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167)
167화. 액자
본격적인 식사가 시작됐다.
스슥. 슥.
메뉴가 많아서 젓가락이 크게 겹칠 일은 없었다.
반응이 궁금했던 나는 잠깐 식사를 미루고 상황을 지켜봤다.
가장 먼저 입을 뗀 건 범재였다.
“오, 맛있다!”
그 말에 나는 바로 고개를 돌렸다.
어떤 걸 먹고 보인 반응인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범재는 친구들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이거 낙지볶음인가? 꿀맛인데? 먹어 봐.”
“오키. 바로 간다.”
“.. 진짜 맛있다! 쫄깃쫄깃해..”
처음으로 고딩녀석들의 선택을 받은 건 바로 낙지볶음이었다.
배송받은 상태로 익히기만 한 반조리식품.
사실상 내가 한 건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맛있긴 했지.’
아까 맛을 봤을 때 나도 감탄하긴 했다.
퀄리티가 음식점과 비교해도 크게 밀리지 않는 느낌이었으니까.
사실 집들이 음식의 퀄리티가 뛰어난 건 좋은 일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조금 불안하기도 했다.
‘하나도 안 먹는 거 아냐?’
나와 연두가 만든 음식은 철저히 배제당하는 게 아닐까 하는 걱정이었다.
아니, 맛을 모르니까 하나는 먹겠지. 허나 맛이 없다면 두 번은 안 먹는 게 사람 심리였다.
반조리식품 접시만 텅텅 비면 내상을 입을 거 같았다.
나야 괜찮다고 해도 함께 요리한 연두도 있으니 말이다.
휙. 휙.
괜한 걱정이라 판단한 나는 손에 젓가락을 들었다.
어차피 걱정하든 말든 요리는 맛으로 평가받을 테니.
마음을 내려놓고 식사에 집중하는 게 나을 거 같았다.
“뭐 먹고 싶어, 연두야?”
상이 큰 데다가 팔도 짧아서 음식을 가져오기 힘든 연두였다.
아직 젓가락질이 능숙하지 않기도 하고. 따라서 내가 식사를 도와줄 필요가 있었다.
잠깐 고민하며 음식들을 바라보던 연두가 대답했다.
“계란마리!”
“응?”
“연두 계란마리 먹고 시퍼요..!”
계란말이는 내가 자주 해 주는 메뉴였다.
평소에 좋아한다고는 해도, 새로운 음식을 먹고 싶을 만도 한데.
설마 나를 생각해서 고른 첫 메뉴인 건가?
괜히 혼자 감동을 느끼며 나는 계란말이 한 조각을 들었다.
포옥.
그리고 케첩에 듬뿍 찍어서 연두의 입에 가져다 댔다.
연두는 입을 앙 벌려서 한 입에 계란말이를 넣었다.
오물. 오물.
한참을 볼이 한껏 부푼 채로 오물거리는 연두.
동시에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짓는 특유의 표정이 떠올랐다.
내 친구녀석들은 식사까지 멈추고 그런 연두를 바라봤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음식을 삼킨 연두가 입을 열었다.
“.. 꿀마시에요!”
“응?”
“리얼 꿀마시에요, 아빠..!”
체감상 꽤나 오랜만에 듣는 유행어였다.
내심 연두가 이 말을 잊어버린 건 아닐까도 생각했는데.
나는 미소를 띠며 입을 열었다.
“식지는 않았어?”
“식어써요..”
“근데 리얼 꿀마시야?”
“네에. 연두는 식은 계란마리 조아요..!”
“하하, 다행이네.”
계란 전문가의 관점에서 볼 때 충분히 그럴 만했다.
계란말이는 식었을 때 식감이 탱탱해지는 경향이 있으니까.
한편 연두를 바라보던 친구들은 감격스러운 표정으로 말을 주고받았다.
“와, 이걸 눈앞에서 듣다니. 리얼 감동이다..”
“잠깐만. 리얼 너무 귀여워서 지금 정신이 혼미한데?”
“안 되겠다. 나도 리얼 꿀마시 먹어야겠다.”
난데없이 리얼로 똘똘 뭉친 세 녀석들.
