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espised Granddaughter of the Powerful Martial Arts Family RAW novel - Chapter (25)
25화
백리의란과 백리의묵이 서로 눈을 마주쳤다. 갑자기 남궁완의 기분이 무척 가라앉은 것이 의아했다.
딱딱하게 굳은 남궁완의 모습에 백리의란이 웃으며나섰다.
“남궁 소가주께도 아들이 하나 있다 들었는데, 이름이 남궁류청맞지요? 대단한 신동이라고 벌써 소문이 자자하던데 애들과 만났다면 또래 친구도 되고 참 좋았을 텐데요!”
“글쎄요. 류청은 자기 수준에 맞는 아이들만 상대해서요.”
네 아들은 수준이 안 맞는다는 말에 백리의란의 얼굴이 웃는 채로 그대로 굳었다.
자리 모두가 놀라 남궁완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남궁완은 태연히 찻잔을 집어 들 뿐이었다.
눈가를 파르르 떨며 백리의란이 애써 말을 이었다.
“아······ 하하, 류청이 정말 대단한가 보네요. 뿌듯하시겠어요.”
“뭐 그렇죠.”
“제 아들들, 표랑 악이도 어찌나 무공 수련을 열심히 하는지 곧 무백신공 3성을 달성하겠다니까요.”
그러나 안 하느니만 못한 말이었다.
보란 듯이 쌍둥이를 훑어본 남궁완이 실소를 터트렸다.
명백한 무시에 백리의란의 얼굴이 붉어졌다. 누각 한쪽에 서 있던 장석량도 창피함에 눈을 감을 정도였다.
백리의묵이 사태 수습을 위해 재빨리 끼어들었다.
“약관의 나이에 절정을 넘어 이름을 날리신 남궁완 대협께는 부족해 보일 수밖에요. 하하. 그래도 검에는 진심인 아이들입니다. 만약 대협이 아이들에게 조언을 해 주신다면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백리의묵이 백리명을 향해 눈짓했다.
벌떡 일어선 백리명이 남궁완을 향해 포권지례하며 말했다.
“선배님께서 가르침을 내려 주신다면 마음에 새기겠습니다.”
“······.”
이를 한참을 바라보던 남궁완이 갑자기 백리의강을 돌아보았다.
“자네, 연이 곁을 지켜야지 않나?”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인가?”
“젓가락 움직이는 걸 본 적 없는데, 그리 신경 쓰이면 먼저 돌아가게.”
백리의강의 앞 접시는 음식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이 깨끗했다.
백리의강이 반론하려 할 때 백리의묵이 나섰다.
“내가 의강의 마음을 신경 쓰지 못했군. 이 자리는 내가 각별히 신경 쓸 테니 걱정하지 말고 연이 곁에 있거라.”
몇 번의 대화가 오가고, 백리의강은 거의 등을 떠밀리다시피 자리를 떠났다. 그가 자리를 완전히 떠나는 걸 지켜본 남궁완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는 지금껏 이런 상황을 꽤 많이 겪었습니다.”
남궁완이 백리명과 쌍둥이들을 흘끗 보았다.
“그리고 모두 그들이 원하는 건 같았습니다. 남궁 세가의 배경. 그걸 원하십니까?”
“······.”
허를 찔린 백리의묵이 아무 답도 하질 못했다.
이를 지켜보던 장석량이 경고하듯 말했다.
“남궁 소가주.”
이를 보고 피식 웃은 남궁완이 백리명 곁에 꼭 붙어 있는 여아를 돌아보았다.
“백리리라 했지?”
“네? 네.”
“하나만 묻자.”
“네에······.”
백리리가 주변의 눈치를 힐끔 보며 답했다.
백리리는 정확히 무슨 상황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남궁완이 귀한 사람이고 절대 나쁘게 보여선 안 된다는 건 귀에 딱지가 내려앉게 들어 알았다.
“꽃은 잘 받았느냐?”
“······네?”
백리명의 얼굴에서 혈색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가 황급히 끼어들었다.
“잘 받았습니다. 그렇지, 모란이 참 예뻤지, 리리?”
“어? ······아, 네에.”
백리명의 다그침에 백리리가 얼떨떨하게 답했다.
그리고 백리명은 갑자기 느껴지는 섬찟한 기운에 몸을 떨며 남궁완을 보았다.
그 서늘한 눈빛을 마주하자 다리가 후들후들하며 등뒤로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감히 또 끼어든다는 생각은 할 수 없었다.
남궁완이 백리리에게 시선을 두며 말했다.
