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Tyrant of a Defense Game RAW novel - Chapter 298
◈ 298. [Side Story] 알아서 척척척
“냉해(冷害)라…… 그 별명은 오랜만에 듣네요.”
세레나데는 쓰게 웃었다.
“한때는 그랬지요. 그분과 제 사이가 얼어붙으면서, 저도 차갑게 얼어붙었어요.”
그때만 떠올리면, 어깨에 한기가 스민다.
세레나데의 손가락이 스스로의 팔뚝에 파고들었다.
“하지만 이제 전하께서…… 저를 따스하게 대해 주시니까. 저도 더 이상 차가운 사람인 척 연기할 필요가 없어졌어요.”
서리는 봄이 오면 녹는다.
애쉬가 따스하게 변하자, 냉해는 사그라졌다. 그뿐인 이야기다.
“……저도 오랜만에 듣습니다. 광견(狂犬)이라…….”
루카스의 굳은 두 눈에 짧은 회한이 스쳤다.
“그랬던 때도 있었지요.”
주인이 시키는 대로, 미친개처럼 무엇이든 물어뜯던 때가.
그리고…… 심지어는, 주인의 목덜미에마저 송곳니를 들이댔을 때가.
“……주군께서 저를 광견으로 부리시면 광견이 되고, 기사로 부리시면 기사가 될 뿐.”
어차피 자신은 한 자루 검일 뿐.
자신을 쥔 주인이 어떻게 휘두르느냐에 따라 다르게 휘둘린다. 그뿐인 이야기다.
“결국.”
세레나데가 숨을 들이켰다.
“그분이 변하셨기에, 우리도 변할 수 있었던 거네요.”
“…….”
루카스는 무언으로 긍정했다.
그렇다. 세레나데나 루카스의 변화는 애쉬의 그것에 비하면 우스운 수준이다.
자신을 파괴하고 싶어 안달이 나서, 언제나 스스로를 낭떠러지 끝으로 밀어붙이던 3황자는…… 너무도 변해 버렸다.
봄볕처럼 따스한 사람으로 바뀌어 버렸다.
루카스가 넌지시 물었다.
“그분께서 변하신 게 두렵지는 않으십니까?”
루카스는 애쉬가 변하기 전에 미리 언질을 들었다.
– 어이, 호위. 나는 내일부터 갑자기 다른 사람처럼 행동할 거다.
– 하지만 그렇게 되어도, 어떤 모습을 하든 어떤 행동을 하든, 나는 나다. 틀림없이 네가 평생 모셔온 그 애쉬다.
– 의심하지 말고 지금까지처럼 계속해서 나를 보좌해다오. 부탁한다.
이 말을 남긴 다음날, 애쉬는 다른 사람처럼 성정이 바뀌었다.
미리 언질을 들었음에도 루카스는 아직도 가끔 등골이 섬짓하곤 했다.
눈앞의 이 사려 깊고 부하들을 위하는 군주가, 자신이 충성을 맹세한 그 사람과 정말 동일인이 맞을까 싶어서.
“두려울 게 무어 있겠어요.”
하지만 세레나데는 확신을 담아 말했다.
“그분의 본질은 바뀌지 않으셨는데.”
어렸던 시절.
빛나던 그 소년의 모습이, 지금도 틀림없이 남아 있으니까.
“행동이 바뀌고, 말버릇이 바뀌고, 사상(思想)마저 바뀌어도- 저는 알 수 있어요. 제가 사랑했던 애쉬 전하께서는, 여전히 그대로 남아 계세요.”
“어떻게 그렇게 확신하시는 겁니까?”
루카스가 의아하게 묻자, 세레나데는 그녀답지 않게 씩 하고 웃었다. 마치 어린 시절의 장난기 넘치던 소녀 때처럼.
“감이죠. 연인으로서의, 감.”
직후 세레나데는 작게 중얼거리며 머리끝을 꼬았다.
“아니 뭐, 지금은 파혼했지만…….”
그런 그녀를 멍하니 보던 루카스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어쩐지 안심했습니다……. 세레나데 아가씨께서 오셔서, 이런 고민을 함께 나눌 수 있어서요.”
“네?”
“저도 세레나데 아가씨의 감을 함께 믿겠습니다.”
