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126)
126화. 화법
“..평화고?”
머리를 무언가로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혹시 잘못 본 건가 싶어 고개를 휙휙 저은 후 다시 봤지만 그대로였다.
-ㄴㄴ 아님. 평화고라는 일반고등학교. 쟤는 아마 미술특기생일 거임.
평화고는 내가 다녔던 고등학교의 이름이었다.
댓글에서는 우영이가 평화고에 다닌다고 이야기하고 있고.
결정적으로 전국에 평화고등학교는 단 하나뿐이었다.
그렇다면 더 생각할 것도 없었다.
우영이가 내가 다녔던 고등학교에 다닌다는 뜻이었다.
달리 말하면, 8년이나 차이 나긴 하지만 같은 학교 선후배 관계라는 뜻이고.
사실 여기까지만 해도 생각할 수 있는 다른 경우의 수는 없었다.
그와 별개로 답댓글은 쭉 이어져 있었다.
└일반고 미술특기생인데 그림실력 미쳤네 ㄷㄷ
└ㅇㅇ 학교에서 그림 잘 그리기로 유명함. 근데 쟤가 워낙 또라이라 들어서 ㅋㅋ
└또라이? 설마 일진임?
└ㄴㄴ 오히려 그 반대임. 학교에 ㅇㅅㅎ이라고 떡대 오지는 일진 있는데. 그리던 그림에 걔가 낙서했다고 붓으로 대가리를 찍었다고 들음 ㅋㅋㅋ
└ㅁㅊ ㅋㅋㅋ 또라이는 또라이인데 호감형 또라이네.
└꼴좋다 ㅋ 남의 그림에 낙서를 왜 함? ㅉㅉ
이건 내가 우영이의 어머니에게 들은 이야기였다.
사실 이 댓글의 내용이 전부 맞는 건 아니었다.
‘우영이가 더 맞았다고 들었으니까.’
댓글에서는 우영이가 일방적으로 때린 느낌으로 조금 곡해되어 있었다.
그래도 싸움이 발생한 계기만 놓고 보자면 내가 들은 이야기와 동일했다.
붓으로 일진 머리통을 때리는 게 흔한 경우도 아니고.
사실상 이 댓글로 내가 착각했을 가능성은 아예 사라졌다고 봐도 무방했다.
‘이제야 이해가 가네.’
우영이와 대화를 나눌 때 몇 번인가 위화감을 느낀 적이 있었다.
생각해보면 전부 학교에 관한 이야기를 주고받을 때였다.
미술실 얘기라든지, 사소하게는 학교 급식 얘기라든지.
‘특히 가장 묘한 기분이 들었던 건.’
바로 미술 선생님에 관해 이야기할 때였다.
몇 번이고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미묘한 느낌이 들곤 했다.
지금 생각하니 눈치를 못 챈 게 바보같이 느껴졌다.
이유는 간단했다. 내가 아는 선생님 얘기를 들은 거니까.
‘미술 교사 홍수찬.’
내 학창 시절 미술을 가르치던 선생님이었다. 사실 그냥 얼굴을 아는 수준이 아니었다.
평화고 내에서는 나와 가장 많이 교류하던 선생님이었다.
자연스레 홍수찬 선생님의 얼굴이 떠올랐다.
‘노안이었지.’
당시에는 30대 초반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노안이었다.
세월을 직격으로 맞은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홍수찬 선생님은 틈만 나면 내게 이렇게 말하곤 했다.
‘주원이 네가 애냐? 아주 하나부터 열까지 다 챙겨줘야 해! 그림이나 못 그리면 몰라.. 아오…’
몇 년이 흐른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났다.
인상을 찡그리며 잔소리하던 홍수찬 선생님의 말투와 표정이.
철없던 학창 시절에는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별생각 없이 넘겼다.
듣고 기분 나빠한 건 아니었지만, 귀담아들은 것 또한 아니었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홍수찬 선생님의 심정이 이해가 갔다.
‘애처럼 굴었으니까.’
선생님의 말대로 당시의 나는 어린애나 다름없이 굴었다.
