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Tyrant of a Defense Game RAW novel - Chapter 98
◈ 098. [Side Story] 쥬피터 쥬니어
[쥬피터 쥬니어(SSR)]– 레벨 : 30
– 칭호 : 없음
– 직업 : 중급 원소술사
– 근력 10 민첩 12 지력 25 체력 8 마력 25
[보유 스킬]> 패시브 : 원소의 조율자
> 스킬1 : 원소 작렬
> 스킬2 : ??? (2차 전직 이후 개방)
> 궁극기 : ??? (3차 전직 이후 개방)
– 장착 특성 (2/3)
> 여우굴
> 황금광(해제불가)
쥬니어(Junior).
조상의 이름을 그대로 물려받을 경우 붙는 수식어다.
그리고 내 옆에 앉은 이 여자는 쥬피터의 손녀로, 이름을 물려받아서 ‘쥬피터 쥬니어’라고 스스로를 소개했다.
게임에서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캐릭터인데, 자그마치 SSR등급.
‘진짜 쥬피터 손녀인가 봐. 황금광까지 고대로 물려받았네.’
재빠르게 스탯창을 살핀 나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SSR등급치고는 스탯이 그리 높진 않지만, 중요한 것은 직업과 스킬.
‘원소술사라니!’
원소술사란, 쉽게 말해 모든 속성의 마법을 다 다룰 수 있는 마법사 클래스다.
물론 그중에서도 속성별로 숙련도가 따로 책정되고, 잘 다루고 못 다루는 속성이 정해지기는 하지만.
어쨌든 기본적으로 모든 속성 마법을 다 쓸 수 있다는 뜻.
거의 모든 상황에 대응 가능한, 유연성과 적응력만 따지면 속성 마법사 클래스 중에서도 최상위 티어의 직업이다.
‘영입해야 한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나는 떨리는 마음을 애써 진정시키며 쥬피터 쥬니어에게 말을 붙였다.
“쥬피터는 너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안 했는데.”
돌이켜보면, 쥬피터는 몇 번 흘리듯이 손녀 이야기를 하기는 했었다.
‘그런데 SSR등급이라는 이야기는 안 해 줬잖아!’
아니, 그야 물론 쥬피터의 눈에 이런 등급이 보일 리는 없다만.
어쨌든 전투에 막대한 재능이 있다는 것 아닌가.
이런 손녀가 있다면 바로바로 이야기해 줬어야지! 즉시 엎드려 절하면서 모셔왔을 텐데!
“흐응, 그래요? 우리 할머니가 제 이야기를 안 했어요?”
쥬피터 쥬니어가 고개를 갸웃했다.
“섭섭하네요. 이렇게 귀여운 손녀가 있으면, 자랑 좀 하고 다닐 것이지.”
내 말이 그 말이다.
이렇게 성능 쩌는 쓰알등급 손녀가 있으면 자랑 좀 하고 다닐 것이지. 아니, 진작 전선에 좀 데려올 것이지!
“그래서, 한 눈에 봐도 높아 보이시는 그쪽 분께서는 뉘신지?”
쥬니어가 나를 흘깃 눈짓하며 물었다.
“제 이름을 여쭈셨으니, 저도 존함을 여쭈어도 되겠지요?”
“물론. 내 이름은 애쉬. 애쉬 ‘본헤이터’ 에버블랙이다.”
내 이름을 들은 쥬니어는 조금 놀란 얼굴이 되었다.
“현재 이곳 괴수전선의 사령관 직위를 맡고 있다.”
“못 알아 뵈어 죄송합니다, 황자 전하.”
쥬니어가 깊게 허리를 숙였다.
“설마 이런 곳에서 뵙게 될 줄은 상상조차 못해서, 예를 갖추는 것이 늦었네요. 이 무지한 소녀를 부디 용서해 주시길 바라요.”
“용서하고 말 것도 없지. 못 알아보는 게 당연하니까. 고개를 들어.”
조심스럽게 고개를 드는 쥬니어에게 나는 바로 본론을 꺼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쥬피터 쥬니어. 내 휘하에 들어올 생각은 없나?”
“네?”
“이곳 전선은 자네처럼 재능 있는 마법사가 절실하다. 기왕 들린 김에 힘을 보태주지 않겠나?”
“…….”
“물론 최고 대우를 약속하지. 대륙 어느 전선에서든 마법사가 받을 수 있는 대우 중에선 최상위 대우를 약속하겠다.”
SR등급 마법사인 쥬피터를 잡는 데에만 그만큼의 돈을 썼다.
SSR등급인 쥬피터 쥬니어에게는 그보다 더 쓸 용의가 있었다. 때마침 마법사가 필요한 상황이기도 하고.
‘마법사가 필요하지 않은 상황이 있나 싶긴 하다만…….’
“으음.”
