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espised Granddaughter of the Powerful Martial Arts Family RAW novel - Chapter (28)
28화
* * *
난 화분을 든 채 내 뒤를 졸졸 따라오는 석가약을 흘끗 보았다.
눈이 마주친 석가약이 빙그레 눈웃음을 지었다.
이에 콧등을 찡그린 내가 고개를 팩 돌리자 낭랑한 웃음소리가 울렸다.
할아버지가 귀가하신 걸 안 나는 일이 생겼다며 석가약에게 돌아가라 일렀다.
하지만 석가약은 이를 무시한 채 내 뒤를 따랐고 내가 돌아가라 이르자 오히려 눈을 동그랗게 뜨고 되물었다
“왜? 내가 알려 준 거잖아.”
“······처음부터 이러려고 알려준거야?”
“응, 그러면 안 돼?”
석가약은 뻔뻔할 정도로 당당했다.
“거기다 내 선물을 쓸 거라며?
그럼 나도 볼 자격이 있어.”
“내가 뭘 할 줄 알고?”
“글쎄. 뭐든 실망은 안 할 것같아.”
그리고 샐쭉 웃었다
승강이질할 시간이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나는 뒤따르는 기척을 무시할 수밖에 없었다.
밖에서 본 수백당은 고요하니 아무런 문제도 없어 보였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석가약 또한 무사히 수백당에 들어오고 말았다.
‘당연히 못 들어올 줄 알았는데!’
석가약이 입구 무사들에게 붙들릴 거라 여겼다. 괜히 실랑이하지 말고 여기서 기다리라고 떼어 낼 생각이었다.그런데 석가약의 언변이 이렇게 좋을 줄이야!
자신은 석 태의의 조카로 내 몸을 살피길 부탁받았다며 꼭 같이 가야 한다고 입을 털어 통과하고 말았다.
수백당에 들어선 석가약은 마치 제 집 안방마냥 느긋하게 둘러보았다.
정갈하게 꾸민 정원을 지나치자 아직 정방에 가까이 가지도 않았는데 벌써 할아버지의 노호가 들렸다.
난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정방 안까지는 안 돼.”
“응. 거기까진 나도 생각 안 해.”
건물에 다가가자 정방 앞을 지키고 있던 장석량이 나와 석가약을 보곤 인상을 찌푸렸다.
“여긴 어지 들어오셨습니까? 심지어 석 태의의 조카까지 들이시다니요?”
장석량은 기가 막히다 못해 살짝 성이 난 표정이었다.
“죄송해요. 제가 마음이 급하여 멋대로 들어왔어요. 그리고 석가약은 저를 걱정해서 따라왔을 뿐이에요.”
“죄송합니다.”
석가약이 나를 따라 숙였다.
장석량이 억누른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리 석 태의의 조카라지만 외부인을 함부로 수백당에 들이시면 안 되지요. 나중에 다시 제대로 허락받고 찾아오십······”
그때 노기에 찬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네게 세 가지 선택지를 주마.”
장석량이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느라 잠시 내게서 시선을 거뒀다.
나 또한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모두 들은 난 꽤 놀랐다.
‘할아버지가 생각보다 일찍 칼을 빼 드셨네.’
할아버지가 고모에게 준 세 가지의 선택지.
셋 중에서 고르면 될 것 같지만 실상 고모가 선택할 수 있는 건 단 하나뿐이었다.
백리표를 백리 세가에 두고 고모가 시가인 소가장으로 떠나는 것.
고모는 절대 백리 세가를 포기하지 않는다. 아이들을 모두 데리고 떠나는 세 번째는 처음부터 없는 거나 다름없었다.
남은 건 백리 세가에 고모가 남느냐, 백리표가 남느냐인데······.
‘백리표를 남기겠지.’
자식 한 명 백리 세가에 남기지 못하는 고모를 누가 인정해 줄까?
백리표가 백리 세가에 남아 백리패혁의 손자로 존재해야 후일을 도모할 수 있었다.
이 모든 건 할아버지의 계획이기도 했다.
‘참 매서우시단 말이야.’
그리고 죄송하지만······여기선 할아버지 뜻대로 되도록 둘 순 없었다.
난 장석량을 향해 입을 열었다.
“왠지 저번과 비슷하지 않아요?”
“저번이라니요?”
“그때도 할아버지께서 막 화를 내고 계셨죠. 이번엔 상대가 바뀌었지만요.”
장석량도 곧바로 떠올렸다.
백리의강이 천명금혼단을 달라 무릎 꿇었던 날.
그날과 비슷하다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역할은 뒤바뀌어 있었다. 그리고 그날 백리의강은 이 아이로 인해 위기를 넘어갔다.
그게 전부 우연인 걸까?
장석량은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장부관님, 들어가 봐도 될까요?”
“······아뢰게.”
허락이 떨어졌다.
문 앞의 하인은 이 모든 대화를 듣지 못한 것처럼 그저 공손히 고했다.
“가주님, 백리연 아기씨께서 오셨습니다.”
긴 침묵 후 백리패혁의 목소리가 들렸다.
“들라 해!”
하인은 내가 들어갈 수 있도록 문을 열고 짙은 남색의 문발을 걷어 주었다.
가장 먼저 시야에 들어온 것은 이미 눈물범벅인 쌍둥이들과 아버지 발치에 엎드려 흐느끼는 고모였다.
