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Tyrant of a Defense Game RAW novel - Chapter 43
◈ 043. [Side Story] 에반젤린 크로스
정체불명의 소녀가 내지른 창은 정확하게 마차의 바퀴를 타격했다.
와지끈! 쿠당탕탕!
느닷없는 창격에 박살 난 마차 바퀴가 사방으로 튀었다.
“우와아아악?!”
바퀴를 잃은 마차는 길 위를 주르륵 미끄러지다가 이윽고 멈췄다.
히힝! 히히힝!
놀란 말들이 비명을 지르며 사방으로 달려 나갔다.
“아이고, 아이고 이게 무슨 일이야…….”
갑작스러운 소란에 나는 정신을 차리질 못했다.
웬 여자애가 대뜸 기습해 와서, 마차의 바퀴를 부순 건 알겠는데. 그리고?
그때 마차의 문이 벌컥 열리더니 루카스가 안으로 고개를 들이밀었다.
“괜찮으십니까, 전하?!”
나는 손을 휘저어 주었다.
“걱정 마. 멀쩡하니까. 좀 어지럽긴 한데…….”
“제가 부축하겠습니다. 일단 밖으로 나오십시오.”
루카스의 부축을 받은 나는 휘청거리며 땅에 발을 디뎠다.
다행히 어느 한 곳 다치지 않았다.
내가 다친 곳이 없음을 확인한 루카스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더니, 습격자에게 호통을 쳤다.
“웬놈이냐!”
“…….”
“이분이 뉘신 줄 알고 감히 창끝을 들이대느냐, 즉시 체포하여 엄벌을 내리겠다!”
마차를 박살 낸 정체불명의 소녀는 길의 가운데에 서 있다. 아주 뚱한 표정으로.
한숨 돌린 나는 그제야 소녀의 모습을 찬찬히 살필 수 있었다.
색이 옅은 백금빛 머리칼은 꽤 길었는데, 목 뒤에서 가볍게 묶었다.
뾰족한 눈빛은 선명한 녹색이고, 앙다문 입술 사이로 삐져나온 송곳니가 살짝 보인다.
“……어린애잖아.”
그렇다. 아주 어리다. 많이 쳐줘도 열네 살? 열다섯 살? 그보다 더 어릴 것 같은데.
“어리다고 얕잡아 보시면 안 됩니다, 전하. 훈련받은 전투원인 듯합니다.”
“훈련을 받았다고?”
“저 아이가 입고 있는 옷을 보십시오.”
옷? 옷이 왜? 루카스의 말을 들은 나는 소녀의 옷차림을 살폈다.
금색 자수가 새겨진 흰 재킷에 흑색 스커트. 그리고 등에 멘 붉은 망토 차림이다.
“……교복?”
어쩐지 익숙한 양식이라 나도 모르게 삿대질하며 루카스에게 물었다.
“저거 교복 맞지?”
“예. 제국 황실 아카데미의 교복입니다. 망토에 새겨진 문양을 보니 확실하군요.”
요컨대 쉽게 말해서 기사 사관학교 학생이라는 거다. 한창 급식 먹을 나이라는 뜻도 되겠다.
“아카데미의 생도(生徒)가 여기서 뭘 하는 거냐! 정체를 밝혀라!”
루카스가 연이어 호통을 치자, 소녀는 뾰족한 송곳니를 드러내며 으르렁댔다.
“웬놈이냐, 하는 질문은 이쪽이 할 소리인데요. 아저씨들.”
“뭐, 뭐? 아저씨?”
갑작스러운 연령 호칭 공격에 내가 발끈했지만, 소녀는 여전히 시큰둥했다.
“저보다 나이 많이 잡쉈으면 저한테는 아저씨죠. 아니에요? 그쵸? 제 말 맞죠?”
“으, 으음!”
반박이 안 되어서 나는 주먹만 움켜쥐었다. 요 건방진 10대 특유의 패기 보소……!
소녀는 손에 들린 거대한 기병창으로 영주 저택 쪽을 가리켜 보였다.
“여긴 제가 살던 집이에요. 그런데 오랜만에 돌아왔더니 웬 처음 보는 군인들이 점거하고 있더라고요? 수백 년간 걸려 있던 우리 가문의 깃발도 멋대로 내려가 있고.”
뾰족하게 뜨여 있던 소녀의 눈이 가늘어졌다.
