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Tyrant of a Defense Game RAW novel - Chapter 305
◈ 305. [자유탐사] 막간에는 파밍 (2)
세계수의 자식이라 불리는 요정왕가는 현 세대에 이르러 세 명의 왕녀를 두었다고 한다.
첫째 우르드. 둘째 베르단디. 셋째 스쿨드.
각자 과거, 현재, 미래를 뜻하는, 운명의 세 여신의 이름을 따온 왕녀들.
이중 왕위에 오른 것은 첫째 왕녀 우르드였으나. 그녀는 일백 년 전 종족전쟁 당시 이종족 연합이 인간에게 패퇴할 때 전사했다.
이후 왕위는 서열대로라면 베르단디가 물려받았어야 했겠지만, 이때 이미 베르단디는 우르드의 명령을 받아 성배 탐색을 시작한 뒤였고.
현재 엘프자치구에서, 노예가 된 엘프들을 이끌고 있는 것은 명목뿐인 왕위를 이은 막내 스쿨드라고.
‘베르단디도 몰락한 왕 계획의 중요 열쇠인 셈이지.’
대륙 곳곳에 흩어진 이종족들을 이곳 남부전선으로 불러들일 셈이기에.
장기적으로 엘프 왕국과의 커넥션이 되어 줄 베르단디는 내게 중요 고객(?)인 셈이었다.
아무튼 본인이 밝힐 때까지 나는 조용히 있어 주려고 했는데, 더스크 브링어가 시원하게 스포일링 해 주었다…….
“백 년 전 전쟁 때 우리 왕국을 불태운 선봉장이었잖아, 당신! 뭘 친한 척 하고 난리야!”
베르단디가 사납게 소리치자,
“아~ 그때는 미안했도다. 과인은 딱히 너희에게 악감정이 없었지만, 황제가 시키면 나서야 하는 입장이었어서…….”
전혀 안 미안하다는 투로 말하며 더스크 브링어가 귀를 팠다.
“어쨌든 지금은 다 같이 애쉬의 밑에서 식객인 처지 아니냐. 친하게 지내자꾸나.”
“누, 누구 멋대로 식객이야!”
베르단디가 날카로운 어조로 반박하자, 내가 상처 받은 얼굴로 베르단디를 마주보았다.
“아니야……?”
“아, 아뇨! 해바라기씨도 주시고, 다른 먹을 것도 주시고, 여러 가지 챙겨 주시고! 새, 생각해보니 식객이나 다름없는 처지이긴 한데……!”
혼란에 빠진 베르단디의 눈이 거세게 떨렸다. 나는 속으로 입을 가리고 웃었다.
그렇지. 내가 먹여 놓은 게 있잖아. 어차피 다~ 내 휘하로 오게 되어 있다 이 말씀이야.
“괜찮아, 베르단디. 나는 네 신분이 무엇이든 신경 안 써.”
사실 처음부터 무지하게 신경 쓰고 있었지만. 어쨌든 나는 순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우리는 그런 것 상관 없이 친구가 됐잖아. 그렇지?”
“애쉬님……!”
베르단디가 감동한 얼굴로 내 손을 꼭 쥐었다. 응, 너 내 쓰알.
아무튼 그렇게 용과 엘프가 자기들끼리 말싸움을 해대고, 사이에 끼인 인간인 나는 이득 챙길 각을 보고 있는데,
“야! 애송이 황자! 왜 이제 와!”
베이스캠프 중앙에서 낯익은 난쟁이가 폴짝 튀어나왔다.
마법 대장장이 켈리베이였다. 온몸이 검댕 범벅인 켈리베이는 땀에 젖은 얼굴로 다급하게 소리쳤다.
“빨리 이리 와 봐! 네가 맡긴 장비 X됐어!”
뭐?
장비가 X돼?
기겁한 내가 반응하기 전에,
“아니?”
이번에도 더스크 브링어가 반갑다는 얼굴을 하며 켈리베이의 앞으로 나섰다.
“이건 또 누구야. 켈리베이!”
“우와아악?!”
“‘황금가지채굴단’의 막내잖아. 너는 또 왜 여기에……?”
자신을 알아보고 아는 척하는 더스크 브링어를 보고 기겁한 켈리베이가 소리쳤다.