그 뒤에 네가 왜 이곳에 오냐는 듯한 눈빛의 백리명과 눈을 마주쳤다.
할아버지가 성난 목소리로 소리쳤다.
“아주 수백당이 네 안방이구나.
이리 멋대로 들락날락하고 말이야.
심지어 허락하지 않은 이까지 데려오다니!”
비록 석가약이 정방까지 들어오지는 않았지만, 할아버지의 기감을 피할 순 없었다.
매서운 할아버지의 눈길을 받으며 난 석가약에게서 화분을 받아 들었다.
그리고 당황했다.
‘이거······ 왜 이렇게 무거워? 석가약이 아무렇지도 않게 들기에 가벼운 줄 알았는데!’
문지방을 넘던 난 그 무게에 크게 비틀거렸다.
그 순간 백리의강과 백리패혁 둘 다 움찔 몸을 떨었다.
뒤에서 지켜보는 석가약도 저러다 넘어질까 봐 가슴을 졸였다.
고의는 아니었지만, 단숨에 시선을 사로잡은 난 간신히 정당 중앙에 화분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덩달아 가슴을 졸이던 이들도 안도했다.
하지만 전혀 다른 반응을 보이는 자도 있었다.
백리의란. 붉게 충혈한 고모의 눈동자엔 분노와 원망이 가득했다.
고모와 눈을 마주친 난 이를 피하듯 백리명 뒤로 살짝 숨었다.
백리명은 무릎을 꿇고 있었으나 아직 여섯 살인 어린아이를 가리기엔 충분했다.
“······?”
백리명이 갑자기 얘가 왜 이러냐는 듯 얼떨떨하게 나를 보았다.
난 도와 달라는 듯이 백리명의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고모의 매서운 눈초리를 마주한 백리명이 움찔 놀라곤 나를 뿌리치려다 멈칫했다.
곧이어 백리명이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고모에게서 나를 가렸다.
이 모든 건 아주 짧은 사이에 이루어진 것이었다.
거의 본능적이다 싶을 백리명의 판단은 정답이었다. 나를 보호하는 찰나 백리명을 바라보는 할아버지의 눈빛이 살짝이나마 부드러워졌으니까.
“······너!”
그리고 백리연을 지켜 주는 듯한 백리명의 모습에 고모가 믿기지 않는 듯 소리쳤다.
“백리명, 너, 너 지금 뭘 하는게야?”
“고모님, 진정하세요.”
백리명의 말에 고모가 충격에 숨을 헐떡였다.
‘이럴 줄 알았지.’
백리명은 아주 기회주의적인 사람이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의 안위뿐.
그때그때 정세에 따라 본인에게 가장 이로운 쪽을 따랐다.
지금 고모에게서 나를 보호하는 척 굴어 할아버지께 조금이라도 덜 혼나려 드는 것처럼.
난 내 앞의 반듯한 뒤통수를 보았다.
‘고모를 쫓아내는 정도로 끝낼 순 없어.’
할아버지 아래서 백리표가 정신 차린 것처럼 굴고, 고모가 납작 엎드려 얌전해진 척한다면 언젠가 다시 불러올 것이었다.
애초에 할아버지가 평생 돌아오지 못하게 막는다 하신 것도 아니다. 빠르면 3, 4년 후에 돌아오게 될 것이고······.
‘그럼 난 열 살 정도려나?’
그리고 돌아오자마자 내내 갈고있던 칼을 나와 아버지께 겨눌 것이었다.
‘그렇게 둘 순 없지.’
그러기 위해선······.
고모와 쌍둥이를 쫓아내는 사람은 내가 아니어야 했다.
백리명.
내가 아닌 그가 저들을 쫓아내게 할 것이다.
인내심이 떨어진 고모가 소리쳤다.
“백리명! 너 미쳤느냐? 저리 비키지 못해? 지금 내 앞에서 저 계집 편을 드는 거야?”
“백리의란!”
할아버지가 노호했으나 이미 눈이 뒤집힌 고모를 막기엔 부족했다.
“백리연, 네가 감히 내 앞에 나타······!”
바락바락 소리치던 고모가 눈을 홉뜨더니 축 늘어졌다.
“엄마!”
“의란아!”
쌍둥이들과 큰아버지가 놀라 소리쳤다.
“누님이 많이 흥분하신 듯하여 손을 댔습니다.”
난 그제야 상황을 파악했다.
‘······아버지가 지금 고모를 기절시킨 거야?’
어떻게 손을 썼는지는 보지도 못했다.
거기에 별일 아닌 듯이 무심한 표정의 아버지가 무척 낯설었다.
‘아니, 따지고 보면······ 원래 저런 분이셨지.’
할아버지가 짜증스레 손짓했다.
“됐다.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쯧. 의강, 아니. 의묵, 네가 의란을 처소에 데려다 놓고 오거라.”
“······알겠습니다.”
큰아버지가 쓰러진 고모를 조심스레 안아 들고 정방을 나섰다.
“엄마! 엄마!”
놀란 쌍둥이들이 고모를 쫓아 일어나자 할아버지가 버럭 소리쳤다.
“누가 일어나라 했느냐?!”
쌍둥이들이 화들짝 놀라며 다시 무릎 꿇었다.
할아버지가 이를 한심하게 바라보곤 나를 향해 입을 열었다.
“그래서, 넌 무엇 때문에 왔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