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Tyrant of a Defense Game RAW novel - Chapter 580
◈ 580. [STAGE 35] 해충 (2)
같은 시간.
침투조와 함께 척후탑에서 출발한 백야는 여전히 익숙지 않은 비행으로 비틀비틀 파리대왕에게 접근하고 있었다.
‘애쉬, 이 망할 자식…….’
아직도 파리의 몸에 완전히 적응하지 못했다.
겹눈을 통해 들어오는 괴악한 시야로 세상을 바라보며, 백야는 구역질이 솟구치는 속을 가까스로 참아 눌렀다.
‘나를 이런 몸에 집어넣은 걸 후회하게 해주마.’
애쉬 앞에서는 약한 소리를 했지만, 백야는 자신이 넘치도록 있었다.
‘내가 이깟 좀 큰 파리의 의식 하나 못 뺏을까 봐?’
백야는 자신의 앞에 펼쳐진 거대한 파리의 모습을 흘겨보았다.
부오오오오……!
파리대왕은 여전히 전진 중이었다.
뱃속에 침투한 인세 측 영웅들이 난장판을 부리고 있었지만, 별문제 아니라는 듯 계속해서 북쪽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그런 파리대왕에게 가까이 붙으며 백야는 속으로 되뇌었다.
‘나를 자유롭게 풀어준 걸 후회하게 해주마, 애쉬.’
백야는 단 한 번도 자신의 목적을 잊은 적이 없었다.
승천(昇天).
비록 잠깐의 실수로 조금 돌아가는 길을 걷게 되었지만, 여전히 자신은 숨이 붙어 있었고 기회는 손 안에 남아 있었다.
동시에 백야는 자신이 애쉬에게 당한 모멸과 치욕 또한 잊은 적이 없었다.
기필코 되갚아줄 것이다, 기필코…….
그 역전의 한 방을 위해서라면, 이깟 파리 몸에 깃드는 정도 못 할 게 무어랴?
파리대왕의 주위에는 무수한 파리들이 그물처럼 깔려 있었지만, 그 어떤 파리도 백야를 제지하지 않았다.
파리 괴수들은 모두 뱃속의 침입자를 상대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멍청하고 더러운 것들.’
이런 간단한 교란작전에 속아서, 정작 진짜 폭탄이 접근하는 것은 막지 않는다니.
내심 코웃음을 치며 백야는 파리대왕의 거대한 머리 옆까지 날아오른 뒤, 일단 다리를 붙였다.
몇 가지 준비를 한 뒤 파리대왕의 의식에 접속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백야가 파리대왕의 거대한 몸 바깥에 접촉한 바로 그 순간.
‘……?!’
백야의 의식은 순식간에 잡아 먹혔다.
그녀는 속으로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파리대왕의 거대한 집단의식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
《커헉?!》
백야가 정신을 차렸을 때, 그녀는 새하얀 공간에 서 있었다.
《허억, 허억, 뭐, 뭐야……?》
백야는 덜덜 떨며 우선 제 몸을 살폈다.
새파란 오른손이 보였다. 예전에 사용하던 강시의 몸이었다.
하지만 왼손은 백골이었다. 아주 오래 전 사용하던 언데드 리치의 몸이었다.
동시에 하반신은 마법적 데이터 덩어리가 흩날리는 기괴한 몰골이었다. 우반신, 좌반신, 상반신, 하반신이 모두 제각각 달랐다.
백야는 덜덜 떨리는 양손을 멍하니 보다가 꽉 움켜쥐었다.
자신이 무엇인지는 나중에 정해도 된다.
그보다는 이 괴수의 집단의식을 빼앗고,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이 우선이다.
‘강시술의 대가인 이 마술대제 님께…… 이깟 파리 몸 뺏는 건 일도 아니지.’
백야는 주위를 휘휘 둘러보았다.
그나저나, 이곳은 어디인가? 자신이 해치워야 할 상대는 어디에 있지?
으적, 으적…….
그때였다.
