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Tyrant of a Defense Game RAW novel - Chapter 225
◈ 225. [STAGE 9] 시위를 떠난 화살
턱!
[블랙 퀸]을 쥐기 위해 뻗어지는 데미안의 손을, 쿠레하가 붙잡았다.“데미안.”
“…….”
“이 총에서 느껴지는 사악함은 보통이 아니야. 정말로, 괜찮은 거야?”
“놔요. 당장.”
“황자 전하께서도 말리셨다며. 이건…….”
“놓으라니까!”
데미안의 입에서 평소에는 나오지 않던 거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반을 보러 가야 해요! 놓으라고!”
“……데미안.”
“이 총만 있으면, 죽은 반을 다시 만날 수 있어요…… 뭐가 문젠데요? 나는 반을 만나고, 여러분은 저 뱀을 퇴치하고, 모두에게 좋은 거잖아?”
“…….”
쿠레하는 천천히 데미안의 손을 놓아주었다.
“이것만 기억해. 데미안. 이곳에도 너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이 있어.”
들은 체도 않고 데미안은 손을 뻗어 블랙 퀸을 움켜쥐었다.
“……그걸 꼭 기억하렴.”
화아아악!
예전보다 몇 배는 더 짙고 사악해진 오오라가 데미안의 온몸을 휘감았다.
《왔구나, 데미안.》
그 속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자. 꿈을 꾸러 가자.》
목소리는 올롭의 것 같기도 했고…… 반의 것 같기도 했다.
《이번에는 네가 절대로 깨지 않을 만큼, 행복한 꿈을 꾸게 해 줄게.》
그 달콤한 목소리를 들으며, 데미안은 의식을 잃었다.
***
정신을 차리자 산의 정상이었다.
데미안은 얼떨떨하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새벽의 동이 터오는 야트막한 작은 산이었다. 저편에는 널따랗게 펼쳐진 하늘 아래로 끝없는 대지가 펼쳐져 있었다.
데미안은 지금 자신의 상황을 알아챘다.
고아원을 탈출해서, 산의 정상에 올랐던 그날의 새벽이다.
‘뭔가…… 많은 일을 겪은 것 같은데…….’
데미안은 두통이 이는 이마를 손으로 쓸었다.
머릿속이 뿌옇다. 사고가 잘 이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아무리 돌이켜 봐도, 고아원을 탈출해서 여기에 도착했다는 것 말고는 아무런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른 일이 있었나?
“데미안, 나랑 약속해 줘.”
그때 옆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놀라서 돌아보자 반이었다.
까무잡잡하게 탄 피부에, 남자아이처럼 짧은 머리칼. 흉이 진 양뺨.
데미안이 사랑하는 소녀의 얼굴이 바로 앞에 있었다. 데미안은 가만히 눈을 깜빡였다.
“응? 약속? 어떤 약속?”
“이 바깥세상 전부를 모험하기로.”
반이 환하게 웃었다.
“우리의 눈에, 이 넓은 세상 전부를 담아 보기로.”
데미안은 반의 눈부신 미소를 멍하니 마주보다가,
“……아니.”
고개를 저었다.
“그러지 말자.”
“어? 응?”
“모험 같은 거, 하지 말자.”
“뭐……?”
“일확천금을 노려서 용병도 되지 말고, 세계의 끝을 보겠답시고 남쪽으로 가지도 말자.”
“데미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데미안 스스로도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몰랐다. 하지만, 더 이상 모험을 떠나서는 안 된다는 사실만은 명확히 알고 있었다.
영문을 모르고 눈을 깜빡이는 반에게 성큼 다가선 데미안은 그녀의 턱을 조심스럽게 양손으로 잡은 뒤,
입을 맞췄다.
“……?!”
화들짝 놀란 반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천천히 입술을 뗀 데미안이 흐릿하게 웃었다.
“갑자기 미안해. 그런데 어차피 내가 안 했으면 네가 하려고 했지?”
“너, 너너, 너어어……!”
“여기서 북쪽으로 가면 큰 도시가 있어. 거기라면 우리가 할 일도 많을 거야. 그곳에서 시작하자.”