“이런 쉬부럴, 더스크 브링어?! 이 용 아지매는 왜 여기에 온 거야?!”
“아니, 말이 심하잖느냐. 아지매라니……. 그렇게 치면 과인보다 나이가 더 많은 너는 초(超) 할배냐?”
투덜거린 더스크 브링어가 자신의 은관을 손끝으로 톡톡 쳤다.
“너의 두 형에게는 과인도 신세를 졌지. 이 왕관도 내가 즉위할 때에 너의 형들이 주조해 준 것이다.”
“…….”
“그래서, 네 형들은 어디에 있느냐? 인사를 하고 싶은데.”
켈리베이는 마른 한숨을 내뱉더니, 마지못한 듯 대답했다.
“죽었다.”
“……뭐?”
“이곳의 어둠 깊은 곳에서 ‘황금가지’를 찾다가, 괴수에게 죽임 당했어.”
켈리베이의 형제들은 흡혈왕 셀렌디온에게 죽었다. 그래서 셀렌디온을 죽인 나를 켈리베이가 좋아해 주는 것도 있지.
“미, 미안하구나.”
멋쩍게 사과한 더스크 브링어가 뒷머리를 긁적였다.
“어째 오늘 과인이 영 눈치가 없는 듯하군…….”
모두의 따가운 시선을 받고 있다. 하지만 연륜에 걸맞은 뻔뻔함으로 태연하게 넘긴 더스크 브링어는 내게 귓속말했다.
“그나저나 재미있구나, 애쉬.”
“예?”
“내로라하는 도망자들이 죄다 이곳 남부전선에 숨어 있지 않느냐. 엘프에, 드워프에, 수인까지…….”
저쪽에 서 있는 형벌부대의 수인들까지 살핀 뒤, 더스크 브링어가 피식 웃었다.
“이제 인어까지 있으면 4대 이종족을 모두 한 군영에 몰아넣는 셈이 되겠구나.”
“…….”
있는데요. 인어도.
세레나데의 물빛 머리칼이 뇌리를 스쳤다. 지금쯤 크로스로드에서 열일하고 있겠지?
그때 더스크 브링어가 혼자 고개를 주억거리며 중얼거렸다.
“모든 종족을 한 자리에……? 호오. 그렇다면 모든 종족의 수호수(守護樹)도 모을 수 있는 건가…….”
“……?”
“그렇군. 하하. 역시 내가 너에게 온 것 또한 필연인가…….”
뭐, 뭐라는 거야?
그렇게 혼자만 알아듣게 뭐 있어 보이는 설정 독백 자꾸 하시면요, 예? 이게 추리소설이었으면 범인한테 벌써 살해당하셨어요!
혼자서 무어라 중얼거리기 시작하는 더스크 브링어에게서 재빨리 떨어졌다.
안 그래도 눈앞의 일만 해도 머리 아픈데 못 알아들을 떡밥은 됐어!
“……별의별 괴짜들을 다 편으로 받더니, 이제는 반푼이 악룡까지…….”
켈리베이에게 다가가자, 땅이 꺼져라 한숨을 뱉은 켈리베이가 내게 눈을 흘겼다.
“취향 한 번 고약하구나, 애송이. 아니, 수완이 좋다고 해야 하려나?”
“하하.”
나는 덤덤하게 웃었다. 앞으로 더한 놈들도 계속 받아들일 건데요. 이 정도로 놀라시면 곤란하지.
“됐고 얼른 와 봐. 네가 맡긴 장비 멸망하기 직전이니까.”
우리는 헐레벌떡 켈리베이의 마법 대장간 쪽으로 달려갔다.
대장간은 한창 작업 중이었는지 기기묘묘한 색깔의 불꽃이 화로에서 훅훅 뿜어져 나오며, 엄청난 열기를 뿜어내고 있다.
“그새 또 난리가 났네, 아오!”
현재 켈리베이가 만지고 있는 것은 에반젤린의 전용장비.
[크로스 가문의 창]과 [크로스 가문의 방패]다.베이스가 되는 장비에 재료 투여하고 업그레이드 공정만 거치면 되는 작업이라 생각했는데, 무슨 일이 생겼는지 마감 기한도 한참 넘긴 상태로 아직도 이렇게 고생하고 있는 것이다.
