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Tyrant of a Defense Game RAW novel - Chapter 746
◈ 746. [STAGE 45] 새벽의 저주 (3)
한동안 전투는 이런 양상으로 잘 풀려갔다.
세 곳의 ‘파티 홀’을 지나면 십자포화존, 그 뒤에는 발리스타와 궁병조, 그리고 아주 까칠한 새 성벽까지.
먼저 달려온 좀비 괴수들은 질기게도 버텼지만, 이 기나긴 방어선을 통과한 뒤에는 끝내 쓰러져 죽었다.
이렇게 전투 초반은 잘 풀려갔지만…….
“……!”
괴수들이 얌전히 당하기만 해줄 리가 없다.
그으으으…….
아아아아아아아!
좀비 괴수들의 영혼 밑바닥에서부터 긁어내는 듯한 비명과 함께,
쿵……! 쿵……! 쿵……!
거대한 덩치의 좀비 괴수들이 전방으로 쏟아져 나왔다.
다른 좀비 괴수들 또한 덩치가 인간에 비해 거대했지만, 이 괴수는 특히나 키가 크고 신체가 건장했다.
나는 놈들을 살피며 이를 갈았다.
“불꽃 거인……!”
거인종 중에서도 손꼽히는 강력한 군단으로, 서리 거인과 비슷한 강함을 가진…… 전형적인 ‘스펙으로 찍어누르는’ 타입의 괴수다.
그리고 이런 스펙형 괴수야말로 좀비화의 수혜를 온전히 입는다.
이능이나 특능이 없고 오직 육체 능력으로만 싸우기에, 도리어 좀비가 되어도 잃는 건 얻고 얻는 것만 늘어나기 때문.
‘게다가, 이 자식들…….’
‘불꽃 거인’답게, 폭발과 화염 등에 면역이다!
펑! 퍼버버벙!
터져나가는 지뢰와 쏟아지는 포탄의 화염 속에서, 불꽃 거인은 멀쩡했다.
앞으로 나선 놈들이 포탄 세례를 모조리 거뜬하게 받아냈다. 삽시간에 그 뒤를 따르는 좀비 괴수 군단 전체가 성큼 크로스로드에 가까워졌다.
십자포화존이 돌파당했다.
병사들 사이에 동요가 퍼져나갔다. 하지만, 사전에 상정한 작전 안이다!
“그럼 우리도 다음 페이즈로 이행해보실까!”
나는 공중에 손을 들어올린 다음, 주먹을 둥글게 휘둘렀다.
그러자,
기이이이잉-!
크로스로드 쪽에서 비공함이 솟구쳐 올랐다.
라 만차.
그리고 그 주위를 호위하는 미하일과 그리폰들!
“가라-!”
쐐애애애액!
발진한 세계수호전선의 공군 병력이 단숨에 거리를 좁히고 괴수들의 머리 위로 날아들었다.
나는 손을 뻗으며 소리쳤다.
“퍼부어라-!”
그러자 마치 내 말이 들린 것처럼, 정확한 타이밍에 라 만차의 하단 해치가 열렸고…….
쏴아아아아!
문자 그대로 치료제를 ‘퍼부었다’.
지구의 대규모 농장에서 비행기로 농약을 뿌리는 모습과 흡사하다고 해야 하려나.
비처럼 퍼부어진 치료제가 좀비 괴수들의 머리 위로 쏟아졌다. 좀비 괴수들은 괴로워하며 몸을 뒤틀었다.
혹여나 놈들이 치료제에 내성이 생길 것에 대비해, 차츰 희석 정도를 줄이고 치료제 농도를 올려왔고.
결전의 때인 지금은, 아예 치료제 원액을 아끼지 않고 투하한다!
그어어어…….
아아아아아아……!
치료제 원액으로 샤워를 한 막대한 숫자의 좀비들이 모조리 강제로 ‘치료’되었고, 기생충이 빠져나오며 좀비 상태가 해제되었다.
나는 이 광경을 보며 주먹을 불끈 움켜쥐었다.
이것이 우리가 짜온 전술이었다.
가능한 한 여러 겹의 방어선을 전개해 일반 화력으로 녹이고, 이 방어선을 대량으로 통과하는 엘리트 괴수들에게 치료제 투하!