데미안은 손을 뻗어 반의 두 손을 꼭 쥐었다.
소녀의 두 손은 따스했다.
“모험 같은 거 관두고, 검이나 치유마법 같은 위험한 일도 관두고…… 조용하고 평화롭게 살자, 반.”
“…….”
반은 멍한 눈으로 그런 데미안을 마주보다가, 이윽고 씩 웃으며 답했다.
“……네가 그러길 원한다면, 그렇게 할게. 데미안.”
반의 손가락이 데미안의 손 안으로 파고들었다.
“너와 함께라면 어디든 좋으니까.”
“……응!”
소년소녀는 손을 잡고 산 아래로 달려갔다.
둘의 얼굴에는 희망이 넘쳐났다.
***
그렇게 해서, 새로운 인생이 시작되었다.
번화한 도시의 구석에서 두 사람은 삶을 일궈가기 시작했다.
싸구려 숙소에서 지내며 허드렛일을 했다. 골목을 청소하고, 식당에서 설거지를 하고, 가로등을 켜고 편지를 배달했다.
가판대에서 소리를 질러 호객하고 손에 물집이 잡히도록 감자 껍질을 벗겼다. 주린 배를 참으며 눈곱만한 삯을 저축했다.
벌이가 시원찮았기에 두 사람은 늘 허리띠를 조이며 살아야 했다.
하지만 행복은 어디에나 있었다.
식당에서 얻어 온 남은 식재료로 데미안이 솜씨를 부려 요리를 했다. 딱딱한 빵과 시든 채소와 퍼석한 고기로도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극장에 들어갈 돈이 없어, 극장 바깥 나뭇가지 위에 앉아서 훔쳐본 연극은 눈물 나게 감동적이었다.
밤늦게 일이 끝나고 손을 잡고 도심을 산책할 때. 몸에선 땀 냄새가 나고 손에서는 생선 비린내가 풍겨도.
매일매일이 아름다웠다.
소년소녀는 성실했기에 곧 인정받았다.
데미안은 머리가 좋고 셈이 빨라서 인근 상단의 계산원으로 취직할 수 있었고, 반은 쾌활하고 붙임성 좋은 성격 덕에 상가의 고정 판매원이 되었다.
치유마법과 검은 잊은 지 오래였다.
그런 것 없어도 행복했다.
***
세월이 흘렀다.
두 사람은 성년이 되었다. 데미안도 반도 각자의 직장에서 없어서는 안 될 사람이 되었다. 주머니는 여전히 빈곤했지만, 청춘은 젊고 싱그러웠다.
그리고, 어느 가을 축제날.
펑! 퍼버벙!
광장에 쏟아져 나온 사람들이 손을 잡고 춤추고, 사방에서 시끄러운 노랫소리가 울리고, 하늘에서 폭죽이 터지는 그 가을밤.
“결혼하자.”
데미안은 반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청혼했다.
싸구려 은으로 만든 반지를 앞으로 내밀고, 너무 긴장해서 새빨갛게 익어 터질 것만 같은 얼굴로. 반쯤 울상이 되어 데미안은 프로포즈했다.
그 바보 같은 얼굴을 배를 잡고 웃으며 내려다보던 반은 이윽고,
“……응!”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으며 수락했다.
두 사람은 반지를 서로 끼워주고 키스했다. 주위에서 축제를 즐기던 시민들이 일제히 환호성과 휘파람을 날리며 축복해 주었다.
결혼식을 올릴 여유는 없었다. 혼인신고만 하고, 두 사람은 신혼을 시작했다.
집을 살 형편이 안 되어서 작고 허름한 방을 빌렸다. 거미줄을 치우고 곰팡이를 밀고 하얀 벽지를 발랐다.
이웃이 버린 가구를 주워 와서 수선하고 페인트칠을 했다. 꽤 그럴싸한 신혼집이 되었다.
좀먹은 침대에서 매일밤 손을 잡고 잠들며, 두 사람은 마냥 즐거웠다.
