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Tyrant of a Defense Game RAW novel - Chapter 467
◈ 467. [Side Story] 가장 앞의 깃발 (2)
나의 전용장비, [위대한 사령관의 깃발]의 스탯은 다음과 같다.
[위대한 사령관의 깃발(EX)]– 분류 : 깃발 (보조장비)
– 내구도 : 10/10
– 착용자가 지휘하는 병력 전체에 이하의 버프 제공
> 근력+10 민첩+10 지력+10 체력+10 마력+10
> 물리 내성 10퍼센트, 마법 내성 10퍼센트 증가
> 물리 관통 10퍼센트, 마법 관통 10퍼센트 증가
> 모든 종류의 속성 저항 10퍼센트 증가
> 사기가 ‘보통’ 이하로 내려가지 않음
직관적이고, 사기적인 성능이다.
일부 파티도 아니고, 영웅 캐릭터만도 아니고, 내 휘하 모든 병력에 저만큼의 버프를 쏟아 붓는다.
후반부로 갈수록 지휘병력이 늘어나는 만큼 이 깃발의 효과는 더더욱 가치가 높아진다. 그야말로 지휘관 클래스를 위한 장비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깃발의 진정한 성능은 전용장비 기능에 있다.
– 캐릭터 ‘애쉬’ 전용 효과
> 패시브 스킬, 1스킬, 2스킬 강화
> 궁극기 [제국령선포]가 [가장 앞의 깃발]로 진화
패시브 스킬, 1스킬, 2스킬을 모두 강화하며, 동시에 궁극기를 진화시킨다.
그중 화룡정점, 새로운 궁극기, [가장 앞의 깃발].
기본적으로는 기존 [제국령선포]의 기능을 모두 가진다. 요새를 소환할 수 있고, 점령전을 선포하며, 소환수 숫자의 제한이 풀리는 등.
그리고 여기에 추가되는 기능이 바로…… 이것이다.
“한때 이 깃발을 들었던 모든 이는- 이곳에 집결하라!”
나는 한쪽 무릎을 꿇으며 깃발을 바닥에 밀어 넣었고, 내 외침과 동시에.
번쩍-!
깃발에서부터 빛이 폭산했다.
나를 향해 사방에서 쏟아진 검은 가시나무들은 그런 빛 따위 무시하고 계속 달려들려고 했지만,
뎅겅!
빛 속에서 나타난 검에 의해 줄기 끝이 잘리고,
카가각!
방패에 의해 줄기 끝이 막히고,
화르륵……!
쏟아져 나온 마법에 의해, 줄기째로 마법의 불꽃에 타 버렸다.
빛 속에서 나타난 각양각색의 무기들이 나를 보호하며, 나를 향해 달려들던 수백, 수천 줄기의 가시나무들을 일제히 꺾어 냈다.
“뭣……?!”
페르난데스가 당혹한 신음을 흘렸다.
그야 그럴 만도 하지. 방금 승부가 났다고 확신하고 있었을 텐데. 내가 꺼낸 비장의 수에 의해 무효가 되어 버렸으니.
화아악……!
깃발에서 뿜어져 나오던 빛이 사그라지고 나자.
척! 척! 척!
어느새 내 주위에는 일렁이는 아지랑이 같은…… 잿빛 그림자로 이뤄진 사람의 형상 수백이 질서 정연히 도열해 있었다.
나를 지키듯 둘러싼 그들의 사이에서, 나는 천천히 무릎을 펴고 몸을 일으켰다.
“이건…… 설마…….”
페르난데스가 얼빠진 소리를 흘렸다.
“모두…… ‘너’인 거냐?”
나는 말없이 빙그레 웃었다.
그래.
이들 하나 하나가 모두 ‘나’의 잔영.
나라고 하는 ‘세이브 슬롯’을 거쳐간- 과거 회차의 그림자들이다.
***
처음에 나는 모든 직업을 선택할 수 있었다.
와일드카드 캐릭터로서, 내가 바라는 대로 스스로를 육성할 수 있었다.
그 수많은 가능성 중에서 나는 지휘관을 골랐고, 여기까지 왔다.
……하지만, 늘 궁금하긴 했다.
만약 내가 다른 직업을 선택했다면 어땠을까?
처음 계획대로 딜탱 클래스의 기사가 되었다면?
마법 적성을 따라 마법사가 되었다면?
암살자, 궁수, 사제, 격투가…….
그 무수한, 가지 않은 길들.
만약 다른 길을 걸었다면, 나는 지금쯤 어떤 모습일까.
그 수많은 가능성이 도달한 각자의 결말이, 지금 내 옆에 소환된 것이다.
단검을 든 애쉬, 창을 든 애쉬, 마총을 든 애쉬, 지팡이를 든 애쉬…….
각양각색의 갑옷을 입고, 망토를 두르고, 깃발을 치켜든 애쉬들.
모두가 각자 세계의 끝에 도달한, 그리고 끝내 패배한 실패자들.
“기록을 남긴 건 형뿐만이 아니야.”
애쉬 또한 자신의 걸어온 기나긴 길을, 그 무수한 발자취를, 이 깃발에 남겨 두었다.