성현이는 젓가락을 유턴해서 계란말이를 향해 뻗었다.
휙.
몇 번 씹던 성현이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 리얼 맛있긴 하네.”
녀석의 성격을 고려해 보자면 상당한 극찬이었다.
맛없는 걸 맛있다고 하는 성격이 아니니까.
그 말은 꽤 큰 파급력을 불러일으켰다.
“계란말이 맛있어요..? 나도 먹어봐야겠다.”
서지혜를 시작으로,
“시은이도 계란말이 먹어볼래?”
“응.”
신세연과 시은이 모녀와 말없이 젓가락을 뻗는 우영이까지.
빠른 속도로 접시 위 계란말이가 줄어들었다.
우습지만 연두의 ‘리얼 꿀마시’가 불러일으킨 파급효과였다.
***
식사는 빠르게 진행됐다.
생각 이상으로 나와 연두가 만든 메뉴는 인기를 끌었다.
그렇다고 반조리식품을 압도했다는 건 아니지만.
‘애초에 그건 바라지도 않았고.’
어느 정도의 수요만 있다면 내 기대치는 충족하는 셈이었다.
그에 따르면 충분히 성공적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계란말이부터 소시지 야채볶음과 팽이버섯 베이컨말이까지.
전부 반조리식품 못지않은 인기를 끌고 있었으니까.
“연두야.”
“네에.”
“삼촌 이름이 뭔지 기억해?”
“네! 유누 삼촌..!”
“아유, 똑똑해. 상으로 여기 연두가 좋아하는 또시지! 아아~”
소시지를 콕 집어서 연두에게 내미는 최윤우.
나를 포함해 옆에 있는 두 녀석들은 그저 놀랍다는 표정이었다.
윤우가 이런 말투를 구사하는 건 처음 보니까.
만약 우리끼리 있을 때 이랬다면 합당한 응징을 가했을 텐데.
‘연두가 있으니까 봐준다.’
두 녀석들도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게 뻔했다.
사실 나도 연두를 대할 때는 저렇게 되니 뭐라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러던 와중 서지혜가 생긋 웃으며 나를 바라봤다.
“.. 왜요?”
“이제 슬슬 말해줘야 하는 거 아니에요, 오빠?”
“뭘요?”
“음식에 숨겨진 비밀이요.”
“아!”
그러고 보니 말하는 걸 잊고 있었다.
사실 거창하게 비밀이라 하기에는 별 거 없는 사실이긴 하지만.
그래도 막상 말하려니 조금 민망하긴 하네.
나는 모두를 향해 입을 열었다.
“사실 제가 이걸 다 한 건 아니에요.”
이 말에 딱히 놀라는 손님은 없었다.
어느 정도는 예상하고 있었다는 표정이었다.
윤우가 웃으며 반응했다.
“알고 있었어. 다른 건 몰라도 버섯전골은 좀 아니지. 내가 널 아는데.”
옆에서 준수가 말을 덧붙였다.
“그럼 이건 다 누가 한 건데?”
“반조리식품이야.”
“그럼 그렇지.”
“응?”
“계란말이가 너무 매끈하게 잘 말리긴 했더라.”
“그건 직접 한 건데?”
“…”
헛다리를 짚어 벙찐 표정의 준수.
나는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전부 반조리식품만 있는 건 아니야. 나랑 연두가 같이 만든 음식도 섞여있거든. 우선 계란말이하고……”
“야, 잠깐만!”
“…?”
내 말을 가로막은 건 다름아닌 성현이였다.
“이런 건 그냥 넘어가면 섭하지.”
“뭔 소리야?”
“자, 즉석 퀴즈쇼입니다. 퀴즈는 바로.. 주원이랑 연두가 만든 음식 맞추기!”
갑자기 사회자로 돌변한 성현이녀석이었다.
뭐, 건전한 퀴즈이니 막을 필요는 없겠지.
성현이는 왼쪽을 돌아보며 말했다.
“첫 번째 문제는 옆에 있는 분께 내도록 하죠. 어차피 저희 셋은 주원이에 대한 모든 걸 파악하고 있기 때문에 문제를 내는 의미가 없고요.”
