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Tyrant of a Defense Game RAW novel - Chapter 287
◈ 287. [Side Story] 무투대회 (4)
결론부터 말하자면.
루카스는 쓰러졌다…….
어떻게 어떻게 장기전으로 끌고 가긴 했는데, 결국 더스크 브링어가 휘두른 전력 손가락 튕기기 3연타에 고스란히 적중.
의식을 잃고 녹다운 되었다. 나는 안타까움에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아이고…….
처음부터 반인반룡을 상대로 순수 육체 스펙 대결에서 이기길 바라는 게 말도 안 되는 일이었던 것이다.
“후우, 후우…….”
기절한 루카스의 앞에 서서 숨을 헐떡이던 더스크 브링어가 퍼뜩 정신을 차렸다.
“이, 이겨 버렸지 않느냐…….”
더스크 브링어는 쓰러진 루카스를 향해 삿대질하며 외쳤다.
“네가 너무 처절하게 덤비니까! 나도 모르게 이겨 버렸지 않느냐!”
……뭐지? 신개념 기만질인가?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뭐 논공행상은 원리원칙대로 해야겠지. 나는 옆으로 손을 저었다.
“시간도 늦었는데 후딱 처리하자. 시상식 진행해!”
“예, 전하!”
기절한 루카스는 사제들이 치료하러 데려가고, 뭐라고 칭얼거리는 더스크 브링어는 대충 내가 붙잡아서 내린 뒤.
연무장 위에 시상대가 차려졌다.
3등부터 8등까지의 시상은 세레나데가 맡았다. 이번 대회 스폰서시니까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겠지.
“안녕하세요, 윈터실버 상단의 세레나데라고 합니다.”
시상대 위에 선 세레나데가 방긋 웃으며 말하자, 객석에서 환호와 박수가 쏟아졌다.
“윈터실버! 윈터실버!”
“세레나데! 세레나데!”
“꺄아아! 언니! 날 가져욧!”
“저도 매입해 주세요! 무상으로 드릴게요-!”
……인기 많네. 아니, 나보다 좋은 거 아니야?
나는 세레나데가 이번 축제 준비를 잘 해 줘서 뿌듯하기도 하고, 세레나데에게 열광하는 시민들을 보며 조금 질투가 나기도 하는, 기묘한 심정으로 시상식을 지켜보았다. 으음.
3등부터 8등까지의 상품은 결과가 나오자마자 이미 지급된 상태였지만, 그래도 세레나데는 굳이 상패를 따로 준비해서 참가자들에게 나눠 주었다.
“상품은 금방 사라지지만, 상패는 추억과 함께 오래도록 남거든요.”
희희낙락하며 상패를 받아 가는 에반젤린의 뒷모습을 보다가 세레나데가 내 귀에 대고 작게 속삭였다.
“겸사겸사 상패에 저희 상단 이름도 새겨 두고요. 후후.”
“아하, 과연…….”
수상자는 기분 좋고, 스폰서는 생색 내고, 일석이조로구만.
뭐 이런 대화를 나누고 있자니, 결승전의 투사들에게 상패를 수여할 시간이 되었다. 이 둘에게 시상하는 것은 영주인 내가 맡는다.
내가 시상대 위로 올라서고 세레나데가 내려가자, 객석에서 아쉽다는 듯 탄성이 터져 나왔다. 이 자식들이! 나한테도 박수랑 환호해 줘!
우선 2등상. 루카스는 기절한 관계로 에반젤린이 대리수상했다. 2등상패와 3등상패를 양손에 들고 에반젤린이 크하하하 웃었다.
“양손에 상패로구나! 이번 축제의 승자는 바로 나다-!”
“내려가라, 내려가.”
까불거리는 에반젤린을 보며 시민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나는 녀석을 얼른 아래로 밀어냈다.
그리고 대망의 우승자.
나는 목을 가다듬고, 내 앞에 부들거리며 서 있는 더스크 브링어를 내려다보며 선언했다.
