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Necromancer Of The Academy RAW novel - Chapter (42)
Chapter 41 – 41. 찬란하고, 아름답던
“…….”
눈꺼풀이 무거워서 반 정도밖에 뜨지 못했으나 그럼에도 이곳이 병원이라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시야가 보이기 시작하자 병원 특유의 소독약과 약내음이 은은하니 코에 맴돌기 시작했으며.
차근차근 손가락에 감각이 돌아와 푹신한 건지 딱딱한 건지 모를 애매한 병상의 감각이 느껴진다.
“후.”
하나하나 건전지를 끼워 넣듯이 차근차근 감각이 돌아옴을 느낀 나는 상체를 일으킨다.
손등에 박혀 있는 수액은 이미 다 떨어져 있었기에 대강 뽑은 후, 일어나자 때마침 병실 문이 열린다.
“아니, 진짜라니까? 일루아니아라고 걔 애인이었던 사람 있다고.”
“거짓말 좀 그만하시죠! 제가 가문에 듣기로도 데이우스는 나쁜 사람까지는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거야 너희 가문에서 구라를 쳤겠…….”
병실 안으로 들어온 핀덴아이와 에리카. 나는 손으로 이마를 짚은 채로 두 사람에게 주의를 준다.
“병실이다, 조용히 해라.”
“가, 가서 의사선생님 데려올게.”
나와 눈을 마주친 에리카는 다급하니 몸을 틀어서는 도망치듯 병실 밖으로 빠져나갔고, 핀덴아이는 씨익 웃으며 다가온다.
“요번엔 무슨 일이었는지 나한테 가르쳐줄 수 있나?”
“……그저 배웅을 해줬을 뿐이다.”
“배웅? 누구? 하여간 사령술사들은 뭔 소리하는지 이해를 못하겠네.”
물론 자신이 만나본 사령술사는 나 밖에 없었다며 키득거리는 핀덴아이.
그녀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나는 퇴원 준비를 시작했다.
* * *
그렇게 오랜 기간 병실에 갇혀 있었던 것도 아니고, 실은 나에게 있어선 찰나와 다름없는 순간이었으나 병원 밖으로 나오니 바깥 공기가 반갑게 느껴졌다.
밤공기에 답답하던 가슴이 순식간에 뻥 뚫리며 몸이 환기가 되는 기분에 발걸음이 가벼웠다.
“바로 돌아갈 거지? 나 주인놈 방 쓰고 있었는데 어디 쓰면 되나?”
핀덴아이가 기지개를 켜면서 옆을 지나친다. 그 말에 나는 불쾌한 기색을 숨기지 않고 물었다.
“내 방을 썼나?”
“응, 밖에서 잘 수는 없잖아.”
“학장에게 말해서 따로 방을 마련하라고 해두마.”
“층수 높은 곳이 좋던데.”
투덜거리는 핀덴아이를 보며 그녀의 뒤에 있던 에리카는 묘한 표정을 짓는다.
설마 주인인 나한테까지 저렇게 털털하게 대하고 있을 줄은 상상도 못한 듯 했다.
“그럼 핀덴아이. 가서 내 방 청소를 해라. 네 머리카락 한 올이라도 떨어져 있으면 다시 부를 거다.”
“……진심이야?”
팍 인상을 찌푸린 핀덴아이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으나, 내 말에 번복은 없었다.
“1시간 정도 있다가 들어가지, 가라.”
“아! 이럴 줄 알았으면 짐 풀어두지 말걸 그랬네!”
씩씩거리면서도 초월적인 속도로 아카데미를 향해 뛰어가기 시작한 핀덴아이.
순간적으로 달음박질의 후폭풍에 뒤에 있던 나와 에리카의 몸이 휘청거릴 정도의 위력이었다.
건물 지붕을 밟고 멀어지는 핀덴아이를 보며 에리카는 어벙하니 중얼거린다.
“그래도 말은 듣네.”
그리고 그녀와 남은 나는 슬며시 고개를 돌려 제안했다.
“잠시 커피라도 마시지 않겠나.”
“어? 나, 나?”