“예전부터 골칫거리였던 산적 놈들인지. 그도 아니면 적국의 공작세력이 침투해온 건지. 정보가 부족해서 고민하고 있는데, 마침 아저씨들이 마차 몰고 오길래 질문 좀 하려고 멈춰 세운 거예요.”
“야이, 말로 해도 되잖아! 굳이 마차를 부셔야 했냐!”
“일단 적으로 의심되면 제압부터 하라고 학교에서 배웠거든요.”
척-
소녀는 가볍게 창을 돌려 우리 쪽으로 향했다.
“그래서, 아저씨들은 누구에요? 왜 남의 집을 멋대로 점거하고 있죠? 대답 여하에 따라 좀 아플 수도 있으니, 신중한 대답 부탁드려요.”
발끈한 루카스가 나 대신 대답해 줬다.
“무슨 헛소리냐! 이곳은 크로스로드 영주께서 기거하시는 저택이다. 당연히 영주님의 소유다!”
“……? 그러니까 그게 무슨 소리에요?”
소녀도 진심으로 영문을 모르겠다는 눈치다.
“여기 영주는 우리 아빠인데?”
잠시 침묵이 흘렀다.
나와 루카스는 시선을 교환했다. 눈앞에 선 소녀의 정체를 깨달은 까닭이었다.
“그렇군. 네가…….”
나는 소녀의 이름을 천천히 내뱉었다.
“……에반젤린 크로스로군.”
자신의 이름이 불리자 소녀가 뾰족한 눈을 치켜떴다.
“저를 아세요, 아저씨?”
“네 아버지께 이야기 많이 들었지.”
두 눈을 마주치자, 그제야 이 소녀가 크로스 변경백의 딸임을 체감할 수 있었다. 녹색 눈이 쏙 빼닮았네.
‘아니, 그런데 잠깐만.’
내가 게임에서 봤던 SSR등급 탱커 에반젤린 크로스는 분명히 훤칠한 키의 미녀 캐릭터인데.
눈앞의 이 소녀는 나이도 어리지만, 무엇보다…….
“……생각보다 무지 작네.”
단신(短身)이다.
나보다 머리 두 개는 더 작은 거 같다.
키도 작고 몸집도 조그맣다. 창을 쥔 손가락도 꼬물꼬물한 것이, 영락없는 어린애다.
게임에서는 이렇게 어려 보이지도 않았고 키도 훤칠했기 때문에.
이미지가 너무 달라서 바로 알아보지 못했다.
‘왜 이렇게 다른 거지? 루카스나 쥬피터는 게임이랑 이미지가 비슷했는데?’
게임에서의 에반젤린과 이곳의 에반젤린을 머릿속으로 비교하고 있는데, 루카스가 팔꿈치로 내 옆구리를 꾹꾹 눌렀다. 어? 왜 그래?
“저기, 전하. 사람을 앞에 두고 외모 품평이라니요. 그런 말씀은 실례입니다…….”
“헉.”
생각을 멈추고 앞을 보자, 에반젤린의 표정은 싸늘하게 굳어 있었다. 딱 봐도 무지 화난 것 같다.
“아니아니, 에반젤린 양! 오해가 있어. 네 키가 작다는 게 아니라, 내가 게임에서 봤던…… 아니, 상상했던 모습보다는 살짝 작다는 말이었다고!”
“…….”
나는 급히 팔을 휘저으며 변명(진심)을 내뱉었지만, 당연히 상황은 수습되지 않았다.
에반젤린의 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남의 신체 콤플렉스를 코앞에서 놀려대다니, 어지간히 목숨 재고가 많으신 모양이에요?”
“아니, 하나뿐인데요…….”
“그럼 근검절약 아끼셨어야죠.”
에반젤린이 수중의 거대한 창을 빙글- 고쳐 잡았다.
“생각이 바뀌었어요. 조금 전에는 상황을 물으려고 살짝 찌른 거지만, 이젠 진심으로 갑니다.”
고오오오-
창을 고쳐 쥔 소녀의 주위로 무형의 투기(鬪氣)가 몰아닥쳤다.
문외한인 나조차도 바람이 몰아치는 것처럼 느낄 정도니, 진짜 장난이 아닌 상황이다.
스릉!
검을 뽑아들고 내 앞에 선 루카스가 호통을 쳤다.
“창을 거둬라, 에반젤린 크로스 양! 네 눈앞에 계신 분은 제국 3황자 애쉬님이시다!”
그러자 에반젤린이 콧방귀를 뀌었다.