“올해 무투대회의 명예로운 우승자는 바로 이 용사, 더스크다!”
“…….”
“우승자에게는 무투대회 명예기사의 칭호가 내려지며, 영주인 나 애쉬 ‘본헤이터’ 에버블랙의 기사로 서임되는 영광이 내려진다.”
내가 기사 서임을 위한 예식용 검을 꺼내들자, 더스크 브링어가 진저리치며 물러섰다.
“시, 싫어! 안 받을래! 네 기사 되기 싫어! 싫다고!”
“그럼 진 걸로 하실?”
나도 바라는 바인데. 승부 뒤집을래?
그러자 더스크 브링어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괴로워했다.
“그, 그건 더 싫어! 지는 건 죽는 것보다 싫으니라!”
“그럼 받으셔야지. 자, 이리온.”
“크아아악!”
결국 더스크 브링어는 얌전히 내 앞에 한쪽 무릎을 꿇은 채, 예식용 검이 자신의 양 어깨와 머리 위에 올라오는 과정을 견뎌야 했다.
“……이것으로 더스크는 크로스로드의 명예기사가 되었다. 도시의 평안과 안녕을 위하여 남은 생을 헌신할 것을 맹세하겠는가?”
“크, 크윽.”
“아이, 맹세 안 하면 식이 안 끝나요, 악룡 씨. 형식뿐인 서임인데 후딱 하고 치웁시다.”
“매, 매…….”
더스크 브링어는 눈을 질끈 감았다.
“맹세한다…….”
결국 맹세 발언까지 한 뒤.
더스크 브링어는 새빨개진 얼굴로 벌벌 떨며 나를 올려다보았다. 호박색 눈에 눈물마저 찔끔 맺혀 있다.
“황제에게도 서임 맹세 같은 것은 해본 적이 없는데……! 과인에게 이런 치욕을 안기다니…… 잊지 않겠노라, 애쉬…….”
“아니 댁이 스스로 쟁취한 치욕이잖수…….”
이 치욕을 얻으려고 무투대회를 다 휩쓸어버리셨으면서…….
나는 콧방귀를 뀌었다. 그래 봐야 제대로 된 진짜 기사 서임도 아니고, 이벤트성 무투대회의 명예기사 자리다. 저렇게까지 분해 할 이유가 없을 텐데.
반짝반짝 유리로 만든 1등 상패까지 건네주자, 또 그건 냉큼 품에 챙긴 더스크 브링어가 내게 삿대질을 하며 시상대 아래로 달려 내려갔다.
“두고 보자꾸나아아! 이 치욕은 반드시 갚아 줄 테니이이이!”
요즘 저렇게 3류 악당 대사 치면서 퇴장하는 게 유행이냐? 자주 보이네.
아무튼 이것으로 무투대회도 끝.
결승전이 끝나자 슬슬 빠지던 관객들은 이제 썰물처럼 빠져나가서, 병영은 순식간에 한산해졌다.
나는 한쪽 벽에 붙어 있는 대진표를 보며 쓴 입맛을 다셨다.
“에고고, 초토화 되어 버렸네…….”
결국 더스크 브링어의 우승을 저지하지 못했다. 그녀의 앞을 막아선 내 파티원들은 모두 처참하게 쓰러졌다.
“…….”
나는 잠시 고개를 돌려, 상패를 받아든 채 축제 음식과 과자들을 먹으며 즐거워하는 파티원들의 모습을 보았다.
처참…… 으음. 내 마음만 처참한 것 같군…….
“너무 슬퍼하지 마세요, 선배님.”
그런 내 옆으로 다가온 에반젤린이 나를 위로했다. 양손의 상패를 신나게 흔들며.
“무투대회와 전장은 다를 테니까요!”
“…….”
그 말이 맞다.
이쪽은 최고화력이자 조커인 데미안과 쥬니어를 꺼내지 않았다.