쥬니어는 잠시 턱을 괴고 고민에 잠기더니, 이윽고 조심스럽게 나를 응시했다.
“황송한 제안 감사드립니다만, 전하.”
으악!
거절하지 마!
“제가 이 도시에 온 목적은 제 할머니를 만나기 위해서라서요.”
“……그래. 쥬피터를 만나러 온 거군.”
“예. 그러니 우선 할머니를 만난 뒤에, 전하의 제안을 생각해 보아도 괜찮을까요? 할머니께 몇 가지 질문할 것도 있고…….”
나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 그렇게 하도록 해.”
내 입으로 이런 말하기 뭐하지만, 쥬피터에게는 섭섭지 않게 대우해 줬다고 생각한다.
손녀에게 좋은 말 좀 해 주겠지. 해 줄 거지? 해줘라, 쥬피터! 제발!
“그럼 전하, 혹시 저희 할머니가 어디 있는지 알고 계시는지요?”
“쥬피터는 지금 신전에서 치료받고 있다. 얼마 전에 부상을 입었거든.”
“아하…… 신전에…….”
“면회가 가능할 정도로 회복되었으니, 바로 들러 보도록.”
“알겠습니다, 전하. 감사드려요.”
커다란 가방에 짐을 챙겨 일어선 쥬니어는 내게 재차 허리를 숙여 인사해 보였다.
“그럼, 또 뵐게요. 전하.”
“그려그려. 면회 잘 하고. 내 제안 잘 생각해 보고.”
“넵!”
쥬니어는 총총 걸어서 용병 길드를 빠져나갔다.
나는 내 뒤에 선 루카스에게 목소리를 낮춰 소곤댔다.
“쥬피터가 전력에서 열외로 빠진 지금, 저 손녀는 꼭 영입해야 해.”
“예…… 하지만, 어떻게, 영입이 잘 될까요?”
“할머니랑 닮았길 빌어야지. 연봉으로 잘 유인해 보자.”
쥬니어에게도 황금광 특성이 있었다.
달리 말해서 돈으로 유혹하면 쉽게 넘어온다는 뜻이다. 돈다발 장전 좀 해 둬야겠군.
“그런데, 참…… 신기하네요.”
루카스는 쥬니어가 빠져나간 길드 입구를 보며 그런 말을 했다. 나는 눈을 끔뻑였다.
“뭐가?”
“저 손녀 말입니다. 쥬피터 경이랑 외모는 하나도 안 닮은 것 같은데…… 분위기는 어째 비슷한 것 같아서요.”
확실히 외모는 한 구석도 닮은 부분이 없었지만. 풍기는 아우라는 공통적인 부분이 있었다.
뭐랄까…… 둘 다 쩐 냄새? 돈 냄새? 가 난다고 해야 하나.
“하긴 그러니까 할머니와 손녀겠지.”
“그리고 또 하나 신기한 게 있습니다. 좀 실례되는 말입니다만.”
루카스는 괜히 주위를 슥슥 살핀 뒤, 내게 소근거렸다.
“쥬피터 경에게 자식이 있었다는 사실이요. 놀랍습니다.”
“아…… 솔직히 나도 놀랐어.”
“전에 손녀 운운할 때에도 그냥 농담인 줄 알았지 뭡니까.”
‘뒷담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만-’ 같은 쓸모없는 전제를 달면서 루카스는 말을 이었다.
“쥬피터 경은 어떻게 봐도 평생 독신으로 살았을 분위기잖습니까. 그런데 자식이 있고, 손녀까지 보다니. 좀 의외입니다.”
“그건 그래…….”
부부 관계 같은 것에 얽매이지 않고, 술담배 즐기고 세계 곳곳 떠돌아다니면서 아주 마이웨이로 평생 살았을 줄 알았는데.
갑자기 손녀가 짜잔- 나타나다니.
“남편 분은 어떤 분일까요?”
“……구, 궁금하긴 하네. 프라이버시라 물어보긴 좀 그렇다만.”
그 괴팍한 할머니와 맺어질 정도의 사람이라면, 둘 중 하나겠지.
만만찮게 괴짜거나, 아주 성인군자거나.
“아무튼 쥬피터가 손녀에게 말을 잘 해 주면 좋겠군.”
나는 가슴 앞에 두 손을 모으고 기도했다.
쓰알신님! 뽑기신님! 주사위의 신님! 누구든 간에!
“제발 저 친구 여기서 복무하게 해 줘……!”
***
신전.
쥬피터의 병실.
“…….”
침대에 기대어 앉은 채 쥬피터는 생각에 잠겨 있었다.
피골이 상접한 쥬피터의 두 손은 덜덜 떨리고 있었다.
쥬피터는 한 줌의 마력도 제대로 모이지 않는 늙은 손을 꽉 움켜쥐었다.
‘끝나가는구나.’
그녀는 직감했다.
