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Tyrant of a Defense Game RAW novel - Chapter 8
◈ 008. [STAGE 0] 결전 (3)
끼에에에엑-!
세 발 째를 장전하는 마나 대포의 포대 주위로 괴물들이 끝도 없이 쏟아져 왔다.
루카스가 지휘하는 방어선이 아직은 버티고 있었지만, 오래 버티지 못할 터였다.
“장전 완료했습니다!”
“데미안!”
포병대장이 장전 완료를 알렸다. 나는 즉시 데미안에게 소리쳤다.
“쏴!”
데미안의 두 눈은 실핏줄이 터져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천리안 특성 사용의 부작용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걸 고려해 줄 여유 따위가 없었다.
철컥!
이미 조준을 끝내 둔 데미안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파칙, 파치치칙……!
투콰아앙-!
세 발 째.
쏘아진 마나 탄환은 까마득한 거리를 꿰뚫고 날아들어,
퍼버벙……!
정확하게 거미 여왕이 있는 지점에 착탄.
이미 신기(神技)라고밖에 부를 수 없는 조준과 사격이었다.
신의 실수든, 개발자의 장난이든, 그 무엇이든 간에 데미안의 눈은 현실에 존재하는 기적이었다.
문제는,
키야아아아아악-!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미 여왕은 쓰러지지 않았다.
여왕은 바보가 아니었다. 두 대 맞은 시점에서 자신이 저격 대상이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방책을 강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방책이란 간단하고 효과적이었다. 부하들의 몸뚱이를 방패로 삼은 것이다.
포물선을 그리며 떨어지는 마나 탄환을 호위병 거미들이 대신 몸으로 받아 냈다.
마나 탄환은 그 모든 저항을 모조리 관통했지만, 여왕에게 도달한 시점에서 이미 위력이 약해져 있었다.
“검은 거미 여왕, 피격을 확인. 그러나 건재합니다……!”
망원경을 보는 척후병이 떨리는 목소리로 보고했다. 나는 애써 태연하게 소리쳤다.
“뭣들 가만히 있나! 지금 상황이 여유로워? 다음 탄환 장전해! 어서!”
포병들은 땀을 뻘뻘 흘리며 포신을 냉각하고 탄환을 장전했다. 그러나 그들의 얼굴에는 절망이 짙게 드리운 상태였다.
“으리야압-!”
전진 기지 1층. 포대 주위.
루카스는 어느새 여기까지 쪼그라든 방어선을 지휘하며 필사적으로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포대를 지켜야 한다! 황자 전하를 지켜야 한다-!”
루카스는 이곳에 있는 병력 중 가장 강한 기사답게 눈부시게 싸우고 있었다.
검은 거미 개체보다 레벨이 두 배는 낮은데도, 능숙하게 검격을 날리고 발톱을 흘려 내며 악전고투했다.
루카스가 있는 곳은 전혀 전선이 밀리지 않았다.
그러나, 다른 병사들은.
“커헉!”
“아으아아…….”
“사, 살려 줘! 집에 보내 줘…….”
사상자가 속출하고 있었다.
아군 정보창에서 아군의 숫자가 엄청난 속도로 떨어지고 있었다. 나는 차마 그 창을 더 보지 못하고 꺼 버렸다.
몰랐다.
게임으로 할 때는, 몰랐다.
이곳이 사람이 사는 곳임을.
죽음이란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이렇듯 끔찍한 비명과 냄새를 동반한다는 사실을.
전선이 순식간에 쪼그라들었다. 이러다간 다섯 발은커녕 네 발도 못 쏘고 방어선이 완전히 붕괴할 것 같았다.
“야이- 괴물 새끼들아!”
그때였다.
방어선의 바깥에서 누군가가 쉰 고함을 내질렀다. 나는 퍼뜩 그쪽을 보았다.
괴물들의 한가운데에 서서 소리를 지르는 이는, 바로 켄이었다.
“여기다, 여기! 나를 보라고!”
그동안 켄은 성벽 밖에서 적들의 시선을 끌고 은신하기를 반복하며, 거미들의 일부를 유인해 내는 데에 성공하고 있었다.
하지만 거미 여왕이 명령을 바꾸고 모든 거미들이 포대 주위로 달려들자, 혼자 바깥에 덩그러니 남아 버렸다.
그대로 도망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에게는 먹여 살려야 하는 가족들이 아주 많으니까.
“빌어먹을 거미 새끼들아! 나는 제국의 기사 켄 경이시다!”
하지만 켄은 마지막까지 맡은 바 임무에 충실했다.
거미들에 대한 공포로 덜덜 떨면서도, 요란스럽게 적의 시선을 끌었다.
내 협박 때문일까? 아니면…….
키에에엑-!
방어선을 무너뜨리던 거미들 중 수십 마리가 켄을 돌아보았을 때, 나는 직감했다.
