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Tyrant of a Defense Game RAW novel - Chapter 227
◈ 227. [STAGE 9] 시위를 떠난 화살 (3)
쿠구구구구-!
요르문간드의 머리 위.
거세게 진동하는 뱀의 몸에 올라탄 채, 우리는 필사적으로 마지막 신경 중추를 부수려고 안간힘을 쓰는 중이다.
“조금만 더 갉아내 봐!”
“거의 다 부쉈어! 어떻게든, 조금만 더……!”
지난 사흘간의 작전 수행으로 모두가 탈진해서 쓰러지기 직전이지만, 어떻게든 버텨 가며 신경 중추 파괴에 매달리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제 정말 끝이니까.
“큭……!”
바로 앞에…… 성벽이 보인다.
이제 고작 수십 미터 앞으로 다가온 성벽을 보며 나는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빌어먹을, 빌어먹을, 빌어먹을!’
마지막 한 시간 동안, 우리는 최선을 다했다.
쥬니어는 다른 마법사들의 보조를 받으며 기어코 [원소 해체]를 사용했고, 마법 방어력이 깎여 나간 신경 중추에 레이나가 전력을 다한 바람 마법 폭격을 꽂아 넣었다.
켈리베이가 이 긴박한 와중에도 드릴과 곡괭이를 수리하고 강화해 주었고, 움직일 힘이 남은 사람들은 한 번이라도 더 신경 중추에 공격을 꽂아 넣었다.
하지만, 최후의 1퍼센트.
갖은 경화 버프가 떡칠이 되어, 이 마지막 한 틱이 깎이지 않고 있었다.
‘체감상 물리 내성이 95퍼센트는 되는 것 같다. 마법 방어력은 계측조차 안 돼. 사실상 간섭불가 레벨인 것 같고…….’
이렇게 지랄 맞은 상태라고 해도, 시간만 충분했다면 부술 수 있었을 것이다.
문제는 빌어먹을 늑대인간 새끼들이 우리에게서 시간을 앗아 갔다는 것.
펑! 퍼버버벙!
쿠과과광-!
성벽 위에서는 포탄 따위를 마구잡이로 쏘아 내고 있다. 어떻게든 뱀의 진격을 1초라도 늦추기 위해서.
별 소용이 없다는 걸 알지만, 때때로 폭발이 우리 주위로도 떨어져서 위험하기도 하지만. 내버려 두었다. 지금은 무슨 짓이든 해야 한다.
‘성벽에 도달하기까지 얼마나 남았지?’
나는 성벽과 요르문간드 사이의 거리를 어림했다.
요르문간드가 성벽을 부수고 들어가 도시를 짓밟고 ‘문명포식’을 시작하면, 지금까지 해 온 모든 일이 수포가 된다.
나는 피부가 온통 벗겨진 피투성이 손으로 곡괭이를 다시 움켜쥐었다.
그 전에 막아야만 하는데……!
저벅. 저벅.
그때였다.
누군가가 내 옆으로 오더니,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나는 홱 돌아보았다. 뭐야?
“……무명……?”
내 옆에 와서 선 것은 무명이었다.
뭐야, 왜? 바쁜 거 안 보여? 너도 저거 부수는 거나 도와줘!
“동료들을 뒤로 물려라, 애쉬.”
“뭐?”
“여기부터는 내가 맡겠다.”
스릉-
무명이 뽑아든 낡고 녹슨 검에 서서히 흰 빛이 어리기 시작했다.
나는 눈을 깜빡였다. 이 녀석, 호수왕국 밖에서는 힘을 못 쓴다지 않았나?
“호수왕국에 악몽이 들어찬 것도, 그 악몽이 밖으로 새어나가게 만든 것도, 호수왕국의 책임이다.”
쓰게 웃은 무명이 두 손으로 검을 붙잡고, 가슴 앞에 세웠다.
“호수왕국의 사람으로서 책임을 지고, 요르문간드는 내가 막으마.”
