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Tyrant of a Defense Game RAW novel - Chapter 41
◈ 041. [STAGE 2] 무게
시궁쥐는 모두 격멸되었다.
변경백에게 어그로가 끌린 몬스터 놈들은 우리에게 등을 보였다.
성문을 열고 나선 루카스와 병사들이 놈들의 후방을 쳤다. 성벽 위에서 화력지원도 이어졌다.
시궁쥐들은 후방에서부터 종심까지 일점돌파 당했다.
산발적인 저항이 이어졌지만, 이미 파도가 아니라 한낱 물방울이 된 놈들은 허약하기 그지없었다.
인간들의 검과 창 앞에서 쥐떼는 사냥 당했다. 오래 지나지 않아 남은 시궁쥐들을 모조리 해치울 수 있었다.
하지만.
“…….”
병사들이 잔여 시궁쥐들을 하나하나 정리하는 벌판을 지나서.
나는 루카스와 노병들이 모여 선 곳으로 헐레벌떡 향했다. 치유마법을 쓸 수 있는 데미안과 함께.
“전하.”
내가 다가가자 루카스가 나를 보았다.
루카스의 새 갑옷과 새 검은 모두 시궁쥐의 피로 범벅이었다.
하지만 루카스는 그것을 닦아 낼 생각도 못 한 채, 무겁게 고개를 떨어뜨리고 있었다.
“늦은 것 같습니다.”
“…….”
나는 사람들을 헤치고 무리의 가운데로 들어갔다.
크로스 변경백은 그곳에 누워 있었다.
노기사의 상태는 참혹했다. 쥐떼에 뜯어먹힌 갑옷은 형체도 알아볼 수 없었고, 손발은 없다시피 했다.
괴물들의 이빨자국이 남은 몸 곳곳에 뼈가 보일 지경이었다.
데미안이 급히 달려가서 변경백에게 회복마법을 사용했지만.
“죄송합니다만, 황자님. 이 상처는…….”
직후 데미안은 눈을 꾹 감고 고개를 저었다.
자신의 회복마법으로는 어찌할 방도가 없다는 거겠지. 설혹 SSR등급 힐러가 와도 이런 부상은 고칠 수가 없을 터.
그래도 나는 급히 품에서 상급 체력 포션을 꺼냈다.
저번 보상 상자에서 나온 고급 포션이다. 이거라면 어떻게든…….
“그만두게.”
그때 크로스 변경백이 힘겹게 중얼거렸다.
“그거 부어서 나을 상처도 아니고, 겁나게 아프기만 할 것 같으니.”
“변경백!”
“몸이나 좀 일으켜주게. 아무 것도 안 보이는군.”
나와 데미안은 천천히 크로스 변경백을 부축해 상체를 일으켰다.
변경백이 쿨럭거릴 때마다 입술 너머로 핏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전투는, 끝났나.”
“그렇소. 변경백. 그대의 공이 무척 크오.”
“성벽은…… 뚫리지 않았나.”
“뚫렸지만, 괴물들은 한 마리도 안으로 들이지 않았소. 도시 안의 사람들은 모두 무사하오.”
“다행이군…….”
크로스 변경백은 파르르 떨리는 눈꺼풀을 들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평생 그와 함께 이곳을 지킨 노병들이 참담한 표정을 지은 채 빙 둘러서 있었다.
크로스 변경백의 입가에 흐릿한 미소가 걸렸다.
“다들 죽상 짓지 마라. 이곳은 괴수전선. 누군가가 죽는 것이 당연한 곳이다. 내 차례가 온 것뿐이야.”
“…….”
“한 명 한 명의 죽음에 슬퍼하지 마라. 그보다는 승전했음을, 생존했음을 기뻐해라.”
담담하게 내뱉은 전임 영주는 나를 물끄러미 보았다.
“이곳은 무덤 위의 도시. 전사자가 많다는 멸칭이기도 하지만, 설혹 무덤 위에서라고 해도 사람들은 살아간다는 뜻이기도 하네.”
나는 그의 말을 귀담아 들으려 애썼다.
“슬퍼하고 애도하기만 해서는 도시가 멈춰 버리네. 젊은 영주. 장례를 챙기는 것도 좋지만, 모두에게 그에 상응하는 기쁨도 주도록 하게.”
“명심하겠소.”
“사람을 살아가게 하는 것은 희망이니까…….”
변경백은 힘겹게 뜨고 있던 눈을 천천히 감았다.
“그러니 누군가 죽어야 한다면, 이제 잃을 희망도 없는 내가 죽는 게 맞겠지.”