생각해보면 별로 간절함이 없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단순히 그림을 그리는 걸 좋아했을 뿐, 스펙 같은 걸 쌓는 것에는 관심이 없었으니까.
‘아니, 그렇다기보다는.’
우습지만 자신감에 가득 차 있었던 거 같기도 하다.
굳이 스펙 같은 걸 챙기지 않아도 나는 최정상 미대에 갈 거라는 자신감.
물론 그 자신감 역시 지금 생각하면 철없기 그지없는 생각이었다.
미대 입시를 위해 뼈 빠지게 노력하는 친구들을 보면서도 그런 생각을 했던 거니까.
‘.. 결국은 못 갔고.’
결과적으로 나는 최정상 미대는커녕 어떤 미대에도 진학하지 못했다.
홍수찬 선생님이 하나부터 열까지 입시에 필요한 것들을 챙겨줬는데도.
스펙이 부족해서 못 간 건 아니었지만, 이유를 막론하고 중요한 건 진학에 실패했다는 거다.
나를 향한 선생님의 기대를 완벽하게 저버렸다는 뜻이기도 했다.
문득 감자탕집에서 성현이가 한 말이 떠올랐다.
연두를 데려오고 얼마 안 돼서, 내가 직업에 대해 고민할 때 한 말이었다.
어떤 결정을 하든 간에 홍수찬 선생님을 한 번은 찾아가 보라고 했었지.
녀석이 내게 그런 얘기를 한 이유는 물어보지 않아도 뻔했다.
‘알고 있을 테니까.’
성현이는 나와 같은 평화고등학교 출신이었다.
더군다나 윤우, 준수와 더불어 나랑 매일같이 붙어 다니는 친구였고.
나를 따라와 미술실에서 시간을 보낸 경우도 적지 않았다.
그러니 잘 알고 있을 터였다. 홍수찬 선생님과 나의 관계를.
‘물론 그걸 누구보다 잘 아는 건 나고.’
바보가 아닌 이상 모를 수가 없었다. 홍수찬 선생님이 제자로서 나를 얼마나 아꼈는지.
당시에 흘려들었던 잔소리 역시 나를 아끼지 않았다면 하지 않았을 말이었다.
아빠가 돌아가셨을 때도 이럴 때일수록 미술을 포기하면 안 된다며 붙잡아줬고.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고 내게 아낌없이 관심을 쏟아준 선생님이었다.
‘아, 나중에 성공하면 자기한테 배웠다고 말하라고는 했구나.’
아무튼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선생님이 내게 쏟은 관심을 생각하면 성현이의 말처럼 찾아뵙는 게 맞았다.
몇 번이고 그래야겠다고 마음먹기도 했고.
그럼에도 아직까지 선생님을 만나러 가지 않은 이유가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이유는 내가 선생님을 만나러 가야 할 이유와 동일했다.
‘너무 많은 관심을 받았다는 거.’
대가 없이 분에 넘치는 도움을 받았고 완벽히 기대를 저버렸다.
그래서 찾아뵈려 생각했다가도 뵐 낯이 없다는 생각에 행동으로 옮기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나 자신이 당당하지 못했다. 무기력한 삶이 지속될수록 그 마음은 커져 갔고.
허나 이제는 그렇게 피하고 싶지 않았다.
우영이가 말한 미술 선생님은 홍수찬이 틀림없었다.
그 사실을 알았으니 조만간 선생님을 찾아뵐 생각이었다.
물론 선생님의 기억 속에는 내가 자연스레 흐려졌을 확률이 높았다.
그야 새로운 제자는 계속 생길 테고, 나는 바보같이 미술을 포기한 제자에 불과하니까.
‘만약 그렇다고 해도 달라지는 건 없어.’
중요한 건 내가 홍수찬 선생님을 잊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잊어서도 안 되고.
반드시 찾아가서 미술을 포기한 것에 대한 용서를 구해야 했다.
미술을 포기한 건 나지만, 그로 인해 선생님이 제자 한 명을 포기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으니까.
그리고 기회가 된다면… 선생님한테 보여주고 싶었다.
과거에는 나약하게 포기했지만, 지금은 내 의지로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걸.