콰아아아아-!
무지막지한 빛이 무명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더니 검에 집결되기 시작했다.
고대의 마법 같은 것에는 당연히 무지한 나지만, 바로 알 수 있었다.
저것은 자신의 생명을 불태워 쓰는 기술이다.
“뭐하는 거야, 무명?! 죽을 생각이야?”
“호수왕국의 밖에서 이 정도 힘을 쓰게 되면…… 아마도 여기서 죽겠지.”
무명은 덤덤하게 내뱉으며 빛의 검을 더욱 크게 만들었다.
콰아아아!
“하지만 내가 죽으면 너의 도시를, 그리고 그 위의 모든 사람들을 지킬 수 있다.”
“무슨…….”
“나쁘지 않은 교환 아닌가.”
나는 머뭇거렸다.
……솔직히 말해서, 그렇다고 생각해 버렸다.
누군가의 목숨 하나를 던져서 요르문간드를 물리칠 수 있다면, 그것은 합리적인 교환이다.
애초에 수십 수백 수천 명이 죽어 나가는 전장이 이곳 괴수전선이다.
하지만, 그것은…….
옳은가?
“나는 오래 살았다, 애쉬. 죽음은 두렵지 않아. 그 죽음이 호수왕국의 과오를 지우기 위해서라면 기쁘기까지 하다.”
몰아치는 바람에 흩날리는 무명의 백발 사이로 문득 그녀의 두 눈이 보였다.
“다만, 부탁이 있다.”
처음 마주본 그녀의 두 눈은, 맑고 깊은 호수의 빛깔이었다.
“호수왕국을 탐사하는 것을 포기하지 말아다오. 그 어둠 속에 계속해서 빛을 밝혀다오.”
“…….”
“너라면 믿고 맡길 수 있기에 부탁하는 것이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흐릿하게 마주 고개를 끄덕인 무명은 검을 위로 치켜 올렸다.
‘빛의 검으로 그대로 요르문간드의 머리를 내려찍을 셈인가?!’
나는 마지막까지 부위파괴 작업 중이던 파티원들에게 소리를 질렀다.
“전원 대피! 즉시 그 자리를 벗어나!”
뒤를 돌아본 파티원들은 무명이 치켜든 거대한 빛의 검을 보고는 기겁했다. 나는 다급하게 팔을 휘둘렀다.
“시간 없어! 요르문간드의 몸 아래로 뛰어내려! 당장!”
파티원들은 즉시 부위파괴 작업을 중단하고, 갈고리를 걸고 요르문간드의 몸 좌우로 뛰어내렸다.
탈출한 파티원들의 안전을 눈어림으로 체크한 뒤, 나는 무명을 보았다.
무명은 땀을 비 오듯 쏟으며 빛의 검을 완성해 가고 있었다.
이것으로, 크로스로드는 다시 한 번 살아남는다.
세계는 그 명맥을 유지한다…….
“……!”
그 순간.
강렬한 예감이 들었다.
– 이 세계를 클리어하고, 진엔딩으로 이끌어 주세요.
내가 이 세계에 불려와서, 이 고생을 하고 있는 이유.
자칭 디렉터 에이더 그 자식이 말했던- ‘진엔딩’이라는 것의 존재.
그 진엔딩으로 가기 위해 클리어해야 할 조건에는,
덥석!
“멈춰, 무명!”
……무명의 생존이 있어야 한다.
나는 무명의 어깨를 붙잡고 다급하게 말렸다. 무명은 놀란 눈으로 나를 보았다.
명쾌한 근거는 없었다. 그저 내 감이었다. 하지만 확신에 가까운 감이었다.
742번 이 게임을 클리어하면서 한 번도 도달하지 못했던 진엔딩.
그리고 742번 이 게임을 하면서 한 번도 만나지 못했던 호수왕국의 왕녀, 무명.
이 둘은 관련이 있다.
여기서 무명이 죽게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다른 방법이 없지 않나, 애쉬!”