루카스가 부드럽게 미소했다. 그런 모습을 세레나데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보았다.
결단코, 저렇게 웃는 남자가 아니었는데.
“……정말 많이 변했네요, 루카스 경.”
“어른이 되었으니까요. 우리 모두.”
세레나데와 루카스는 잠시 서로를 마주보았다.
어린 시절을 함께한 친구가 될 뻔했지만, 결국 데면데면한 관계로 남은 서로를.
그리고…… 그런 둘의 사이에 언제나 함께 있었던, 어렸던 시절의 애쉬를.
“저는 단지 그분의 행복을 바랄 뿐이에요, 루카스 경.”
세레나데가 작게 중얼거리자, 루카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세레나데 아가씨.”
“각자의 자리에서 그 분을 보필하도록 하죠.”
“물론입니다.”
루카스가 허리를 숙이며 길을 비켜섰다. 살포시 목례한 세레나데는 먼저 영주 저택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두 사람이 3층 애쉬의 침실에 들어서자-
“쿨…….”
애쉬는 곤히 잠들어 있었다.
무어라 잔뜩 필기된 종이 뭉치를 침대 위에 흩뿌려두고서, 침대 등받이에 기댄 채. 조명을 환히 밝혀두고서.
쓰게 웃은 루카스와 세레나데는 그런 애쉬의 잠자리를 정리했다.
루카스는 애쉬의 필기구와 노트를 정리해 주었고, 세레나데는 애쉬를 침대에 누이고 이불을 끌어올려 주었다.
잠든 청년의 내리감긴 속눈썹에서 어린 시절 소년의 흔적을 읽으며.
“좋은 꿈 꾸세요, 전하.”
세레나데는 작게 속삭이고 물러났다. 루카스가 침대 옆 조명을 껐다.
달칵-
캄캄해진 침실의 침대 속에서 평화롭게 잠든 애쉬의 얼굴을 가만히 훔쳐보다가, 세레나데와 루카스는 발소리를 죽여 밖으로 나섰다.
***
……며칠이 흘렀다.
내 컨디션은 좀처럼 회복되지 않았다. 과로에 감기까지 겹친 모양이었다.
열은 쉽게 내려가지 않았고, 나는 이마에 찬 수건을 올린 채 골골댔다. 이게 무슨 꼬락서니람.
“가을이니까요. 날이 점점 추워지니, 이런 환절기에는 특히 조심하시는 게 좋죠.”
아침저녁으로 방문해서 내게 신성력을 투여해 주며 데미안이 말했다.
회복마법으로도 컨디션 저하나 감기는 못 낫게 한다는 모양이었다.
좀 더 확실한 상처나 부상 치료에만 가시적인 효과를 보이는 게 회복마법이라고…….
그래도 신성력을 이렇게 듬뿍 받으면 자양강장에 도움이 된다고는 한다. 끙.
아무튼 상황이 이렇다 보니 나는 침대에 드러누운 채 간단한 보고를 받고, 큰 방향의 지시만 내리는 것을 반복했다.
처음에는 좀 걱정했는데, 내가 현장에 없어도 크로스로드는 꽤 잘 돌아갔다.
물론 내가 직접 발로 뛸 때만큼 효율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이 정도면 꽤 준수하게 움직이고 있다.
‘사실 이게 보통의 영주, 보통의 사령관이 일하는 방식일지도 모르겠네.’
현장에 방문하지 않고, 서면과 전언만으로 지시를 전달하고 보고를 받는…….
“……으음.”
아무리 그래도 이건 내 스타일이 아니다.
“얼른 침대 뛰쳐나가서 현장을 보고 싶어!”
“예이 예이. 일단 얼른 낫기나 하세요.”
내게 자율탐사 계획서를 검토 받으러 온 에반젤린이 핀잔을 주었다. 나는 투덜거리며 에반젤린이 짜온 자율탐사 계획을 보았다.
이미 클리어가 끝난 6구역 던전을 한 번 순회하는 계획이었다. 미답사 지역은 악몽 군단장들이 출몰할 수 있으니 못 가게 하고…….
‘나도 50레벨 찍어야 하는데.’
현재 내 레벨은 49. 나도 다른 메인 파티원들처럼 얼른 50 찍고 궁극기 배우고 싶은데. 몸 상태가 이래서야.