데미안의 회복마법으로 가까스로 멎었던 출혈이 다시 시작되었다. 노기사의 온몸에서 피가 물처럼 쏟아졌다.
데미안이 나를 보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변경백은 창백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하나만 약속해 주게, 애쉬 황자.”
“말해보시오, 변경백. 내가 들어줄 수 있는 것이라면 최선을 다하겠소.”
“혹시 내 딸이 이곳에 오거든…… 애비가 미안했다고, 전해 주게.”
“…….”
“너는 부디 자유롭게…… 마음 가는 대로 살아가라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꼭 그리 전해 주리다.”
“……그래, 그거면 됐네.”
그의 얼굴에 순식간에 죽음이 드리웠다.
빛이 꺼져가는 눈으로 잠시 허공을 보던 변경백이 웅얼거렸다.
“미안하오, 여보…….”
그는 죽은 아내를 향해 사과하고 있었다.
“결국 나는 지키지 못했어……. 과수원도, 당신도…… 우리의 딸도…… 무엇도…….”
“아니오, 변경백.”
나는 제대로 된 형태도 남지 않은 그의 손을 조심스레 잡았다.
“그대는 세상을 구했소. 이번 한 번 뿐만이 아니라, 그대의 일평생 내내. 전선 위쪽의 모든 인간을 지켜 냈소.”
“…….”
“이 세상은 그대에게 큰 빚을 졌소.”
대답은 없다.
내 말이 이미 들리지 않는지, 변경백은 내 쪽은 한 번도 보지 않은 채. 계속해서 혼잣말을 웅얼거리고 있었다.
“미안, 해. 결국 나는 아무 것도…… 지키지…… 못했…….”
변경백의 피에 젖은 두 눈에는 그저 회한만이 넘실거렸다.
그 순간 퍼뜩 생각났다. 나는 품에서 주머니 하나를 급히 꺼냈다.
그때 변경백이 주었던 말린 과일 주머니다.
맛도 없는 이것을 스스로도 왜 계속해서 들고 다녔는지 몰랐는데. 어쩌면 바로 지금을 위해서였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주머니를 열고 말린 과육을 변경백의 입안에 조심스럽게 넣어 주었다.
“아…….”
그 쓰고 비린 열매를 입안에 머금자, 변경백의 피투성이 입가에 흐릿한 미소가 맺혔다.
“이 포도는, 정말로…….”
씹지도 삼키지도 못했지만 변경백의 얼굴에 문득 평온이 스쳤다.
아내와 딸이 함께 있던, 행복했던 그 시절 과수원의 풍경이라도 보고 있는 것일까.
“달……군.”
그리고 변경백은 더 이상 숨을 쉬지 않았다.
“…….”
나는 숨을 거둔 노인의 얼굴을 황망하게 내려다보았다.
이해할 수 없었다.
도시를 지키다 모든 것을 잃은 이 남자가, 도시가 너무 증오스러워서 가문의 업을 스스로 폐기하려고 했던 남자가.
마지막 순간 왜 돌아왔는지.
무엇을 위해 싸우다 죽었는지.
이 전선에 대체 무엇이 있어서, 누군가의 일생을 통째로 집어삼키는 것인지.
“무겁군, 변경백.”
피에 젖은 그의 눈꺼풀을 조심스럽게 감겨 주며 나는 중얼거렸다.
“이 도시의 영주 자리는…… 너무도 무거워.”
천근이 양 어깨를 짓누르는 듯하다.
나는 크로스 변경백의 시체 옆에서 한동안 일어나지 못하고 망연자실했다.
그런 내 주위로 하나 둘 모여든 병사들이 하나씩 고개를 숙였다.
뎅- 뎅- 뎅-
멀리서 종소리가 울렸다.
괴물의 침공이 끝났음을, 대피령이 해제되었음을 알리는 종소리였다.
저녁놀과 만종(晩鐘)이 텅 빈 전장을 감싸고 있었다.
***
[STAGE 2 – CLEAR!] [STAGE MVP – 루카스(SSR)] [레벨업 캐릭터]– 애쉬(EX) Lv.11 (↑2)
– 루카스(SSR) Lv.31 (↑2)
– 쥬피터(SR) Lv.37 (↑1)
– 릴리(R) Lv.21 (↑1)
– 데미안(N) Lv.24 (↑3)
[사망 및 부상 캐릭터]– 샤를 크로스(SR) : 사망
[획득 아이템]– 시궁쥐 군단 마석 : 562개
– 랫맨 챔피언 마력핵(R) : 3개
[스테이지 클리어 보상이 지급되었습니다. 인벤토리를 확인하여 주십시오.]– N등급 보상 상자 : 3개
– SR등급 보상 상자 : 1개
>> Get Ready For The Next STAGE
>> [STAGE 3 : 이어지는 것]
***
크로스로드 시내.