‘대단한 건 아니라도.’
미술을 아예 놓지는 않았다는 것 역시 보여주고 싶었다.
6년 만에 나를 보는 선생님은 어떤 표정을 지으려나.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빠..”
아차. 연두를 옆에 두고 너무 혼자 생각에 빠져버렸다.
원래는 잠깐 보고 연두를 꼭 안아줄 생각이었는데.
전혀 예상치 못한 댓글을 본 탓이었다.
‘다시 생각해도 놀랍네.’
어린이대공원에서 만난 인연인데 같은 학교 출신이라니.
새삼 세상이 좁다는 게 실감되는 순간이었다.
나는 실소를 지으며 연두의 볼을 쓰다듬었다.
“미안, 연두야. 아빠가 잠깐 딴생각을 했네? 우리 예쁜 연두를 두고.”
연두는 나를 빤히 보며 물었다.
“어떤 생가기요..?”
“하하, 궁금해? 아빠가 어떤 생각했는지?”
“네! 마니 궁그매요..!”
혼자 생각하느라 가만히 앉혀둔 것도 미안한데.
궁금하다면야 당연히 말해줘야지.
나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
“아빠 어렸을 때 선생님을 생각하고 있었어.”
내 말에 연두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선생니미여..?”
“응. 아빠한테 그림을 가르쳐줬던 선생님이 있었거든.”
“우아.. 연두는 선생님 조은데… 아빠눈요..?”
“아빠도 좋아하지.”
물론 학창 시절을 통틀어 선생님한테 좋아한다고 말한 적은 없었다.
아마 말했어도 홍수찬 선생님은 징그럽다며 질색했을 게 분명했다.
그래도 내게 있어서 좋은 선생님이었다는 건 자명한 사실이었다.
내 대답에 연두는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 보고 시퍼요.”
“응?”
“연두도 아빠 선생님 보고 시퍼요…”
아무래도 내 말이 연두의 호기심을 자극한 모양이다.
하기야 내가 그린 그림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연두니까.
그림을 가르쳐줬다는 선생님을 궁금해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연두를 향해 나는 말했다.
“안 그래도 곧 보러 갈 생각인데.”
“.. 진짜여?”
“응, 연두도 같이 갈래? 아빠 선생님 보러.”
내 말에 연두가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뭐, 상관없겠지.’
어차피 학생이 아닌 졸업생 신분으로 선생님을 찾아뵈려는 의도였다.
딸을 데리고 가는 것도 딱히 그림이 이상하지는 않을 터였다.
실제로 그런 제자는 꽤나 있을 테니까.
‘다만.’
내 경우는 조금 느낌이 다를 거 같긴 하다.
아마 연두를 데리고 가면 홍수찬 선생님은 기절초풍을 하지 않을까.
그야, 내가 딸이 생겼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을 테니 말이다.
게다가 선생님이 놀랄 만한 요소는 하나 더 있었다.
‘너무 예쁘다는 거.’
옆을 바라보니 연두는 내 선생님을 볼 생각에 기쁜 건지 배시시 웃고 있었다.
역시나 놀랄 게 분명하다. 제자의 딸이 이렇게나 예쁜 걸 본다면.
그 반응이 궁금해서라도 연두는 꼭 데려가야겠다.
벌써부터 선생님을 찾아뵐 날이 기다려지기 시작했다.
***
‘쑥쑥 한글완성 1단계!’는 정말이지 엄청난 판매량을 기록하고 있었다.
과장이 아니라 아동학습지 시장에 큰 반향을 일으킬 정도였다.
당연하게도 큰 수요가 있으면 그에 해당하는 공급이 필요했다.
‘그건 출판사 아이북이 할 일이지.’
작화를 끝낸 나로서는 흐름을 지켜보는 것 외에 할 일은 없었다.
학습지를 생산해내는 건 출판사가 할 일이니까.
그리고 아이북은 그 일을 잘 해내고 있었다.
‘처음은 예외지만.’
처음에는 예상치 못한 폭발적인 판매량에 따라가지 못했다.
어느 출판사도 그런 판매량을 예측할 수는 없었을 테니 따지는 건 무의미했다.