당황한 에리카가 스스로를 가리키며 물어 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고 에리카는 머뭇거리다 알겠다 답했다.
굳이 커피숍에 죽치고 앉아 있을 생각은 없었고, 바깥의 공기를 좀 더 느끼고 싶었기에 우리는 커피를 받아들고 근처 공원 벤치에 앉았다.
밤이라서 그런지 주변에는 산책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공원 중앙에는 푸른색 별 모양으로 이루어진 조형물이 있었는데, 마력으로 돌아가는지 안에서 은은한 푸른빛을 띄워 공원 전체를 밝히고 있었다.
벤치에 앉아 커피를 홀짝이는 내 바짓가랑이를 잡고 당기는 작은 꼬마아이.
나는 아이의 머리를 조심스럽게 쓰다듬어준 후, 다시 한 모금 홀짝인다.
“……거기 뭐 있어?”
“아무 것도 아니다.”
에리카는 아이가 있는 장소를 뚫어져라 보고 있으나, 따로 보이는 건 없었기에 헛기침하며 등받이에 기댄다.
잠시 정적.
도시의 자연스런 소음이 우리의 사이에 맴돌았으나 크게 거슬리진 않았다.
오히려 서로의 간격을 채워주는 느낌을 주어 한결 편히 있을 수 있었다.
나는 커피를 한 모금 더 마신 후, 입을 땐다.
“아카데미의 모든 악령 사태가 해결된 건 아니다. 하지만 사건을 일으킬 정도의 힘을 가졌거나, 위험한 녀석은 이제 없을 거다.”
“……그래.”
이런 이야기를 할 줄 몰랐는지 조금 아쉬워하는 에리카.
우리의 시선은 여전히 푸른 별의 조형물에 향해 있었으나, 대화는 이어진다.
“너를 죽이려던 악령도 그럼 사라진 건가?”
“그래, 그 역시 떠났다.”
“……그래.”
다시금 정적.
에리카는 뭔가 답답한 듯 숨을 토하며 이마를 긁적인다.
“내가 한 일이 아무런 소용도 없었네.”
굳이 답하진 않는다.
그것에 관해선 따로 위로를 해줄 생각은 없었다. 그게 그녀의 선택이었으니까.
“솔직히 말할게, 미안해. 내 딴에는…… 너를 살려보겠다고 한 일이었어.”
“알고 있다.”
덤덤하니 답하고 다시 한 모금 커피를 마신다. 몇 번이나 마셨는데도 왜인지 방금 한 모금은 더 쓰게 느껴졌다.
“그렇다고 너에게, 다시 약혼을 하자거나 하는 일은 없을 거야. 상처를 준 건 맞으니까.”
에리카의 손에 힘이 들어가 종이컵이 살짝 구겨진다. 그러나 그녀의 표정에 변화는 없었다.
“너도 차라리 잘 됐지? 듣기로는 나 말고도 엄청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다며. 가문에서 이어준 약혼 따위는 거슬렸겠지.”
“…….”
“파혼은 여성에게나 흠이지 남자한테는 큰 문제는 아니니까. 거기에…….”
“그만하지.”
어느새 내 시선은 그녀의 얼굴을 담고 있었다.
목소리와 표정은 흔들림이 없었으나, 에리카의 뺨에는 이미 눈물이 한 줄기 흘러내리고 있었다.
“어째서 이리도 망가졌지, 에리카 브라이트.”
“……뭐?”
그게 무슨 말이냐며 나와 눈을 맞추는 에리카였으나, 금세 도망치듯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린다.
“솔직히 말하겠다. 나는 다른 사람보다 감정을 옅게 느낀다. 후천적으로 얻게 된 성향이지.”
“…….”
그렇게 보인다며 에리카는 입을 꾹 다물고 말을 기다린다.
“그렇기에 사랑이니 뭐니 하는 건 잘 모른다. 그런 두루뭉술하고 제대로 정의하기 힘든 감정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허나, 우연치 않게 그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내 것은 아니었으나 한 여인을 진심으로 사랑한 남자의 감정을 함께 공유했지.”
일루아니아를 진심으로 사랑했던 데이우스를 떠올리며 나는 말을 이었다.
