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Necromancer Of The Academy RAW novel - Chapter (205)
Chapter 204 – 204. 18살의 흑령사
내가 자리에 앉자 우리 쪽으로 술잔과 술병이 날아왔다.
한잔 마시면서 시작하자며 흑령사가 손짓했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술에 취한 채로 보내기엔 시간이 아깝다.”
내 말에 잠시 머뭇거린 흑령사는 한숨을 내쉬더니 술병과 술잔을 다시 원래 자리로 돌려놓았다.
그러자 막상 딴짓할 게 없어졌기 때문일까 어색한 기류 속에서 흑령사는 괜히 한마디 툭 던져온다.
“한소는 잘 받아들였어?”
별로 궁금하지도 않아 보였으나.
어쨌든 물음에는 답해준다.
“그래, 그는 무인으로서 대악마와 마지막까지 싸우다 가겠다고 말해주었다.”
다시금 그에게 감사를 표하지만 흑령사는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과연 그게 가능할까?”
“…….”
“우리가 가짜라는 네 판단은 알겠어. 하지만 그렇다는 건 결국 우린 레아릭이 만든 존재라는 뜻이잖아.”
몽마전을 레아릭이 세웠으니 그들도 결국 레아릭이 만든 존재일 뿐.
“우리가 과연 레아릭에게 대항할 수 있을까?”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래, 솔직히 말해서.
“불가능하겠지.”
명백하게 불가능했다.
기만의 대악마는 이 짓거리를 몇 번이고 해왔을 거다.
수많은 호걸들이 110호에 머물렀을 거다. 그때마다 레아릭의 술수에 휘말려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 살인극이 연출되었을 수도 있지만.
지금의 우리처럼 대악마에게 대항하여 싸우려 들었던 적도 있었을 거다.
“애초에 지금 레아릭을 이기는 건 불가능하다. 내게는 다룰 수 있는 영혼도, 성배도 없으니.”
“성배?”
거슬린다는 표정을 지으며 성배에 반응하지만 별거 아니라 덧붙이며 말을 이어 나간다.
“하지만 다행인 점은 레아릭이 전투에 목매는 대악마가 아니라는 점이다.”
투쟁의 대악마 발키리아, 긍지의 대악마 듄과 같은 전투를 통해서 만족을 느끼는 부류가 아니다.
레아릭은 오히려 타인을 속이고, 기만하는 것에서 흥분과 쾌감을 느끼는 종류였다.
“그래봤자 수틀리면 그냥 다 죽이는 거 아니야?”
그럴 가능성도 있었겠지.
만약 레아릭이 인간이었다면 말이다.
이번에 대악마 넷과 싸우면서 내가 알게 된 건, 그들은 자신이 바라는 것에 있어선 광적인 집착을 보이지만 정작 그 외의 것에는 큰 미련을 두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레아릭이 바라는 건 내 목숨이 아니다. 자신이 차려놓은 몽마전의 결말대로 내가 따라가길 바랄 뿐이겠지.”
“흠.”
“그러니 반대로, 그가 원치 않는 결말을 주면 된다.”
“그가 원하지 않는 결말?”
“차후 설명하지.”
굳이 지금 설명할 필요도 없었고, 그랬다가는 시간이 아깝지 않은가.
흑령사도 내 의도를 이해했는지 더 캐묻지는 않는다.
그러자 다시 찾아든 잠깐의 침묵. 가만히 있지 못하는 흑령사에게 나는 자연스럽게 품에서 검은빛의 보석을 꺼내어 건넨다.
“이건…….”
흑령사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레메게톤. 내가 몽마전에 도착하자마자 얻은 물건이었다. 이제는 이것도 진짜가 아니라 이곳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일종의 모조품인 건 알지만.
레메게톤에 손을 뻗은 흑령사는 그것이 자신과 공명함을 알아차리고는 침을 꿀꺽 삼켰다.
레메게톤을 바랐던 이야기 속 소녀의 피를 자신의 안에 주입한 효과를 보는 중이었다.
“정말 실존했구나.”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씁쓸한 뒷맛이 그녀의 말꼬리를 적신다.
그토록 바라 마지않던 보물을 손에 쥐게 되었지만 막상 모든 게 허상이라는 점이 그녀를 허탈하게 만들고 있었다.
“나는 실제로 레메게톤을 몇 번이고 다뤄본 적이 있다. 그것과 완전히 똑같다고 보면 된다.”