무언가를 씹어 삼키는 소리가 느리게, 그리고 선명하게 들려왔다. 등 뒤였다.
《…….》
불길한 예감을 느끼며 백야는 천천히 뒤로 돌아섰다. 그리고 온몸이 굳어버렸다.
그곳에는 시체의 산이 있었다.
문자 그대로…… 산(山)이었다. 어찌나 까마득하게 높은지, 이곳에서는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높고 높은 시체의 산이었다.
시체는 대부분 파리였다. 죽고 죽고 죽고 죽고 죽은 파리들이 그곳에 끝없이 쌓여 있었다.
그리고, 그 산의 앞에서.
으적, 으적, 으적.
한 마리의 파리가 게걸스럽게 무언가를 먹고 있었다.
으적, 으적, 으적…….
늙고 등이 굽은 볼품없는 파리였다.
기묘하게도 파리는 뒷다리 두 개로 가부좌를 틀고 앉은 상태였는데, 앞다리 두 개로는 먹이를 붙잡고 먹고 있었으나, 가운데 다리 두 개는 합장을 한 상태였다.
그 파리는 끊임없이 자신의 손에 잡히는 먹이를 먹어 치우고 있었다.
파리가 지금 먹고 있는 것은 임프였다.
파리는 임프의 머리만 삼킨 뒤, 남은 몸 부분을 휙 내던졌다. 거대한 시체의 산에 임프 하나가 추가되었다.
뒤이어 그 파리는 옆에 놓인 새로운 먹이를 앞다리 두 개로 잡더니, 기계적인 동작으로 다시 먹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커다란 염소였고, 역시나 머리 부위만이었다.
그제야 백야는 이 시체의 산이 모두 머리가 없는 시체로 이뤄져 있음을 깨달았다.
《대체…….》
천하의 마술대제조차도 이런 광경은 처음 보는 것이었다.
백야는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네놈은…… 지금 뭘 먹고 있는 거야?》
그러자, 늙은 파리가 식사를 멈췄다.
손에 들린 염소를 잠시 내려둔 늙은 파리가 뒤를 흘긋 돌아보았다.
놈의 머리 위에는 기괴한 형태의 뿔이 돋아 있었고, 그 위에는 시커먼 광배(光背)가 빛나고 있었다.
《보면 모르겠느냐?》
킥킥킥킥……. 파리의 입에서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늙은 파리의 목소리는 마치 수억 마리의 파리들이 일제히 날갯짓하는 것처럼 고막을 찢을 듯 울렸다.
자신도 모르게 귀를 틀어막은 백야는 뒤로 움찔거리며 물러섰다.
《내게 제물로 바쳐진 것.》
파리의 형상을 한 악마는 앞다리를 들어, 그런 백야를 똑바로 가리켰다.
《이 세계 전부다.》
***
츠칵! 츠카아악-!
파리 변종 개체가 사마귀 같은 앞다리를 휘둘렀다.
거대한 대낫 같은 다리 끝이 주위를 휩쓸었고, 마비가 덜 풀려 운신하지 못하던 생존자들은 속절없이 베여 쓰러졌다.
“이 새끼가아아아!”
부하들이 떼죽음 당하자 눈이 돌아간 켈리손이 고함을 내질렀다.
당장 뛰쳐 나가려는 켈리손을 켈리베이가 뒤에서 붙잡고 말렸다.
“지금 달려들면 개죽음이다, 제발! 켈리손!”
“크윽……!”
두 드워프의 뒤에서는 쥬니어가 마법을 캐스팅 중이었다.
현재 변종 개체는 비공함과 흡사한 마법 배리어를 사용하는 상태.
어지간한 마법도 튕겨낼 정도의 방호력을 갖추었다. 나머지 물리 공격도 당연히 통하지 않는다.
그래서 쥬니어는 없는 여력을 쥐어짜내 궁극기 [원소 해체]의 캐스팅에 들어가 있는 상황이었다.