그리고, 이렇게 치료된 엘리트 괴수들은, 좀비 상태에서 풀려나 다시 시체로 돌아가기까지 잠시간…….
그아아아아!
캬아아아아아아-!
괴수의 벽이 되어준다.
그동안은 같은 좀비화 기생충의 숙주로 서로 적대하지 않았던 괴수들이, 좀비화 상태가 풀린 괴수들을 앞다투어 공격하기 시작했다.
앞장서 튼튼하게 걸어와 주던 불꽃 거인들이 도리어 공격받았고, 좀비화 상태가 풀려 쓰러져 죽어가면서도 거인들은 뒤로 주먹을 휘둘러 다른 좀비들을 곤죽으로 만들었다.
삽시간에 자중지란을 일으키며 괴수들이 병목 현상을 일으켰다. 나는 만족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괴수 군단이 두 개만 출몰해도 게임 오버가 지척에 올 만큼 어려운 것이 이 디펜스 게임, ‘멸망유희’다.
하지만 이번 스테이지에서는 좀비화가 되었다고는 해도 수십 개의 괴수 군단이 동시에 출몰했다.
이대로라면 ‘스테이지’로서 성립하지 않는다. 그것은 마왕도 관조자도 용납하지 않는 일일 터.
그렇다면 클리어할 수 있는 ‘기믹’이 있다는 것이고…… 내가 선택한 활로는 바로 이 치료제였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아주 잘 먹히고 있다.
좀비 상태를 강제로 해제해 놈들을 무력화할 뿐만 아니라, 서로 싸워 수를 줄이기까지 한다.
이거라면, 무사히 해치울 수 있어……!
「치료제 투하 완료. 일시 후퇴 후 복귀하겠습니다.」
라 만차의 파일럿이 통신하더니, 비공함의 거체가 허공을 선회해 크로스로드 쪽으로 돌아왔다. 싣고 갔던 치료제를 단숨에 모두 뿌린 것이다.
이제 격납고로 돌아가서 치료제를 리필하고, 다시 투하하러 전장에 재진입…… 이 과정을 반복할 예정이다.
그동안 무식하게 비축해둔 치료제를 아끼지 않고 모조리 퍼부을 것이다.
이리하여, 전장에는 새로운 구역이 하나 더 생겨서. 크게 네 개의 구역으로 나뉘었다.
설치형 함정이 모여 설치된 세 겹의 파티 홀.
크로스로드 포병들이 형성하는 십자포화존.
좀비화가 풀린 괴수들과 좀비들이 서로 싸우는 자중지란 육벽.
발리스타 및 궁병들의 저격존.
파티 홀은 대부분의 지뢰와 설치 함정이 거의 소진된 듯하지만, 새로이 생긴 괴수들의 자중지란 육벽이 새로운 좋은 방어선이 되어 주었다.
저들끼리 싸워 죽인 괴수들의 시체가 문자 그대로 육벽(肉壁)을 이루어 쌓였다. 괴수들은 끊임없이 병목을 일으켰고 속도가 느려졌다.
이 길에 갇힌 적들을 우리 측 발리스타와 궁병대가 녹였고, 또 치료제를 새로 채운 비공함 라 만차가 놈들의 머리 위에 날아들어 치료제를 투하했다.
다시금 잘 맞아 돌아가기 시작하는 전황을 살피며, 하지만 모두가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아직 ‘진짜’는 시작되지 않았다는 것을 이제 모두가 알기 때문이겠지.
그리고…….
쿵-!
그 ‘진짜’가 나타났다.
쿵! 쿵! 쿵! 쿠웅-!
지금까지 선행한 불꽃 거인들보다도 더 커다란 덩치의 거인이 앞으로 나섰다.
그동안 불꽃 거인들의 몸이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면, 이 거인의 몸은 거의 새까맣게 이미 탄 상태였다.
머리 위에는 불꽃으로 이뤄진 헤일로…….
상대의 정체를 알아챈 내가 이를 갈았다.
“불꽃 거인왕……!”
그렇다.
이번 좀비 괴수 군단은, 10구역에 모여 있던 괴수 군단 대부분이 좀비화되어 한 번에 쏟아져 나온 것이다.