“실제 레메게톤을 다뤄봤다고? 그럼 찾았다는 소리야?”
“그 덕분에 너를 내 스승으로 둘 수 있었지.”
그제야 자신이 왜 나를 제자로 두었는지 이해가 된다며 옅은 음색을 흘리는 그녀.
그런 그녀에게 나는 심호흡하고는 입을 뗀다.
“이기적일지 몰라도 내 개인적인 부탁이 하나 있다.”
내가 지금부터 하게 될 행동이 내 옆에 있는 흑령사에게는 상당히 잔혹한 행위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이야기를 하나 들어줄 수 있겠나?”
“이야기?”
그래도 지금의 그녀에게만 들을 수 있는 이야기가 있었기에.
“기만의 대악마가 건넨 이 보석으로부터 시작된 나와 너의 인연에 대한 이야기다.”
나는 의외로 길어진 우리의 이야기를 풀어주었다.
* * *
데에에에엥!
길게 울리는 종소리는 또 하루가 지났음을 알려오고 있었다.
답지 않게 꽤나 많은 말을 했기에 목이 따끔거렸으나 나는 자리에서 벗어나지 않고 흑령사를 기다렸다.
자신이 그토록 찾아 헤매던 레메게톤이 사실은 대악마의 같잖은 장난질의 수단이었다는 걸 알았고.
흑령사 본인이 열심히 걷고 있는 사령술사의 길을 미래에는 어렴풋이 후회하고 있다는 것도 얘기해주었으며.
마지막으로.
본인의 죽음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18살의 흑령사가 받아들이기엔 꽤나 어려운 이야기였겠지만 나는 머뭇거림 없이 그 모든 이야기를 해주었다.
흑령사와 내가 겪었던 많은 이야기를.
결국에는 나와 누구보다 오랜 시간을 함께해 준. 동일 인물이지만 또 타인인 그녀에 대한 이야기를.
“…….”
고개를 푹 숙여 머리카락에 얼굴이 가려진 그녀. 여러 생각이 들 것이다.
허무하게 죽어버린 스스로에 대한 원망을 토해낼 수도 있으며, 이런 잔혹한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꺼내든 나에게 분노할 수도 있었다.
“왜.”
그렇게 여러 가능성을 상정하고 있던 내게 돌아온 건.
낮게 깔려 침울한 감정이 담겨 있으나 그럼에도 물러서지 않는 각오였다.
“나한테 그걸 말해준 거야?”
옳은 의문이었다.
굳이 지금의 흑령사에게 이런 잔혹한 진실을 알려줄 필요는 없었다.
오히려 잘살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그렇게 두루뭉술하게 거짓말을 해도 되었다.
하지만.
“말해줄 필요가 있었다. 그래야 나에게 너에 대한 걸 말해줄 테니.”
흑령사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선, 나와 그녀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낼 필요가 있었다.
그 대답도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흑령사는 주먹을 쥐며 식탁을 쾅 내리친다.
주변의 식기들과 음식들이 덜컹 흔들릴 정도로 큰 충격. 손에 담긴 보랏빛 마나가 불꽃처럼 일렁인다.
“그러니까. 그게 왜 필요하냐고. 내 이야기를 들을 이유가 뭐냐고.”
이미 흑령사는 내 대답을 예상하고 있었다.
붉어진 눈시울.
먹먹한 감정에 턱 막히는 숨소리.
모든 것이 그녀가 지금 얼마나 괴로운지 알려주고 있었지만.
나는 차분히 눈을 감으며 답을 내놓았다.
“흑령사가 내게 숨기고 있는 부분을 알기 위함이다.”
여기서 내가 말하는 흑령사가.
본인을 가리키는 게 아님을 알고 있었기에 18살의 흑령사는 이를 으득 물면서 분노했다.
“나를, 그냥 도구 정도로 생각하는 거야?! 그저 이용하려고? 네가 말하는 진짜 흑령사를 더 이해하기 위해서! 나를 사용하겠단 소리잖아!”
정확하게 들어맞았다.
그렇기에 나는 부정하지 않았다.
“틀린 말은 아니다.”
내가 알고 있는 흑령사는 종종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내가 다루는 사령술을 보며 회의감이 느껴지는 표정을 지을 때도 있었고, 며칠 정도 사라졌다가 슬그머니 다시 돌아올 때도 있었다.
그러다 문득.
정말 어느 날.
그렇게 그녀가 사라지는 게 아닐까 걱정한 적도 있었다.
