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Tyrant of a Defense Game RAW novel - Chapter 4
◈ 004. [STAGE 0] 솟아날 구멍은 있다
“황족이자 총사령관을 모욕한 이 무례한 자식의 목을, 즉시 베어라!”
내가 켄을 사형시키라고 명령하자, 루카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저, 전하! 연이은 전투로 피로가 쌓여서 잠시 이성을 잃었을 뿐, 켄은 훌륭한 제국의 기사입니다!”
“…….”
“앞선 전투에서도 가장 용맹하게 싸웠습니다. 부디 너그러이 선처해 주십시오!”
“내 명령을 못 들었나 보군, 루카스.”
물론 나는 여기서 켄을 죽일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었다.
병사 한 명 아쉬운 판국에 어떻게 파티원인 기사를 죽여? 아니, 애초에 나는 사람 막 죽이는 미친놈이 아니라니까?
“즉시, 이 자리에서, 켄의 목을 베어라. 명령이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이곳의 지휘 체계를 확실하게 휘어잡을 필요가 있었다.
애초에 내가 빙의한 애쉬는 무능한 망나니였다.
당장 내일 이곳이 무너질 상황인데 하룻밤 만에 부하들의 신용을 얻을 방법이 없었다.
결국 이들이 나를 따르게 하려면 방법은 하나.
공포뿐.
악수(惡手) 중의 악수, 하수(下手) 중의 하수지만, 이것 말고는 도리가 없다.
“켄!”
내가 마음을 돌릴 생각이 없어 보이자, 당황한 루카스가 켄을 돌아보았다.
“뭐하는 거냐! 당장 전하께 사죄드려라!”
“큭…….”
“켄! 어서! 네가 제국의 기사라면, 황자 전하께 예를 갖추고 사죄드려라!”
몸을 움찔거리던 켄은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죄, 죄송합니다, 전하. 제가 흥분이 지나쳤습니다. 부디 무례를 용서해 주십시오.”
“켄.”
나는 그런 켄에게 삭막하게 냉소해 보였다.
“그런 생각을 했겠지? 어차피 여기서 다 죽게 생겼는데, 내 칼에 죽든 거미 발톱에 죽든 뭐가 다르겠냐고.”
정곡을 찔린 듯 켄의 어깨가 크게 떨렸다. 나는 히죽히죽 계속해서 웃어 주었다.
“하지만, 달라. 그 둘은 아주 다르지.”
“……?”
“거미와 싸우다 죽으면 기사로 남지만, 내게 항명하다 죽으면 반역자로 남는다.”
나는 복도의 끝을 가리켰다. 그쪽을 본 켄의 얼굴이 허옇게 질렸다.
복도 끝에는 비둘기 새장이 있었다.
전서구(傳書鳩).
요 며칠 뻔질나게 구원군을 요청하는 편지를 매달고 날아다닌 비둘기들이었다.
검은 거미 군단은 하늘의 새까지는 공격하지 않았기에, 전서구는 제 기능을 하고 있었다.
구원군이 오기 전에 이쪽이 전멸하게 생겼지만…… 아무튼 내 말인즉슨,
“자네가 불명예스럽게 죽으면, 고향에 있는 가족에게도 누를 끼치게 될 테지.”
나한테 깝치면 죽이는 걸로 안 끝내고, 그 사실을 본국에까지 알릴 거라고. 그러면 너희 가족들도 봉변을 당할 거라고.
나는 대놓고 협박하고 있었다.
켄에게 부양해야 할 가족이 많다는 사실은 [캐릭터 일람]을 보고 이미 파악해 둔 상태.
이제 켄의 얼굴은 하얗게 질리다 못해 거무죽죽해진 상태였다. 나는 친절하게 속삭여 주었다.
“죽는다고 끝이 아니야, 켄. 죽음 뒤도 생각하도록.”
“저, 저, 정말로 죄송합니다, 황자 전하!”
켄은 이제 바닥에 무릎까지 꿇었다.
“부디 선처를 베풀어 주십시오……!”