“내 하나만 더 묻지. 네가 받은 모란이 무슨 색이더냐?”
백리리가 멍하니 아버지와 오라버니, 남궁완을 번갈아 보다 말했다.
“모란은 흰색이죠.”
남궁완이 헛웃음을 터트리며 몸을 일으켰다.
백리명은 차마 남궁완을 바라볼 수 없었다. 남궁완이 쌍둥이를 돌아보며 천천히 물었다.
“분명 아픈 여동생에게 가져다 준다지 않았나?”
“······.”
자신에게 와 닿는 시선에 쌍둥이들은 그제야 상황을 파악했다.
낯빛이 창백하게 질린 쌍둥이들이 어찌할 바를 모르고 시선을 교환했다.
이상함을 느낀 백리의묵이 나섰다.
“대체 갑자기 이게 무슨일이오?
일단 진정하시지요.”
“진정? 내 참으려고 해도 기가 막혀서는. 백리명이랬지? 내 조금은 네 이야기를 들었지. 백리세가 장손으로 사리에 밝고 괜찮은 걸물이라더니. 하하, 어처구니가 없어서.”
남궁완이 장석량을 향해 자세만큼은 공손하게 인사했다.
“무례를 저질러 죄송합니다, 장부관. 허나, 집안 단속부터 하셔야 쓰겠습니다. 백리 세가가 이런 모습을 보이면 백리 세가주의 이름에 누가 되지 않겠습니까?
“······.”
성큼성큼 누각을 걸어 나가던 남궁완이 잠시 쌍둥이 앞에 멈춰섰다.
“꽃 한 송이 제대로 받지도 못하는 팔 가지고 검이라니. 검을 들 수나 있나?”
부들부들 떠는 쌍둥이들을 차갑게 흘겨보며 남궁완이 누각을 걸어 나갔다
“앞으로 내 눈앞에 띄지 마라. 못난 놈들 같으니.”
이를 망연히 바라보던 백리의란이 탁자를 내리치며 일어났다.
접시가 와장창 깨지며 식어버린 음식이 아름다운 누각 바닥을 굴러다녔다
“저, 저, 저 미친 거 아니에요?
뭐 저런 사람이 다 있어!”
이를 아득 문 백리의묵이 자기 아들을 노려 보았다.
“백리명, 당장 아비를 따라오너라.”
머리를 짚은 장석량은 조용히 누각에서 물러났다.
장석량이 허공을 향해 손짓하자 어디선가 갑자기 무하가 모습을 드러냈다.
부복한 부하를 향해 장석량이 명령했다.
“남궁완이랑 아이들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정확히 알아보고······ 가주님께 당장 연락드려.”
“뭐라고 연락을 보낼까요?”
“뭐라고 하긴! 개판이라고 하면 되지!”
버럭 소리친 장석량이 다시 이마를 짚으며 고통에 찬 신음을 내뱉었다.
“제기랄. 난 가주님께 죽었어······.”
* * *
몸이 편하질 않으면 잠도 깊게 잘 수 없는 법이었다.
낮의 외출로 엄청 피곤했으면서도 남궁완의 내공을 받아들인 후유증에 얕게 잠들었다 깨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다.
거의 열 번 넘게 잠이 깼을 때였다.
아직 새벽이 오진 않았는지 창문살 사이로 들어오는 달빛만 희미했다.
침상에서 일어나던 난 한쪽의 거대한 그림자를 보고 놀라 침상에 주저앉았다.
그림자가 찻주전자를 집어들고 곧이어 내게 찻잔을 건넸다.
“······아버지?”
“놀랐느냐?”
“지금······ 몇 시예요? 아버지 연회 가신다고 하셨잖아요?”
“자시(밤 11시~ 새벽1시) 란다.”
한참 잔 것 같은데 그것밖에 안됐다니.
그리고 문득 이상하단 생각이 들었다
“남궁완 아저씨는요?”
“······.”
“아버지?”
“그는······ 여관에 머문다는구나.”
“네?”
넓은 백리 세가를 내버려 두고 여관으로 향했다고?
억누른 한숨을 내쉬며 아버지가 침상에 앉았다. 왠지 남궁완 얘기는 하고 싶지 않다는 분위기였다.
아버지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몸은 어떠냐?”
“괜찮아요.”
“너는 늘 괜찮다고만 하는구나.”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에 나는 살짝 놀라 아버지를 보았다.
하지만 형체만 희미하게 보이는 어둠 속이라 알 수 있는 게 없었다.
