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Necromancer Of The Academy RAW novel - Chapter (142)
Chapter 141 – 141. 이별
전쟁은 끝났다.
그것은 참으로 우습게도, 쏟아지던 비가 갑자기 뚝 멈추는 것처럼 단시간에 이루어졌기에 아직 열기에서 벗어나지 못한 이들은 어색해했으나.
비가 그쳐도, 빗물이 남아 웅덩이를 이루는 것처럼, 전쟁의 참상은 아직도 그리핀 왕국과 마리아스 대삼림에 남아 쓰디쓴 피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그리핀 왕국 출신 귀족.
로메르잔, 해로인, 보만은 가장 먼저 체포되어 연행되었다. 아마 그리핀의 처형장으로 향하게 되겠지.
내가 따로 숲에서 그들과 대면했을 때 나에게 자백한 내용으로는 이번 침공은 사막 너머의 제르만 왕국과의 협상 내용 중 하나였다고 한다.
이미 그리핀 왕국에서는 살아남을 방법이 없어진 세 사람이었기에 마리아스족을 꿰어서 그리핀 왕국의 토지 일부를 점령하면 그 뒤를 따라 제르만 왕국이 치고 들어오는 식으로.
하지만 제르만 왕국은 가망이 없다 판단하여 세 사람과의 연을 일방적으로 끊었고 결국 버려진 신세가 되어버린 것.
참 우습긴 하지만 그리핀의 땅을 두고 마리아스족을 이용해서 제르만과 협상한다는 발상 자체는 어리석음과는 별개로 간이 크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주도하에 일이 벌어졌다고 생각하고 있으나 단테의 흑마법사가 개입한 부분도 없잖아 있겠지.
‘아마 그 남자가 전부 주도한 거겠지.’
이제는 사지가 전부 타들어 가서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사망한 단테 소속 흑마법사.
그의 영혼도 발크자르와 함께 내가 거두었다. 단테와의 일전을 준비하기 위함이었다.
‘단테가 너무 빨리 움직인다.’
제르만 왕국의 침공 계획 자체는 크게 놀랍지 않았다. 왜냐면 메인 에피소드에 있는 내용이니까.
하지만 생각 이상으로 빠르다.
적어도 3학년 2학기는 되어야 에피소드의 기점이 되는 제르만의 왕비 같은 이야기가 시작될 텐데 아직 1학년 2학기다.
자그마치 2년이나 빠른 흐름.
단테 측에서 위령사인 내 존재를 의식해서 여러 움직임을 취하고 있다는 건 알겠지만.
그렇다고 게임에는 언급도 되지 않는 호루아와 발크자르 같은 존재가 튀어나올 줄은 몰랐다.
‘내가 알지 못하는 강자들이 아직 많이 남아 있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이 대륙은 도대체 어떻게 되먹은 건가 생각하며 나는 천천히 마리아스 대삼림 밖으로 빠져나왔다.
상황 정리는 글로리아에게 맡겨두었고, 일루아니아는 이미 보호를 위해 먼저 빠져나갔다.
조금 늦게 나오게 되어서 그런지 벌써 동이 트는 시간.
우천 탓에 습하던 공기가 이제 조금 산뜻해지는 찰나.
[데이우스!]휘익!
날아든 뭔가가 내 몸을 통과했다.
“음?”
나도 모르게 미묘한 탄성을 내뱉을 수밖에 없을 정도로 당황스러웠다.
슬쩍 뒤를 돌아보니 그곳엔 허공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흑령사가 있었고.
와락!
뒤를 이어 묵직한 충격이 그대로 내 몸을 치고 들어왔다. 흑령사와는 다르게 확실히 느껴지는 무게감과 따스한 온기.
“주인놈아!”
연초향이 옅어진 핀덴아이가 나한테 달려들어서는 양손으로 내 목을, 양다리로 내 허리를 감아 대롱대롱 매달렸다.
“…….”
너무 뜬금없는 환영에 조금 당황했으나. 핀덴아이는 괜히 고개를 한껏 내 가슴에 묻으며 중얼거린다.
“잘했어, 정말 잘했다고.”
“…….”
“시이발, 주인놈은 학살 같은 거 안 어울려. 그런 건 내가 할 거니까, 그냥 옆에서 따뜻한 차나 마시면서 다리 꼬고 있어.”
그녀의 목소리에서 드물게도 느껴지는 안도감에, 얼마나 나를 걱정했는지 피부로 느껴진다.
그래서일까.
괜히 어색함이 느껴져서 나는 오히려 평소처럼 차갑게 입을 열었다.
“네가 끓인 차가 아니라면.”
“하! 지랄!”