“감히 황족을 면전에서 능멸한 죄, 마땅히 사형해야 옳겠지만.”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전황이 어려운 점, 그리고 자네가 그동안 활약한 점을 참작하여, 이번은 넘어가 주겠다.”
“감사합니다, 전하…….”
혹시나 켄이 수틀려서 프래깅이라도 일으키면 어쩌나 했지만, 다행히 그런 일은 없었다. 얌전히 무릎 꿇고 내게 복종할 뿐.
‘먹혀서 다행이군.’
나는 남모르게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졸렬해도 상관없다. 치사해도 상관없다.
이곳은 도박판이었다. 한 끗이라도 내 의도와 다르게 일이 풀린다면 어차피 다 죽는다. 다행히도 기선제압은 성공한 모양이다.
“자자, 그리고 기왕이면!”
나는 파티원들을 하나하나 둘러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 같이 죽는 것보다야, 다 같이 살아남는 게 좋지 않겠나?”
굳이 동의를 구할 필요도 없을 만큼 당연한 말이었다. 파티원들은 얼떨떨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들의 앞에서 팔을 홱 뻗었다.
채찍 뒤엔 당근.
한 번 개 같이 굴어 주고, 그 뒤엔 솔직하고 겸허하게.
“변명은 않으마! 내 치명적인 판단 실수로, 현재 우리 군은 전멸 직전의 위기에 몰렸다.”
모두의 눈이 동그래졌다. 아마 이 싸이코 황자가 자기 실수를 인정하는 모습을 처음 봐서겠지.
“하지만 지금은 그동안 저지른 실수를 곱씹을 때가 아니다. 앞으로 저 거미 새끼들로부터 살아남을 방법을 고민할 때지.”
나는 차례로 이들의 면면을 살폈다.
루카스를, 릴리를, 켄을, 그리고…… 여전히 저기 쪼그려 훌쩍대는 데미안을.
내일 죽을 운명인, 그러나 나와 함께 저항해 줄 사람들의 얼굴을.
“그리고, 저 검은 거미 군단 놈들을 몰아낼 방법이 내게 있다.”
내 말에 루카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예? 그게 정말입니까, 전하?”
“그래. 실낱같지만, 틀림없는 승산이 내게 있다.”
파티원들의 사이로 동요가 퍼져 나갔다.
승산이 있다는 말에 놀라서일지, 아니면 미친 황자의 헛소리에 기가 막혀서일지, 알 수 없었지만 확실한 건 하나 있다.
“한 번만! 딱 한 번만, 나를 믿고 따라와 주지 않겠나?”
어차피 너희 다 사형당하기 싫으면 따라와야 한다는 사실이다.
***
분위기를 정돈한 뒤.
“지금부터, 내일의 전투에서 여러분이 수행할 역할을 설명해 주겠다.”
파티원들을 옹기종기 앞에 앉혀두고, 나는 설명을 시작했다.
“우선 릴리.”
“네, 황자 전하.”
릴리는 내 말을 경청하고 있다는 듯 눈을 빛냈다.
하지만 그녀의 얼굴은 이어진 내 말에 딱딱하게 굳었다.
“너는 이 파티의 ‘방패’를 맡는다. 메인 탱커로서, 거미들의 공격을 막아내라.”
“……네?”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릴리가 되물었다.
“저어, 황자 전하. 저는 마법사, 그것도 화염계 공격 마법 사용자인데요……?”
뜨악해하는 릴리의 반문을 묵살하고 나는 켄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켄.”
“예, 옙!”
“너는 적진의 가운데에 은밀히 침투해서, 놈들을 교란시킨다.”
릴리와 똑같은 얼굴이 된 켄이 스스로를 손으로 가리켰다.
“예?! 제가요?! 침투?! 교란?!”
“다음, 데미안.”
역시나 무시하고 나는 다음 파티원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우리 중에서 가장 중요하고, 또 가장 불안한 멤버. 치유사제 데미안이었다.
“너는 이 파티의 ‘저격수’가 된다.”
“…….”
