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50)
50화. 일일 알바생
“가자, 연두야. 출근하러.”
“출근…?”
“응. 오늘은 아빠랑 같이 일하러 갈 거야. 예전처럼.”
내 말에 연두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연두는 침을 꼴깍 삼키고는 확인하듯 물었다.
세상 설레는 표정으로.
“그럼 연두 오늘 어리니집에 안 가도 대여..?”
“응. 아빠가 깜빡하고 있었는데 오늘 어린이집이 쉬는 날이거든. 그래서 아빠랑 같이 출근해야 할 거 같아.”
“… 와!”
얼마나 좋아야 저런 표정이 나오는 걸까.
내가 로또 1등에 당첨된다면 저런 표정을 지으려나.
아니, 당첨되면 이렇게 출근 자체를 안 하겠지.
끼익.
집을 나서는 발걸음부터가 달랐다.
평소에는 아빠랑 떨어져야 된다는 이유로 기운 빠진 발걸음을 보이는 연두.
특히 어린이집에 도착할 즈음이면 텐션이 지하까지 떨어지곤 했다.
‘다녀오세여, 아빠…’
이 말을 들을 때가 나도 연두도 가장 슬퍼지는 순간이었다.
물론 지금 연두의 모습은 그때와는 180도 달랐다.
‘나갈 때부터 최고조인데?’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기분이 최고로 좋아 보였다.
표정은 말할 것도 없고, 발걸음은 바닥이 텀블링장이라도 되는 것마냥 통통 튀었다.
심지어 작은 목소리로 노래까지 흥얼거렸다.
“소중해썼고~ 마니 행복해썼던~♪”
“푸흡.”
주연이의 노래를 많이 들려줘서인지, 가사를 그대로 외워버린 연두였다.
아마 가사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도 모르고 부르는 거겠지.
그런데 의외로 과거형인 것만 빼면 지금 상황에 들어맞는다.
지금의 연두는 엄청 행복해 보이니까.
‘그래도.’
나이에 어울리는 노래를 알려줄 필요성은 있을 듯하다.
다섯 살 아이가 기분 좋을 때마다 애절한 이별 노래를 부르는 건 아무래도 이상하니까.
그것도 저렇게 신나는 목소리로 말이다.
“연두야.”
“네에!”
이거 봐라. 대답부터 즐거운 기분이 묻어난다.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 나는 미소를 띠며 물었다.
“놀러 가는 거 아니고 일하러 가는 건데 그렇게 기분이 좋아?”
“네! 아빠랑 가치 이쓰니까..!”
장난기가 발동한 나는 짓궂은 표정으로 말을 건넸다.
“흐음.. 아빠가 좋은 게 아니라 소시지가 좋은 거 아니고?”
연두는 눈에 힘을 꾹 주며 바로 대답했다.
“아니에여..!”
“그래?”
“또시지도 조은데.. 아빠는 세상에서 제일 조으니까…”
저절로 입가에 웃음이 번졌다.
어쩌지. 표정 관리가 잘 되지 않는다.
나는 입 양 끝을 손으로 누르며 말했다.
“각오해야 된다? 오늘은 일하러 가는 거니까 연두한테 일 엄청 많이 시킬 거거든.”
“연두 어떤 일 해여..?”
“가게 청소도 하고, 손님들한테 인사도 하고. 할 수 있겠어?”
연두는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네! 할 수 이써요..!”
“하하, 그래.”
나는 연두의 손을 잡고 편의점으로 향했다.
물론 가면서 해결할 일이 있었다.
핸드폰을 꺼낸 뒤, 나는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뚜르. 뚜르.
통화연결음이 울리고, 금방 누군가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사장님. 저 이주원인데요.”
“그래, 주원 씨. 무슨 일이야?”
그는 다름 아닌 편의점 사장님이었다.
허락해줄 거라고 생각은 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연두를 데려갈 수는 없었다.
나는 차근차근 사정을 설명했다.
“제가 날짜를 착각하고 연두 어린이집 휴일을 확인 못 해서요. 그래서 오늘만 연두랑 같이 출근했으면 하는데, 괜찮을까요?”
“허허, 괜찮고말고.”
역시 사장님은 예상대로 흔쾌히 허락해주셨다.
사장님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럼 연두는 일일 알바생인 건가?”
“.. 제 업무에는 지장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에이, 지장 좀 있으면 어떠나. 그럴 일은 없겠지만, 누가 뭐라 하면 전화하게. 바로 내가 무찔러 줄 테니까.”
“하하, 아닙니다.”
그렇게 사장님과의 유쾌한 통화가 종료됐다.
통화 내용을 들은 건지, 연두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연두 가치 가면 안 댄대요..?”
나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아니? 일 열심히 하면 같이 출근해도 된다고 하시는데?”
“.. 엄청 열씨미 할 꺼에요!”
“크크, 그래.”
이렇게 아르바이트생인 내게 일일 조수가 생겼다.