영주의 저택.
나는 휘적휘적 걸어 저택의 입구로 들어섰다.
“앗, 영주님!”
나를 발견한 에이더가 호들갑을 떨며 달려왔다.
“어디 다치신 데는 없으십니까아? 걱정하며 기다렸답니다아.”
“……에이더.”
“이번 스테이지도 잘 해결하셨군요. 정말 대단하십…….”
뭐라 지껄이는 뒷말을 더 듣지 않고 나는 에이더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켁? 영주님?”
당황하는 녀석을 그대로 밀어붙여 벽에 처박았다. 쿠당탕!
“커헉, 쿨럭. 영주님, 무슨…….”
“말해.”
쥔 멱살에 힘을 더 꽉 주며 으르렁댔다. 에이더는 당황한 낯빛이 역력했다.
“네? 쿨럭! 네?”
“말하라고.”
“뭐, 뭘 말씀하시는…….”
“시치미 떼지 말고 말해, 이 디렉터 새끼야!”
거의 목을 조를 기세로 힘을 주며 나는 고함을 질렀다.
“현재 상황은 명백하게 이상해. 대체 뭐냐고, 이 미친 난이도는!”
“……!”
“튜토리얼 스테이지야 원래 그런 곳이니까 그러려니 넘어갔어. 스테이지1에서 하필 리빙 아머가 나왔지만, 재수가 없어서 그랬거니 하고 넘어갔다고. 하지만!”
나는 계속 몰아붙였다.
“스테이지2에서 적대 NPC가 등장해서 몬스터들에게 명령을 내린다고? 지옥 난이도도 그딴 짓은 안 해!”
“…….”
“말해! 무슨 헛짓거리를 한 거야? 왜 게임이 이렇게까지 어려운 건데? 다음 스테이지에서는 또 무슨 이상한 일이 벌어지는 거냐?”
에이더의 뱅글이 안경 너머 잿빛 눈동자가 당혹으로 흔들렸다.
나는 이제 두 손으로 에이더의 멱살을 잡고 흔들었다.
“왜 나를 돕는다고 했으면서 이런 사항들을 숨기고 있는 건지, 똑바로 말하란 말이다!”
“……믿지 않으실지도 모르지만, 영주님.”
아랫입술을 꾹 깨물고 있던 에이더가 천천히 말문을 열었다.
“저는 제 나름대로 영주님을 돕고 있답니다. 정말이에요오.”
“헛소리 하지 마! 돕는다면서 이런 일이 일어나? 그리고 돕는다면서 아무런 말도 내게 안 해 줘?”
그러자 에이더는 손끝으로 내 목을 가리켰다.
“그 목걸이.”
내 목에는 가죽 초커 형태의 목걸이가 차여 있다. 튜토리얼 스테이지의 보상 아이템이었다.
“스테이지0을 클리어하셨을 때 받으신 그 목걸이, 스테이지3까지 클리어하시면 기능이 개방됩니다아.”
“그런데?”
“그 기능이 개방되면, 지금 의아해하시는 점을 이해하시게 될 겁니다아.”
에이더는 씁쓸하게 중얼거렸다.
“한 스테이지만 더 클리어하시면 알게 되실 거예요.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났는가를…….”
“…….”
나는 쉽게 믿을 수 없어서 그런 에이더를 계속해서 노려보았다.
“부디 영주님. 아니 고덕님.”
에이더는 나를 지구에서의 닉네임으로 불렀다.
“감당하실 수 있기를 빕니다. 언젠가 이 미친 세계의 진실을 모두 알게 된 뒤에도, 지금처럼 굳건하게 싸워 나가실 수 있기를. 진심으로.”
“뭐?”
“그때부터는 정말로 도망칠 수 없을 테니까요오.”
영문 모를 소리를 하는 에이더에게 나는 떨떠름하게 물었다.
“무엇으로부터 도망칠 수 없는데?”
멱살을 잡히고 목이 졸리는 상황인데도 에이더는 가느다랗게 웃어 보였다.
평소의 뺀질뺀질한 미소가 아니라, 만감이 교차하는 듯 복잡한 미소였다.
“……이 세계 그 자체로부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