당연히 각 군단의 군단장 개체 또한 좀비화되어, 함께 진군해오는 중이다……!
불꽃 거인왕이 입을 크게 벌리더니, 소리 대신 거대한 불꽃을 뿜어냈다. 그리고 입가로 새카만 연기를 토해내며 앞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쿵! 쿵! 쿵! 쿵!
마치 연기를 뿜어내는 증기기관차 같은 박력이다.
투학-!
단숨에 쇄도한 불꽃 거인왕은 좀비화가 풀린 자신의 군단- 불꽃 거인들에게 접근하더니, 불꽃에 휘감긴 거대한 주먹을 뻗어…….
퍼어엉!
한때 자신의 부하였던 자들의 상반신을 날려버렸다.
강맹하게 휘둘러지는 불꽃 거인왕의 두 팔 앞에서 단숨에 육벽이 허물어졌다. 좀비화가 풀린 괴수들이 오래 버티지 못하고 전멸했다.
훅…….
입가로 불길을 토해낸 불꽃 거인왕이 이글거리는 눈을 돌려 이쪽을 보았다. 좀비화 상태임을 나타내기라도 하듯이, 두 눈의 불꽃은 녹색으로 오염되어 있다.
그리고,
쿵-!
이쪽으로 성큼성큼 걸음을 옮겨오기 시작했다.
“쏴, 쏴라!”
“놈의 접근을 저지해라-!”
기함한 발리스타 부대와 궁병대가 일제히 불꽃 거인왕에게 공격을 집중했다.
후두두둑……!
그러나.
비처럼 쏟아지는 화살 세례를, 불꽃 거인왕은 묵묵히 맞으며 전진해왔다. 워낙 몸이 거대해서 전탄이 명중 중인데도 신경도 안 쓴다는 듯 앞으로 걸어온다.
말도 안 되는, 초월적인 경도의 육체.
일반적인 저격이 통하지 않음을 깨달은 궁병들이 창백한 안색으로 활을 내려놓았다.
이것이 군단장.
보스급 개체의 위엄이다.
게다가…….
이 자식 하나가 끝이 아니었다.
쿵……! 쿵……! 쿵……!
지축을 뒤흔들며, 불꽃 거인왕의 뒤쪽에서 차례로 거대한 좀비 괴수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네임드 괴수들의 출몰을 확인하고 사방에서 관측병들이 비명처럼 보고를 토해냈다.
“알립니다! 군단장급 개체 연이어 출몰-!”
“‘불꽃 거인왕’뿐만이 아닙니다! 지옥견 군단의 ‘케르베로스’와 ‘올트로스’, 출몰!”
“촉수 달팽이 군단장, 개체명 ‘소용돌이’ 확인!”
“‘날개 없는 매미 군주’, 무리의 선두로……!”
“이어서 ‘십각(十角)’, ‘신랑 포식자’, ‘천 개의 다리’…… 계속해서 등장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놈들은 차례로 코뿔소, 사마귀, 지네 군단의 괴수 군단장이다.
앞선 방어선에서 일반 좀비 괴수들이 불타고 터지고 죽어 나가며 솎아진 끝에, 마침내 각종 군단장들이 모조리 튀어나와 대열의 선두로 나선 것이다.
‘이건 뭐 아주 올스타구만.’
화려한 면면을 살피며 나는 혀를 찼다.
누가 보면 이번이 최종 스테이지인줄 알겠어, 어?
쿵! 쿵! 쿵! 쿵! 쿵!
파티 홀이고 십자포화고 뭐고 모조리 뭉개고 들어오는 군단장급 개체의 행렬.
좀비화가 되긴 했어도 모두가 스테이지 보스급 스펙의 보유자. 일반적인 포격이나 발리스타 등으로는 변변한 대미지를 욱여넣기가 힘들다. 게다가, 숫자까지 보통 많은 게 아니다.
적게 잡아도 열 마리, 어쩌면 그 이상…….
기이이이이잉!
다시금 날아든 라 만차가 치료제를 놈들의 머리 위에 퍼부었지만.