‘술 냄새는 안 나는데······.’
왠지 화가 난 것 같은 느낌에 난 눈치를 보았다.
‘괜찮은 걸 괜찮다고 하지······ 아프다고 하면 오히려 더 귀찮지 않나?’
한창 아플 때를 생각하면 이건 새 발의 피기도 했고.
침묵하던 아버지가 내게 손을 뻗었다
생각에 잠겨 있던 난 저도 모르게 화들짝 놀라 아버지의 손을 피했다.
멈칫한 아버지를 보고 우물쭈물 변명했다.
“벌레가, 벌레가 있는 것 같아서.”
“벌레?”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이내 방이 확 환해졌다.
아버지가 불이 붙은 등잔을 들고 다가왔다.
“벌레 같은 건 없는 것 같다만.”
“······착각인가 봐요.”
사람 모양의 큰 덩어리가 손을 치켜들자 순간 나도 모르게 놀라고 말았다.
‘이 버릇, 고쳤다고 생각했는데······.’
어두워 상대를 정확히 볼 수 없으니 반사적으로 나온 듯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버지는 등잔을 내려놓고 그저 내 머리를 쓸어 넘겨주었다.
괜스레 미안해 아버지를 바라볼 수가 없었다.
“연아.”
“네.”
“남궁 세가에 갈 일이 생겼구나.”
난 보이지 않게 주먹을 말아쥐었다.
드디어······!
남궁세가. 아니, 정확히는 만신의.
어린 딸에게 만신의에 대해 가볍게 꺼낼 아버지가 아니셨다.
일단 목적지를 남궁 세가라고 하고 만신의에게 먼저 들르는 방식이 될 것이다.
‘저번에도 그랬지.’
하지만······저번 생에는 이 황금같은 기회를 코앞에서 놓치고말았다.
이번엔 절대 놓칠 생각이 없었다.
기대에 찬 내가 아버지를 돌아보다 멈칫했다.
아버지의 낯빛이 좋지 않았다.
‘뭐지?’
대놓고 인상을 찡그리고 있는건 아니었다.
처음 목소리를 들었을 때 느낌처럼······ 왠지 아버지가 매우 화나 계신 것 같았다.
“준비에 시간이 걸릴 거다. 채비도 해야 하고, 네 몸 상태도 살펴야 하고, 네 할아버지께 인사도 드려야하니 며칠은 걸리겠지. 그럼 이만 자거라. 나 때문에 괜히 일어났구나.”
이야길 마친 아버지가 곧장 침상에서 몸을 일으켰다.
“왜 그러느냐?”
멈칫한 아버지의 시선이 내가 부여잡은 옷자락으로 향했다.
나도 당황했다.
거의 반사적으로 붙잡은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얼굴이······.’
애써 화를 억누르는 듯한 표정.
아버지가 이런 표정을 지으신 게 얼마 만인지.
왠지 이대로 보내면 안 될 것만 같았다.
“연아?”
붙잡았으니 무슨 말을 해야 할텐데······.
나는 몇 번 입을 열었다 닫았다 반복하다 내뱉었다.
“가, 같이 자요.”
“음?”
머뭇거리던 난 눈을 꽉 감고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말했다.
“호, 혼자 자는 거 무, 무서워서······.”
“······.”
난 얼굴을 푹 숙였다.
‘으악, 으악, 으악!’
속으로 비명을 내지르며 떠올릴 수 있는 말이 고작 이것뿐인지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다.
마치 처음 아버지에게 안아 달라고 조르던 날만큼 창피했다.
침묵이 길어져 미쳐 버릴 것 같은 순간 귀를 의심하는 소리가 들렸다.
“푸흣, 하, 하하, 하하하.”
청량한 웃음소리에 나도 모르게 눈을 크게 떴다.
아버지가 웃음기 남은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혼자 자는 게 무서워?”
“네? 네! 싫어요.”
“나도 네 나이 땐 그랬다.”
“아버지가요?”
“그럼. 그래, 알았다. 그럼 같이 누울까?”
아버지가 내 곁에 자리를 잡았다.
일단 말은 그리했지만, 다른 사람과 함께 누워 본 지가 오래라 불편할 거라 여겼다.
하지만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뭔가 안정되는 기분도 들고······.’
아버지 품 안에서 꼼질거리던 나는 저도 모르는 새 잠들었다.
거의 잠에 빠져든 내 귀로 아버지의 목소리가 흐릿하게 들렸다.
“······내 무슨 일이 있어도 널 낫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