이고르가 인상을 찌푸렸다.
“뭘 쳐다봐.”
“…….”
데일은 마검을 뽑으며 사병들에게 말했다.
“다들 싸움은 미루고 무기나 들어라.”
다들 당황한 얼굴로 데일의 지시를 따랐다.
데일이 이어 말했다.
“다행히 오늘 밤 잠자리 걱정은 없겠군.”
싸우다 보면 해가 뜰 것이다.
그게 아니라도 사람이 꽤 죽을 테니, 묵을 집이 부족할 일은 없다.
데일 나름대로 긍정적인 부분을 말해본 것이지만, 대꾸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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