이들 모두가 내가 걸어온 공략의 잔해이며, 나라고 하는 불꽃이 타고 남은 잔불이고, 내 존재의 그림자가 비춘 잔영(殘影)이다.
“대체 무슨 원리로……?”
페르난데스가 이를 갈았다.
“설마 에이더, 그 선지자 놈 짓인가?!”
“몰라. 원리 같은 거 알 게 뭐야.”
원리는 모른다.
본래 회귀자의 힘, 시간을 다루는 재능이 있는 애쉬이기에 가능한 어떤 기적인지.
아니면 페르난데스의 말대로 선대의 애쉬와 에이더가 함께 힘을 합쳐 수를 썼기에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인지.
‘뭐 아무렴 어때.’
이유도 모른다.
타인의 기억을 덧씌운 또 다른 자신을 위해 애쉬가 남긴 안배였을까?
자격을 입증하고, 이 깃발을 완성하면, 과거 자신의 경험을 빌려주기 위해서?
‘알 바 아니다.’
지금은 최후의 회차.
이유나 원리 따위는 아무래도 좋다. 요긴하게 잘 쓰면 그만이지.
‘명색이 회귀자인데, 이 정도 특전은 있어야지.’
안 그래서야, 기억 잃고 영혼 박살나고 서러운 일 뿐인데, 회귀자 해먹겠냐고……!
– 힘내라, 나.
문득, 과거의 나로부터 전해진 그 편지의 마지막 글귀가 떠올랐다.
나도 모르게 입가에 피식 웃음이 스쳤다.
단절된 나로부터의 응원을, 그리고 기록을 이어받아서-
최후의 나는, 다시금 앞으로 한 걸음을 나아간다.
“고맙다, 나.”
과거의 애쉬에게 작게 중얼거린 뒤, 나는 앞으로 깃발을 홱 내밀었다.
“자, 그럼…… 나도 이제 전력을 갖췄으니.”
내 움직임에 맞추어, 수백의 내 잔영들이 일제히 각자의 무기를 치켜들었다.
“2라운드 시작해 볼까, 형?”
츠카가가각!
페르난데스는 대답 대신 재차 수백 줄기의 가시나무를 포탄처럼 쏘아 냈다.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가시나무 줄기들을 노려보며 나는 외쳤다.
“가자-!”
그 외침에 맞추어, 나의 잔영들이 일사분란하게 마주 돌진했다.
***
애쉬는…… 나는 기본적으로 스탯이 저열하다.
달리 말해서 재능이 일천하다. 이것은 태생적 한계에 의한 것으로, 제아무리 회귀자라고 해도 극복할 수 없는 문제였다.
기사로서 천재였던 라르크. 마법사로서 천재였던 페르난데스.
두 형에 비해 애쉬는 무엇도 특출한 구석이 없는 범재, 혹은 둔재에 불과했다. 다른 영웅들에 비해서도 결코 강력한 캐릭터가 아니다.
수많은 경험을 쌓아 기어코 세계의 끝에 도달했다고 해도, 한계는 명확하다.
……하지만.
각 개체가 약하다고 해도, 이들은 모두 ‘나’다.
다시 말해서- 한 명 한 명의 손끝 발끝까지, 완전히 내 의지대로 컨트롤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지휘관의 의지 그대로 움직이는 그림자의 군대?’
이게 바로 치트지 뭐가 치트야!
쾅! 콰과광!
방패를 든 내가 가시나무의 초격을 받아 낸다.
츠칵! 츠카칵!
그 뒤를 검과 창을 든 내가 가시나무를 자르며 전진한다.
번쩍! 번쩍-!
지팡이를 든 내가 마법을 뿌리고, 활이며 마총을 든 내가 연신 저격한다.
말로 명령을 내릴 필요도 없다. 방향을 지시할 필요도, 의도를 설명할 필요도 없다.
내가 사고하는 즉시 나로 이뤄진 군대는 나의 생각 그대로 움직이며, 초월적인 효율로 진군했다.
이것이 나만의 원 맨 아미(One man army).
나 일인들로 이뤄진 군단은 초월적인 돌파력을 발휘하며, 페르난데스의 목전까지 내달렸다.
“큭……?!”
삽시간에 방어가 돌파당하자 페르난데스는 낭패한 신음을 흘렸다.
촤르르륵! 촤르륵!
이 와중에도 반격을 꾀하는 것인지, 페르난데스는 천장에 숨겨 두었던 가시나무를 움직여 후방의 나를 기습해 왔다.
하지만 나는 팔짱을 끼고 그것을 지켜보기만 했다.
‘이쪽에는 지휘관 트리를 탄 ‘나’도 몇 명이나 더 있거든!’
타악!
깃발을 든 다른 내가 바닥에 깃대를 꽂자, 그곳에서부터 회색 성벽이 생성되었다.
초고속 카메라에 녹화된 개화(開花) 과정처럼, 단숨에 돋아난 겹겹의 성벽이 나를 향해 쏟아지는 가시나무들을 막아 냈다.