“너를 통해, 내가 알지 못하는 흑령사를 더 이해하고 싶다.”
“그 여자도 따지고 보면 나랑 똑같아! 어차피 사라질 존재란 말이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긴 했다.
몽마전에서만 존재할 수 있는 18살의 흑령사.
그리고 어느 날인가 눈을 감고 안식에 들어가야 하는 흑령사.
하지만.
“그렇기 때문이다.”
“……뭐?”
“흑령사가 눈을 감게 되는 안식의 그날. 그녀를 위로하고 제대로 된 배웅을 해주기 위해서.”
“…….”
“나는 그녀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18살의 흑령사가 보여준 사령술은 내가 알던 흑령사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진정 영혼을 단순히 도구로만 다루는 잔혹한 면모. 오롯이 공격적으로 상대의 목숨을 취하는 비정한 마녀.
이런 과거를 나에게 들키지 않게 흑령사는 꽁꽁 숨겨뒀지만. 나는 비겁하게도 이런 방식으로 그 비밀을 파헤칠 생각이었다.
“그리고 이건, 너를 기억하기 위함이기도 하다.”
“…….”
내가 이리도 그녀에게 잔혹하게 굴 수밖에 없는 이유는.
결국 몽마전에만 존재할 수 있는, 신데렐라의 유리구두처럼 시간이 딱 정해진 허망한 그녀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함.
“너를 여기서 아무런 의미도 없이 사라진 존재로 만들지 않겠다.”
“아, 아아.”
“이것이 내가, 네게 해줄 수 있는 유일한 추모다.”
어느샌가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는지 흑령사는 양손으로 자신의 눈을 감싸든다.
내가 알고 있는 흑령사를 위해서 잔혹함을 감수하고 모든 걸 털어놓으라는 듯 굴었다.
진짜 흑령사를 위해 희생하라는 것처럼 말했다.
일면에선 잔인한 남자라고 할 수 있겠으나.
위령사라는 이름을 짊어진 입장으로서.
내 앞에 있는 18살의 흑령사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은 이것밖에 없었다.
사라지겠지만.
흔적을 남겨라.
한소가 무신으로서 죽어갔던 것처럼.
흑령사도 그렇게 눈을 감길 바랐다.
“개, 자식.”
원망을 들을 행위라는 건 부정하지 않는다.
“나는 그딴 걸 원하지 않았어.”
흑령사를 위해서라는 말로 내가 이기적으로 굴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지금의 내가, 미래의 나한테 영향을 주는 게…… 그게 나의 존재 의의라고? 내 의미라고?!”
그것 외에는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없어 미안하다.
“고작 그딴 게, 나를 위로하는 방식이라고? 내 흔적을 남기는 거라고?”
계속해서 눈물을 쏟아내던 흑령사는 천천히 몸을 웅크린다.
덜덜 떨리는 어깨에서는 여러 감정이 올라오고 있었으나 결국 눈물은 그치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녀는 흐느끼는 목소리를 억지로 참아내며 나를 노려본다.
“네가…….”
숨을 삼키며.
“네가 너무 미워, 데이우스 베르디.”
흑령사는 나를 향해 원망의 목소리를 토해낸다.
“이런 잔혹한 진실을 알게 한, 네가 너무 싫어. 증오해! 나라는 존재 가치가 고작 그것에서 끝날 수밖에 없다는 걸! 나는 알기를 바라지 않았어!”
하지만 이것 외에는 18살의 흑령사가 외부에 흔적을 남길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단순히 내 가슴에 묻어두는 정도로는 부족했다.
진짜 흑령사에게 이 소녀가 영향을 준다면.
결국 지금 내 앞에 있는 18살의 소녀가 진짜의 안에 남아있게 되는 게 아닐까 싶었다.
“냉정한 자식.”
“상처를 줘서라도, 너에게 기회를 주고 싶었다.”
그냥 허무하게 사라지는 게 아니라.
18살의 흑령사로서 무언가 남길 수 있는 기회를.
“나에겐 너 역시 흑령사니까.”
“젠장.”
나를 향한 원망과 진실을 알게 된 괴로움의 몸부림은 조금 더 지속되었다.
하지만 정말 조금이었을 뿐.
“…….”
결국 모든 원망의 감정이 바닥을 드러냈을 때.
“부탁, 할게.”
그곳에는 자신을 기억함에 감사하는 소녀의 진심 한줌만이 남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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