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espised Granddaughter of the Powerful Martial Arts Family RAW novel - Chapter (27)
27화
* * *
백리 세가에서 나선 비적 토벌은 보름은 넘게 걸릴 예정이었다. 즉, 가주도 보름넘게 자리를 비울 예정이었다
하지만 가주가 떠난 지 사흘도 지나기 전에 먼저 돌아왔다. 절대 좋은 징조가 아니었다.
수백당의 하인들은 평소에도 조심스러웠으나 오늘은 특히 더 신경 써서 숨소리마저 죽이고 돌아다녔다.
그리고 수백당의 정당엔 돌아온 백리패혁이 눈을 감은 채 앉아 있었다.
그런 백리패혁 옆엔 속을 알 수 없는 표정의 백리의강과 이미 한차례 무릎을 꿇었다 일어난 장석량이 고개를 숙인 채 서 있었다.
곧이어 줄줄이 사람들이 들어왔다.
차례로 백리의묵, 백리의란, 백리명, 그리고 백리표와 소우악이었다.
눈을 뜨지 않고도 모두 온 걸 확인한 백리패혁이 장석량에게 말했다.
“자네는 이만 나가 있게.”
공손히 읍한 장석량이 물러갔다.
백리의묵과 백리명은 들어오자마자 눈치껏 바로 무릎을 꿇었다.
쌍둥이들도 얼떨떨한 얼굴로 일단 따라 무릎 꿇었다.
하지만 백리의란은 목을 빳빳이 세운 채 오히려 분에 찬 눈을 할 뿐이었다.
백리패혁은 한참을 눈을 감은 채 있다가 입을 열었다.
“의란, 하고픈 말이 많아 보이는구나. 할 말이 있다면 해 보아라.”
백리의묵이 등 뒤로 백리의란의 옷자락을 말리듯 잡아당겼다.
하지만 백리의란은 이를 무시하며 고개를 치켜들었다.
“남궁세가의 남궁완, 그 무례한 자를 가만 두시면 안 돼요. 아버지.”
그동안 바닥에 시선을 내리깔고있던 백리의강이 백리의란을 바라보았다.
그 시선에 코웃음을 치며 백리의란이 말을 이었다.
“남궁완 그자가 어쩜 이리 무례한지!
감히 백리 세가에서 백리가의 핏줄인 제 아들을 무시하고 조롱하디뇨!”
백리패혁이 눈을 감은 채 느리게 물었다.
“네 아들을 무시하고 조롱했다고?”
“네!”
“어떻게 말이냐?”
“표와 악이가 검도 들지 못한다고 다신 눈에 띄지 말라고요! 애들이 얼마나 상처 받았는데요!”
그제야 백리패혁이 눈을 번쩍 떴다
매서운 눈빛이 쌍둥이들을 훑었다.
백리패혁은 느리게 말했다.
“그렇다면 남궁완이 애들에게 왜 그런 것 같으냐?”
“그거야 모르죠! 남궁완 그자가 대체 왜 갑자기 그랬는지!”
백리의강과 눈이 마주친 백리의란은 고개를 더 빳빳이 들었다.
어차피 문지기들은 모두 매수한 어머니의 사람들이었다.
증인이라 해 봤자 남궁완과 백리연 둘 뿐. 수로 따지자면 백리명과 쌍둥이들, 문지기들까지 있는 자신들이 더 많았다.
잡아떼면 백리의강 저 녀석이 뭘 어쩌겠는가? 남궁완과 백리연이 입을 맞춘 거라고 우기면 그만이었다.
백리의묵이 답답한 듯이 말했다.
“의란아. 제발, 그만하거라.”
그 모습을 지켜보던 백리패혁이 쌍둥이들에게 시선을 두었다.
“백리표, 소우악. 네 어미의 말을 어찌 생각하느냐?”
“······.”
“······.”
쌍둥이들은 눈치를 보며 쉽사리 입을 열지 못했다.
“좋다. 말을 꺼내기 어려워 보이니 내가 묻지. 모란 얘기는 어찌 된 것이냐?”
쌍둥이들이 깜짝 놀라고 백리의란이 이를 악물었다.
