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Tyrant of a Defense Game RAW novel - Chapter 25
◈ 025. [Side Story] 상자깡
스테이지 보상상자들이 우르르 내 앞에 놓였다.
R등급 상자 2개, N등급 상자 3개.
‘저번 EX등급 상자에서는 이상한 목걸이만 하나 나왔지.’
나는 내 목에 손을 올렸다. 그때 나온 목걸이가 내 목에 차여 있다.
뭐랬더라? 스토리가 진행되면 사용할 수 있다고 했던가.
‘뭐 얼마나 대단한 기능이 숨어 있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는 당장 도움이 되는 물건을 바란다. 당장 다음 스테이지에서 유용하게 써 먹을 수 있는 걸 주면 좋겠어.
나는 먼저 N등급 상자 3개를 침대 위에 올렸다.
스테이지 보상 상자에서는 주로 소모 아이템과 재료 아이템이 나오고, 드물게 완성 장비가 나온다.
완성 장비가 나온다 해도 보통은 등급이 낮다. N등급 상자의 경우에는 99퍼센트 N등급 장비가 나오는 수준.
‘그래도 확률이 0은 아니잖아?’
혹시 아냐? 미쳐서 SSR등급 장비 하나 톡 떨어져 줄지?
나는 단숨에 N등급 상자 셋을 촤르륵 열었다.
“완제 떴냐?!”
뚜껑이 열린 상자에서 찬란한 빛이 새어나왔다. 빛만 봐도 대충 템 등급은 알 수 있다. 무슨 색이냐!
회색!
회색.
회색이다…….
셋 다 회색. 셋 다 N등급 아이템.
“쳇…….”
그럼 그렇지. N등급 상자에 뭘 바라겠어.
구시렁대며 일단 내용물을 확인했다. 보자.
[Rewards]– 상급 체력 포션
– 상급 체력 포션
– 빙결 인챈트 스크롤
어째 셋 다 소모품이 떴다. 재료라도 떴으면 뭐 만들 때 쓰기라도 할 텐데.
‘그래도 그럭저럭 쓸 만한 것들이네.’
상급 포션은 일반 포션보다 회복 효과가 월등하다. 쟁여 뒀다가 비상시에 쓰면 효과가 쏠쏠하다.
인챈트 스크롤 역시 꽤 유용한 아이템이다. 한 번 사용하면 해당 스테이지 내내 무기에 속성을 더해 준다.
만약 데미안의 석궁 같은 데에 발라 주면…… 효과 오지게 받겠지.
‘요것들은 챙겨 두고.’
나는 다음 R등급 상자 2개로 눈을 돌렸다. 이건 하나씩 까 볼까.
먼저 첫 상자를 열었다.
“완제 떴냐?!”
번쩍!
열린 상자 틈으로 파란 빛이 새어나왔다.
오오, R등급 템이다!
[표준형 고급 마력핵(R)]“재료템이네…….”
김이 빠져서 구시렁댔지만, 그래도 마력핵은 재료템 중에서는 가장 희귀한 물건이다.
마력핵은 고급 장비의 핵심 소재로, 보통 고등급 무기를 만들거나 아티팩트 제조에 쓰인다.
‘그동안 모은 마력핵이 벌써 3개네.’
나는 인벤토리를 확인했다.
튜토리얼 스테이지에서 얻은 ‘검은 거미 여왕 마력핵(SSR)’ 하나.
오늘 스테이지1에서 얻은 ‘망령기사 마력핵(SR)’ 하나.
그리고 이 ‘표준형 고급 마력핵(R)’ 하나.
‘본격적으로 이것저것 만들기 시작하면 유용하게 쓰겠지…….’
챙겨두고, 마지막 R등급 상자를 손에 들었다. 큰 기대 없이 상자를 열었다.
달칵!
직후, 열린 상자 틈에서 찬란한 금빛이 뿜어져 나왔다.
“어?”
나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여기서 황금색? SSR등급이 뜬다고?! 취해서 헛것 보는 거 아냐?!
빰빠밤-!
뒤이어 우렁찬 팡파레와 함께, 눈부신 금빛을 뿌리며 상자에서 장갑이 하나 나왔다. 금속 징이 박힌 까만 가죽 장갑이다.
“쓰알신 맙소사!”
너무 놀라서 나는 침대에서 펄쩍 뛰어올랐다.
SSR등급에, 그것도 완제 장비라고?!
기겁한 나는 얼른 장갑을 두 손으로 받쳐 들고 이름과 옵션을 확인했다. 뭐냐?!
[럭키 스트라이크(SSR) Lv.7]– 분류 : 격투 장갑
– 공격력 : 0~777
– 내구도 : 7/7
– 모든 확률 판정에 1퍼센트 보너스가 붙습니다.
《“오늘은 운이 좋군.” – 어느 도박꾼》
“아니, 이런 씨부럴-!”
나는 그대로 장갑을 바닥에 패대기쳤다.
하필이면! 모든 SSR등급 고유무기 중에서도 하필이면!
