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Tyrant of a Defense Game RAW novel - Chapter 726
◈ 726. [Side Story] 호수왕국 (7)
쿠구구구궁……!
“크흑!”
아리엘은 퍼뜩 눈을 떴다.
마법으로 호수 위에 부상해 있던 호수왕국 전체가 호수 아래로 강제로 추락했고, 그 충격에 그만 의식을 잃었던 모양이다.
쏴아아아아아!
이미 호수왕국 전체가 침수되었고, 마지막으로 마법으로 보호되던 왕성 내부까지 호수의 물이 폭포처럼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마치 세상을 끝장내려는 홍수가 들이닥친 것만 같은 풍경이었다.
왕성의 커다란 유리창 바깥은 호수의 물로 넘실거리고 있었다.
맑았던 청록빛 호수는 어느새 검은 기운이 뒤섞여, 바로 앞도 잘 보이지 않는 혼탁한 빛깔이었다.
그 혼탁한 빛깔의 물속에 휩쓸린 사람과 건물의 잔해가 마구 뒤섞여 휘몰아치는 모습이 보였다.
모두가 영생의 저주를 받은 탓에, 이런 재해에 휘말렸는데도 죽지조차 못하는 채로.
계속해서 익사의 고통에 시달리며, 사람들은 미친 듯이 팔다리를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하하하.》
그리고, 이 풍경을.
마치 아쿠아리움에서 창 너머의 수조를 감상하듯, 현자들은 평온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물 아래에서 보는 이런 풍경도 제법 각별하군. 이번 멸망유희는 관조자들도 제법 만족하겠어.》
《우리 중개자가 셋이나 나선 보람이 있는 장면인걸.》
두 현자가 차례로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둘의 사이에 선 가운데 현자- 처음에 왕자 크리스티앙을 홀린 이, ‘마왕’은 전혀 웃고 있지 않았다.
《아니, 진짜 멸망유희는 시작도 하지 않았어.》
이미 인간 노인으로의 변장 따위 모두 벗어던지고서, 완전히 검은 그림자 같은 본래의 형태로 마왕은 사납게 씹어 뱉었다.
《나는 이 호수왕국 국민들의 모든 무의식, 모든 악몽을 뒤져서…… 그 사람을 찾아내고야 말 것이다.》
《…….》
《그때까지, 멸망유희는 끝나서는 안 돼.》
마왕을 돕기 위해 온 다른 두 중개자는 서로를 보며 어깨를 으쓱였다. ‘하여간 별종이라니까-’ 같은 소리를 주워섬기며.
“왜…….”
그때, 비틀거리며 일어선 아리엘이 그런 악마들에게 물었다.
“어째서, 이런 짓을…… 하는 거야…….”
이런 상황에서 맨정신을 유지하고 침착하게 질문하다니.
하얀 입이 찢어지도록 웃은 다른 중개자들은 그녀를 조롱하려 했으나, 뜻밖에도 마왕은 진중하게 대답했다.
《아주 먼 과거에, 너희의 선조가 저지른 원죄 때문이다.》
“뭐……?”
《너희는 마법왕국으로서 번성했지. 하지만 이 마법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 누가 가져온 힘인지, 그런 고민은 일절 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외면했지.》
마왕이 무기질적으로 읊조렸다.
《이제 그 대가를 치르는 것뿐이다.》
“그게 대체…… 무슨…….”
이를 악문 아리엘은 바닥을 굴러다니던 물에 젖은 장검을 움켜쥐고 뽑아 들었다. 근처에 쓰러져 있는 경비병이 흘린 평범한 철검이었다.
“설혹 선대가 죄를 저질렀다고 해도, 그것이 후대의 우리가 고통받아야 할 이유는 되지 못한다!”
《그래.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지금 너희가 멸망하는 것은 선대의 죄 때문이 아니잖으냐?》
마왕은 차갑게 진실을 지적했다.
《어리석은 너의 오라비와 아비 때문이지.》
“큭……!”
