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espised Granddaughter of the Powerful Martial Arts Family RAW novel - Chapter (26)
26화
* * *
짹, 쪼로롱, 째잭.
새 울음소리와 함께 눈을 번쩍 떴다.
밝은 방, 창살 너머로 햇살이 들어오고 있었다.
‘······아침?’
분명 저녁내 깼다 잠들기를 반복하며 엄청나게 뒤척였던 것 같은데.
“쓰읍.”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잘 잤다.
얼마나 달게 잤는지 침까지 흘리며 잤다.
입가를 닦으며 엎드렸던 몸을 일으키던 내게 어젯밤 기억이 쫘르륵 스쳐 지나갔다.
“아버지! ······는 안 계시네.”
동트기도 전에 일어나시는 분이니 당연할지도.
벌떡 일어났더니 머리가 핑 돌았다.
‘어휴, 이놈의 몸은 언제 낫는지.’
어지러움이 가시길 기다린 내가 느리게 일어났다.
기척을 듣고 여종이 따뜻한 물이 담긴 세숫대야를 들고 돌아왔다.
세수하고 옷을 갈아입히고 머리까지 예쁘게 손질해 준 여종이 방을 나간 후, 나는 기척이 멀어지길 기다렸다.
바깥이 확실히 조용해진 걸 확인한 내가 재빨리 서랍장으로 향했다.
‘드디어 이제 시작이야.’
기다리고 기다리던 남궁완이 드디어 왔다.
혹시나 이번 생에는 오지 않을까 얼마나 마음을 졸였던가?
서랍을 열자 종이가 한 뭉텅이 나왔다. 내가 미래의 일을 기억나는 대로 정리한 것이었다.
‘계획을 마지막으로 정리해······응?’
종이를 든 채 탁자로 향하던 난 붙박인 듯 자리에 멈췄다.
‘저게 왜 여기 있지?’
창문으로 들어온 햇살이 나전 장식을 눈부시도록 반짝이게 했다.
백리표한테 넘겼던 상자였다.
나는 홀린 듯 상자를 향해 다가가 열었다. 모란 세 송이가 그대로 담겨 있었다.
‘무슨······?’
나는 모란을 한참 바라보다, 거의 구르듯 방을 뛰쳐나갔다.
“언두! 언두! 언두!”
내 애타는 외침에 약탕기를 부치고 있던 언두가 놀라 일어났다.
“무, 무슨 일이에요? 아기씨! 뛰지 마세요!”
“허억, 허억.”
달려온 내가 한참 숨을 들이쉬다 겨우 말을 꺼냈다.
“하아, 아버지 어젯밤에, 혹시, 외출, 하셨어?”
“어? 어찌 아셨어요? 네, 잠시 석 태의께 다녀오신다고 하셨어요.”
역시 상자와 그 안의 꽃들은 아버지가 채우신 것이었다.
‘어떻게 알고?’
가슴 한쪽이 찡하니 아려왔다.
그때 왠지 모르게 쭈뼛거리던 언두가 고개를 푹 숙였다.
“뭐 하는 거야?”
깜짝 놀란 내가 놀라 언두를 붙잡았다.
언두가 거의 땅에 닿을 지경으로 숙였기에 붙잡았다기보단 내가 거의 언두에게 업힌 모양새였다.
“아기씨 정말 죄송해요. 제가 자리를 비웠을 때 하필 그런 일이 벌어지다니. 면목이 없습니다. 소우악, 백리표 도련님이 그런 못된······ 못된······.”
“응?”
난 몇 가지 질문을 통해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언두에게 어젯밤 있었던 이야기를 모두 들은 난 기가 막혀 소리쳤다.
“그래서 아버지랑 남궁완 아저씨, 두 분이 또 싸웠다고?”
“음······. 그 싸웠다기보단 약간의 의견 다툼이었습죠.”
“그게 그거잖아.”
