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Tyrant of a Defense Game RAW novel - Chapter 1
◈ 001. GAME CLEAR
“깼다-!”
소리치며 두 팔을 위로 쭉 뻗었다.
내 앞의 컴퓨터 모니터에는 ‘CLEAR’라는 글자가 큼직하게 떠올라 있었다.
이 게임의 최종 스테이지를 방금 막 깬 참이었다.
“씨발! 깼다! 깼다고! 내가 이 빌어먹을 게임을 깼다!”
훌쩍, 나는 조금 감동해서 눈물마저 찔끔 흘렸다. 이거 깨느라 반년쯤 고생한 걸 생각하니 더욱 코끝이 찡했다.
타워디펜스&던전오펜스 RPG, .
벌써 출시된 지 10년이 넘은, 고전이라면 고전 게임이다.
영웅들을 뽑고 육성해 도시를 지키고, 도시 앞의 던전을 클리어하는 게임으로, 턴제 전략 RPG를 표방하고 있다.
캐릭터들을 맵에 배치하고 하나씩 조작하는 식의.
그렇게 애지중지 키운 영웅이 실수로 죽기라도 하면 살릴 수 있는 방법이 없어, 하드한 난이도로도 유명했다.
당시에는 세계적으로 꽤 인기 있었지만 이제는 고전이 되어 버린 옛날 게임이다. 이걸 왜 이제 와서 깨고 있느냐 하면.
우선 첫째 이유. 최고 난이도로 클리어한 사람이 아직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최고 난이도인 ‘지옥’. 거기에 진행 상황이 강제로 덧씌워져 저장되는 ‘철인’ 모드. 흔히들 ‘지옥 철인’이라고 줄여 부르는 난이도다.
이 게임은 유저들의 클리어 데이터를 모두 서버에 저장하고 랭킹을 매긴다. 하지만 ‘지옥 철인’은 아무도 깬 사람이 없었다.
지옥의 아랫단계인 전설 난이도에서 철인 모드로 클리어한 사람도 있었고, 철인 모드를 끄고 그냥 지옥 난이도로 깬 사람도 있었지만, 지옥 철인은 아직까지 성공자가 전무했다.
하지만 게임이 나오고 10년이 지난 지금, 드디어 성공자가 등장했다. 그래, 그게 바로 나다!
전인미답의 영역에 도전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 아니던가.
정복되지 않은 산을 넘기 위해 오르듯이. 그래서 도전했다.
그리고 둘째 이유.
– 와 ㅁㅊ 고전덕후 아재 이걸 깨네
– ㅅㅅㅅ!!
– ㅋㅋ 고덕새끼 근성 하나는 진짜 인정
– 세계최초 ㅊㅊ
– 반년동안 고생 많았슴 ㅅㄱㅅㄱ
게임을 켜 놓은 모니터 옆의 다른 모니터, 방송 송출용 모니터 채팅창에 채팅이 주르륵 쏟아졌다.
나는 그 채팅 로그를 보며 괜히 흐뭇하게 웃었다.
“제가 말했죠, 여러분? 아무리 어렵다고 해도! 게임은 클리어되기 위해 존재한다고!”
나는 게임 방송인, 그 중에서도 고난이도 고전 게임만 플레이하는 콘셉트의 방송인이다. ID부터가 ‘고전덕후’다.
시청자가 많냐고 하면, 이게 의외로 또 꽤 된다.
추억팔이는 언제나 있기 있는 콘텐츠거든. 고난이도에 고통받는 것도 늘 인기 있는 콘텐츠고.
평균 시청자는 3천명 정도지만, 최종 스테이지에 도달하자 1만명을 넘었고, 클리어 소식이 퍼졌는지 시청자들이 더 몰려들고 있었다.
[‘미션요정’ 님이 10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오늘은 잘난 척 해도 인정해준다. 약속대로 쏩니다
클리어하면 후원 쏜다며 미션을 걸었던 고정 시청자들이 하나 둘 후원금을 보내기 시작했다.
[‘똥겜믈리에’ 님이 5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아니 반년은 더 봐야 되는데 깨버리면 어캄?
[‘까망상자’ 님이 1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이걸 사네; 안전자산인줄 알고 미션 건건데;; 당했따
[‘노잼방송만보면짖는개’ 님이 3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오늘은 짖을 수가 없네 옛수
“아이고~ 도네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열심히 하겠습니다!”