“남의 집 무단 점거에 이어서 이제는 황족 사칭이에요? 창의력은 괜찮지만 개연성이 부족하지 않아요?”
“뭐?”
“그 유명한 망나니 3황자가! 이런 시골 벽촌에 내려올 이유가 없잖아요!”
아니, 진짜 내려와 있는데!
투학!
에반젤린이 땅을 박차자, 작은 발이 땅을 내딛은 부분에 얕은 크레이터가 생겨났다.
눈을 감았다 뜨자 소녀 창기사는 바로 코앞까지 날아와 있었다. 흡사 미사일 수준의 스피드다.
채앵-!
그대로 내찔러진 창을 루카스가 검을 휘둘러 빗겨 냈다.
창끝과 검날이 서로를 갉아 내며 시뻘건 불똥을 튀겼다. 에반젤린의 눈에 이채가 스쳤다.
“오호, 이쪽 아저씨는 제법 하시네?”
“당연하지, 에반젤린 양. 나는 네 아카데미 선배이기도 하거든……!”
자세를 바로잡은 루카스가 스스로를 소개했다.
“제국 황실 아카데미 369기 차석, 루카스 맥그리거라고 한다.”
오오, 차석! 학년 차석이었어, 루카스? 대단한데!
감탄하는 나를 향해 루카스가 갑자기 손을 홱 가리켰다.
“참고로 내 뒤에 계신 애쉬 황자 전하께서도 네 아카데미 선배 되신다!”
어? 그래? 진짜? 나도 거기 나왔어?
“369기 생도 중에서는 그야말로 전설 중의 전설로 통하시지!”
게다가 전설씩이나 됐어, 내가?!
“무슨 전설? 무슨 전설이었는데, 루카스? 응?”
“어, 으음…….”
하지만 전설이라고만 말하고 루카스는 더 이상 부연하지 않았다. 게다가 왠지 내 시선을 좀 피하는 것 같다.
어째 불안해진 내가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저기, 루카스. 하나만 물어도 되냐?”
“무, 물론입니다, 전하. 무엇이든지.”
“그…… 나는 졸업 석차가 어떻게 됐더라?”
“…….”
잠깐 굳었던 루카스는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마지못해 대답해 주었다.
“……1, 1등, 이셨습니다.”
“……뒤에서?”
“……그, 예.”
나는 아파오는 이마를 스스로 탁 쳤다.
“그래서 전설이었구나?”
“예, 뭐…… 그런 의미도 없지는 않습니다만…… 역시 제왕의 피를 물려받으신 분답게! 화끈하고 당당하게 학업을 팽개치고 노셨기 때문에! 뒤에서 1등도 스스로 목표하신 등수였고!”
아이고, 호방하다, 호방해! 그래, 쳐놀려면 화끈하게 전교 꼴등 정도는 먹어야지. 장하다 김애쉬!
“이제는 우리학교 선배 사칭까지 하다니…… 진짜 가지가지 하시네요, 아저씨들.”
우리의 만담 아닌 만담을 듣고 있던 에반젤린이 자세를 고쳐 잡았다.
창을 들지 않은 손을 옆으로 쭉 뻗었다가, 가슴팍 앞으로 당기며 허리를 숙인다.
한쪽 다리는 뒤로 빼고 양 무릎을 살짝 굽히며.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는 아름답고 우아한 예법이었다. 한 손에 들린 거대한 기병창만 없었다면 말이지.
“알겠습니다. 그럼 ‘선배님들’께, 375기 조기 수석졸업생 에반젤린 크로스가…….”
직후 에메랄드빛 두 눈을 홱 치켜뜨고는,
“인사 올립니다-!”
투학-!
날아들었다.
루카스도 지지 않고 마주 달려들었다.
챙! 채챙! 츠카악-!
두 기사는 서로 창과 검을 휘두르며 격돌했다.
실력은 완전히 백중세. 막상막하다.
그도 그럴 것이 둘 다 SSR등급의 캐릭터니까. 이 세계에 몇 없는 전투의 천재들이다.
서로의 재능은 호각이라 봐도 되겠지.
츠칵! 카가가각!
하지만, 전투는 조금씩 루카스가 유리해졌다.
점점 더 루카스는 공격하고 에반젤린은 수비하는 모양새가 되어 갔다.
루카스의 날카로운 공격을 에반젤린은 막아 내기 급급했다.
재능은 동급이지만, 아마도 경험의 차이.
나를 지키느라 숱한 실전에서 구른 루카스에게는 노련함이 있었다. 아직 어린 에반젤린에게는 없는 관록이.
