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Tyrant of a Defense Game RAW novel - Chapter 688
◈ 688. [STAGE 40] 얼음요새
24시간 전.
무명, 더스크 브링어, 애쉬가 나이트 브링어를 상대로 결전을 벌인 직후.
“하아, 하아, 하아!”
무명은 거칠게 숨을 토해냈다.
자신의 영혼에 남은 모든 빛을 나이트 브링어에게 쏘아냈다. 그야말로 혼신(渾身)의 일격이었지만, 나이트 브링어는 가까스로 몸을 뒤틀어 피해냈다.
스친 것만으로도 나이트 브링어의 가슴팍에 큰 상처를 입혔으나, 결국 빗나갔다. 빗맞은 일격은 허망하게 허공으로 쏘아져 하늘에 쳐진 어둠의 장막에 닿은 뒤 사그라졌다.
검이 빗나간 순간, 무명은 더 이상 나이트 브링어에게 대적할 수단이 없음을 깨달았다.
그래서 나이트 브링어가 가슴의 상처로 고통스러워하는 사이, 재빠르게 더스크 브링어와 애쉬를 데리고 자리를 벗어났다.
“하아, 하아, 후우우……!”
천만다행히도 가슴의 상처가 치명적이었는지 나이트 브링어는 추격해오지 못했다. 까마득한 남쪽 숲속의 어둠 아래까지 도망친 다음에야 무명은 안도의 숨을 토해냈다.
“무명, 언니…….”
“더스크!”
품속의 더스크 브링어가 신음을 토해내자 화들짝 놀란 무명은 그녀를 살폈다.
용혈폭주가 끝나고, 다시 인간의 형상으로 돌아온 더스크 브링어는 고통에 몸을 떨고 있었다.
용혈폭주의 마지막 단계인 ‘신화재현’까지 사용했으니, 점차 육체가 무너져내릴 터.
심지어 나이트 브링어를 붙잡고 빈틈을 만드느라 무명의 일격 또한 함께 맞았다. 더스크 브링어의 작은 몸에는 파고든 빛의 일격이 새긴 상처가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불사의 저주를 새겨두지 않았다면 진작 쓰러져 죽었을 것이다. 실시간으로 육체가 무너졌고, 다시 저주로 복구되었다.
더스크 브링어는 식은땀 범벅인 얼굴로 옆을 보았다.
“나는, 괜찮…… 그보다, 애쉬가…….”
그 옆에 쓰러져 있는 애쉬 또한 상태가 좋지 않았다.
나이트 브링어의 공격에 집중적으로 난타 당한 데다, 결정적으로 자아의 붕괴가 시작되었다.
지금도 의식을 차리지 못하고 쓰러져 있었다. 이대로는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무명 또한.
“윽……?!”
무명은 어느새 자신의 발목에 차인 기다란 어둠의 쇠사슬을 발견했다. 쇠사슬은 저 멀리 남쪽…… 검은 호수로부터 끝도 없이 뻗어 나와 무명을 구속하고 있었다.
절그럭, 절그럭-
심지어 점점 더 무명을 끌어당기고 있었다.
“큭……!”
무명은 치를 떨었다. 기껏 나이트 브링어로부터 도망쳐 이곳까지 왔지만, 별 의미가 없었다.
셋 모두…… 어차피 곧 스러진다.
죽거나, 혹은 더 나쁜 형태로.
“지금은, 애쉬만이라도.”
더스크 브링어는 떨리는 손으로 바닥을 짚고 애쉬의 옆으로 자신의 몸을 질질 끌고 왔다.
“이 아이만이라도…… 살려야 해.”
“하지만, 어떻게?”
무명은 저 밑바닥 마을에서 이미 애쉬에게 설명을 들었다.
애쉬의 영혼이 부서져 있다는 것. 그동안 그 영혼의 위에 대리 인격을 씌워둬 버텼다는 것.
하지만 그 대리 인격이 파괴되었고, 되돌릴 수단이 없다는 것. 그리고 애쉬의 영혼이 다시금 붕괴하고 있다는 것까지.
“……되돌릴 방법이 있어.”