마지막 노림수마저 파훼되자, 페르난데스는 허탈하게 웃었다.
“이건 말도 안 되잖냐, 동생아. 이런 힘을 숨겨 두다니…… 기록에는 없었는데…….”
나도 마주 웃어 주었다.
“그러게 공략집에 너무 의존하지 말라니까.”
족보만 달달 외다간, 시험범위 밖에서 문제 나오면 대처를 못한다고?
투학-!
마지막 가시나무 저항선을 뚫어내고.
페르난데스에게 도달한 나의 잔영들이 망설이지 않고 무기를 휘둘렀다.
푹! 푸푹!
잿빛 그림자로 이뤄진 검과 창이 페르난데스의 손목과 발등, 허벅지와 팔뚝 따위에 꽂혔다.
“크흑!”
페르난데스는 이를 악물고 신음을 참아 냈다.
그런 형을 향해 나는 천천히 다가갔다. 나의 잔영들이 파도가 갈라지듯 길을 비켜서며, 옥좌를 향해 길을 텄다.
“하하…… 정말이지, 너는 정말 예전부터 속을 알 수가 없는 녀석이었어.”
페르난데스는 내 무기에 관통당해 옥좌에 꿰이듯 앉은 몰골인데도 부드럽게 웃고 있었다.
“지나치게 비상하다가도, 뜬금없이 건달처럼 굴고. 말 잘 듣다가도 다 깽판을 쳐버리고.”
“…….”
“언제나 나 몰래 꿍꿍이속을 감춰 두고. 기묘할 만치 눈치가 좋았지…….”
나는 혀를 찼다.
“그건 형이 겪은 나야, 아니면 기록 속의 나야?”
“어느 쪽이든, 언제나 너는 그랬어.”
피를 흘려선지 페르난데스는 안색이 파리했다. 페르난데스는 창백해진 입술을 파르르 떨면서도 계속해서 웃어 보이려 노력했다.
“그리고…… 어느 쪽이든, 언제나 우리는 형제였다.”
“입가심거리도 없는데 왜 이렇게 느끼해. 이제 와서 동정 사려는 건 아니지?”
“하하, 네 말대로야. 이제 와서 네게 목숨 구걸해서 뭐하겠어?”
페르난데스는 옥좌의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한결 편안해진 얼굴로 중얼거렸다.
“이제 우리는 목숨이 필요 없는 세계로 떠날 텐데.”
“……뭐?”
“늦었어. 애쉬.”
쿠구구구궁!
페르난데스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알현실 전체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당황한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뭐야?!
“셧다운 프로토콜은 아직 발동하지 않았는데……?!”
콰과과과광!
거센 진동과 함께 몸이 둥실 떠오르는 감각이 들었다.
나는 놀라서 밖을 보았고, 그제야 발견했다.
거대한 가시나무가.
이곳 황궁 전체를 손아귀에 틀어쥐듯 감싸고, 천천히 허공으로 들어 올리고 있음을.
가시나무로 이뤄진 거대한 손은- 마치 거대한 한 척의 배처럼 보였다.
방주(方舟).
바로 이곳이, 페르난데스가 줄기차게 말해온 그 ‘최후의 방주’였다.
“이거 형이 한 짓이야?”
나는 기가 질려서 중얼거렸다.
설마, 페르난데스는…… 나와 싸우는 중에도, 에버블랙을 조작해서 이런 짓을 한 건가?
처음부터 이걸 노리고……?
“……셧다운 프로토콜은 덤일 뿐이야.”
페르난데스는 점점 흐릿해지는 목소리로 뇌까렸다.
“영계로 떠나는 이 방주의 남는 공간에, 추가로 승객들을 태워주려는…… 배려일 뿐이지.”
“뭐?”
“설혹 셧다운 프로토콜이 발동하지 않고, 시민들을 태우지 못한다고 해도…… 이 방주는 영계로 출발해.”
페르난데스의 검붉은 눈이 나를 지그시 보았다.
“반드시 생존시켜야 할 사람을 태우고.”
“……설마.”
“말했잖아, 애쉬.”
페르난데스가 헛헛하게 웃었다.
“나는 너를 구원할 거라고.”
“…….”
“세계가 멸망하고, 내 계획이 실패해 나의 시민들을 구원하지 못한다 해도…… 너만은, 구하고 말 테니까. 네게는 그럴 자격이 있으니까.”
“…….”
“너는…… 신세계에서, 영계의 왕으로…… 살아가면 돼…….”
기가 막혀서 입을 떡 벌리고 있다가.
나는 솔직하게 내뱉었다.
“아까 전에 아버지한테 미친놈이라는 욕을 먹을 때만 해도, 솔직히 나는 좀 뿌듯했거든? 뭐랄까, 일대의 미친놈 중에서는 내가 제일이라는 자부심이 있었단 말이야?”
“……?”
“그런데 최강자 자리는 형한테 양보해야겠다.”
경탄을 담아서 나는 인정해 주었다.
“네가 제일 미친놈이다, 페르난데스. 이 독보적 또라이 새끼야.”
쿠구구구궁!
이제 방주는 완전히 허공으로 솟구쳐 오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