치료제 원액을 퍼부었는데도, 군단장 보정이라도 있는 건지, 머릿속의 기생충도 보스급 기생충이 된 건지, 좀비화 상태가 풀리지 않고 멀쩡하게 전진해온다.
단숨에 좁혀지는 괴수들과의 거리 앞에서 병사들이 일제히 창백하게 질렸다.
“작전대로만 한다!”
나는 그런 병사들을 독려했다.
“군단장급 좀비는 내버려 둬! 그 뒤의 나머지를 솎아내는 데에 집중해라!”
“예, 옙……!”
“쏴라, 쏴! 화망을 퍼부어-!”
내 명령이 내려지자, 병사들은 솜씨 좋게 조준을 조금씩 비틀어 일부러 군단장급 괴수들을 피해서 포격을 욱여넣기 시작했다.
포격의 장점 중 하나가 바로 스플래시 대미지(Splash Damage)라는 것 아니겠나. 착탄 지점에 광역으로 타격을 퍼붓는다.
튼튼한 군단장의 뒤에 숨어서 따라오던 나머지 좀비들이 차례차례 터져나갔다. 일반 좀비 괴수들은 다시 솎아지기 시작했다.
문제라면, 밀고 들어오는 저 엄청난 숫자의 군단장들.
이만한 숫자의 군단장급 개체를 한 번에 쏟아내다니, 자비가 없다고 할지 밸런스 감각이 없다고 할지.
“불합리하고 엿같긴 한데, 뭐 어쩌겠냐…….”
나는 씩 웃으며 옆을 돌아보았다.
“인생이 언제나 이렇잖아. 안 그러냐, 데미안?”
“그러게요, 황자님.”
마주 싱긋 웃은 데미안이 자신에게 배정된 개조 발리스타 사수석에 앉았다.
“그리고 그 난관을 이겨가는 게 또 인생 아니겠어요.”
말 잘했다, 내 저격수!
철컥! 철컥! 철컥!
데미안이 발리스타의 사격을 준비하자, 대기 중이던 사제와 연금술사들이 ‘특제 탄환’을 개조 발리스타에 장전시켰다.
특제 탄환은…… 정체 불명의 액상이 가득 찰랑거리는, 커다란 탄두(彈頭)가 부착된 형태의 화살이다.
‘처음에는 치료제 희석액을 뿌렸고, 그 다음에는 치료제 원액을 투여했다.’
그렇다면 이제 나올 건 뭐겠어?
“특제 치료제 농축액이다, 괴수놈들아-!”
우리 신전 사제들, 연금술사들, 정령사들, 그리고 킹 포세이돈까지 모조리 혹사시켜서 만든, 이 전선에도 몇 발 없는 최고급 특별 농축 치료제 탄환이다!
“놈들을 정성껏 치료해줘라, 데미안!”
“넵!”
데미안은 세심하게 개조 발리스타의 사각(射角)을 조정했다.
그리고 탄환에 자신의 마력을 불어넣었다. 나는 데미안의 기술을 알기에, 데미안이 탄환에 어떤 솜씨를 부리는지도 모두 알아볼 수 있었다.
탄의 바깥에는 [폐멸의 마탄]을.
탄의 내부에는 [치유의 마탄]을.
두 가지 마탄을 한 탄환에 동시에 담아냈다.
[폐멸의 마탄]은 탄환의 돌파력을 올려주고, [치유의 마탄]은 치료제의 효과를 증대시킬 것이다.그리고 데미안은 커다란 갈색 눈을 번뜩이며 방아쇠에 손을 올렸다.
“저격합니다-!”
퉁-!
짧고 굵은 반향음과 함께, 개조 발리스타가 특수탄을 쏘아냈고…….
쐐애애애액!
날아든 탄환은 그대로 불꽃 거인왕의 정수리를 향해 날아들었다.
불꽃 거인왕은 거대한 손을 휘둘러 특수탄을 막아내려 했지만,
《……?!》
이쪽은 [천리안] 보유자라는 말씀이다.
기묘하게 소용돌이치며 궤도를 꺾은 특수탄은 아슬아슬하게 거인왕의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서-
푸욱……!
불꽃 거인왕의 눈을 꿰뚫고 머리 안에 박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