중요한 건 아이북이 빠른 대응으로 수요에 맞는 공급을 이끌어냈다는 사실이다.
그것만으로도 출판사로서 훌륭히 역할을 해냈다고 볼 수 있었다.
‘뭐, 출판사로서 당연한 일이긴 하지.’
사실상 아이북 입장에서는 대박이 터진 셈이었다.
이 정도의 기대를 갖고 출간제의 메일을 보낸 건 아닐 테니까.
그런데 예상치 못한 잭팟이 터진 거고.
현재 상황을 고려하면 생산하는 만큼 매출이 나오는 상황이었다.
그러니 당연했다. 아이북이 엄청난 속도로 학습지를 찍어내는 건.
회사 매출이 증진되는 일인데 가만히 있는 건 바보니까.
그리고 그건 출판사뿐 아니라 나와 서지혜에게도 좋은 일이었다.
학습지에 대한 지분은 출판사만 갖고 있는 게 아니니 말이다.
나와 지혜 씨, 한국교대 교육 봉사 동아리원들, 그리고 작화를 도와준 우영이에게도 지분이 있었다.
‘아직 정산이 이루어진 게 아니라 정확히는 몰라도.’
출판사에서 전달받는 판매량을 보고 예측하는 건 가능했다. 그 예측값은 내 상상을 초월했다.
심지어 작화를 통해 받기로 한 비율에서 우영이의 몫을 뗀 수익만 고려해도.
어느 정도냐면, 이사를 한참 앞당길 수 있을 정도의 큰돈이었다.
돌이켜보면 비율로 계약한 건 정말 탁월한 선택이었다.
‘아직 더 지켜보긴 해야겠지만.’
수익에 대해 어느 정도 정확한 판단이 선다면 바로 아르바이트를 그만둘 생각이다.
내 힘으로 더 큰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길이 있다면, 아르바이트를 고집할 이유는 없으니까.
정산이 된 후에야 실감이 나겠지만 뿌듯함을 감출 수는 없었다.
처음으로 그림을 통해 수익을 창출했다는 사실에.
위이이잉.
그때 누군가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다름 아닌 우영이에게 걸려온 전화였다.
어떤 말을 하려고 전화한 건지 대충은 짐작이 갔다.
나는 곧바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진짜 괜찮아요, 형?”
이 녀석의 특징이었다. 통화를 하자 마자 본론부터 꺼내는 건.
주어는 없었지만 무슨 말을 하는지는 바로 알 수 있었다.
나는 미소를 띠며 대답했다.
“당연히 괜찮지.”
우영이는 조금 난감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 웬만하면 이런 말 안 하는데.. 생각보다 금액이 너무 큰 거 같은데요?”
녀석이 말하는 금액은 다름 아닌 학습지의 수익이었다.
우영이에게는 출판사로부터 학습지 판매현황이 전달되지 않았다.
따라서 수익을 예측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그걸 알려주는 건 내가 할 일이라 생각했고.’
작화에 참여한 입장으로서 학습지의 판매량을 알고 싶은 건 당연했다.
더군다나 그 판매량은 수익과도 직접적으로 관련된 부분이고.
그래서 둘 다 정리해서 우영이의 메일로 보내줬다.
아마 거기서 예상 수익을 보고 놀라서 전화한 게 분명했다.
학생이 벌게 될 돈치고는 매우 큰 금액이었으니까.
나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너답지 않게 왜 그래?”
“네?”
“열심히 그렸잖아. 그래서 이렇게 팔리고 있고. 그럼 보상도 쿨하게 받아야지.”
이건 내가 선심을 베풀거나 하는 문제가 아니었다.
우영이는 작화에 큰 기여를 했고, 그에 합당한 몫을 받게 되는 것뿐이었다.
물론 작화량을 고려해서 내가 더 큰 몫을 갖긴 하지만.
‘일한 만큼 받는 건 지극히 당연한 거지.’
작화를 시작할 때도 말했지만 내가 그걸 독차지하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이윽고 우영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크크, 듣고 보니 그러네요. 사실 작화 퀄리티를 생각하면 적은 거 같기도……”
오늘따라 조금 겸손하다 했더니.