《영생을 얻었으니, 걸맞은 대가 또한 치러야지. 이제 너와 너의 나라는 영원히…… 이 호수 아래 바닥에서, 악몽에 잠겨 썩어가리라.》
챙그랑! 챙강……!
막대한 수압을 견디지 못한 왕성의 유리창이 보호 마법과 함께 산산이 조각나 깨어졌고, 왕성 안으로 호숫물이 새카만 물거품을 일으키며 쏟아져 들어왔다.
삽시간에 차오르는 물속에 잠겨가며 아리엘이 이를 악물었다.
“되찾을 것이다.”
선연한 의지로 번뜩이는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마왕은 마침내 아리엘을 제대로 마주보았다.
“너희가 이 나라를 이리 만든 것이 내 선대의 죄 때문이든, 아바마마와 오라버니의 어리석음 때문이든…… 모두가 왕가의 책임이니. 나의 손으로 반드시, 다시 이 나라의 영광을 되찾고 말겠다.”
그러자, 드디어 마왕이 웃었다.
《그래서, 그 가짜 왕자를? 마지막 희망이랍시고 내보낸 건가?》
아리엘은 마왕이 ‘영생의 저주’를 내린 직후, 사태의 이상을 깨닫고 즉시 에이더에게 ‘국외추방’을 명했다.
– 당신은 더 이상 호수왕국 사람이 아니에요……!
왕녀의 언령(言霊)에는 힘이 깃들어 있어서, 그 즉시 에이더는 호수왕국 사람으로서의 자격을 박탈당했고…….
그랬기에 이어진 두 저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호수왕국 사람은 이 나라 밖으로 나갈 수 없고, 호수왕국 전체는 호수 아래로 가라앉게 되었지만.
에이더는 무사히 호수 바깥으로 빠져나갔을 것이다.
“…….”
아리엘 자신도 잘 알 수 없었다.
어째서 그 순간, 하필이면 에이더를 바깥으로 내보냈는지.
다른 선택지도 많았을 것인데, 왜 하필 그 노예 출신의 비국민을. 왕자의 대역에 불과했던 가짜를. 마지막 기회를 사용해서 탈출시킨 걸까.
그에게 무엇을 기대하고서……?
《내 감히 예언하지, 망국의 왕녀여.》
휘몰아치는 검은 오수의 소용돌이 속에서 의식을 잃은 국왕과 왕자의 몸이 마왕의 양손으로 빨려 들어갔다.
마왕은 국왕과 왕자의 머리에 손을 올리고, 그 안에 심어두었던 그림자를 뽑아냈다.
그림자에 홀려 나라를 멸망시킨 두 사람은, 다음에 깨어날 때는 제정신을 차리게 될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저지른 짓을 깨닫고 절망하며 미쳐버리겠지.
이미 자신에게 굴복한, 어리석은 국왕과 왕자의 머리를 쓰다듬던 마왕은 이윽고 왕녀를 마주보았다.
이런 상황에서도 굴복하지 않고서, 당당하게 서서 맑은 청록색 눈으로 자신을 노려보는…… 그 고결한 시선을.
《너의 희망은 부서지고 풍화되어 끝내는 사멸할 것이다.》
“그럴 일은 없다.”
아리엘은 확신을 담아 말했다.
“내가 내 영혼의 주인인 한.”
《후후, 글쎄. 어디 한번 지켜볼까.》
콰아아아!
삽시간에 몰아닥친 검은 호숫물이 왕성 내부를 가득 메우고 아리엘의 몸까지 잡아채듯 휩쓸었다.
거대한 물의 질량에 휩쓸려 아리엘은 왕성 바깥으로 내동댕이쳐졌다.
《어떤 위대한 인간도 이 멸망유희의 무한지옥에서 버텨내지 못했다. 모두가 굴복하고, 모두가 타락했다.》
추방당하듯 멀어지는 왕녀의 잔영을 향해 마왕은 담담하게 고했다.
《너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
호수왕국 전체가 호수 밑바닥으로 가라앉았다.