“예능템인 럭키 스트라이크냐!”
이 겉만 번지르르한 장갑은 능력치 그대로의 심플한 효과를 가지고 있다.
그렇다. 운 좋으면 대미지가 잭팟이 터져서 보스도 원킬내지만, 재수 없으면 아예 0이 떠 버린다.
안 그래도 격투가 클래스는 기본 스킬부터가 랜덤빨로 널뛰기를 뛰는데, 이 무기까지 착용시키면 아주 살아 숨 쉬는 룰렛머신이 되어 버린다.
방송할 때 시청자들을 즐겁게 해 줄 수는 있었지만, 착용 캐릭터는 십중팔구 전투 중에 사망했다.
확률 보너스고 뭐고 툭하면 한 자릿수 대미지가 떠서 폭사하기 일쑤였으니까.
“이 개똥템을 어디에 쓰라는 거야앗!”
나는 피눈물을 삼켰다.
격투가 영웅도 없긴 하지만, 애초에 이 무기는 예능용이란 말이다. 실전성이 없다고!
그렇다고 버릴 수도 없고. 누구 주기도 뭣하고…….
망설이다가 나는 내 손에 장갑을 착용했다.
어차피 원래 착용하고 있던 검은 겉만 번지르르한 장식용이라. 그것보다는 낫겠지 싶었다.
철컥!
나는 장갑을 찬 두 손을 들어서 살폈다. 착용감이 아주 편안하다. SSR등급 템이라 그런가, 이런 점은 좋네.
“에휴……. 그래, 나온 게 어디야…….”
어차피 내가 일선에서 무기를 휘두를 일은 없다. 전투 적성도 없다시피 하고.
만일의 사태가 벌어졌을 때 잭팟이 터지길 기도할 순 있겠지.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씨발.”
긍정적이 되겠냐고! 으아아아! 나는 머리를 쥐어뜯었다.
기왕 SSR 장비 뜰 거면 좋은 거 많잖아. ‘치천사의 눈물’도 있고 ‘라이프이터’도 있고 ‘헤븐즈사인’도 있고.
뜨기만 하면 게임이 편안해지는 개사기템이 널렸는데.
왜! 하필! 럭키스트라이크!
그렇게 나는 기껏 금색 템을 먹고도 속이 불편해서 끙끙대다가 새벽에야 겨우 잠들었다.
***
다음날.
“아이고, 아이고 두야…….”
숙취에 찌든 채로 일어나자, 시간은 벌써 점심때였다.
어기적거리며 방 밖으로 나오자, 저택에서 일하는 사용인들 모두 눈 아래가 퀭했다. 다들 숙취에 쩔어 있군.
“전하, 기침(起枕)하셨습니까.”
내 방문 앞에 서 있던 루카스가 해쓱한 얼굴로 내게 인사했다.
얘도 어지간히 퍼마신 모양이네. 항상 단정하던 금발이 눈에 띄게 헝클어져 있다.
“좀 괜찮냐? 오전까진 쉬지 그랬어.”
“전하의 호위를 맡은 기사로서 어찌 그러겠습니까.”
직후 루카스는 우욱- 하는 소리를 내며 자신의 입을 가렸다.
“그런데…… 좀 힘들긴 합니다…….”
“네가 그런 소리 할 정도면 진짜 힘든가 보구나…….”
어디 해장할 거리라도 없나, 생각하는데.
“두 분 모두 좋은 아침입니다아!”
에이더가 복도에 나타났다. 이 자식은 왜 이렇게 항상 쌩쌩해?
에이더의 손에 들린 쟁반에는 뜨거운 김이 솟는 컵이 두 잔 놓여 있었다.
“자자, 따뜻한 꿀물입니다. 한 잔씩 쭉 들이키시지요!”
에이더가 우리에게 컵을 한 잔 씩 건넸다. 이건 고맙구먼.
뜨거운 꿀물을 삼키자 속이 좀 풀리는 기분이 들었다. 으어, 살 것 같네.
나와 루카스는 깨끗하게 컵을 비우고 에이더에게 돌려주었다. 컵을 받아든 에이더가 방싯방싯 웃었다.
“전투도 피로하셨을 테고, 숙취도 있으실 텐데. 오늘 하루는 쉬어도 괜찮으실 것 같습니다만~?”
“그럴 수 있겠냐. 바로 다음 스테이지를 준비해야지.”
나는 아직도 덜 깬 얼굴을 손으로 짝짝 쳤다. 이제 조금 정신이 든다.
“에이더. 어제 입수한 마석은? 현금화할 수 있나?”
“판매할 준비는 끝났습니다아. 하지만 저번에 판매한 검은 거미 마석만큼의 금액은 안 될 겁니다아.”
마석의 질 차이도 있고, 저번에 대량으로 마석을 풀어서 상인들의 수요도 줄었을 테니. 그건 어쩔 수 없는 부분이겠지.
“판매는 맡겨 두마. 알아서 가격 잘 쳐와.”