주말이면 몇 없는 외출복을 깨끗하게 차려입고 뒷골목 소극장으로 가서 단막극을 봤다. 끝나고 오는 길에는 외식을 했다.
가성비를 따지다 보니 항상 싸고 양 많은 가게만 들어가야 했지만. 이런 생활을 할 수 있음에 감사했다.
그리고, 몇 달 뒤.
“나 임신했대.”
퇴근해서 돌아온 데미안에게, 집에서 기다리던 반이 울면서 말했다.
“나 임신했다구, 데미안!”
“……!”
멍하니 굳어 있던 데미안은 헐레벌떡 달려와서 반을 와락 끌어안았다. 데미안의 몸에 매달려서 반이 기쁨의 비명을 질렀다.
“우리 아이야, 우리 아이! 내가 엄마가 된다고!”
시간은 순식간에 흘러갔다.
열 달 뒤, 산파가 집으로 찾아왔고, 반의 힘겨운 비명을 들으며 데미안은 문 앞에서 어금니를 물어뜯었다.
응애……! 응애……!
아이는 무사히 태어났다.
“우리 아들이야…….”
해쓱해진 얼굴로 품의 핏덩이를 매만지던 반이 씩 웃으며 물었다.
“애 이름은 뭘로 할까?”
“으윽, 생각해 둔 게 없는데…….”
“네가 항상 그렇지 뭐…….”
구시렁거린 반이 데미안에게 눈짓했다.
“그럼 네가 가장 존경하는 사람의 이름을 붙이는 건 어때?”
데미안은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가장 존경하는 사람?
‘내가 가장 존경하는 사람은…….’
한 남자의 이름이 뇌리를 스쳤다. 데미안은 저도 모르게 내뱉었다.
“그러면, 아이의 이름은…….”
***
세월이 흘렀다.
아이는 나무처럼 쑥쑥 자랐다.
육아와 직장생활을 병행하다 보니 두 사람은 정신이 없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수입이 모두 필요했기에 두 사람은 육아도 일도 포기하지 않았다.
하루의 절반을 울어대던 아이는 어느새 기어 다녔고, 스스로 섰고, 걸음마를 시작했다.
아이가 처음으로 두 발로 걷던 날, 데미안은 아들을 품에 안고 온 동네에 자랑을 하며 도시를 뛰어다녔다.
반은 부끄러워서 한쪽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나머지 손으로 데미안의 등을 때렸지만, 그 뒤를 함께 뛰어다녔다.
“아부! 어마!”
아이가 말을 시작했다.
아이가 젖을 떼고 이유식을 시작했다. 아이의 발간 잇몸 사이로 이가 돋았다. 머리칼이 덥수룩하게 자라서 깎아줘야 했다.
세월이 흘렀다.
어느새 아이는 일곱 살이 되었다.
데미안과 반은 어린 시절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한 게 천추의 한이었기에, 아이만은 제대로 교육시키자고 약속했다.
어릴 때부터 책을 좋아하던 아이는 학교에 들어가서도 두각을 드러냈다.
아이가 매일같이 상장을 받아올 때마다 데미안과 반은 우리 아들 천재라며 동네방네 자랑을 하고 다녔다.
세 가족은 주말이면 소풍을 가곤 했다. 도시락을 싸고 돗자리를 챙겨들고, 공원으로 강가로 야유회를 떠났다.
세월이 흘렀다.
열세 살이 된 아이는 기숙사 학교에 입학했다. 의젓해진 아들은 자신은 걱정 말라며 기숙사에 들어갔고, 반과 데미안은 조용히 눈시울만 붉혔다.
세월이 흘렀다.
데미안은 상단 안에서 승진을 거듭했다. 벌써 20년 가까이 근속했기에 상단 안에서의 입지도 높았다.
반은 상가 건물 하나를 인수해서 자신의 가게를 냈다. 빚을 좀 지긴 했지만, 가게가 장사가 잘 되어서 금방 갚을 수 있었다.
정들었던 반지하 집을 떠나, 도시 외곽의 근사한 저택으로 옮긴 것도 이때였다.