웃기고 있네. 당장 옆에 있는 준수부터 계란말이가 반조리식품이라며 헛다리를 짚었는데.
트집을 잡을 겨를도 없이 성현이는 말을 이었다.
“자, 지혜씨. 주원이랑 연두가 만든 음식은?”
고민하던 서지혜는 입을 열었다.
“계, 계란말이요..”
“에이, 왜 이러실까. 당연히 계란말이는 배제죠. 이미 말했는데.”
“그, 그렇죠? 그럼……”
재미로 하는 거니까 대충 얘기하면 되는데.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상당히 진지하게 고민하는 서지혜였다.
얼마 후에 서지혜는 조심스레 답을 말했다.
“소시지볶음..?”
“네, 고민 끝에 나온 대답은 소시지볶음! 어떤가요? 정답인가요?”
자연스레 바통은 나한테 넘겨졌다.
나는 그걸 다시 옆에 있는 연두에게 넘겼다.
“연두가 말해줄까? 정답인지.”
연두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성현이를 향해 말했다.
“정다비에요..!”
“오오, 정답이었습니다!”
그와 동시에 서지혜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이어서 성현이는 정답을 소시지볶음으로 한 이유를 물었다.
그 질문에 서지혜는 웃으며 대답했다.
“제일 맛있었거든요.”
진위여부와 상관없이 기분은 좋았다.
성현이의 사회자 컨셉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다음은 그 옆에 앉은 분!”
“저, 저요..?”
“네. 특별히 이번 분은 따님과 함께 맞추는 걸 허용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성현이는 신세연에게도 똑같은 문제를 냈다.
그나저나 이상하네. 지혜씨와 마찬가지로 세연씨도 무척 고민하는 느낌이다.
“알 거 같아, 시은아?”
“아니. 엄마가 맞춰.”
“그, 그래.”
결국 고민하던 신세연은 입을 열었다.
“베이컨 버섯말이..?”
오. 이번에는 솔직히 나도 놀랐다.
확률로 따지면 맞출 확률은 상당히 희박했는데.
정답을 모르는 사회자 유성현은 이유를 물었다.
“이유가 뭐죠?”
“.. 좀 더 직접 만든 맛이 나서요.”
“한 마디로 손맛이 느껴진다는 거군요.”
“그, 그렇죠.”
“네, 잘 들었습니다. 자, 연두양?”
이번에도 정답요정 연두가 출동했다.
어느새 연두는 내 무릎에 앉은 채로 손을 위로 뻗으며 말했다.
“헤헤, 정다비에요..!”
“노, 놀랍습니다! 2연속 정답입니다!”
이쯤 되면 고마울 정도다. 분위기 띄워주려고 애쓰는 걸 보니.
한편 정답을 맞힌 게 기쁜지 신세연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성현이는 그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자, 다음은.. 여기 네 명의 고딩, 아니 귀여운 고등학생 친구들에게 물어보도록 하죠. 아, 거기 미술하는 하얀 친구까지 합쳐서 다섯명이 한 번에 맞춰보도록 합시다!”
녀석의 말에 동건이가 의지를 불태웠다.
“오오! 드디어 우리 차례가 왔다..! 준비됐지, 우영?”
“.. 어?”
“준비됐지, 우영?”
다시 한번 우영이의 얼굴에 벙찐 표정이 떠올랐다.
‘얘 진짜 뭐지?’라는 말을 머금은 듯한 표정이다.
잠깐의 침묵이 흐르고 옆에서 범재가 입을 열었다.
“물론이지, 동건!”
“아니, 왜 니가 대답하는데!”
“시끄러! 딱 봐도 싫어하는 거 안 보이냐? 내가 희생한 거야.”
말다툼도 콩트같이 하는 녀석들이었다.
상황이 웃긴지 옆에서 주연이와 예림이가 웃음을 터트렸다.
의지를 불태우는 게 안타깝긴 한데, 퀴즈쇼를 지속하는 건 불가능했다.
나는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만해, 성현아.”
“아니, 왜? 한창 재밌는데.”