더스크 브링어는 창백한 입술을 짓씹은 뒤 손을 뻗었다.
“애쉬가 ‘용이 되는 법’을 내게 물으러 온 날, 이렇게 될 경우를 대비해서, 나에게 말해줬거든.”
“뭐?”
“이 안에 있어.”
더스크 브링어가 집어든 것은…… 애쉬의 허리춤에 차여 있던, 깃대로 변환할 수 있는 예식용 장검.
백야의 쌍둥이 마력핵으로 만든 나이트메어 슬레이어, [빛과 그림자]였다.
“애쉬는 이 안에 자신의 인격을 보존해두었어.”
“……!”
백야가 스스로를 복제하여 계속해서 새로운 도플갱어로 태어났듯이, 이 장비는 주인의 특질을 복제하여 두 배로 적용시키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복제 성능을 발휘하기 위해서.
마치 빛에 비추어 생기는 그림자처럼…… 장비 자체가 하나의 도플갱어인 것이다.
설명을 들은 무명의 입이 작게 벌어졌다. 더스크 브링어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알고 있던 애쉬가, 그 기억이…… 이 안에 남아 있어.”
“그 기억을, 애쉬라고 부를 수 있는 건가?”
무명이 떨떠름하게 중얼거리자, 대답은 다른 곳에서 들려왔다.
“이론적으로는 그렇지…… 크윽!”
쓰러져 있던 진짜 애쉬가 숨을 몰아쉬며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담배를 입에 물고, 하지만 불을 붙일 정신도 없는지 입가만 파르르 떨며 애쉬는 힘겹게 미소했다.
“애초에, 너희가 아는 그 녀석은 외계(外界)에서 복제해 가져온 인격을 나에게 덧씌운 존재니까.”
“…….”
“그 나이트메어 슬레이어 안에 보존된 인격을 나에게 덧씌울 수만 있다면…… 원리 자체는 똑같지. 그 녀석은 돌아올 수 있다. 하 참, 이런 식으로 빠져나갈 구멍을 파뒀단 말이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웃던 진짜 애쉬는 피가 엉겨 붙은 앞머리를 뒤로 쓸어 넘겼다.
“하지만 어떻게 그 장비 안에 접속해서, 그 인격을 꺼내어, 내게 씌울 생각이지?”
“그건…….”
“지금 내게는 그런 어려운 작업을 수행할 정신력이 남아 있지 않아. 에이더 그 망할 녀석은…… 있다고 해도 도움도 안 될 거 같지만, 보이지도 않고.”
말을 삼키던 더스크 브링어는 후, 하고 숨을 내쉬더니.
이윽고 결심을 끝낸 듯, 결연한 표정으로 자신의 가슴팍 위에 손을 올렸다.
“내 심장과 피를 네게 계승시키겠다.”
“…….”
“계승의 순간에는, 선대 계승자와 후대 계승자가 정신세계에서 이어지지. 두 정신세계가 이어질 때, 사이에 이 나이트메어 슬레이어를 마법적 교량(橋梁)으로 놓으면…… 내가 그 인격 수색을 대신할 수 있을 터.”
가만히 듣고 있던 진짜 애쉬가 바닥에 담배를 탁 뱉더니 허탈한 미소를 머금어 보였다.
“이봐, 대공. 왜 그 녀석이 당신을 계승하지 않고 흑룡의 피를 훔쳐 가며, 억지로 흑룡의 힘을 얻는 이런 억지를 부렸는지…… 알잖아?”
“…….”
“당신을 살리기 위해서였어.”
브링어 공작의 용혈은 일인계승.
심장과 피와 힘과 권리를 후대에 넘기는 순간, 선대 브링어 공작은 죽는다. 죽을 수밖에 없다.
그날, 더스크 브링어에게 이러한 용혈계승의 법칙을 전해들은 애쉬는 적룡의 피를 잇는 것을 포기했다. 대신 흑룡의 피를 강탈하여 사용하는 쪽으로 작전을 수립했다.
애쉬는 ‘우리 측에 용이 둘이나 있으면 더 강할 거 아니에요? 그러니까 이렇게 가요’라며 태평하게 웃었지만…… 더스크 브링어는 잘 알고 있었다.