“적의 최중요 타깃을 네가 저격해야 한다.”
눈물을 훌쩍거리던 데미안이었지만, 역시 이 말에 어이가 없어졌는지 나를 빤히 올려다보았다.
“마지막으로 루카스. 너는 나머지 병사들을 지휘해서 전선을 유지하도록.”
“…….”
미친 역할 분배를 듣는 동안 루카스의 입은 쩍 벌어진 상태였다. 뭐, 다들 예상한 반응대로군.
침묵이 감도는 가운데, 조심스럽게 의견을 제시한 것은 릴리였다.
“저어, 그러니까, 황자 전하의 말씀을 종합하자면…… 화염 공격 마법사인 제가 일선에 서서 탱킹을 맡고.”
“그래.”
“키가 2m가 넘는 방패 기사 켄이 적진 한 가운데로 침투해서 은밀한 공작을 하며.”
“그렇지.”
“그리고 평생 살면서 활 한 번 잡아 본 적이 없는 치유사제 데미안이…… 저격을 한다고요?”
“그렇다. 잘 들었군, 릴리.”
“외람되지만 하나만 여쭈어도 될까요, 전하?”
릴리는 진심으로 걱정된다는 얼굴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혹시 낮의 전투에서 머리를 다치셨나요?”
다들 말은 안 해도 같은 생각을 하는 게 뻔했다.
그야 미친 소리처럼 들리는 게 당연하지. 마법사더러 탱킹을, 방패기사더러 교란을, 치유사제더러 저격을 하라고 지시했으니까.
하지만 이곳은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클리어가 불가능한 스테이지.
그렇다면 미친놈처럼 깨는 방법 말고는 도리가 없잖아?
“여러분의 의심은 타당하다. 확실히 그냥 듣기만 해서는 미친 황자의 또 다른 자폭쇼처럼 여겨지겠지.”
다들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긴 했는지, 일제히 어깨를 움찔 떨었다.
“하지만 여러분 모두, 내가 지시한 임무를 수행할 ‘능력’이 있잖아.”
나는 히죽 웃으며 파티원들의 얼굴을 둘러보았다.
“내 말이 틀렸나?”
“…….”
내 말에 릴리와 켄, 데미안은 당혹한 얼굴로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
***
조금 전, 파티원들을 소집하기 전. 내 숙소.
나는 파티원들의 스탯창을 살피는 중이었다.
우선, 내 호위기사이자 이 게임의 주인공. 루카스.
[루카스(SSR)]– 레벨 : 25
– 칭호 : 황자의 호위기사/주인공
– 직업 : 중급 기사
– 근력 25 민첩 25 지력 10 체력 25 마력 10
‘크~ 스탯 아름다운 것 좀 보소.’
25레벨 스탯 제한이 25인데 기사로서 필요한 항목은 다 맥스다. 지력하고 마력도 아주 낮은 것도 아니고. 괜히 SSR등급 주인공이 아니라니까.
그리고 스킬은, 어디 보자.
– 보유 스킬
> 패시브 : 맨 오브 스틸
> 스킬1 : 의지의 일격
> 스킬2 : ??? (2차 전직 이후 개방)
> 궁극기 : ??? (3차 전직 이후 개방)
패시브 스킬인 ‘맨 오브 스틸’은 기본 방어력 증가와 함께, 스테이지당 한 번 죽음에 이르는 대미지를 무효화해 준다.
삐끗하면 죽고 게임오버 당하는 이 게임에서 최고의 성능이라 할 수 있다. 주인공이니까 준 보험이라고 할까.
1스킬인 ‘의지의 일격’ 역시 주인공다운 사기 호화 옵션인데, 적을 죽일 때마다 영구히 스택이 쌓이는 스킬이다.
다시 말해 적을 죽일 때마다 대미지가 오른다는 뜻이다.
3년차까지 게임이 진행되면 이 스킬 하나가 어지간한 다른 영웅의 궁극기급 위력이 된다. 이 무슨 개사기……!
‘아직 2스킬이랑 궁극기가 안 열린 건 아쉽지만.’