그가 돌아온 이유를 물을 수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수십 마리의 검은 거미들이 이쪽으로의 공격을 멈추고 켄에게로 달려갔다.
켄은 놈들을 이끌고 도망치다가, 무너진 돌담 뒤에 숨어 은신 특성을 발동하려 했지만.
“아.”
이미 체력이 바닥이었는지, [좀도둑의 생존법]을 발동시키지 못했다.
수십 마리의 거미들이 그에게 달려들었다. 켄은 포대 위에 선 내 쪽을 보더니, 울상이 된 얼굴로 쓰게 웃었다.
“젠장, 이리 될 줄 알았…….”
푹! 푸푹! 푸카각!
끔찍한 파육음이 멀리서도 선명하게 들렸다.
나는 시선을 돌리지 않고 그의 죽음을 똑똑히 보았다.
켄뿐만이 아니었다. 온 사방에서, 인간들이 괴물들에게 도륙당하고 있었다.
입술을 꽉 깨물자 핏물이 흘러나왔다.
나는 그동안 이 게임을 하면서, 필요에 따라 기꺼이 아군을 내던졌다.
이 빌어먹을 게임은 그렇게 설계되어 있었다. 다음 스테이지로 가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죽어야 했다.
누군가를 살리려면, 저 아이템을 먹으려면, 저 보조 임무를 달성하려면, 저 업적을 깨려면…….
누군가는 죽어야 했고, 나는 기꺼이 죽였다.
게임 전체의 효율적인 클리어를 위해, 일말의 가책도 없이 무수한 부하를 죽음으로 내던졌다. 그 행위에 어떤 의문도 품지 않았다.
“멈춰.”
하지만 이제야 깨달았다.
“멈춰…….”
그동안 내가 해온 일들의 의미를.
“멈추라고, 이 빌어먹을 괴물새끼들아!”
그 모든 죽음이, 이토록 뼈아픈 것이라는 사실을.
눈앞에서 피를 뿌리며 쓰러지는 사람들을 보며, 나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멈춰어어어어-!”
하지만, 멈추지 않는다.
비명 따위로 괴물은 멈추지 않는다. 괴물을 멈추는 방법은 언제나 하나뿐이니까.
죽여야 한다.
우리가 죽기 전에.
“전하!”
나는 포병대장의 목소리에 옆을 홱 돌아보았다.
“네 발 째, 장전됐습니다! 하지만 폭주와 냉각의 반복으로 포신이 버티지 못합…….”
“데미안!”
나는 무어라 말하려는 포병대장의 말을 무시하고 데미안에게 소리쳤다.
“쏴-!”
데미안의 커다란 두 눈 아래로는 피눈물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얼굴도 핏기 없이 창백했다. [천리안]의 사용을 몸이 버티지 못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데미안은 이를 악물고 방아쇠를 당겼다.
파칙, 치치칙……!
투콰앙-!
네 발 째.
새파란 마나 탄환은 아찔한 호선을 그리며 창공을 가르고, 또 다시 여왕의 무리 위로 날아들었다.
이번에는 수십 마리의 호위 거미들이 앞 다투어 몸을 던져 막으려 했다.
하지만 마나 탄환은 기괴하기까지 한 궤도를 공중에서 그리며, 그 대부분을 피해서,
콰과과광……!
착탄.
여왕의 머리에 정확히 내리꽂혔다.
이것이 천리안.
명중점수를 오버플로우 직전까지 보정해 주는 최강의 사기 특성은, 물리법칙마저 무시하고 여왕을 타격하는 데에 성공했다.
키이, 이이이…….
그러나, 그러나-
키야아아아아-!
이글거리는 폭발의 화염과 연기 속에서, 빌어 처먹을 거미 여왕은 아직도 건재했다.
포병들이 여왕의 끔찍한 포효에 일제히 바닥에 주저앉았다. 조준간을 잡고 서 있던 데미안도 더 버티지 못하고 무너졌다.
모두의 얼굴에 절망이 어렸다.
“안 먹혀요, 우리 공격은…….”
포병대장이 힘 빠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달궈진 포신을 냉각하느라 화상을 입은 그의 손은 물집투성이였다.
“포신도 한계입니다. 한 번 더 쏘려고 했다간, 마나 대포 자체가 폭발할 겁니다.”
“…….”
“어차피 이제 끝입니다. 포기하는 게…….”
다른 병사들도 동의한 듯, 지친 얼굴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나는 거칠게 숨을 들이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미 방어선은 전멸 직전.
포대 아래에는 거미들이 그득하다.
루카스는 이제 한 줌 남은 병사들을 독려하며 최후의 방어선을 지키고 있었다.
그의 몸에는 거미의 피보다 자신의 피가 더 많이 묻어 있었다.