세월이 흘렀다.
학교를 졸업한 아들은 도시의 시청에 행정관으로 합격했다.
합격이 발표되던 날, 데미안과 반은 어린 시절의 아들을 대하던 것처럼 아들을 끌어안고 동네를 한 바퀴 돌며 자랑을 했다.
아들은 부끄러워서 얼굴을 가리고 부끄러워했다.
세월이 흘렀다.
아들은 진급했다. 시청 근처에 집을 얻어서 스스로 살림을 차렸다.
어느새 데미안과 반의 얼굴에 주름살이 꽤 늘었다.
두 사람은 여전히 주말이면 손을 잡고 데이트를 갔다. 도시 중앙 대극장에 나들이를 가고, 근사한 식당에서 식사를 했다.
세월이 흘렀다.
아들이 아름다운 아가씨를 데리고 소개를 하러 왔다. 이미 결혼을 약속한 사이라고 했다.
데미안과 반은 결혼식을 제대로 올리지 못했기에, 아들의 결혼식은 성대하게 치러 주기로 했다.
아들의 결혼식에 많은 사람들이 왔다. 모두가 젊은 청춘의 새 결합을 축복하며 박수를 치고 꽃을 뿌렸다.
이 모습을 지켜보며 데미안과 반은 서로의 손을 꼭 잡았다.
“우리도 새로 결혼식이나 올릴까?”
“이 영감이 주책없게 무슨 소리래.”
데미안의 제안에 반이 핀잔을 주기는 했지만, 두 사람은 얼마 뒤 진짜로 황혼 결혼식을 새로 올렸다.
아들과 새며느리에게도 비밀로 하고, 단 둘이서 조용히.
“이 나이 먹고 결혼식이라니, 진짜…….”
먼지 섞인 햇살이 떨어지는 조용한 신전에서.
웨딩드레스를 입은 채, 주름진 얼굴로도 반은 아름다웠다. 환하게 미소하며 반이 말했다.
“어지간히도 나를 좋아하는구만, 영감!”
데미안은 말없이 반을 끌어안고, 그 입술에 키스했다.
세월이 흘렀다.
세월이 흘렀다.
……세월이, 흘렀다.
***
침대에 누운 채, 데미안은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옆의 의자에 앉은 반이 데미안의 손을 꼭 쥐었다.
“행복했어, 여보?”
“그럼. 행복했지.”
데미안은 앞이 잘 보이지 않는 눈으로 천장을 보며 중얼거렸다.
“이 이상 어떤 행복을 누릴 수 있겠어…….”
“…….”
“당신은 행복했어, 여보?”
데미안이 묻자, 반이 흐릿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럼, 이 이상 행복할 수가 없었지.”
두 사람은 잠시 손을 잡은 채 아무런 대화도 나누지 않았다.
평온한 정적이 안락한 침실을 메우고 있었다.
그때 침실 문 밖이 소란스러워졌다. 어린아이들이 웃는 소리가 들렸다.
“아, 우리 아들이 온 모양이네.”
반이 얼른 달려 나가서 문을 열었다.
“아버지!”
평민 출신인데도 도시의 시장 자리에 오른 자랑스러운 아들이 손주들을 데리고 침실 안으로 들어왔다. 데미안은 두 팔을 벌려 아들을 맞았다.
“어서 오렴, 내 자랑스러운 아들.”
그리고, 데미안은 아들의 이름을 말했다.
“……애쉬…….”
그 이름을 내뱉는 순간.
“어?”
늙은 데미안의 입가로, 흐릿한 신음이 새어나왔다.
흐리멍덩하던 머릿속에.
선명한 파문이 이는 듯한 감각이었다.
저벅. 저벅.
침대 앞에 와서 선 아들이 싱긋 미소했다.
새카만 흑발에 역시 새카만 흑안을 번뜩이는, 젊고 잘생긴 청년.
애쉬가- 말했다.
– 데미안.
– 이렇게 가만히 쪼그려 앉아서 죽을 때를 기다리고 있을 거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