그 아이에게는 더스크 브링어를 희생시킨다는 선택지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니까 이런 힘든 길을 선택했고, 그러니까 이런 엉망진창인 상황에 처한 것이리라.
“……브링어 공작가를 계승하기 위해서는, 한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더스크 브링어는 크게 숨을 들이켠 뒤.
자신이 선대 브링어 공작으로부터 들었던 말을 똑같이 내뱉었다.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을 포기하지 않을, 강한 마음.”
“…….”
“내가 일백 하고 스무 해를 조금 넘게 살아오는 동안…… 애쉬 이상으로 이 조건에 맞는 자는 본 적이 없다.”
이야기를 듣고 있던 무명 또한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무명이 망설임 없이 애쉬에게 흑룡 군단의 드래곤 하트를 먹인 이유 또한 비슷했다.
용심(龍心)은 섭취한 자의 격을 높일 수 있지만, 동시에 타락시킨다. 그 피에 얽혀 있는 업보에 잡아먹혀 살아 있는 망자가 되어버리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애쉬는 믿을 수 없을 만큼 고강한 정신력의 소유자였다. 그렇기에 믿고 투여했고, 그 흑룡 군단의 드래곤 하트를 취하고도 자신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더스크 브링어가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니 나는 브링어 공작으로서, 그 아이를 내 후계로 삼고 싶다. 아니, 그 아이가 아니면 안 된다.”
“…….”
결국 표현을 달리할 뿐인 자살 선언이었으나.
더스크 브링어의 얼굴에는 일국(一國)을 책임지는 여왕의 고결함이 깃들어 있었다. 그래서 진짜 애쉬는 더 이상 언쟁을 그만두기로 했다.
지난 수많은 회차의 오랜 인연으로, 잘 알고 있었으니까.
이미 각오한 드래곤 레이디의 결심은 누구도 말릴 수 없다는 사실을.
“……이 장비의 내부는 아마도 연옥(煉獄)이야. 복제된 인격을 유폐해두기 위한 보관소이니, 외부와는 시간도 공간도 완전히 유리(遊離)되어 있는 폐쇄된 세계겠지.”
진짜 애쉬는 예식용 장검을 뽑아든 뒤 칼집에 결합시켰다. 깃대로 변한 나이트메어 슬레이어가 불온하고 요사스러운 빛을 흩뿌렸다.
“게다가 그 백야의 마력핵으로 만든 장비야. 내부에 어떤 악몽이 펼쳐져 있을지는 아무도 몰라.”
“…….”
“무사히 접속한다 해도, 복제된 인격이 어디에 보관되어 있는지 모르니. 수색을 해야 하는데…… 인격 본인도 아니고 완전히 타인인 당신에게는 어떤 단서도 없을 테니, 아주 힘들 거야. 어쩌면 이 안에서 아주 오래 헤매야 할지도 몰라.”
“상관없다.”
숨을 들이켠 더스크 브링어는 단언했다.
“그 아이를 되찾을 수 있다면.”
그 온기를…… 다시 한번 만날 수 있다면.
이 세상에 되돌려놓을 수만 있다면.
“정말이지 사랑받고 있네, 그 녀석.”
피식 웃은 진짜 애쉬는 깃대를 들어 한쪽 끝을 자신의 심장부에 댔다. 더스크 브링어는 깃대의 반대쪽 끝을 자신의 가슴팍에 올렸다.
“……더스크 동생.”
그런 더스크 브링어의 옆에서,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몰라 무명은 머뭇거렸다.
더스크 브링어는 그런 무명을 빤히 보더니,
“무명 언니.”
“응?”
“고마웠어.”
더스크 브링어는 입을 가리고, 마치 10대 소녀처럼 키득거렸다.
“누군가를 언니라고 부른 거, 정말 오랜만이었거든.”
“…….”
“즐거웠어. 언니와 함께 있는 동안, 정말로.”
잠시 멍해졌던 무명의 입가가 천천히 환해지더니,
“……나도야, 더스크.”
마치 어떤 어둠도 주위에 없는 것처럼…… 눈부시게 웃었다.