나는 데미안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데미안은 피가 줄줄 흐르는 두 눈을 꽉 감고 신음하고 있었다.
대포는 망가지기 직전이고, 방어선은 무너졌고, 사수(射手)는 눈도 뜨지 못한다.
모두의 희생을 쌓아 올려 괴물들의 여왕에게 포격을 먹였지만, 여왕은 꿈쩍도 않는다.
이걸로 끝인가?
정말로, 더 이상 희망은 없나…….
“아니요!”
그때였다.
“틀림없이 타격이 있습니다! 여왕의 외피가 벗겨졌습니다!”
누군가가 그렇게 소리쳤다. 모두가 놀라서 그쪽을 봤다.
이 와중에도 끝까지 자신의 역할에 충실한 병사. 척후병이었다. 그는 망원경을 들여다보던 얼굴을 떼어 내고 외쳤다.
“한 번만 더 쏘면 죽일 수 있습니-”
그 다음 순간이었다.
쿠구구궁…….
포대 전체가 거칠게 진동하더니,
쿠과과광!
바닥이 무너졌다.
느릿느릿 다가온 검은 거미 공성병들이, 일제히 육중한 중장갑의 몸을 부딪혀 포대를 박살 낸 것이다.
단 한 번의 일제돌진에 포대가 통째로 산산조각 났다. 위에 서 있던 모두는 속절없이 추락했다.
쏟아지는 사람과, 박살 난 대포 잔해 속에서.
나는 바닥으로 떨어지며 눈을 감았다.
무너졌다.
온 세상도, 클리어의 희망도.
모조리.
***
“전하.”
청량한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온몸이 쪼개지는 듯한 고통 속에서, 겨우겨우 눈을 떴다.
눈앞에는…… 루카스가 있었다.
루카스는 바닥에 쓰러진 내 몸 위를 덮듯이 엎드려 있었다.
그리고 루카스의 등 위에는 무너진 건물의 잔해가 쏟아져 있었다.
쓰러진 내 위로 쏟아진 건물의 잔해를, 자신의 몸으로 막아 낸 것이다.
“루카스?!”
퍼뜩 정신을 차린 나는 급히 몸을 일으켰다.
루카스는 내가 몸을 비키자, 신음하며 등에 쏟아진 돌덩어리들을 옆으로 치워 냈다.
“다치신 데는…… 없으십니까, 전하.”
“내가 할 말이다, 루카스! 몸은 괜찮으…….”
나는 말을 멈췄다.
루카스의 등은 피범벅이었다. 그동안 거미들에게 입은 상처보다, 무너지는 건물 속에서 나를 지키다가 입은 상처가 더 컸다.
“쿨럭!”
피를 토해 낸 루카스가 해쓱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전하, 기억하십니까? 벌써 20년 가까이 된 옛날 일인데.”
“…….”
기억하지 못한다.
나는 너와 어떤 추억도 공유하지 못하는, 이 몸에 빙의한 일개 게임 플레이어일 뿐이므로.
“저를 처음 만나고, 호위로 들인 자리에서, 전하께서는 말씀해 주셨지요.”
“……뭐라고, 했었지?”
“‘나는 황제가 되진 못하겠지만, 세상에서 가장 멋진 남자가 될 거다.’”
어린 시절을 추억하는 루카스의 얼굴에는 흐릿한 미소가 감돌았다.
“‘그러니 내 호위가 될 너도, 세상에서 가장 멋진 기사가 되도록 해라.’”
“…….”
“철부지 어린아이였던 시절이지만, 전하의 그 말씀이 얼마나 마음에 와닿았던지. 지금까지 줄곧 이렇게 품고 있었습니다.”
루카스는 피범벅인 얼굴로 나를 마주보았다.
“전하. 저는 전하를 믿습니다.”
“지금 이 상황에서도?”
“언제든, 어디에서든.”
그리고 루카스는 무너졌다.
나는 옆으로 쓰러지는 루카스를 받아들고 조심스럽게 바닥에 뉘였다. 치명상이지만, 다행히도 죽지는 않았다.
‘버텨라, 루카스.’
너는 주인공이잖아. 이 세계의 구원자잖아.
이런 곳에선 죽어선 안 된다고.
나는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재빠르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무너진 포대 바닥에는 박살 난 대포와 부상을 입은 병사들이 있었다.
어째서 거미들이 아직까지 우리를 죽이지 않은 거지?
“전하.”
의문은 금세 풀렸다.
무너져 내린 포대의 1층. 좁은 통로의 입구에서.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릴리가 버티고 서 있었다.
특성 [화염 피부]를 활성화하고, 자신의 뒤로 몰려드는 거미들의 공격을 맨몸으로 받아 내며. 그동안 통로 입구를 막고 있었다.
새파래진 안색으로 마지막 마나 포션을 들이마신 릴리가, 파르르 떨리는 입술로 물었다.
“그렇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