언두가 내 시선을 슬그머니 피했다.
‘선물로 싸우는 걸 막으면 뭐 하냐······? 다른 걸로 싸우는 걸······.’
언두가 이렇게 말할 정도면 이미 백리 세가에도 짜하게 소문이 다 퍼졌을 터였다.
나는 언두의 팔을 잡고 벌떡 일어나며 물었다.
“아버지 어디 계셔?”
“손님 맞이하러 접객당에 가셨어요.”
남궁완인가?
그래. 싸우고 뛰쳐나갔더라도 하룻밤 지나고 나서 열이 가라앉으면 정신을 차릴 것이다.
난 곳바로 접객당으로 향했다.
처소가 구석진 곳에 있으니, 접객당으로 가는 데만도 한참이었다.
바쁘게 걸어가던 나는 왠지 마주치는 하인마다 반응이 평소와 미묘하게 다른 걸 느꼈다.
‘왜 저러지?’
왠지 겁에 질린 듯해 보이기도 했고, 무척 공손해 보이기도 했다.
이를 무시하며 거의 다 도착했을 때였다. 멀리 옅은 하늘빛 비단 장포를 차려입은 말쑥한 장정이 보였다.
“아버지!”
팔짝팔짝 뛰어가는 날 아버지가 익숙하게 받아 주었다.
“벌써 일어났느냐? 좀 더 자지않고.”
“많이 잤어요. 그보다 아버지, 그······.”
모란 가져다주신 것 감사하다, 라고 말하려던 난 멈칫했다.
‘······얘가 왜 여기 있어?’
아버지 곁에 석가약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보고 있었다.
난 어리벙벙한 얼굴로 석가약과 아버지를 번갈아 보았다.
놀란 얼굴로 마주보던 중 먼저 정신을 차린 건 남자아이 쪽이었다.
소년의 깨끗하고 맑은 목소리가 들렸다.
“안녕.”
“어······. 안녕?”
“마침 잘 왔구나. 네 친우가 왔다기에 나가 본 거란다. 언제 친우를 사귄 것이야?”
* * *
아버지는 함께 처소로 돌아오던 길에 하인의 귀엣말을 듣고는 가야 할 곳이 있다며 자리를 비웠다.
어쩔 수 없이 나는 석가약과 단 둘이 처소로 향했다.
정확히 단둘은 아니었다. 석가약을 따라온 몸종이 둘이나 있었으니까.
난 석가약의 몸종을 힐끗 보았다.
한 명은 삐죽삐죽한 모양의 짙은 색 천을 뒤집어씌운 항아리 같은 걸 들고 있었다.
짐작해 보려고 해도 도통 정체를 알 수가 없었다.
청당에 석가약을 앉게 하고 기다리자 곧이어 언두가 쟁반을 들고 나타났다
찻주전자와 찻잔, 약간의 주전부리, 그리고 김이 폴폴 나는 탕약이 있었다.
아버지를 찾아뵙기 전 열심히 언두가 달이고 있던 약탕기의 약이었다.
“아기씨, 드세요.”
쟁반을 내려놓은 언두가 탕약을 내게 건넸다.
내가 마셨는지 아버지가 확인하지 못할 피치 못할 상황엔 언두가 대신 확인하고 아버지께 알렸다.
탕약을 받은 난 웃으며 언두에게 말했다.
“손님이 있으니 먼저 가 봐.”
“하지만······.
언두는 의심을 감추지 못했다.
내가 반만 먹고 약을 버리는 걸 몇 번 목격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석가약 앞에서 이를 따질 수는 없기에 어쩔 수 없다는 듯 물러갔다.
언두가 방을 나간 걸 확인한 난 탕약 대접을 한쪽으로 밀어내고 석가약과 내 앞에 찻잔을 내려놓았다.
“탕약은?”
“······나중에 먹을 거야.”
“식으면 더 먹기 힘들 텐데?”