백리연 그 계집애가, 혹은 남궁완 그자가 촉새처럼 일러바친 게 분명했다.
백리의란이 소리쳤다.
“아버지, 그깟 모란이 대체 뭐라고요? 문지기들한테 물어보세요! 백리연 그 애가 먼저 애들한테 준다고 한 거라고요!”
백리의란은 분한 기색으로 말을 이어갔다.
“애들이 장난 좀 친 거 가지고 남궁완 그자가 뭐라고 백리 세가일에 끼어들어요? 이건 남궁 세가에서 우리 백리 세가를 얕본거나 다름없다고요! 그런 무도한 자를 치누라니,의강 너도······”
“그입 닥치거라!”
의자 손잡이를 쥔 백리패혁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백리의란은 아버지의 호통에 잠깐 수그러들었다.
그러나 제 곁의 아들이 보이자 제 아들이 모욕당하던 순간이 떠오르고, 다시 참을 수가 없어졌다.
다시 따지려 드는 백리의란의 입을 백리의묵이 황급히 막으며 머리를 조아렸다.
“예의는 물론 생각도 염치도 분별도 없이 군게 대체누군데!”
백리패혁이 참을 수 없는지 의자 손잡이를 연신 내리쳤다.
“문지기들에게 물어보라고? 그 머저리들은 내가 묻기도 전에 이미 장석량에게 모두 털어놨다!”
백리의란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쌍둥이들도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공부하라 학당에 보내 놨더니 치졸하게 아픈동생을 괴롭히는 것도 모자라 남궁완 앞에서 그따위로 굴어!”
아니, 차라리 남궁완에게 보여 다행이었다.
백리의강의 친우인 그는 친우의 체면을 생각하여 어디 떠벌리고 다니진 않을 테니까!
“남궁완을 가만두지 말라고? 대체 백리 세가의 체면을 어디까지 떨어트릴 참이야!”
한차례 버럭 소리친 백리패혁이 숨을 들이쉬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백리패혁은 아직도 전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못했는지 씨근덕거리는 백리의란을 내려다봤다.
백리의란은 백리의강과 평생을 비교당하며 자라왔다.
차라리 백리의묵처럼 나이 차이가 크게 나 버리면 오히려 나았다.
하지만 비슷한 또래의 둘은 처음 검을 잡은 순간부터 사사건건 비교되었다.
백리의란에게 백리의강은 절대 넘을 수 없는 벽이었고, 이는 백리의란에게 깊은 열등감이었다.
무인으로 평생 비고당하며 한 번을 이기지 못한 무력감.
검을 쥐며 살아온 백리패혁이 그 심정을 어찌 모를까?
그래서 그간 백리의란이 소란을 피우더라도 나무라는 선에서 눈을 감아주었다.
하지만 가여움에 눈을 감았던 행동이 이런 결과를 낳을 줄이야.
백리의란 곁의 쌍둥이들을 보는 백리패혁의 눈빛이 깊게 가라앉았다. 이대로 손자들의 앞날까지 망치게 둘 순 없었다.
백리패혁이 단호하게 말했다.
“긴말할 것 없다. 이제 네게 더는 아이들을 맡겨 놓을 수 없다.”
백리의란이 귀를 의심하며 되물었다.
“아버지? 그게 무슨······?”
“네게 세 가지 선택지를 주마.”
백리패혁이 백리의란의 의문을 자르며 말을 이었다.
“소우악은 백리의 피를 이었으나 소씨 가문의 아이지. 내 함부로 대할 수 없으니 소우악을 네 남편이 있는 소가장으로 보내고 백리표는 고계암으로 보내거라. 그러면 너는 계속 백리가에 머물러도 좋다.”
눈을 부릅뜬 백리의란이 뻣뻣이 굳었다. 고계암은 일반적인 암자가 아니었다.
잠자는 시각, 일어나는 시각을 비롯해 밥 먹는 시간, 휴식 시간, 볼일 보는 시간까지 정해진 엄격한 암자였다.
하인도 둘 수 없으며 각자 스스로 밥을 짓고 세탁을 하고 잠자리를 정돈하며 자기 수행을 하는 곳으로 보통 대갓집에서 잘못을 지은 이를 교육하기 위해 보내곤 했다.