“그러니 너에게 이제는 말할 수 있다.”
“…….”
에리카의 눈동자가 떨려온다. 그녀는 내 입이 떨어지지 않기를 바라는 표정을 지었으나.
망설임 없이 말을 뱉었다.
“나는 너를 사랑하지 않았다, 에리카 브라이트.”
“아…….”
꾸득.
에리카의 컵이 더욱 구겨진다. 커피가 가득 차 있었다면 이미 흘러 넘쳐 손과 바닥을 적셨을 정도로.
“단 한 순간도. 너에게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껴본 적이 없다.”
“그……래, 당연하겠지.”
내가 아카데미에서 파면 당하기 전까지 있던 시간은 세 달.
에리카 브라이트와 보낸 시간은 두 달 정도 된다.
남은 한 달은 그녀가 나에게 적대적으로 굴었기에 따로 함께하진 못 했으나.
두 달 간은 꽤나 열심히 함께 붙어 다녔었다. 그녀가 그렇게 노력했고, 나 역시 피하지 않았다.
당시의 추억이 스치듯 떠오르지만 안타깝게도 감정의 기복은 존재하지 않았다.
“알고, 있어.”
푹.
고개를 숙이는 에리카. 어느새 방울진 눈물이 그녀의 손등으로 뚝뚝 떨어져 적시고 있었으나.
나는 괘념치 않고 말을 이었다.
“허나, 너는 사랑할 가치가. 사랑 받을 자격이 있는 여인이었다.”
뚝.
에리카의 몸이 굳는다.
서서히 그리고 아주 천천히 고개가 틀어지며 나를 바라봤으나.
나는 커피를 홀짝이며 다시 별 조형물에 시선을 두었다.
“그렇기에 나는 너와 함께 시간을 보냈고, 네가 웃어주길 바랐다. 그리고 내가 너를 사랑하길 원했다.”
“아…….”
“하지만 에리카, 지금의 너를 봐라.”
개인적으로 그녀가 참 안타까웠다.
“지금의 너는, 내가 처음 봤던 에리카 브라이트와는 다르다.”
그녀는 멍하니 나를 바라보고 있었기에 나는 위로 아닌 위로를 이어간다.
“사랑이란 감정에 눈이 멀어, 제대로 된 판단도 하지 못하고. 스스로의 선택이 옳다고 생각했으나 결국 어떤 결과도 만들지 못했다.”
“…….”
“그리고 지금에 와서는 모든 걸 포기하고 놓아버렸다.”
천천히 다시금 에리카와 눈을 맞춘다. 이번만큼은 그녀도 피하지 않고 눈물을 흘리며 나와 마주본다.
나는 코트 품에서 둘둘 말린 종이를 한 장 꺼내들었다. 로베른으로 오던 도중 만났던 브라이트 가문의 하인에게 받은 것이었다.
“파혼서다. 나는 아직 서명하지 않았다.”
“……!”
“우리의 파혼은 아직 성사되지 않았으니, 정인이 있는 너에게 누구도 혼인을 요구하지 못하겠지.”
기드온에 대한 이야기는 핀덴아이에게 이미 들었다.
내가 에리카에게 해줄 수 있는 유일한 배려.
“다시 일어서라, 에리카 브라이트. 실패에 파묻히지 말고 스스로를 기억해내라. 사랑이란 감정에 휘둘려 모든 걸 놓지 마라.”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파혼서를 받아든 에리카를 보며 살며시 웃어주었다.
그건, 그녀의 앞날을 향한 축복.
“자신을 가져라. 첫 만남에서의 너는, 지독히도 아름다운 여성이었으니.”
“아.”
“그 파혼서는, 네가 다시 스스로를 향한 확신을 찾았을 때. 이제 누구에게도 휘둘리지 않게 되었을 때.”
툭.
머리에 손을 얹어 준다.
“다시 한 번. 찬란하리만치 아름답던 에리카 브라이트가 되었을 때.”
에리카는 지그시 눈을 감고 내 손길을 느끼고 있었다.
“그때 내게 가져와라, 이별을 매듭짓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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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의 사령술사가 되었다-41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