내 말에 그대로 엉덩이를 들썩이며 몸을 앞으로 기울인 핀덴아이. 이미 지친 상태이기도 했고, 원래 근력이 좋지도 않은지라 갑작스런 흔들림에 몸이 기울어져 뒤로 넘어간다.
콰당!
넘어지면서도 핀덴아이의 손이 내 머리 뒤를 받쳐줬기에 충격은 크지 않았지만.
그녀가 내 위에 올라탄 상황이 되어버렸다.
슬쩍 몸을 떼고는 나를 내려다보는 핀덴아이의 입가에는 장난스러운 미소가 걸려 있었다.
“기대해라. 나중에 내가 끓여준 차 없이는 못 살게 해줄게.”
“하아, 비켜라.”
내가 한숨을 내쉬며 짜증내자 핀덴아이는 괜히 한 번 더 웃으며 슬쩍 엉덩이를 내 허리춤에 문지른다.
“섰어?”
그게 끝이었다.
내 마나가 그녀를 밀어냈고 핀덴아이는 바로 바닥을 구르며 처참한 신음을 흘렸다.
“어쿠악!”
“선을 넘었군, 이번 달은 감봉이다.”
“퉷! 아, 입에 흙 들어갔어! 투엣! 그것보다 감봉? 전장을 굴렀더니 월급이 줄어!?”
그대로 일어난 나는 몸에 묻은 흙을 털며 다시 앞으로 향하려 했으나, 이번에는 검은 로브의 여인이 팔짱을 낀 채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래.”
[원래였으면 제가 저 위치였다는 거예요.]“그게 무슨 의미가 있나.”
[진짜, 짜증나요.]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그녀는 은근슬쩍 다가와서는 손을 뻗는다.
내가 바로 거부감을 느끼며 몸을 뒤로 빼려 했으나, 흑령사는 쓰읍하고 소리를 내더니 한 걸음 다가와 다시금 거리감을 맞춘다.
툭.
무게감이 느껴지는 손길.
마나를 다루는 게 꽤나 능숙해졌는지 그녀가 내 머리에 얹은 손에서 작은 무게감과 옅은 온기가 느껴졌다.
[정말 잘했어요. 그리고 고마워요.]“…….”
[당신은 그렇게 계속 있어 주면 돼요. 고고하고, 아름답게.]검은 천 너머로 보이는 옅은 미소. 흑령사 역시 핀덴아이와는 다른 방식으로 나를 걱정하고 있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흑마법사가 아닌, 위령사로서.]문득 흑령사를 보고 있자니 그런 생각도 들었다.
흑령사는 사령술의 끝을 보기 위해 나와 함께하고 있다. 그녀 스스로의 한이 성취된다면 안식을 취하겠지.
결국 떠나갈 여인.
사령술의 진리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나는 아직 그 끝에는 무엇이 있는지 모르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흑령사와의 이별만큼은 그 자리에 예비되어 있다는 것.
“나의 이 길은, 어찌 보면 너를 위로하는 일이라고 볼 수도 있겠군.”
내 말에 놀란 걸까.
흑령사의 눈동자가 잠시 파르르 떨리더니 옅은 미소를 지으며 끄덕였다.
[그렇게 볼 수도 있겠네요.]굳이 이 이상 대화를 나누진 않았다. 내 가슴 안에서 또 다른 의미 모를 감정이 몽글몽글하니 피어오르고 있었으나.
이미 심적으로 지친 상태였기에 굳이 더 피곤해지고 싶지 않다는 욕심으로 눈을 돌렸다.
성녀 루치아도 뒤늦게 내 마중을 나와 내 상처를 치유해줬으나. 너무 피로했기에.
나는 식사도 하지 않고, 간단하게 씻은 후 바로 텐트로 돌아가 눈을 감았다.
위령을 끝낸 후, 바로 마리아스 대삼림으로 들어갔기 때문일까.
생각 이상으로 쌓여있던 피로감이 확 밀려왔다.
* * *
얼마나 잤는지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내가 자는 동안 주변에서 꽤나 열심히 나를 보살폈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텐트의 침상에서 잔지라 허리가 아파도 이상할 게 없는데 그런 뻐근함은 없었고, 따로 춥거나 덥지도 않았다.
텐트의 축축한 불쾌감보다는 저택에서 자고 일어난 것처럼 깔끔한 기상.
텐트 내부에는 아무도 없었는데 바깥은 해가 떴는지 램프가 없이도 밝았다.
일어나 간단히 머리를 정리하고 밖으로 나오니 선명한 햇빛이 눈을 찌르고 들어온다.
‘도대체 며칠이나 잔 거지.’