[원소 해체]를 통해 저 배리어를 벗겨내는 것이 최우선이라 판단했기 때문. [로드 오브 크림슨]의 초고속영창 기능으로 캐스팅 시간이 기적적으로 빨라졌지만, 그렇다고 해도 최소한의 마력 응집 시간은 필요하다.약 3분여.
그 고작 3분여 동안 생존자들은 학살을 당하고 있었다.
마비되지 않은 나머지 생존자들이 어떻게든 싸우려 했지만, 그들 또한 만전의 상태가 아니었다.
격렬한 전투 끝에 이곳으로 납치당했을 뿐 아니라, 그간의 탈출 과정에서 심력과 체력을 막대하게 소모했다.
냉정하게 말해서 모두 싸울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사방으로 핏방울이 흩뿌려졌고, 드워프들은 허무하게 죽어나갔다.
결국, 켈리손은 더 이상 참지 못했다.
“으아아아아아!”
“켈리손-!”
힘차게 도움닫기를 내디딘 켈리손은 그대로 공중으로 훌쩍 뛰어올라 변종 파리에게 쇄도했다.
켈리손은 타고난 전사였다.
가장 억센 광부의 혈통을 물려받은 드워프 킹이었으며, 당대 동족 중에선 적수가 없는 내구력과 힘을 갖춘 투사였다.
또한 그는 명석한 대장장이이기도 했다. 저 변종 개체의 마법 배리어가 가진 약점을 즉시 눈치챘다.
‘비공함의 그것과 같다!’
방어 태세를 취했을 때에만 배리어가 발동한다.
다시 말해서, 저 파리가 공격을 할 때에는 마법 배리어 또한 발동하지 않는다!
그래서 켈리손이 뛰어든 것은 변종 파리가 다른 생존자에게 공격을 휘두르는 그 때였다.
배리어가 사라진 일순 변종 파리의 등에 올라탄 켈리손은 수중의 망치로 변종 파리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뻐억-!
호쾌한 일격이 작렬했다.
변종 파리의 머리가 앞으로 홱 숙여졌다. 하지만 켈리손은 인상을 한껏 찡그렸다.
‘부족하다!’
타이밍도 타격 지점도 완벽했지만, 문제는 무장이었다.
지금 켈리손이 들고 있는 것은 그가 본래 무기로 사용하던 거대 망치가 아니었다. 공구 겸용으로 사용하던 부무장, 작은 망치였다.
괴수를 죽이기에는 파괴력이 역력하게 부족했다. 아니나 다를까, 앞으로 숙여졌던 파리의 고개가 천천히 기괴하게 뒤로 돌아갔다.
자신을 똑바로 노려보는 괴수의 붉은 눈을 마주하며 켈리손이 쓰게 웃었다.
“젠장, 욱하는 성질 좀 죽여야 하는데…….”
츠칵-!
변종 파리의 거대한 앞다리가 공기를 찢으며 켈리손에게 날아들었다.
그 순간 억센 손길이 켈리손을 붙잡더니 아래로 끌어내렸다.
대낫 같은 앞다리가 켈리손의 금발 몇 가닥을 자르고 허공을 갈랐고, 켈리손은 그대로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아래에서 켈리손을 잡아당긴 것은 켈리베이였다. 켈리베이는 그대로 켈리손을 쥬니어 쪽으로 집어던졌다.
“이 멍청한 놈. 하여간 아비 말은 죽어도 안 듣지.”
거칠게 숨을 헐떡이는 켈리베이의 등 뒤로 이미 변종 파리의 다음 공격이 떨어지고 있었다.
켈리손이 무어라 다급하게 비명을 질렀지만, 켈리베이는 자신이 이 공격을 피할 수 없음을 알고 있었다.
‘뭐, 그래도 썩 괜찮지 않나.’
자신이 도망치는 바람에 어린 나이에 강제로 왕위에 앉은 아들을 위해서 대신 죽을 수 있다면, 그것도 그것 나름대로…….
생각하며 켈리베이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곧 닥쳐올 고통에 대비했다.
쿵! 콰과과광!
직후 뒤에서 무시무시한 굉음이 울렸다.