“이제 없거든. 나머지는 다 반조리식품이야.”
“아!”
성현이는 바로 납득하고는 입을 꾹 다물었다.
역시 맺고 끊음이 확실한 녀석이었다.
이렇게 즉석 퀴즈쇼가 마무리됐다.
***
꼴깍.
식사가 마무리된 이후 후식을 즐기는 시간.
후식은 아까 얘기한 대로 신세연이 선물한 세 종류의 청이었다.
오렌지청과 레몬청과 자몽청.
각자 먹고 싶은 종류의 청이 달랐다.
“제가 타서 오겠습니다.”
각 청의 수량을 파악한 나는 선수를 뺏기지 않게 잽싸게 일어났다.
일어서는 나를 보고는 뒤따라 일어나는 사람이 있었다.
그녀는 다름 아닌 신세연이었다.
“도와드릴게요.”
“아, 괜찮은데……”
“어떻게 타야 하는지 비율을 잘 알거든요.”
이렇게 말한다면 더 거절할 명분이 없었다.
“그럼 부탁드릴게요.”
그때 시은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엄마, 나 연두 방에서 연두랑 놀아도 돼?”
“이거 마셔야 하는데.”
“식을 때까지 놀다가 마실래. 응?”
간절한 눈빛에 옆에서 나는 넌지시 입을 열었다.
“그러라고 하죠. 이따가 부르면 되니까.”
“네. 그럼 부르면 와야 한다?”
“응!”
나도 연두를 향해 말했다.
“연두도 이따가 식으면 마시러 와야 한다?”
“네, 아빠..!”
그렇게 둘은 손을 꼭 잡고 방으로 향했다.
나는 신세연과 함께 부엌으로 이동했다.
주르륵.
그녀는 시범을 보이며 이야기했다.
“보이시죠? 이 정도 비율로 타면 돼요.”
“아, 네.”
직접 타며 보여주니 알기 쉬웠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열네 개의 청을 완성했다.
“옮기는 건 저희가 할게요, 오빠.”
“맛있어 보인다..”
어느새 온 고등학생 애들이 운반을 도왔다.
우영이는 동건이가 데려온 느낌이었다.
툭.
그렇게 각자의 앞에 수제청이 하나씩 놓였다.
“잘 먹겠습니다.”
그 말을 시작으로 모두가 한 모금을 들이켰다.
홀짝.
내가 마시기로 한 건 자몽청이었다. 맛은 생각 이상으로 훌륭했다.
달짝지근하면서도 쌉쌀한 자몽 특유의 맛과 향.
나뿐 아니라 다른 사람도 전부 만족하는 거 같았다.
특히 레몬청을 마신 예림이는 눈이 동그래져서 입을 열었다.
“언니, 진짜 맛있어요..!”
“그래? 다행이다..”
“이거 어떻게 만드는 거예요?”
“생각보다 되게 쉬워. 재료도 간단하고. 껍질은 넣어도 되고 안 넣어도 되는데 맛이 조금 차이가……”
실시간으로 레몬청 만들기 강습까지 이루어졌다.
슬슬 집들이가 끝나가는 분위기였다.
그러던 와중 홍수찬이 어딘가를 보며 말했다.
“근데 저건 뭐야, 주원아?”
그가 가리킨 건 다름아닌 거실에 걸어 둔 큰 액자였다.
아직 내용물이 들어있지 않아 텅 비어있는 액자.
나는 있는 그대로의 대답을 건넸다.
“액자요.”
“푸흣.”
왜인지 몇몇 손님이 웃음을 터트렸다.
액자가 뭐냐고 묻길래 액자라고 대답했을 뿐인데.
그런데 이렇게 생각하니 황당해서 웃기긴 하네.
홍수찬도 혀를 차며 말했다.
“그거야 당연히 알지. 나도 눈이 있는데. 왜 액자가 텅 비어있냐는 거지.”
“아직 내용물이 준비가 안 됐거든요.”
“뭐를 넣을 생각인데? 그림이라도 주문했어? 아니면 사진?”
“아뇨.”
갑자기 모두의 관심사가 액자에 쏠린 느낌이다.
나는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직접 그려 보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