물에 잠겨 호수왕국 사람들은 국민 비국민을 가리지 않고 끝없이 익사했다. 죽을 수 없는 몸이 되었기에, 끊임없이 익사의 고통을 견디며 발버둥 쳐야 했다.
며칠은커녕 하루도 지나지 않아 호수왕국 사람 대부분이 미쳐버렸고, 저항 의지를 상실했다.
마왕은 그들에게 하나하나 접근해 계약을 제안했다.
지옥 같은 이곳 현실 대신, 편안한 악몽을 꾸게 해주겠노라고. 대신 그 꿈을 자신에게 달라고.
절대다수가 굴복했다. 호수왕국 사람 대부분은 견딜 수 없는 익사의 고통 대신, 마왕에게 악몽을 공급하는 생체 장치가 되는 길을 선택했다.
그리하여 호수왕국이 침몰하고 고작 며칠 만에, 호수왕국 전역에는 검은 그림자에 휩싸인 인간 고치들이 무수히 떠다니게 되었다.
하지만, 절대다수의 사람들이 이렇다 할지라도.
끝끝내 마왕의 제안을 수락하지 않고 버티는 이들 또한 있었다.
아리엘은 계속해서 이어지는 죽음 속에서도 강철 같은 의지로 견뎌내던 중, 유모이자 대마녀인 코코에게 구조되었다.
순간이동 마법의 대가인 코코는 왕국 내에 아직 침수되지 않은 공간을 찾아 텔레포트하며 버텨오고 있었다.
코코에게 구조되자마자 아리엘이 뱉은 말은 이것이었다.
“물속에서 자유롭게 움직이고 숨 쉴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해, 유모……!”
이 지경에 이르러서도 포기하지 않고 다음 길을 찾아내려는 왕녀의 앞에서, 코코는 통곡조차 할 수 없었다.
두 사람은 이어서 감옥에 갇혀 있던 마학 연구소장 디란다히를 구출했다. 어찌 되었든 그는 왕실 최고의 마법사 중 하나였다.
물에 잠긴 연구소에서 죽고 다시 되살아나기를 반복하며, 수중에서 호흡할 수 있는 장치를 개발해냈고.
이것을 착용하고, 아직 마왕에게 굴복하지 않은 이들을 찾아 장비를 배급한 뒤.
사악한 기운과 뒤섞여 거센 급류가 휘몰아치는 호수왕국 내부를 가로질러, 생존자들은 호수왕국 외부의 배리어를 재가동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장치에 동력을 공급하고, 망가진 부분을 수리하고, 죽고 죽어가며…….
결국 배리어를 재가동하고, 호수왕국 내부에 찬 물을 빼내기 시작한 것은 그로부터 일백 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뒤였다.
***
쏴아아아…….
침수되어 있던 호수왕국 바깥으로 검은 물이 진득한 물방울을 튀기며 쏟아져 나갔다.
물이 빠져나가자, 백 년이 넘도록 물에 잠겨 있느라 물이끼가 끼고 썩는 등 참혹한 몰골이 된 호수왕국의 모습이 드러났다.
“…….”
고지대에 위치한 한 건물의 옥상 위.
이 광경을 내려다보던 아리엘은 천천히 머리에 쓰고 있던 수중 호흡 장치를 벗었다.
“후우.”
오랫동안 손질하지 못해 아무렇게나 길어진 은발이 폭포처럼 등 뒤로 쏟아져 내렸다.
“이제야 한 걸음 내디뎠군요.”
아리엘은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백 년이 넘는 이 지난한 싸움을 함께 해온 생존자들이 일렬로 서서, 감동에 젖은 얼굴로 이 기념비적인 광경을 함께 지켜보고 있었다.
마학 연구소장 디란다히.
검문소 감독관 볼티모어.
상비군 백부장 멀론.
왕실 창고 청소부 바얀불락.
하수도 관리자 팔레이그…….
그리고 이름을 가진 국민들 외에도, 굴복하지 않고 함께 싸워온 비국민들까지.