……하지만 아프지 않았다.
“응?”
뭔가 상황이 이상함을 눈치챈 켈리베이가 조심스럽게 눈을 뜨고 뒤를 보자, 아래 바닥을 뚫고 솟아오른 거대한 촉수들이 보였다.
이 촉수들이 변종 파리의 다리들을 붙잡고 날뛰지 못하게 억제하고 있었다.
쿵! 콰드드득!
이윽고 촉수들이 구멍을 더 넓게 열어젖히며 위로 올라섰다.
촉수는 소환수 크라켄의 것이었고, 그 위에 걸터 선 애쉬가 차가운 얼굴로 변종 파리를 노려보고 있었다.
“미안합니다.”
주위에 쓰러진 승무원들의 시체를 확인한 애쉬가 이를 악물고 내뱉었다.
“좀 늦었군.”
“애쉬……!”
켈리베이가 무어라 말하려는 것과 동시에,
츠칵! 츠카아아악!
변종 파리가 거칠게 팔을 휘둘렀고, 크라켄의 억센 촉수 다리가 동강 나며 그만 변종 파리를 놓쳤다.
고오오오오오!
분노한 크라켄이 흉포한 괴성을 질렀고, 잽싸게 날아오른 변종 파리를 향해 수십 가닥의 촉수를 내뻗었다.
변종 파리는 마법 배리어를 끌어올려 대항하려 했지만,
쩡-!
그 순간 쥬니어가 캐스팅을 끝낸 [원소 해체]가 작렬.
마법 배리어가 사라졌다. 직후 크라켄의 촉수들이 빼곡하게 달라붙어 변종 파리를 완벽하게 붙잡았다.
그리고 정예 영웅들은 움직임이 봉쇄된 먹잇감을 놓치지 않았다.
푸푸푹!
점멸단검을 투척하고 따라붙은 베르단디가 변종 파리의 몸에 단숨에 수십 차례 검격을 박아 넣었고,
뻐억-!
그 벌어진 상처 위에 쿠일란이 단숨에 권각을 연계해 후려갈겼다.
갑피가 박살 나며 빈틈이 훤히 노출되었다. 그리고 번아웃이 이미 조준 중이었다.
후두두둑-
퍼버벙!
적중한 석궁 볼트가 일제히 폭발하며, 변종 파리는 그대로 산산조각 폭발해 죽었다.
우르르 층 위에 올라선 포획괴수 군단과 애쉬 휘하 파티원 15인은 재빠르게 주위를 경계하며 상황을 정리했다.
“…….”
한발 늦게 오는 바람에 죽은 사람들을 입술을 깨물고 지켜보던 애쉬가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켈리베이와 켈리손, 쥬니어가 휘청거리며 애쉬에게 다가왔다.
“세 분, 살아서 보니 좋군요.”
모두 할 말이 많았지만 차마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주위에 피를 쏟은 채 죽은 승무원들의 처참한 시체 앞에서 다들 무어라 이야기를 꺼내야 좋을지 알 수 없었다.
“……사상자의 시체를 정리해서 즉시 퇴각하세요. 탈출 텔레포트 스크롤이 있습니다. 크로스로드로 귀환할 수 있을 겁니다.”
애쉬는 자신이 데려온 드워프 전사 두 명을 손짓했다. 두 드워프 전사는 즉시 고개를 끄덕인 뒤 사상자들의 시체를 한데 모으기 시작했다.
켈리베이가 떨떠름하게 물었다.
“애쉬 너는?”
“생존자 구출도 목적이었지만, 교란과 부화장 파괴도 목적이었습니다. 조금 더 시간을 끌다가…….”
쿵! 쿵! 쿵! 쿵! 쿵!
그때 갑자기 위층에서 흉악한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애쉬는 말을 멈추고 위쪽을 보았다.
우글우글우글…….
그리고 그곳, 천장에 뚫린 구멍에서는.
조금 전 힘겹게 쓰러뜨린 변종 개체 파리 수십 마리가 줄지어 쏟아져 내려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