자신이 끝나 가고 있음을. 군인으로서도, 용병으로서도, 마법사로서도.
‘은퇴할 시기를 한참 놓쳤구나.’
추하고 너저분하게, 조금이라도 더 일하기 위해 발버둥 쳤다.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온갖 일에 손을 댔다.
평생 복무했던 군에서 불명예퇴직을 당했다. 스카우트된 용병단에서 팽 당했다.
거듭 쫓겨났고, 늘 떠돌이로 살았다. 석 달 이상 머문 전선이 없었다.
‘돌이켜보면, 정을 붙인 곳이 없었구나.’
그런 날들에 끝이 다가오고 있었다.
‘이제…… 쉬어도 되는 걸까?’
쥬피터는 제대로 쥐어지지 않는 주먹을 재차 억지로 꽉 쥐었다.
‘나에게…… 그럴 자격이 있는 걸까?’
불길에 휩싸여 일렁이던 촌락의 풍경이 뇌리를 스쳤다.
쥬피터는 두 눈을 꽉 감았다. 고통스러운 그 장면을 뇌리에서 지우려는 듯이.
그때였다.
벌컥!
병실의 문이 열렸다. 쥬피터는 의아하게 그쪽을 보았다.
“뭐야, 누구…….”
“할~머~니!”
살가운 미소를 흘리며 병실 안으로 들어선 이는 바로 쥬피터 쥬니어였다.
“여기 있었구나? 한참 찾았다구!”
“……쥬니어?”
손녀의 얼굴을 마주본 쥬피터의 얼굴이 허옇게 질렸다.
“네가, 여기는 어떻게…….”
“연락이 너무 안 되어서 직접 찾으러 왔지~ 어우, 이런 남부 오지에 콕 박혀 있을 줄은 몰랐지 뭐야?”
쥬피터의 침대에 엉덩이를 폴짝 붙인 쥬니어가 까르르 웃었다.
“오랜만에 손녀 봤는데 얼굴이 왜 그래? 저승사자라도 본 것 같네.”
“…….”
“아이 참, 뭘 그렇게 얼어 있어? 내가 잡아먹기라도 할 것 같아?”
쥬피터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랬다.
자신과 같은 이름을 붙인 이 어린 아이에게, 쥬피터는 종종 잡아먹힐 것만 같은 두려움을 느꼈다.
척.
그런 쥬피터에게 한쪽 손을 내민 쥬니어가 손을 까닥거렸다.
“돈.”
“으, 응?”
“돈 달라고. 할머니. 돈.”
“…….”
“내가 뭐하러 여기까지 왔겠어? 할머니가 연락도 안 되고 돈도 안 보내니까 그랬지.”
“…….”
“아이 참, 돈 없어? 없으면 없다고 말을 하든가.”
“아니, 아니야. 잠시만…….”
쥬피터는 옆의 벽에 걸린 자신의 제복 주머니를 급히 뒤졌다.
이윽고 꼬깃꼬깃 접힌 종이가 한 장 나왔다. 금화증명서였다.
쥬피터가 조심스럽게 그것을 건네자 쥬니어는 탁! 소리가 나게 종이를 채갔다.
“에게?”
금액을 확인한 쥬니어의 눈에 실망이 스쳤다.
“이런 푼돈 말고. 좀 큰 거 없어?”
“미, 미안하다. 얘야. 내가 부상을 입고 요 며칠 쓰러진 것 때문에…… 돈을 더 모으질 못했구나.”
“저번처럼 한 번에 큰 금액은 못 마련하는 거야?”
“그건 이곳 영주님이 1년치 연봉을 한 번에 줘서 마련할 수 있었던 거고. 한동안은 괴수 사냥하면서 마석 슬쩍하는 것 말고는 벌 방법이 없어.”
잠시 망설이던 쥬피터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런데 쥬니어, 내가 그때 보낸 돈은…….”
“아이 참. 그건 우리 빚 갚는 데 다 써 버렸다니까? 편지로 몇 번이나 말했잖아.”
“…….”
“덕분에 빚 변제는 다 끝냈어. 그런데 빚만 갚으면 다 끝나? 아니잖아. 우리가 입이 몇 갠데. 풀칠이라도 하려면 더 벌어야지.”
병실 안의 물건들을 뒤적거리며 ‘슬쩍할 거 없나-’ 중얼거리던 쥬니어가 툭 내뱉었다.
“이곳 전선은 뭐 건수 없어?”
“응? 건수?”
“왜, 할머니가 제국군에 있을 때 했던 것처럼. 뒤로 몰래 해쳐먹을 건수 없냐고.”
“…….”
“할머니는 그런 거 찾는 데에는 도사잖아.”
쥬피터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런 할머니를 돌아본 손녀가 천연덕스레 웃었다.
“응? 뭐 몰래 해먹을 거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