나는 모르는 척 말을 돌렸다.
“여긴 어쩐 일이야?”
“남궁 세가에 갈 거라며?”
“아버지가 벌써 말씀하셨어?”
“응. 솔직히 난 네 몸 상태로 여행은 아직 이르다고 보지만, 가야 할 만한 이유가 있는 거겠지.”
여행이 목적이 아닌 걸 안다는 듯한 어조였다.
눈치는 기가 막히게 빨랐다.
“그래서 모레 석 태의께서 진찰하러 오실 거야.”
“아, 그렇구나. 감사하다고 전해줘.”
“응. 그러니 어서 먹어야지?”
미소 띤 석가약이 지긋이 탕약을 바라보았다.
“먹어, 먹을 거야······.”
하하, 어색하게 웃은 난 결연히 탕약 대접을 집었다.
쉬지않고 단번에 꿀꺽꿀꺽 마신 내가 이제 됐냐는 듯 불퉁한 얼굴로 대접 바닥을 보여 주었다.
고개를 모로 튼 석가약이 입을 가리고 웃었다.
콧등을 잔뜩 찡그리고 찻물로 입을 헹구던 난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여 물었다.
“그래서 석 태의께서 모레 오실거란 말을 전하러 온 거야?”
굳이 직접? 하인을 통해 알려도 충분할 텐데······.
“보고 싶어서 오면 안 돼?”
“으잉?”
“나 친구는 처음이란 말이야.”
“······.”
이 자식 뭐지? 우리가 언제부터 그렇게 친한 사이였다고?
매우 큰 의문이 들었지만,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고 그냥 어색하게 웃어 넘겼다.
‘거기다 아버지가 내 친구라는 얘기에 좀 좋아하시는 것 같았단 말야······ 대충 그렇다고 치자.’
내 서먹한 웃음에 마주 웃던 석가약이 손짓하자 하인이 물건을 덮어 놓았던 천을 걷어 냈다.
“이건 선물이야.”
“이건······.”
“어제 늦은 시각에 백리 공자께서 찾아오셨더라고. 난 아침에 알았지만····· 연부홍 모란 세 송이를 꺾어 가셨다고 하더라고. 왠지 너랑 연관 있을 것 같아서 언제든지 볼 수 있게 그냥 묘목을 가져왔어.”
“······.”
작은 연분홍 모란이 핀 화분을 본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석가약의 배려가 고마우면서도 곤란했다.
‘어쩌지?’
이 화분의 미래도 뻔히 보였다.
쌍둥이들이 모란으로 남궁완에게 그런 수모를 당했으니 이 화분의 존재를 알면 절대 가만둘 리가 없었다.
심지어 난 한동안 떠날 예정이지 않은가?
그렇다고 이렇게 신경 써 가져온 선물을 거절하기도······.
잎사귀를 만지작거리는 나를 보던 석가약이 말했다.
“별로 좋아하는 얼굴이 아니네.”
“어? 아, 아냐. 좋아. 좋은데······.”
석가약에게 사실대로 말해야 할지 말지 고민스러웠다.
“음, 그럼 이건 좋아하려나?”
“응? 뭐가 또 있어?”
“사실은 내가 재미있는 걸 봤어.”
“뭐?”
“요 앞에서 백리 세가 가주님을 뵈었어. 표정이 매우 안 좋으시던걸.”
“뭐? 할아버지를 뵈었다고? 그럴 리가, 분명 가문을 비우셨다고······.”
쌍둥이들과 남궁완!
필시 어제 그 일때문에 돌아오신 것이 분명했다.
왠지 접객당에 갈 때 하인들의 태도가 이상하더라니.
겁에 질린 것 같던 느낌이 착각이 아니었다.
“어때? 이건 좀 흥미로운 소식인가?”
방긋방긋 웃는 얼굴은 속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 내게 도움이 되는 것 또한 사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