깡! 깡! 깡-!
용접 마스크를 뒤집어쓰고, 장비에 마구 망치를 내려찍어 마법의 불길을 가까스로 잡아낸 켈리베이가 나를 홱 돌아보았다.
“네가 맡긴 장비가 어떤 상태인지 좀 보여?!”
“……!”
물론 대장간 일에는 일절 문외한인 나지만.
창과 방패의 표면이 시커멓게 변한 채 촉수처럼 꿈틀거리는 모습을 보자, 뭔가 잘못됐다는 느낌은 바로 왔다.
철퍽!
솟아오른 촉수 하나가 시커먼 진액을 튀기며 내 얼굴 옆을 바로 스쳐갔다. 히에에에엑?!
나는 비명을 지르며 머리를 쥐어뜯었다.
“아니, 대체 뭔 짓을 한 거예요! 그냥 업글만 하면 되는 건데!”
“더 잘해 주려다가, 의욕이 과했어!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괜찮았는데, 추가 인챈트 공정이 뭔가 잘못됐는지…… 아무튼 이대로 두면 X된다!”
“아니 이미 많이 X된 거 같은데?!”
막…… 그…… 솟아올라 있잖아! 잔뜩! 시발!
“됐고, 어차피 오늘 던전 들어갈 거였지?!”
켈리베이는 작업장 테이블에 종이를 대고 무언가 휘갈겨 쓰기 시작하더니, 다 쓴 종이를 내게 휙 던졌다.
“빨리 재료 구해 와! 귀한 장비 날아가는 꼴 보기 싫으면!”
긴급 퀘스트가 떴다.
던전 심부에서만 구할 수 있는 온갖 희귀 마법 재료들인데…… 양은 더럽게 많이 필요하고…… 남은 시간은…… 오우 쉣. 6시간?
타앗!
나는 켈리베이가 준 종이를 쥐고 재빨리 파티원들에게로 달려왔다.
그러자 눈을 반짝이며 기다리고 있던 에반젤린이 내 앞으로 폴짝 튀어나왔다.
“선배님! 제 장비! 제 장비는 잘 만들어지고 있나요?”
“…….”
“저, 엄청 기대하고 있어요! 우리 가문에 대대로 전해져 내려온 가보가 어떤 모습으로 업그레이드될지……!”
식은땀이 비처럼 흘러내려 등을 적셨다.
문어의 빨판처럼 꿈틀거리던, 촉수가 솟아오른 에반젤린의 창과 방패가 뇌리를 스쳤다.
만약 그런 장비를 전용이랍시고 줬다간…….
에반젤린의 순진무구하게 반짝이는 녹색 두 눈을 들여다보며 나는 확신했다.
‘반란 난다!’
골렘 아머와 본 아머 2연타로 이미 에반젤린의 장비만족도는 바닥을 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가문에 대대로 내려오는 창과 방패를 촉수꿈틀이로 만들었다간 진짜 프래깅 난다! 나를 죽일지도 몰라!
덥석!
나는 에반젤린의 어깨를 붙잡고, 환하게 웃어 주었다.
“장비 상태는 끝내 줘. 너도 완전 마음에 들 거야. 그러니까 조금만 더 기다리렴.”
“와아!”
에반젤린이 눈부시게 웃었다. 요 근래 본 미소 중 가장 예뻤다. 시발 이제 뒤가 없다!
“자자, 얼른 가 보자! 들어가자~!”
나는 다급하게 모든 파티원들을 소집했다.
하는 김에 베르단디도 팔뚝을 붙잡고 끌어들였다. 멀리서 관망하려던 베르단디는 당황해서 내게 끌려왔다.
“애, 애쉬님?!”
“베르단디. 나 지금 난리 났거든. 조금만 도와주라. 네 동료들하고 다 좀 데려와 봐……!”
그 외에도 베이스캠프에서 더 데려갈 인력이 없나 살폈지만, 안타깝게도 현재 동원 가능한 인력은 이게 전부인 듯하다.
얼떨떨해하며 따라온 베르단디의 성배탐사대까지 포함해 5개 파티.
자그마치 25인. 역대 가장 많은 던전 탐사 공격대원들을 눈앞에 정렬시킨 뒤.