5대5 파티 전투로 들어가면, 우리의 진짜 실력을 보여 줄 수 있을 것이다.
‘그건 그거고 더스크 브링어의 스펙은 정말 말도 안 되는군…….’
분명히 효율도 안 좋고 소모도 빠르다.
하지만 베이스가 되는 육체의 내구도와 마력의 크기가 애초에 말이 안 되는 수준이다.
하루 이틀 전투 정도로 다 소모시킬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PVP 전술을 재점검해 봐야겠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주구우우우운!”
기절에서 깨어난 루카스가 대뜸 달려와서 내 앞에 무릎 꿇더니, 머리를 땅바닥에 처박았다.
“죽여 주십시오-!”
아이고, 이럴 줄 알았다.
나는 쓰게 웃으며 그런 루카스의 어깨를 두들겨주었다.
“잘 싸워 줬어, 루카스. 그러지 말고 일어나.”
“그래요! 아저씨! 아저씨가 제일 잘 싸웠는데 죽여 달라고 하면, 저는 어떻게 돼요?”
에반젤린도 루카스 달래기를 거들어주었다.
“자요, 여기 2등 상패랑! 그리고 장비 풀세트 제작권! 와~ 솔직히 1등 상품보다 이게 훨씬 더 좋은 거 같은데?”
“…….”
루카스는 에반젤린이 건넨 2등 상패와 상품권을 받아들고 묵묵히 바라보더니.
“……우.”
“우?”
“우어어어엉.”
웬 곰 같은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서럽게 우엉우엉 소리를 내는 루카스. 그런 루카스를 눈을 땡그랗게 뜨고 지켜보던 에반젤린이 중얼거렸다.
“아, 운다.”
기겁한 나는 식은땀을 흘렸다.
“어? 이게 우는 거야?”
“우는 거 같은데요? 보세요! 이 슬픔에 가득 찬 눈동자를! 앗! 눈물도 나오기 시작합니다-!”
“우어어어엉.”
에반젤린의 생중계에 이어, 루카스는 세상 다 잃은 얼굴로 바닥에 퍼질러 앉은 채 우어어어엉 서럽게 포효했다. 아니 진짜 우는 거냐고!
“저는 그냥 주군께 칭찬 듣고 싶어서. 열심히 한 것뿐인데…….”
루카스는 세상 억울한 표정을 짓고 자신의 가슴을 팡팡 쳤다.
“그런데 야수화 썼다고 뺨 맞고. 그 뒤로 계속 호위도 못 하게 하시고. 우어어어엉.”
“아니 뺨 때린 건 너 걱정해서고…… 호위 못하게 한 건 네 부상이 덜 나았으니까…….”
“우어어어엉.”
루카스는 자신의 가슴에 이어 이제는 땅까지 치면서 통곡했다.
“그래서 1등하고 명예기사 자리 받으면서 자연스럽게 화해하는 계획이었는데. 우어어어엉. 져버렸습니다. 다 망했습니다. 다 망했다고요…….”
나는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렸다.
강철처럼 단단하던 애가 이렇게 서럽게 울어(?)대니 무척 당황스럽다. 뭐, 뭐야. 어떻게 해야 돼?
그때 에반젤린이 내 옆구리를 콕콕 찔렀다.
“뭐해요, 선배님! 루카스 아저씨 울잖아요! 빨리 사과하세요!”
“어? 내가 사과해야 해?”
“그러게 아저씨를 왜 때렸어요? 말로 해도 들을 나이인데!”
아니 그렇긴 한데…… 그래 스물둘이니까, 체벌할 나이는 아니긴 한데…… 아니 애초에 체벌은 나이 상관없이 하면 안 되지. 그렇긴 한데…….
“영주나 사령관으로서가 아니라, 친한 친구로서! 먼저 사과해 봐요!”
“으, 으음.”
“자, 따라해 보세요. 미안하다!”
나는 에반젤린을 따라서 입을 열었다.