말 한 마디에 곧바로 본래 캐릭터를 찾아가는 녀석이었다.
우영이의 자뻑이 끝나고 나는 말했다.
“네 돈이니까 상관은 안 하는데, 정산되면 어머님한테 선물이나 하나 사 드려라.”
“그래야죠. 아, 형은 엄마한테 뭐 사 드리게요?”
“응?”
“저보다 형이 더 많이 벌 거 아니에요. 치사하게 저는 사라고 하고 형은 안 사려는 거 아니죠?”
우영이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할 수 있는 질문이었다.
지금껏 내 가정사에 관해서는 한 번도 말한 적 없으니까.
어떻게 대답할지 조금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안 사는 게 아니라 못 사.”
“네? 그게 무슨 말……”
중간에 말을 멈춘 걸 보니 대충 눈치챈 모양이다.
사실 어릴 적부터 이런 대화는 익숙해서 아무 느낌도 없었다.
굳이 먼저 얘기하지는 않지만, 물어보면 숨기지도 않는 문제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우영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몰랐어요.”
“당연히 그랬겠지. 안 말했으니까.”
“말 나온 김에 미리 얘기하는데 저는 아빠 없어요.”
켁. 켁.
깜짝이야. 갑작스러운 고백에 놀란 나는 헛기침을 내뱉었다.
어머님한테 들어 알고는 있었지만, 이런 식으로 또 듣게 될 줄은 몰랐으니까.
나는 황당한 표정으로 말했다.
“너 진짜 아무렇지 않게 말한다?”
“뭐, 아무렇지 않으니까요.”
그럴 리가. 아무렇지 않을 리가 없다.
그저 아무렇지 않게 얘기하는 게 익숙해졌을 뿐이겠지.
우영이에게 아버지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였는지는 어머님께 들어 잘 알고 있었다.
‘물론.’
그걸 얘기하며 따질 생각은 없었다.
대화 화제는 자연스레 다시 학습지 얘기로 넘어갔다.
“아마 2권도 만들게 될 거야.”
“네, 그렇겠죠.”
‘쑥쑥 한글완성’ 학습지의 2단계 제작은 확정이나 다름없었다.
이렇게 히트친 학습지를 1권에서 끝낸다는 게 말이 되지 않으니까.
벌써 서지혜와 동아리원들은 제작에 돌입한 상태였다.
‘작화는 또 나한테 부탁했고.’
1권을 성공적으로 끝낸 만큼 마다할 이유는 없었다.
나는 망설임 없이 서지혜의 부탁을 받아들였다.
‘2권도.’
1권에 뒤지지 않는 작화 퀄리티를 내고 싶었다.
그러려면 똑같은 조건에서 작업할 수 있어야 했다.
가장 중요한 건 호흡을 맞출 동료였다. 즉, 우영이가 필요하다는 뜻이었다.
“어때? 2권도 할 수 있겠어?”
“당연하죠.”
묻는 동시에 대답이 들려왔다.
이로써 학습지에 관한 얘기는 끝난 셈이었다.
그러나 아직 할 얘기가 하나 남아있었다.
‘차근차근 설명하자면 말이 길어질 거 같고.’
배경부터 하나하나 얘기하기에는 복잡한 이야기였다.
문득 우영이가 말하는 방식이 떠올랐다. 전화가 연결되자마자 본론을 꺼내는 특유의 방식.
전화매너로서는 꽝이지만, 어찌 보면 가장 답답함 없는 화법이라고도 볼 수 있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그냥 우영이처럼 말하기로 했다.
“우영아.”
“네.”
“학습지는 그럼 같이 작업하기로 한 거고, 또 우리가 같이해야 할 게 있는데.”
“뭔데요?”
“같이 홍수찬 선생님 보러 가자.”
“…?”
한동안 답이 들려오지 않았다.
막상 역으로 당하니 정신을 못 차리는 우영이였다.
잠시 후, 처음 들어보는 우영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형이 홍수찬 쌤을 어떻게 알아요?”
어떻게 알긴. 내 선생님이었으니까 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