“저희끼리 알아서 잘~ 돌고 올 테니까, 선배님께서는 느긋하게 쉬시면서 나을 궁리나 하세요!”
그러더니, 정말로 잘 돌았다.
내가 없는 빈자리에는 베이스캠프에 대기 중이던 성배탐사대의 도움을 빌리거나, 쟈칼, 혹은 릴리(!) 등을 편성해서. 6구역 던전을 하나씩 복습해내는 것이었다.
다른 서브 파티들은 초반 구역에서 레벨링.
나 없이도 매일매일 레벨이 오르고 강해지는 파티원들을 지켜보자니 마음이 조금 복잡했다. 끄응.
비단 던전탐사 뿐만이 아니라. 내정도 알아서 잘 굴러갔다.
특히 세레나데를 내정 고문으로 임명했더니, 솔직히 말해서 나보다 훨씬 잘 운영해 주었다.
전진기지 보수와 관광도시 계획은 물론이고.
“여기 마석 판매 보고서입니다, 전하. 천천히 확인해 주세요.”
투명한 마석 판매 수익 공유로 도시 재정을 크게 불려주었다.
안전하게 황실에 마석을 진상하고, 남는 마석 중에서 또 기존 크로스로드 상인들의 몫은 건드리지 않았다.
그렇게 남은 마석들만 유통을 맡아서 대륙 곳곳에 판매했다.
“마석의 질이 대단히 우수하더군요. 동맹국 왕실에 우선적으로 유통을 시작했습니다. 벌써 후속 주문이 쏟아지고 있네요.”
세레나데의 보고를 들으며 보고서를 훑다가, 나는 솔직하게 중얼거렸다.
“나는 솔직히, 윈터실버 상단이 남부의 다른 소규모 상단도 다 잡아먹어 버릴 줄 알았는데.”
기존 마석 판매 루트는 다 살려 두고, 기존 상단과 마석 수량도 공평하게 나누고 있다.
남부에서 처리되지 못하고 남는 만큼만 윈터실버 상단은 처리하고 있다.
윈터실버 상단 정도의 재력이라면, 그리고 나와의 친분을 내세우면, 모조리 팽해 버리고 혼자 다 해먹는 것도 가능할 텐데.
“후후. 전에도 말씀드렸잖아요. 저희 상단의 목표는 상생이라고요.”
크로스로드 시 예산 창고에 금화를 한가득 비축했다는 보고서를 내게 내밀며, 세레나데는 싱긋 웃었다.
“규모로 찍어 눌러서 이득을 보는 것은 쉽지만, 그것은 너무 근시안적인 장사법이죠. 저희는 좀 더 장기적으로 저희에게 이득이 되는 길을 고르는 것뿐입니다.”
“진짜 겁나 멋있다…….”
나중에 사업철학 좀 배워 두든가 해야겠군. 도움이 될 것 같아.
그래서, 이리하여. 다들 알아서 척척척 스스로 어린이가 되어 도시는 안전하게 잘 돌아갔고.
“예비대 파티 영웅 15인, 3개 파티. 전선 투입 가능합니다.”
계속된 자율탐사로 몇 개의 서브파티가 더 실전 투입이 가능해지고.
“헉…… 저 뭔가 성장해 버렸어요?!”
릴리는 35레벨을 넘겨서 2차 전직 완료. 2스킬 [파이어 월]을 개방했다.
야, 그런데 너 현장직 관둔 거 아녔어? 자꾸 남친 따라 출격하니까 레벨이 오르지!
“……저는 탐사도 안 따라가는데 왜 성장하는 거죠?”
마르헤리타가 떨떠름하게 중얼거렸다.
마르헤리타는 출격도 안 하고 있는데 레벨이 조금씩 오르고 있다. 본인 입장에선 당황스럽나보다.
그…… 원래 힐러들은 힐만 해도 경험치 계속 먹습니다. 현장 투입 안 되셔도 신전에서 계속 일하시니 레벨이 오르는 거예요.
아무튼 영웅들은 이렇게 각자 착착 성장했고,
“신병 2개 중대의 훈련이 완료되었음을 보고 드립니다!”
일반병들도 확충되었으며,
“전진기지 1차 성벽 수리가 끝났습니다, 전하!”