미안하다…… 미안하…… 미안…… 미……. 미…….
“미친놈아, 네가 먼저 야수화 썼잖아!”
“아 쫌! 진짜!”
“우어어어엉!”
내가 꽥 소리치자 에반젤린은 자신의 이마를 탁 쳤고, 루카스는 더더욱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
“추태를 보여 죄송합니다, 주군…….”
콧물을 훌쩍이며 루카스가 사과했다. 나는 손을 휘저었다.
“괜찮아, 인마. 나야말로 그때 오버해서 미안했다. 때릴 것까진 없었는데.”
“훌쩍…… 아닙니다. 제가 먼저 주군께서 금지하신 일을 저질렀으니까요…….”
영주 저택. 응접실.
오랜만에 메인 파티 5인방이 모두 모여서 저녁도 먹고 다과와 함께 음료도 한 잔씩 하고 있다.
나와 루카스는 극적(?)으로 화해에 성공했다. 에반젤린이 옆에서 어르고 달랜 결과다.
“선배님께서는 가끔 이상한 부분에서 꽉 막혀 있으시다니까요. 사령관이라서 먼저 사과하기 저어하다니.”
빨대로 쥬스를 쪽쪽 빨아먹으며 에반젤린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는 차가운 위스키가 든 잔을 홀짝이며 대꾸했다.
“야. 군대라는 시스템 안에서 벌을 준 건데, 내가 먼저 사과하면 모양이 어떻게 되겠냐?”
“모양이 무슨 문제에요? 친구끼리 화해하는 게 먼저지. 그렇게 형식 따지다가 나중에 후회한다고요?”
아무튼, 지난 전투에서 루카스가 세운 공을 인정하고 그것으로 야수화 잘못을 상쇄.
과도했던 처벌에 대해서는 전선사령관이 아닌 나 개인이 루카스에게 사과하는 것으로. 번잡하지만 어떻게 우리 사이의 다툼을 봉합할 수 있었다.
우리 눈치를 번갈아 살피던 데미안이 어색하게 웃으며 물었다.
“저어, 그럼 내일은 다 같이 놀 수 있는 건가요?”
“내일이 진짜 재밌을 것 같은데…….”
데미안의 옆에서 쥬니어가 말을 받았다.
윈터실버 상단으로부터 황도산 허브를 받아온 쥬니어는 그것을 곰방대에 꾹꾹 눌러 담더니 연기를 뻐끔뻐끔 피워 올렸다.
“마지막 날은 댄스 페스티벌이라면서요. 재밌는 일이 많을 것 같은데요. 전하께서도 참가하신다고 하고……?”
아, 그렇지. 내일은 댄스 페스티벌이지…….
반강제로 참가하게 된 나는 어질어질한 이마를 감싸 쥐고 남은 술을 들이켰다. 이제는 모두의 앞에서 춤까지 춰야 하는 거냐!
그런 나를 내버려두고 나머지 파티원 놈들은 제멋대로 내일 무엇을 하고 놀 것인지 토론을 시작했다. 너네 마음대로 해라…….
‘응?’
그때 고개를 들어 창문을 바라보던 내 미간이 좁혀졌다.
착각인가? 창밖에 뭔가 희끄무레한 게 보이는 것 같은데.
소파에서 몸을 일으킨 내가 창가로 다가가서 창문을 열자,
“히이잇?!”
처량하게 서 있는 더스크 브링어를 발견. 내가 고개를 내밀자 기겁해서 어깨를 움찔 떤다.
아니 댁이 왜 여기 있어요. 나는 식은땀을 흘리며 물었다.
“……여기서 뭐하슈?”
더스크 브링어는 응접실 창문에 바짝 붙어서, 우리 다섯이 간식과 음료를 먹는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아니 무슨 성냥팔이소녀도 아니고, 왜 크리스마스날 행복한 남의 집을 창밖에서 훔쳐보는 꼬락서니를 하고 있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