“맡겨주세요오!”
“좋아. 마석은 그렇게 하고…… 루카스, 에이더. 따라와. 일 좀 보러 가자.”
나는 루카스와 에이더를 대동하고 저택을 나섰다. 먼저 향한 곳은 마을의 대장간이었다.
대장간 앞에 도달하자, 열심히 쇠를 두들기고 풀무질을 하는 대장장이들이 보였다.
입구에 뜬 흐릿한 시스템 창이 보인다.
[시설 – 대장간 Lv.3]도시의 시설 레벨은 1에서 10까지 성장시킬 수 있다. 레벨이 오르면 여러 이점이 있고.
대장간은 고레벨이 되어야 생산할 수 있는 장비의 종류가 늘어나고, 고등급 장비 생산 확률이 올라간다.
3레벨이면 기본적인 기능은 다 열려 있는 수준.
‘여기도 돈 좀 부어 줘야겠네…….’
튜토리얼에서 돈 좀 벌었다고 펑펑 쓰고 있지만, 돈을 쓸 곳은 끝없이 있다. 체계적인 자금 운용 플랜을 짜야겠어.
“어서 오십시오, 전하!”
대장장이 조합장이 튀어나왔다. 나는 거두절미하고 용건부터 말했다.
“장비제작을 하나 의뢰하고 싶다.”
만들어야 할 건 산더미지만, 일단 당장 확실히 필요한 것부터 발주하기로 했다.
“그동안 성벽이나 수성병기 수리에만 동원되어서, 저희의 진면목을 잊으신 게 아닌가 했습니다.”
장비제작 이야기를 하자 조합장의 눈빛이 바뀌었다.
“최선을 다해 만들겠습니다. 어떤 장비를 원하십니까?”
“갑옷을.”
나는 지난 스테이지에서 얻은 ‘망령기사의 마력핵’을 앞으로 내밀었다.
“이것을 장비의 코어로 삼고, 재료는 보유한 것 중 최고급으로.”
두 말할 것도 없이, 이것은 루카스를 위한 갑옷이다.
루카스는 앞으로도 SSR등급 기사로서 최전선에서 굴러야 한다.
조금이라도 더 튼튼한 갑옷을 입혀 둬야 마음 놓고 내보낼 수 있겠지.
망령기사는 리빙아머 군단의 군단장이고, 그 마력핵으로 만든 장비는 당연히 내구도나 체력 보너스가 붙는다. 좋은 소체가 될 것이다.
“이것은…… 귀한 재료군요.”
마력핵을 받아든 대장장이가 침을 꼴깍 삼켰다.
“자네들에게 맡기는 첫 장비 발주야. 기대가 커.”
“실망시켜드리지 않겠습니다.”
“좋아, 루카스? 가서 치수 재고 와.”
게임에서야 장비 만들어 두면 아무나 돌려 입을 수 있었지만, 여기는 엄연한 현실.
루카스의 몸에 맞게 만들어야 한다.
대장간 안에 들어가서 금세 몸의 치수를 재고 온 루카스는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뭐가 좋아서 그렇게 웃냐?”
“기뻐서요. 전하께서 제게 갑옷을 선물해 주시는 거잖습니까.”
“앞으로 너를 더 위험한 데에 투입하려고 주는 건데?”
“앞으로 저를 더 믿고 임무를 내려주시겠지요.”
이 자식 원래 이렇게 혀가 매끄러웠나?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나는 대장간을 나섰다.
“다음은 성벽을 보러 가자.”
우리는 함께 남쪽 성벽으로 향했다.
“워우.”
성벽에 도착하자마자 나도 모르게 이런 소리를 냈다.
망령기사의 거대한 검은 여전히 성벽에 박혀 있었다.
검이 박힌 곳 주위로 벽이 일제히 허물어진 상태였다. 철판은 쪼개졌고, 벽돌은 녹거나 가루가 되어 버렸다.
“이대로는 괴물은커녕 야생동물도 못 막겠네…… 수리까지 얼마나 걸릴 것 같나?”
성벽 위에서 수리 견적을 재고 있는 석공 조합장에게 물었다. 조합장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파손 정도가 너무 심합니다. 완전히 고치려면 2주가 넘게 걸릴 것 같습니다.”
“2주나?”
“수리에만 2주입니다. 저 검을 들어내는 것부터가 큰 작업이라…….”
석공 조합장이 말끝을 흐렸다.
“이런.”
나는 짧게 혀를 찼다.
요컨대 검을 들어내는 데에는 며칠이 걸릴지 모르고, 저걸 치우고 나서 수리에만 2주가 걸린다는 말인가.
한숨을 내쉰 나는 스테이지 정보창을 띄워 보았다. 다음 스테이지가 언제 시작되는지 벌써 표시되고 있었다.
[STAGE 2]– 시작까지 : 9일 20시간
부족하다.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
나는 골치가 아파서 이마를 손으로 탁 쳤다.
이걸 어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