“…….”
나는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무명의 말대로다.
지금 이 상황에서 요르문간드를 막을 방법은 무명이 결정타를 날리는 것뿐.
진엔딩으로의 가능성보다, 당장의 게임 오버를 막는 것이 최우선 아닌가?
하지만, 진엔딩을 포기한다면 지금까지의 모든 일이 수포가 될 수도 있지 않나?
‘젠장, 어째야 하지? 어떡해야 하냐고!’
공략은 언제나 ‘타협해도 되는 것’과 ‘타협해서는 안 될 것’을 구별해야 한다.
무엇을 버려야 하나?
누구를 죽여야 하나?
일촉즉발의 순간,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나는, 무엇을 위해서…… 또 이런 선택을 반복해 나가야 하는가?
그때였다.
반짝.
감긴 눈꺼풀 위로 빛줄기가 아른거렸다. 나는 퍼뜩 눈을 떴다.
반짝. 반짝. 반짝.
성문 쪽에서 빛이 반짝였다. 나는 그쪽을 보았다.
‘……데미안?’
열린 성문 중앙에, 데미안이 곧게 서 있었다.
손에는 신호용 랜턴을 들고서. 내게 빛을 쏘아 보내며.
‘빛으로 신호를 전달하고 있어……?’
스테이지3의 기억이 뇌리를 스쳤다.
에반젤린을 구하러 변경백의 별장으로 떠났을 때. 나는 데미안에게 저격 지원을 부탁했다.
그때 서로 신호를 주고받을 수단으로, 성에서는 저 점등을, 그리고 나는 푸른 불꽃 횃불을 사용했다.
반짝. 반짝. 반짝.
데미안이 내게 보낸 신호는 점등 세 번.
‘이쪽은 괜찮다’는 뜻.
다시 말해서,
‘저격 지원 준비 완료!’
데미안이 멋쩍게 웃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등에는 틀림없이 [블랙 퀸]을 차고 있는데도, 일전의 다크 오오라는 보이지 않는다.
극복해낸 건가?
나는 너를 못 믿고 구금까지 했는데?
“이런 미친 세상에, 데미안!”
이 존나 이쁜 내새끼!
“검 내려, 무명! 생명력 도로 삼키고!”
무명의 등을 짝 후려친 나는 앞으로 달려 나갔다. 당황한 무명이 어버버거렸다.
“돌아와라, 애쉬! 거기에 있으면 내 검을 내려찍을 수 없다!”
“안 찍어도 된다고! 검 거두라니까? 나를 믿어!”
정확히는 내가 아니라…… 내 저격수를 믿어! 이 게임 최고의 치트 캐릭터니까!
얼떨떨해하며 빛의 검을 거두는 무명을 뒤로 하고, 내달린 나는 요르문간드의 머리 신경 중추 옆에 섰다.
인벤토리에서 푸른 불꽃 횃불을 꺼낸 뒤 크게 원을 그렸다.
쏴라, 데미안.
“바로 여기다-!”
***
휙-
신호용 랜턴을 옆으로 내던진 데미안은 양손으로 마총을 움켜쥐었다.
“잘 보여요, 황자님.”
애쉬가 열심히 횃불을 흔드는 모습이 보였다. 그 옆에 뿔처럼 솟은 뱀의 돌기도.
한쪽 무릎을 꿇고 앉은 데미안은 마총의 개머리판을 견착하고, 총선과 가늠쇠와 시선을 정렬했다.
“가능한 가장 강한 화력으로.”
데미안이 마총에 대고 작게 속삭였다.
철컥, 철컥, 철컥……!
그러자 새하얀 마총이 마법적인 빛을 뿜어내며 변형되기 시작했다.
총신이 좌우로 쪼개지더니, 앞으로 쭉 뻗은 두 개의 레일(Rail)을 형성했다.
동시에 마탄이 담긴 탄창이 분해되었다.