이렇게까지 햇빛이 어색하게 느껴진다니. 꼭 흡혈귀라도 된 기분이었고 배는 상당히 허기져 있는 상태였다.
“어? 일어났다.”
다른 병사에게 빌렸는지 텐트 밖에서 쪼그려 앉은 채로 연초를 피우고 있던 핀덴아이가 나를 발견했다.
자고 일어났으니 감을 찾을 겸 나는 핀덴아이의 연초를 마나로 저 멀리 날려버렸고.
그녀는 허망한 눈으로 연초를 쥐고 있던 자신의 손을 꼼지락거리며 바라본다.
“시발, 겨우 얻은 건데.”
이제 한 모금 빨았다며 찡얼거리는 핀덴아이의 반응을 무시하며 묻는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지?”
“이틀이요, 주인놈아.”
그래, 이틀.
다행히도 생각만큼 많은 시간이 지나지 않았음에 감사하며 다시 입을 열었다.
“일루아니아는 어디 있지?”
“일루아니아도, 세비아도, 다 잘 있으니까 걱정 마시고. 우선 밥부터 먹어. 얼굴 비쩍 곯은 것 좀 봐.”
나름 핀덴아이는 걱정해서 한 말이었겠으나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쪽이 더 급하다.”
아직 한을 풀지 못한 영혼이 하나 남아있다.
내 대답을 들은 핀덴아이는 한숨을 내쉬더니 크게 소리친다.
“야, 오웬! 밥 준비해둬라! 금방 먹으러 간다!”
“으아! 예엡!”
어디선가 들려온 오웬의 목소리. 핀덴아이를 아직도 무서워하는 듯했다.
“가자, 할 거 끝내고 바로 밥 먹으러 가는 거야.”
“그래.”
거대한 텐트로 나를 안내해준 핀덴아이. 그곳에는 세비아를 안고 있는 일루아니아와 곁을 지키는 흑령사가 있었다.
“아, 깨셨군요!”
나를 반기는 일루아니아.
이런 곳보다는 좋은 장소에서 산후 몸조리를 시켜주고 싶었지만.
아무래도 잠들었던 나를 기다려준 듯했다.
다행이다.
“일루아니아, 너와 이 아이를 지켜주기 위해 이 세상에 남았던 영혼이 있다.”
“네, 알고 있어요. 호텔에서도 그분이 저를 보호해주셨어요.”
“그리고 이제 곧, 그 여인은 깊은 잠에 빠지게 될 것이다.”
“…….”
아이가 무사히 세상 밖으로 나와 웃는 모습을 보기 전까지 일루아니아를 지키는 것.
그게 나와 화상을 입은 여인이 했던 약속이었다.
“아주 잠깐, 그 여인에게 아이를 안을 기회를 주지 않겠나.”
어미인 일루아니아의 허락이 있어야 함은 당연했기에 나는 공손히 물었고.
일루아니아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그럼요. 물론이죠.”
나는 곧바로 흑령사를 바라봤다. 그녀가 여기 있었던 이유는 다름 아닌 수호령을 재우지 않기 위함.
흑령사의 마나에 도움을 받아 다시금 모습을 드러낸 수호령 여인.
일루아니아를 지키기 위해 호루아의 불꽃을 정통으로 받아냈던 그녀였기에 예전의 한이 서린 흉흉한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식은땀을 흘리며 정신을 유지하는 것도 고작이었다.
나는 손을 뻗어 그녀를 내 몸 안으로 받아주었다.
오웬의 할아버지인 오스터를 손에 빙의시켰던 것처럼.
이번엔 수호령인 그녀에게 내 몸을 맡긴다.
천천히 손을 뻗는다.
일루아니아는 속싸개에 폭 감싸인 세비아를 건네주었고.
아이를 받아 든 내 손은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아이의 이마를 쓸어 넘긴다.
꺄아아!
뭐가 그리 좋은지 웃어주는 세비아.
내 것이 아닌 여러 감정이 안에서 퍼져간다.
안도, 감사, 기쁨, 행복.
그리고 아쉬움.
[아.]여인의 목소리가 내 안에서 울려왔다. 화상으로 자신의 반신이 타버렸다는 고통 때문이 아닌.
아이를 잃었다는 후회와 집념만으로 죽음 이후에도 떠돌던 여인.
[나의 아이도, 이리 예뻤을까요?]울먹임이 담긴 그녀의 질문에,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분명히.”
내 안에 퍼지는 그녀의 감정이 하나가 되어간다.
[감사합니다.]그것을 끝으로.
죽음 이후에도 아이를 위해 싸워온 여인은, 천천히 눈을 감고 안식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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