전진기지 보수는 5할 이상 완료되어, 이제 그럭저럭 간이요새로서의 기능을 하게 된 시점.
겨울에 대비한 식량과 땔감 비축까지 순조롭게 진행되는 이때-
[STAGE 12]– 시작까지 앞으로 : 3일
금세 다음 방어전이 눈앞에 다가왔다.
***
이번 시즌의 괴수는 스콜피온 군단.
달리 말해서 전갈들이다.
바닥에 낮게 배를 깔고 기어오는 데다, 껍질은 단단.
화살 같은 원거리 무기에 상당히 저항력이 높다. 독이 있는 꼬리는 찌르는 힘이 상당히 위협적이다. 양팔의 집게들도 절삭력이 높고.
튼튼하고 억센, 강인한 전사들이다. 정공법으로 붙으면 힘이 만만찮다.
“이렇게 튼튼한 친구들이지만, 약점도 명확하지.”
전진기지.
에반젤린이 끄는 휠체어(릴리의 스페어 휠체어를 빌렸다)에 앉아서, 갓 수리가 끝난 성벽 위에 올라선 채. 두툼한 담요를 두른 나는 말했다.
“바닥에 닿는 배에는 껍질이 없어. 어떻게든 그 배 부위만 때려줄 수 있다면, 쉽게 해치울 수 있지.”
“그럼 방법은 두 가지겠네요. 어떻게든 뒤집어서 해치우거나…….”
에반젤린이 씩 웃었다. 나도 마주 씩 웃어 주었다.
“……그냥 바닥에서 배를 공격하거나.”
다시 말해서.
지뢰를 쫙 깔아 두면 아주 쉽게 해치워 버릴 수 있다.
그래서 지금 전진기지 남쪽의 벌판에는 지뢰가 한가득 매설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설치된 아티팩트들도 죄다 땅에 깔리는 종류의 것만 챙겨왔다.
‘이것 말고도 약점은 많지만.’
스콜피온 군단은 마법 저항력이 낮은 편이고, 독 저항은 높지만 나머지 상태이상에는 아주 취약하다.
이쪽 수단이 구비되어 있다면 또 손쉽게 해치울 수 있다.
하지만 지뢰만으로도 충분하다. 즐거운 불놀이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놈들이 옵니다-!”
전진기지 포대 위에서 남쪽을 살피던 척후병이 소리쳤다. 그러자 성벽 끄트머리에 서 있던 루카스가 손을 위로 치켜들며 외쳤다.
“전군, 전투 준비-!”
척! 척! 척!
영웅과 병사들이 일사분란하게 무기를 쥐고 장비를 조준했다.
이번 방어전은 처음부터 루카스에게 지휘를 맡겼다. 나는 뒤에서 지켜보기만 할 생각이다. 일단은 환자니까…….
두두두두두!
오래 걸리지 않아 남쪽 저편에서 괴수들이 일으키는 흙먼지가 보였다.
시커먼 갑각을 번뜩이는 전갈무리가 잔뜩 달린 다리를 어지럽게 움직이며 몰려들었다.
좀 징그럽기도 하고, 또 저만큼 수가 모이니까 무섭기도 한 광경이었다.
‘우리 애들, 나 없이도 열심히 준비했지.’
어째 어린 동생이 형 없이도 심부름을 할 수 있다며 꼬깃꼬깃 지폐를 움켜쥐고 슈퍼로 달려가는 뒷모습을 보는 심정이라고 해야 하나.
뭐 그런 마음으로, 아예 나 없이 우리 애들이 얼마나 방어전을 잘 치르려나~ 마음 편히 지켜보려는데.
“응?”
뭔가 이상한 게 보였다.
두두두두두-!
남쪽에서 몰려오는 스콜피온 군단의 측면으로,
다그닥, 다그닥, 다그닥-!
……말에 탄 다섯 명의 기사가 갑자기 모습을 드러냈다.
그 선두에 선 것은 기다란 흑발에, 은색 왕관을 반짝이는, 한 소녀였다.
“우하하하하-!”
가느다란 목소리에 어울리지 않게 광소를 내뿜으며- 갑툭튀한 드래곤 레이디가 외쳤다.
“크로스로드여, 내가 돌아왔다-!”
그리고는, 스콜피온 군단의 측면에 냅다 꼬라박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