튜토리얼 시점에서도 충분히 강력한 상태다. 역시 주인공이야.
‘루카스는 확인했고, 다음은…….’
나를 볼까. 나는 화면을 옆으로 넘겼다.
[애쉬(EX)]– 레벨 : 1
– 칭호 : 망나니 3황자
– 직업 : 초심자
– 근력 1 민첩 1 지력 1 체력 1 마력 1
“…….”
뭐냐 이 구데기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잠시 얼어붙었다. 하지만 눈을 비비고 다시 봐도 잘못 본 게 아니었다. 뭐야?!
아니 애초에 레벨1은 뭔데? 이 게임 최저레벨이 5 아니었어? 그리고 기본 스탯도 최저 5 아니었냐? 왜 스탯까지 죄다 1이야?
‘그리고, EX등급은 또 뭔데?’
처음 보는 등급이었다. 얘 원래 등급은 N 아니었나?
이 게임의 캐릭터 등급은 SSR-SR-R-N으로 분류되는데.
EX는 이 게임을 한계까지 파고들었던 나도 처음 보는 것이라 당황스러웠다.
‘애쉬는, ‘나’는…… 게임 때와는 다른 캐릭터가 되었다.’
당황스러웠다. 당황스러웠지만, 그래도 혹시 모를 변수가 될 수 있으니까.
혹시 알아? 이 절망적인 상황에서 뜻밖의 잭팟머신이 되어 줄지도 모르잖아.
애써 희망회로를 돌리며 보유 스킬도 살폈다. 어디 보자.
– 보유 스킬
> 없음
“…….”
아냐, 침착. 침착하고 심호흡을 하자.
지금은 1레벨이라 그런 거야. 레벨이 오르고 전직도 하고 하면 스킬도 생기고 스탯도 오를 것이다.
슬슬 타는 냄새가 나는 희망회로를 멈추지 않으며 나는 애써 그렇게 생각하려 애썼다.
나는 스킬탭을 끄고 특성탭을 열어 보았다.
특성은 스킬과는 별개로, 그 캐릭터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얻는 습관이나 기벽(Quirk)이 스탯에 영향을 끼치는 것이다.
얻는 데에는 제한이 없지만 장착은 최대 3개까지만 가능하다.
특성탭을 열자, 한 가지 특성이 보였다.
– 장착 특성 (1/3)
> 지도 작성
“아, 있다.”
다행스럽게도 게임 때 애쉬가 갖고 있던 특성이 그대로 있었다.
지도 작성. 실제로 지도를 그리는 능력은 아니고,
– 전체 전장을 도트 형태의 미니맵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하루에 한 번 5분간 활성화 가능.
이런 특성이다.
플레이어나 갖고 있을 법한 능력인데, 이걸 왜 캐릭터가 갖고 있냐고 생각했는데…….
‘애초부터 나처럼 플레이어가 빙의할 경우를 가정하고 주어진 스킬인 걸까?’
뭐, 지금 고민할 문제는 아니었다. 일단은 당장의 위기를 돌파하고 나서 생각할 일.
지도 작성의 존재를 확인한 나는 내 스탯창을 얼른 꺼 버렸다. 수치가 너무 처참해서 굳이 더 보고 싶지 않았다.
이제 나머지 셋의 스탯창을 살펴볼까.
“흠, 다들 평범하네.”
릴리, 켄, 데미안은 고만고만한 등급의 캐릭터들답게 달리 볼 건 없었다.
그나마 릴리가 R등급 마법사에 스탯도 준수한 편이다. N등급 기사인 켄과 N등급 치유사제인 데미안은 딱 N등급다운 스탯.
만약 이렇게 눈에 보이는 스탯이 전부였다면, 나는 진즉에 공략을 포기했을 것이다. 불가능하니까.
하지만…… 릴리, 켄, 데미안에게는 특별한 점이 있다.
게임에서는 활용할 수 없었던, 튜토리얼 캐릭터에게 개발자가 심어 둔 ‘장난’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