“칫!”
그때였다. 완전히 수세에 몰린 에반젤린이 미간을 팍 찌푸리더니, 등에 메고 있던 무언가를 왼팔에 착용했다.
“우리 학교 쌤들보다 나은데요, 아저씨? 이것까지는 안 꺼내려고 했는데!”
그것은 작은 독수리 모양 방패였다.
철컹!
에반젤린이 왼팔에 그 방패를 착용하자, 독수리의 날개 부분이 펼쳐지며 가로로 길쭉하게 전개되었다.
오른손에 창. 왼팔에 방패.
그 모습을 보자 실감이 들었다.
‘정말로 변경백의 딸이구나.’
자세를 고친 에반젤린이 루카스에게 재차 달려들었다.
“이제 진짜 전력으로 갑니다-!”
표정을 굳힌 루카스는 묵묵히 검을 들어 맞받아칠 뿐이었다.
채애앵-!
방패를 꺼낸 에반젤린의 전투력은 눈에 띄게 향상되었다.
루카스의 날카로운 검격을 방패로 흘려내고, 오른손의 거대한 창을 깃털처럼 가볍게 휘두르며 공격했다.
방패를 꺼내기 전에는 분명히 밀렸는데, 이제 두 사람은 다시 팽팽하게 맞서고 있었다.
‘눈호강이긴 한데.’
극도로 단련된 두 달인의 대결은 눈이 돌아가도록 화려하고 멋졌다.
허공에서 불꽃놀이라도 하듯이 금속과 금속이 부딪힐 때마다 불꽃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멋진 건 멋진 거고. 이러다가는 누가 다치겠어.’
사실 둘 다 진심으로 서로를 죽이기 위해 싸우는 것은 아니다. 그랬다면 스킬을 펑펑 써댔겠지.
하지만 생사결(生死決)이 아닌 싸움이라고 해도 위험한 건 마찬가지.
슬슬 말려야겠다. 나는 앞으로 나섰다.
“이봐! 둘 다 그만둬, 그만! 거기까지만 하고!”
챙! 채애앵-!
“아무래도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 대화로 풀자고. 으응?”
츠캉! 챙강!
“저기요? 내 말 안 들리니? 얘들아?”
안 들리나보다. 두 기사는 서로 간의 결투에 완전히 몰두해 있다.
‘어떻게 멈출 방법이 없나?’
두 사람의 전투는 완전히 길항(拮抗) 상태.
그렇다면 여기서는, 제3자가 난입해서 흥을 깨뜨리는 수밖에 없겠지.
나는 내 손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SSR등급 운빨무기 ‘럭키 스트라이크’가 반짝거리며 존재감을 어필했다.
‘이 수밖에 없나!’
허접한 공격이라도 상관없다. 이 상황에 브레이크를 걸 수만 있으면 된다.
다행이라 할지 불행이라 할지, 에반젤린은 내게는 신경을 아예 안 쓰고 있다.
루카스를 상대하는 것만으로도 벅찬 듯하다.
나는 두 사람의 바로 옆까지 살금살금 다가갔다.
내가 전투원으로서 존재감이 옅기는 한 모양이다. 진짜 신경도 안 쓰네.
‘살짝, 아주 살짝 때리면 돼!’
나는 주먹을 움켜쥐고 숨을 가다듬었다.
좋아, 간다!
“황자 펀치다~!”
나는 건성으로 주먹을 내뻗었고,
“뭐, 뭐야?! 언제?!”
갑자기 내가 소리를 지르며 주먹을 뻗자, 놀란 에반젤린은 반사적으로 방패를 들어 내 주먹을 막았다.
주먹과 방패가 맞닿는 순간, 내 시야 한쪽 구석에 슬롯이 팽팽 돌아가기 시작했다.
띠링!
7.
어?
일의 자리 숫자가 뜨는 순간, 갑자기 등골이 섬뜩해졌다.
그것은 게이머로서 어떤 직감 같은 것이었다.
이어서 십의 자리.
띠링!
7.
‘뭔가 떴다’는 예감이 벼락처럼 뇌리를 스쳤다.
설마?
잠깐만, 잠깐만. 아니지? 설마? 진짜로?
그리고 마지막, 백의 자리의 숫자는-
띠링!
7.
으아아아아아악!
떴다! 진짜로 떠 버렸다고, 777-!
경악한 나는 입을 떡 벌렸다.
이게 왜 여기서 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