“누군가를 동생이라고 불러본 건, 태어나서 처음이었어. 너와 함께하는 동안, 기뻤어.”
서로 미소를 교환한 뒤.
더스크 브링어는 진짜 애쉬를 바라보았다.
“자, 시작하자.”
“……뭐라 말할 정신도 안 남았으니, 나는 간단하게 한마디만 하지. 대공.”
“말해 보거라.”
같은 애쉬지만, 자신은 전혀 모르는 눈앞의 존재를 향해 더스크 브링어가 눈짓했다.
그러자 진짜 애쉬는 슬쩍 고개를 숙여 보이더니,
“부디 좋은 여행 되기를.”
그렇게 말했다.
더스크 브링어는 잠시 놀란 표정을 지었다가,
“……부디, 너도.”
묵묵히 마주 고개를 숙여 화답했다.
두 사람은 동시에 숨을 들이켰다.
그리고 다음 순간, 애쉬와 더스크 브링어는 이를 악물고 앞으로 걸음을 내디뎠고-
푸욱-!
두 사람의 심장을, 깃대가 동시에 꿰뚫었다.
***
더스크 브링어는 천천히 호박색 눈을 떴다.
휘오오오오…….
그곳은 눈바람이 휘몰아치는, 새하얗게 얼어붙은 세계였다.
눈에 보이는 것은 온통 눈과 얼음, 그리고 하늘 끝까지 엉겨 붙은 서리와 우박의 산.
어둡고 캄캄한 하늘 아래로 살을 에는 듯한 추위만이 가득한 빙하 위의 세계.
나이트메어 슬레이어 [빛과 그림자] 안쪽에 세워진, 악몽의 왕국.
“이 세계 어딘가에…….”
몰아닥친 서리바람에 그녀의 긴 머리칼이 아무렇게나 휘날렸다.
추위에 떨리는 어금니를 꽉 깨물고, 더스크 브링어는 삽시간에 얼어붙는 어깨를 손가락으로 움켜쥔 채 앞으로 걸음을 내디뎠다.
“네가 있다면.”
맨발이 쌓인 얼음에 닿을 때마다 화상을 입은 것처럼 화끈거렸다. 하지만 더스크 브링어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희뿌옇게 얼어붙는 입김을 토해내며, 더스크 브링어는 선언했다.
“기다려. 찾아내고야 말 테니까.”
그렇게 더스크 브링어는, 현실세계와는 시간도 공간도 단절된 이 얼어붙은 악몽 속에서 헤매기 시작했다.
끝없는 겨울에 갇힌 세계는 끝없이 넓었다. 어쩌면 영원히 확장되는 중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더스크 브링어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녀는 이 얼어붙은 세계를 횡단하고, 종단하며, 한없이 헤맸다.
모든 산을 오르고, 모든 사막을 가로질렀다. 모든 계곡 아래를 살피고, 모든 동굴 속을 파헤쳤다.
수년.
수십 년.
수백 년.
어쩌면, 수천 년…….
더스크 브링어는 끝없이 유랑했다.
이 얼어붙은 세계 어딘가에서 흔들리고 있을 그 아이의 모닥불을 찾기 위해서.
어떤 추위도, 어떤 고통도, 어떤 외로움도, 그 아이의 온기를 되찾으려는 그녀의 의지에 비하면 나약했다. 더스크 브링어는 한 순간도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걸었다.
그렇게 까마득한 고행의 끝에…….
***
“……아.”
마침내.
더스크 브링어는 찾아냈다.
“저, 건……?”
하얗게 얼어붙은 바다 위.
견고한 얼음으로 지어진 한 요새가 세워져 있었다.
저곳이 바로 자신이 그토록 찾아 헤맨 장소임을 더스크 브링어는 직감했다. 더스크 브링어는 그 얼음 요새를 향해 비틀거리며 걸어갔다.
끼이이익-
쿵…….
굳게 닫힌 거대한 얼음 성문을 안으로 밀어젖히고, 요새 안에 들어서자.
요새 안에는 하얀 눈으로 뒤덮인 거대한 무덤- 봉분(封墳)이 보였다.