후원이 쏟아지고, 나는 감사 인사를 하며 멘트를 받아치고, 시청자들은 신이 나서 떠들어 댔다.
채팅창은 축제 분위기였다.
10년간 누구도 깨지 못한 난이도를 세계 최초로 클리어. 게이머로서 이만한 업적이 또 있을까.
이 과정을 함께해 온 시청자들은 자기 일인 것처럼 기뻐해 주었다.
– 근데 최종결전에서 성녀님 죽은 거 넘 슬픔 ㅠ R등급 캐인데도 그동안 캐리했는데
– 어쩔 수 없었지…… 2번 파티로 시선 안 끌었으면 보스한테 접근도 못했음
– 난 3번 파티 전멸할때 육성으로 소리지름; SSR 영웅만 모은 최강팟이었는데 그게 죽네
– 1번 파티도 주인공 루카스 빼고 다 갈려나가서 조마조마했자너;
시청자들은 지난 반년 간 게임 캐릭터들과 나름 정이 들었는지, 최종 결전에서 죽은 캐릭터들을 이야기하며 슬퍼하기도 했다.
이 게임은 인게임 재화로 영웅들을 ‘뽑아서’ 키우는 방식이다.
랜덤에 등급제라, SSR-SR-R-N등급으로 분류된 영웅들을 선별하고 육성한다.
시청자들은 저마다 좋아하는 캐릭터가 달랐고, 각자 좋아하는 캐릭터들에게 감정을 이입해 방송을 보았다.
강하고 멋진 SSR등급 캐릭터부터, N등급이지만 빼어난 활약을 보여 주는 캐릭터들까지.
‘결국 다 죽었지만…….’
나는 쓰게 웃었다. 이 지랄 맞은 난이도의 게임은 희생 없이 나아갈 수가 없는 구조였다.
그래도 최대한 아끼고 살려 가며 최종 스테이지까지 왔는데, 보스전에서는 결국 주인공 빼고 다 죽어 버렸다.
뭐, 내 목적은 전원 생존이 아니라 엔딩이었으니까…….
– 야! 깼으면 된 거야! 제국 지켰잖아!
– 우리 주인공 루카스 혼자 살아서 보스 막타치는 장면 링크 >>여기<<
– ㅁㅊ 개존멋…… 이건 유툽각이다
– 크 이게 주인공이지
나도 그 링크 영상을 켜서, 시청자들과 함께 한 번 더 보았다.
주인공인 루카스는 금발을 흩날리며 보스에게 검격을 날렸고, 영원히 쓰러지지 않을 것 같던 최종보스 ‘잠들지 못하는 호수왕녀’는 마침내 죽었다.
영상을 끄고 게임으로 돌아오자, 여전히 루카스는 그곳에 서 있었다.
[LAST STAGE – CLEAR!] [STAGE MVP – 루카스(SSR)]주르륵 펼쳐진 스테이지 클리어 결과창 뒤에서.
자신이 쓰러뜨린 보스몹의 앞에서, 산처럼 쌓인 아군과 적군의 주검들 위에서, 하염없이…….
“…….”
어째서일까.
게임 캐릭터에 불과한데도, 그 등이, 조금 쓸쓸해 보였다.
[업적 달성!] [지옥 난이도&철인 모드로 클리어 – ‘지옥의 철인’] [업적 달성에 따른 특전이 지급됩니다!] [클리어 랭킹 계산 중…….] [클리어 랭킹 갱신!] [World Ranking 1st – Player Name ‘고전덕후’]랭킹이 갱신되었고, 아니나 다를까 나는 세계 1등이 되었다. 시청자들이 한 번 더 축하해 주었다.
나는 조용히 스샷을 찍었다. 찰칵!
뒤이어 엔딩 컷씬이 나오고, 스탭롤이 흘렀다. 굳이 스킵하지 않았다. 이 여운을 즐기고 싶었다.
– 이거 개발사에서 고덕이한테 뭐 상이라도 줘야 하는 거 아니냐?
스탭롤이 절반쯤 흘렀을 즈음, 시청자 중 하나가 말했다.