탄창 밖으로 나온 일곱 발의 마탄은 서로의 꼬리를 쫓으며 허공에 회전하다가, 하나의 커다란 마탄으로 합쳐지며 레일 사이의 허공에 고정되었다.
치직, 치지지직!
총신이 갈라지고 탄창이 분해된 탓에 마력핵이 훤히 노출되었다.
새하얗게 백열하는 마력핵에서 전류처럼 마력이 튀어오르며 레일에 마력을 공급했다.
쿠구구구구……!
이제 요르문간드는 문자 그대로 코앞.
괴물의 숨결이 데미안의 얼굴에 닿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데미안은 마지막까지 조준을 하고 있었다.
부위파괴뿐만 아니라, 더 깊은 ‘무언가’가 보일 것 같아서였다.
‘아주 잠깐이라도 좋으니까, 멈춰 준다면……!’
그때 애쉬가 품에서 단검을 꺼내들더니,
푹!
뱀의 머리를 찍었다.
대상에게 강제로 스턴 상태를 부여하는 1회성 단검, [스피릿 크래셔]였다.
워낙 요르문간드의 마력 스탯이 높은 탓에, 스턴에 걸린 시간은 문자 그대로 찰나에 불과했지만.
“아.”
데미안에게는 충분하고도 남는 시간이었다.
“보였다.”
데미안의 손가락이 방아쇠를 당겼다.
투콰아아앙-!
마탄이 벼락같은 빛을 내뿜으며 쏘아졌다.
새하얀 마탄은 즉시 요르문간드의 머리 신경 중추에 날아와 꽂혔다.
겹겹이 쌓인 경화 버프와 요르문간드가 타고난 거대한 마법 방어력이 일순 허공에 투명한 배리어처럼 형성되어 마탄을 막아 섰다.
챙그랑-!
그러나, 무용(無用).
우습게 방어를 찢어발긴 마탄은 마지막 한 줄기의 체력만 남아 있던 신경 중추를 꿰뚫고 산산조각 내 버렸다.
요르문간드의 거대한 몸이 즉시 자리에 멈췄다.
하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신경중추 부위파괴 완료로 요르문간드의 방어력이 저하된 그 일순간.
마탄은 그 일순을 놓치지 않았다.
퍼억!
마탄은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탄도(彈道)를 휘더니, 신경 중추를 부순 기세 그대로 요르문간드의 목 뒤로 파고들어-
투콰콰콰콰콰콱-!
관통하기 시작했다.
요르문간드의 몸 내부를.
일직선으로 곧게 뻗은 거대한 뱀의 육체를 내부에서 갈기갈기 찢으며 마탄이 뻗어 나갔다.
신화시대 생명체의 강대한 뼈와 내장과 살점과 가죽을 아무런 저항도 없는 것처럼 가뿐하게 뚫고, 뚫고, 또 뚫었다.
다섯 개의 심장도.
아홉 개의 영핵도.
모조리 관통 당했다.
크르르르륵?!
거대한 뱀의 입에서, 처음으로 비명 비슷한 것이 터져 나왔다.
그 길고 긴 일점관통의 끝에-
푸확!
마탄은 거대한 뱀의 꼬리 끝으로 기어이 뚫고 나오고서야 여력을 잃고 허공에서 소멸했다.
사실상 뱀의 머리부터 꼬리까지를 일직선으로 꿰뚫은 것이었다.
크르아아아아아악!
요르문간드는 거대한 머리를 치켜들고 길고 긴 끔찍한 비명을 토해 낸 뒤,
쿠구궁……!
머리를 땅에 처박았다.
그리고는 움직이지 않았다.
휘이이이-
전장이 고요에 휩싸였다.
뱀이 요동치다가 사방에 흩뿌린 뿌연 먼지 사이에서, 무명의 품에 안겨 바닥으로 탈출한 애쉬가 작게 중얼거렸다.
“……아니, 물리치기만 하랬더니.”
기쁘긴 한데 어처구니도 없다는 목소리였다.
“이걸 킬각을 잡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