멸망 전 신분 고하를 막론하고, 재능 유무도 상관없이, 그저 끝까지 마왕에게 무릎 꿇지 않고 함께한 이들이 있었기에.
아리엘 또한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싸울 수 있었다.
“아직 갈 길이 멀어요.”
이 길고 힘겨운 싸움 동안 꺾이지 않은 동료들을 돌아보고, 아리엘은 여전히 의지로 빛나는 눈을 치켜들고서. 선언했다.
“이제 다음 단계로 가는 길을 찾아봅시다. 호수왕국에 걸린 저주를 해제하는 거예요.”
뒤이어 아리엘은 어둠에 잠겨 있는, 호수왕국 중앙의 거대한 건물…….
자신이 쫓겨난 왕성을 노려보며 이를 악물었다.
“최종적으로는, 마왕을 물리칠 방법까지……!”
하지만 아리엘은, 그리고 아리엘과 함께 싸워온 사람들은 몰랐다.
차라리 호수왕국에 물이 들어차 있을 때가 더 평화로웠으리라는 사실을.
***
그날 밤.
백 년 만의 작은 성공을 기뻐하며, 생존자들이 조촐한 연회를 보낸 뒤.
피곤에 지친 생존자들이 오랜만에 수중 호흡 장치를 벗고 편하게 누워 단잠을 청하는 시간.
“……?!”
홀로 감회에 잠긴 채, 물이끼로 뒤덮인 고국을 내려다보던 아리엘은 퍼뜩 무언가 섬뜩한 감각을 느끼고 뒤로 돌아섰다.
스릉!
멸망의 날 뒤로 계속해서 차고 다닌 녹슨 철검이 칼집 밖으로 튀어나왔다.
“누구냐!”
그러자, 어둠 속에서 요사스러운 소년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후후, 차라리 얌전히 물속에서 익사나 하지 그랬어?》
저벅, 저벅-
그리고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단정한 정장을 빼입은 검푸른 머리칼의 소년이었다.
《그쪽이 차라리 덜 괴로웠을 텐데.》
그리고 소년의 품에는, 생존자 중 한 명이.
힘없이 안긴 채로, 목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다.
그리고 소년은 붉은 입술로 입맛을 다시더니, 생존자의 목을 자비 없이 깨물었다.
콰직!
사방으로 선혈이 튀었다. 양껏 피를 빼앗아 삼킨 소년이 새빨간 혀로 입술을 핥았다.
《뭐, 흡혈귀 입장에서는 생생하게 움직이는 사냥감 쪽이 당연히 더 좋지만 말이야. 게다가 너희는 영생자라, 아무리 피를 빨아도 죽질 않으니까…….》
“무, 슨…….”
이 비현실적인 광경 앞에서, 지금 상황이 꿈인지 의심하던 아리엘은 뒤늦게 깨달았다.
어느새 자신들이 포위당했다는 사실을.
쿵! 쿵! 쿵! 쿵! 쿵……!
어둠을 가르고 하늘에서 떨어진 사악한 존재들이 생존자들을 포위했다.
흑룡이,
악마 수호병단장이,
이름 모를 마녀가,
역병주가,
흡혈왕이,
거미여왕이,
몽마의 딸이,
유령 사략함장이,
만월광의 학살자가,
고블린 신왕이-
단기(單機)로도 인세를 멸망시킬 수 있는, 이미 모두 퇴치되어 기억 속에 봉인되어 있던 옛 시대의 괴물들이…….
모두 마왕의 손길 아래 부활하여, 생존자들을 기습해왔다.
물이 빠지고, 뭍이 드러나고, 호수왕국이 사람이 숨 쉬고 걸을 수 있는 공간이 되자…….
지난 백 년간 마왕이 악몽 속에서 되살려낸 괴수들이 도시 곳곳을 점령하기 시작한 것이다.
《자, 그럼. 죽어도 죽지 않는 영생하는 인간 여러분.》
흡혈왕 셀렌디온이 샐쭉하게 웃으며 뾰족한 송곳니를 치켰다.
《괴물에게 사냥당할 시간이야.》
진짜 지옥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