– 못 깨게 만들어놨다고 욕 처먹던 난이도 깨서 입증해줬는데 뭐라도 줘야지;
– 아 그건 ㄹㅇ이지 ㅋㅋ
– 고전덕후 아재 없었으면 영영 아무도 못깰뻔 했자너~
– 개발사 아직 영업하냐? 누가 메일이라도 보내봐
나는 나지막이 웃었다.
“에이, 뭔 개발사에서 상을 줘요. 필요 없어요. 여러분이랑 반년 간 재밌게 놀았으면 됐지.”
– 그렇게 말하지만 고덕이의 두 눈은 욕망으로 번들번들
– ㅋㅋ 막상 주면 좋다고 받을 거면서 이쉑
– 야 근데 폐업했나본데? 회사 사이트 없는데…… 진짜 망했나?
– 차기작도 10년간 없는 거 보면 렬루다가 망했나본데용
– 그럼 클리어 데이터 서버는 누가 관리하고 있는 거임?
시청자들이 그 화제로 떠드는 동안, 나는 거의 끝까지 내려간 스탭롤을 감회에 젖은 채 바라보고 있었다.
게임 클리어 특유의 배부른 달성감과 찌뿌듯한 허무감이 뱃속을 채우고 있었다.
그때였다.
– 안녕하세요, 고전덕후 님. 의 디렉터입니다.
갑자기 이런 채팅이 올라왔다.
채팅창이 순식간에 어수선해졌다.
– 모야모야 찐임???
– 당연히 사칭이겠지 ㅋㅋ 순진한 것들아 저걸 믿냐
– 저 닉 반년전부터 계속 보던 청자인데? 진짜 제지 디렉터임?
– 디렉터님 제지2 내주세요 고덕 더 고통받게!!!
놀란 나는 그 채팅을 친 아이디의 기존 채팅 로그를 살폈다.
반년 전, 내가 를 플레이하기 시작할 때부터 방송을 보기 시작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반년 동안 단 한 번도 채팅을 친 적이 없었다.
그런 사람이 내가 지옥철인 난이도를 클리어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말을 걸어온 것이다.
– 먼저, 감사드립니다. 솔직히 포기하고 있었습니다. 누구도 성공하지 못하리라 생각했거든요.
자칭 디렉터가 채팅을 이어갔다.
– 하지만 이렇게 성공해 주셔서, 진심으로 안도했습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아뇨 뭐…… 감사하실 것까지야…….”
나는 머쓱하게 뒷머리를 긁었다.
이 사람이 진짜 디렉터든 아니든, 기분은 좋았다. 게임 하나 끝판 깼다고 감사 인사까지 들을 줄이야.
– 아직 저희에게 희망이 남아 있어서, 다행입니다.
“……?”
나는 의아하게 눈을 깜빡였다.
희망? 저건 또 뭔 개뿔 같은 소리?
아참, 회사 망했댔지. 그래서 포기하고 있었는데 내가 열심히 게임 하는 거 보고 희망을 얻었다, 뭐 그런 말인가?
– 당신은 자격과 능력을 입증했습니다. 이곳에 오셔서 부디 저희를 도와주십시오.
“어, 음…….”
뭐 2탄이라도 개발 중인가? 그거 베타 테스트라도 도와 달라는 말인 걸까? 그래서 회사까지 오라고?
잘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하는 그 사람에게 내가 뭐라고 묻기 위해 입을 여는 순간,
‘어?’
주위가 핑글, 돌았다.
게임을 너무 오래 해서 현기증이라도 나는 건가.
하긴 마지막 스테이지 와서는 밥도 안 먹고 물도 안 마셨지. 깨는 데만 족히 몇 시간은 걸린 것 같은데.
듀얼 모니터의 빛이 산란했다. 주위가 빙글빙글 돌다 못해 홱홱 회전하기까지 했다.
채팅창의 글자들과 엔딩 스탭롤의 새카만 화면이 뒤섞인다.
아무래도 너무 무리했나 보다. 게임하다가 기절까지 해 보네.
그래도 쓰러지면 시청자들이 119에 신고라도 대신 해 주겠지? 나는 그런 태평한 생각을 하며 쓰러졌다.
의식을 잃기 전, 마지막으로 내 눈에 보인 것은.
– Thank you for playing.
– 를 플레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엔딩 스탭롤 맨 끝에 적힌, 그 문구였다.
그리고 내 의식은 새카맣게 물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