“두 번째는 소우악과 네가 함께 소가장으로 떠나고 백리표는 여기 남겨두는 것이다. 단 백리표가 성인이 될 때까지 넌 다시 백리 세가에 올 수 없다.”
“자, 잠시만······”
“내 말 아직 안 끝났다!”
백리의란의 말을 자른 백리패혁이 쌍둥이를 가리키며 마저 소리쳤다.
“마지막으로! 아이들을 모두 데리고 떠나라. 평생 먹고살 문제는 없게 해 주겠다. 하지만 떠난다면 앞으로도 네 아이도 너도 나를 다신 볼 수 없다.”
백리패혁의 마지막 말에 백리의란이 하늘이 무너지는 표정을 지었다.
“아······ 아버지. 거, 거짓이시죠? 말도 안 돼요.”
“지금 결정하겠다면 내게 더 말해도 좋다!”
부들부들 떨던 백리의란이 눈물 맺힌 얼굴로 백리의묵을 보았다.
하지만 그라고 방도가 있을 리 없었다. 그저 미안함에 깊게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안, 안 돼요. 어떻게······ 제가 어떻게 아이들학 떨어지겠어요.”
백리의란이 흐느끼며 쌍둥이들을 품에 안았다.
언젠가부터 겁에 질린 쌍둥이들은 어머니의 품에 안기자 훌쩍이며 잘못을 빌기 시작했다.
한참 아이를 안고 들썩이던 백리의란이 갑자기 고개를 치켜들었다. 그러곤 백리의간에게 기어가 동아줄 잡듯 그의 옷자락을 잡았다.
“의강아. 의강아. 내가 미안했다. 내가 미안했어. 네가, 네가 아버지께 한마디만 해 주거라.”
이 모든 상황에서도 침묵을 지키던 백리의강의 시선이 엉엉 울고 있는 쌍둥이들에게 향했다.
자신의 딸과 고작 한 살 차이가 나는 아이들이었다.
하지만 그가 고민하기도 전에 백리패혁이 소리쳤다.
“네가 염치가 있다면 의강이 너를 위해 말을 할 거라 생각하지마라! 의강이 무슨 말을 해도 내 뜻은 변하지 않을 것이야!”
콰직!
몇 번을 내려친 의자 손잡이가 결국 부서져 떨어졌다.
“소우악, 백리표. 이번 일 뿐만이 아니다.”
백리패혁이 냉담하게 쌍둥이들을 바라보았다.
“너희들, 의강이 아픈 제 딸 돌보느라 바쁜데도 피 같은 시간을 내어 대련해 주겠다고, 수련을 봐주겠다고 하였는데 어찌했느냐? 한 번 찾아가 보기는 했느냐? ”
백리의강의 표정이 침중해졌다.
“제 눈치 보기 바쁜 백리 세가 제자들만 찾아가 대련을 빙자하여 아첨받기만 좋아하고, 무공에 발전은 없지! 하, 무백신공 3성?”
백리패혁이 기가 막힌다는 듯 헛웃음을 지었다.
“동생은 무시하고 괴롭힐 틈만 찾으면서, 그게 그리 쉬운 줄 아느냐? 웃기는 소리! 그런 태도로 대체 무얼 배울 수 있어! 내 이번에 너희들 버릇을 제대로 고쳐 놓을 것이다!”
결국, 백리의강은 입을 열지 않았다.
백리의강의 옷자락을 힘없이 놓은 백리의란이 바닥에 엎드려 흐느꼈다.
백리패혁은 이를 냉담히 내려다보고 다음 차례라는 듯이 백리명을 바라보았다.
돌아가는 상황에 식은땀을 잔뜩 흘리던 백리명이 재빨리 머리를 조아렸다
“백리명, 나는 네가 거는 기대가 컸다.”
“소손이 잘못했습니다, 할아버지.”
“네가 무얼 잘못했는지 아느냐?”
백리명이 속으로 몇 번을 반복하며 준비했던 말을 꺼내려던 순간이었다.
정당 문밖에서 하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가주님, 백리연 아기씨가 오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