나는 선언했다.
“앞으로 6시간! 6시간 안에 여기 적힌 재료를 모두 구해 와야 한다!”
재료의 내용과 수량을 전달받은 파티원들의 얼굴에 뜨악함이 스쳤다.
그런 눈으로 보지 마, 얘들아. 영주님 죽는 꼴 보기 싫으면 좀 도와다오……!
“오늘의 던전탐사 콘셉트는 ‘닥사’다!”
게임판의 유서 깊은 용어. 닥사.
‘닥치고 사냥’의 준말이다.
재료템 얻는 노가다 할 때에는 이것만한 게 없지.
“눈에 보이는 괴수 다 패죽이고, 템 뺏고, 보물상자 털어! 전격전(電擊戰)이다! 벼락처럼 휘몰아쳐서 다 털고 나온다!”
뭔가 전격전의 본뜻이랑은 좀 다른 거 같지만, 아무렴 어때!
나머지 파티들은 다 던전에 익숙하고, 더스크 브링어와 기사들은 원체 스펙이 좋으니 처음이어도 잘 돌 거다.
“시간 없어, 가즈아아!”
내가 꽥 소리치자, 파티원들은 영문도 모르는 채로 헐레벌떡 내 뒤를 따라 던전으로 달려갔다.
***
이번 시즌의 괴수는 역시나 판타지 월드에서 유서 깊은 몬스터, 트롤(Troll)이다.
높은 재생력과 강인한 육체를 가진 대표적인 탱커 몬스터.
일격에 숨통을 끊지 못하면 꾸역꾸역 재생해내기에 상당히 상대하기에 까다로운 놈들이다.
물론,
“싹 쓸어버려-!”
그건 화력이 약할 경우의 이야기다.
퍽! 퍽! 쿠과과광!
휘몰아치는 검과 마법과 화살과 기타등등의 폭풍에 트롤 무리는 비명도 못 지르고 갈려 나갔다.
적이 잘 쓰러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쪽의 숫자가 부족한 것은 아닌지 점검해 봅시다!
25인 던전 공격대의 위력은 무시무시했다. 게다가 파티 하나하나가 1군급 정예다 보니 속도가 미쳐 날뛰었다.
던전 입장하고 보스룸까지 길을 뚫는 데에 5분, 보스 해치우는 데에 3분이면 족했다.
그렇게 몇 군데 돌다 보니 오히려 다 같이 한 던전 들어가는 게 낭비처럼 느껴졌다.
공간도 좁고 화력도 넘쳐서 계속 오버킬(Overkill)이 났다.
“야! 각자 던전 지정해 줄게! 하나씩 돌아!”
그래서 5개 파티를 5개 던전으로 분산시켰다. 각 파티는 또 열심히 하나씩 던전을 돌파했다.
그렇게 닥사 돌고 돌고 돌고 또 돈 결과.
“……다 털었네.”
몇 시간 지나지 않아 6구역의 던전이 씨가 말라 버렸다……!
‘재료는…….’
아직 부족하다!
조금씩 부족한 수량을 살피며 나는 치를 떨었다. 시간은 점점 가는데…….
“흐음~?”
그런 내 뒤에 바짝 붙은 에반젤린이 뭉근한 시선을 던지며 속삭였다.
“선배님, 혹시…… 저한테 뭐 숨기고 있는 거 아니죠?”
“아, 아니야, 인마! 내가 너한테 뭐 거짓말하는 거 본 적 있어?!”
“흐음~ 그렇죠? 역시 그렇구나아~”
에반젤린이 배시시 눈웃음을 쳤다.
혹시 눈치챈 거 아니지?
살려줘 시발.
“집하아아아압-!”
내 우렁찬(필사적인) 고함과 함께 우리 5개 파티는 6구역에 남은 마지막 던전 앞에서 재집결했다.
간단하게 휴식하고, 잔부상은 회복한 뒤.
6구역에서 가장 크고 가장 위험한 장소.
대규모 던전. [연구소]에 입장했다.
‘반드시 재료 다 모으고 귀환한다!’
에반젤린이 내 등을 찌르는 미래를 막기 위…… 아, 아니!
소중한 동료의 장비를 지키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