《…….》
그리고 그 봉분 위에 올라타 앉아 있는 그림자가 하나.
소매가 넓은 도포를 입고, 작은 구슬 장식이 치렁치렁 붙은 대관용 관모를 쓰고, 얼굴은 그 관모에 붙은 큼직한 부적으로 가린.
마술대제 백야와 꼭 닮은, 그런 그림자였다.
그림자가 혀를 차며 더스크 브링어를 노려보았다.
《기어코 도달했군. 지긋지긋한 것.》
더스크 브링어는 얼어붙은 입가를 움직여, 말라붙은 목으로 잔뜩 쉰 목소리를 토해냈다.
“그렇군, 나이트메어 슬레이어…… 그 안에 깃든 악몽의 주인인가.”
《…….》
“백야, 너로구나.”
굳이 대답하지 않고 백야의 그림자는 손끝으로 눈에 덮인 봉분을 두들겼다.
《이곳에 잠든 인격은 나의 것이다.》
“…….”
《내가 이 인격을 잡아먹고, 그 주인의 몸을 빼앗은 뒤. 다시금 새로운 백야로 태어날 테니까. 그러니 방해하지 마라, 반룡.》
“정말이지 지긋지긋한 건 너다, 언데드…….”
곱고 굳어 뻣뻣해진 손가락으로 가까스로 주먹을 움켜쥔 뒤, 더스크 브링어는 천천히 전투를 준비했다.
“비켜라. 그 아이는 너처럼 추악한 것이 손대기에는, 너무 아름다우니까.”
그러자 백야의 그림자가 소리 내어 비웃었다.
《추악한 것은 너도 마찬가지이지 않나, 반룡?》
“……네 말이 맞다. 나 또한 추악한 것은 매한가지.”
더스크 브링어는 쓰게 웃었다.
“하지만, 아무리 썩고 좀먹은 몸이라 해도…… 그 아이의 모닥불을 잇는 땔감 정도는 될 수 있지 않겠느냐?”
백야의 그림자는 더 이상 대화를 이어가지 않았다.
대신 두 팔을 활짝 벌리고, 자신이 지배하는 이곳 얼음 요새로- 그리고 이 얼어붙은 세계 전체로 더스크 브링어를 겨누었다.
요새 전체가 진동하며 얼음 외벽이 하늘로 치솟더니, 모든 땅과 모든 하늘에서 얼음의 창과 서리의 송곳이 눈보라처럼 쏟아졌다.
쇄도하는 겨울의 한가운데로, 더스크 브링어는 물러서지 않고 땅을 박찼다.
그리고…….
***
…….
…….
……흐릿한 온기가.
얼어붙은 내 몸을 감싼다.
작고 나약한, 그러나 틀림없는 미열(微熱)이 내 이마를 쓰다듬는다.
나는 천천히 눈을 떴다.
눈송이가 쏟아지는 흐린 하늘이 보였다.
나는 내 몸이 투명한 얼음 관에 뉘어져 있음을 깨달았다. 그 관이 하얀 무덤 속에 파묻혀 있다는 것도, 그리고 그 관의 뚜껑이 훤히 열려 있다는 것도.
누군가가 피투성이 맨손으로 무덤을 파헤치고, 관을 부수고, 그 안에 잠들어 있던 나를 꺼내어…… 끌어안고 있다는 것도.
“잠깐만.”
설산에서 만난 동백(冬柏)꽃을 어루만지듯.
조심스러운 손길로 내 얼굴을 더듬던 누군가가 울음기 맺힌 목소리로 속삭였다.
“아주 잠깐만…… 이렇게 안고 있게 해다오…….”
“…….”
나는 천천히 팔을 뻗어서, 그녀의 얼어붙은 몸을 마주 끌어안았다.
드래곤 레이디의 감긴 속눈썹에 하얗게 맺힌 서리가 녹으며 투명한 물방울이 되어 흘러내렸다.
얼음에 뒤덮인 악몽 속에서 기적처럼 해후한 뒤, 우리는 그렇게 한참 서로를 안고 있었다.
겨울이었다.
따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