연두라는 조수인데, 오늘 빡세게 일을 시켜볼 생각이다.
***
“우와..”
오랜만에 보는 반응이었다.
내 이전 타임에 근무하는 남자 알바생의 감탄사.
원래는 인사를 주고받는 것 외에 나와 전혀 말을 섞지 않았는데, 전에 연두가 출근하고 나서 간단한 대화를 주고받기 시작했다.
‘그 예쁜 아이는 따님이신 거예요?’
‘네.’
‘.. 부러워요. 진심으로.’
‘하하, 감사합니다.’
뭐, 이 정도의 대화뿐이긴 했지만.
오늘도 알바생은 전처럼 표정이 놀라움으로 물든 채, 쉽게 편의점을 떠나지 못했다.
바로 그가 오늘 연두의 첫 인사 대상이었다.
연두는 눈웃음을 지으며 꾸벅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아! 안녕..”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연두야. 삼촌 기억해?”
“네!”
대화를 통해 이 알바생이 나보다 두 살 어리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따라서 삼촌이라는 호칭이 적당할 거 같았다.
나를 아빠라고 부르는데, 나보다 두 살 어린 남자를 오빠라 부르는 건 이상하니까.
알바생은 한참 연두를 바라보다가 내게 한 마디를 건넸다.
“앞으로 친하게 지냈으면 좋겠어요, 형.”
내가 아니고 연두랑 친해지고 싶은 거 같은데.
오히려 속이 빤히 보여서 웃음이 나왔다.
“그래요.”
그렇게 알바생이 나가고, 본격적인 업무가 시작됐다.
전에는 내 옆 의자에 연두를 계속 앉혀뒀지만, 오늘은 정말 일을 시킬 생각이었다.
가만히 앉아있는 것도 엄청 지루할 테니.
“연두야.”
“네!”
“이제부터 연두가 할 일을 알려줄게.”
연두는 한껏 진지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네..!”
뭔가 대단한 걸 시키려는 뉘앙스이긴 했지만, 그럴 의도는 없었다.
나는 편의점 창고에 들어갔다.
‘찾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생각했던 물건을 찾을 수 있었다.
그건 바로 미니 빗자루와 쓰레받기였다.
내가 쓰는 빗자루는 연두보다 키가 커서, 연두가 빗자루에 끌려다닐 가능성이 농후했다.
“자, 연두야.”
“이게 모에요..?”
“청소도구야.”
쓰윽. 쓰윽.
나는 웅크려 앉아서 시범을 보였다.
“봐, 이렇게 쓸면 먼지가 생기지? 그럼 이 먼지를 쓰레받기에 담으면 돼.”
“담은 다음에는 어떠케요..?”
“먼지가 많이 쌓이면 저기 쓰레기통 안에 버리면 돼.”
“그럼.. 먼지는 나뿐 거에요..?”
“너무 많이 생기면 나쁠 수 있어. 그래서 청소하는 거고.”
“아!”
연두는 이해했다는 듯 손을 내밀었다.
나는 웃으며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건네줬다.
곧바로 연두는 청소를 시작했다.
쓰윽. 쓱. 쓰윽.
“우아…”
잔뜩 생기는 먼지를 보고 신기하다는 듯 입을 벌리는 연두.
그 모습이 재미있어 피식 웃음이 나왔다.
재미가 붙었는지 연두의 청소 속도는 점점 빨라졌다.
쓱삭. 쓱삭.
그러는 사이, 첫 손님이 들어왔다.
우습게도 그 손님은 내가 아는 사람이었다.
“어서 와요, 지혜 씨.”
“학교 가기 전에 들렸어요! 딸기우유가 땡겨서.”
“지혜 씨가 딸기우유 말고 다른 게 땡길 때가 있긴 한가요?”
“흐흐, 그건 그러네요. 제가 워낙 딸기덕후라.”
오해가 풀린 이후로 서지혜는 전처럼 자주 편의점에 들르고 있었다.
웅크린 채 청소하던 연두가 그녀를 보고 벌떡 일어났다.
“지혜 언니다!!”
“까, 깜짝야! 어..? 연두야!”
그녀가 연두를 보고 가까이 다가갔다.
“놀랐네.. 여긴 어떻게 왔어, 연두야?”
“아빠랑 가치 출근해써요..!”
“출근..?”
서지혜가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어떻게 된 거예요..?”
“연두 어린이집이 오늘 휴일이라서요. 그래서 데려왔어요.”
“그랬구나.”
그녀는 연두의 손을 보더니 빙긋 웃으며 물었다.
“크크, 연두 청소시키려고 데려온 거 아니에요?”
“그것도 없지 않아 있죠.”
“너무해..”
“연두가 청소를 얼마나 좋아하는데요. 그치, 연두야?”
“네에!”
역시 연두는 내 편이었다.
서지혜는 장난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더니 말했다.
“들르길 잘했다. 이렇게 연두도 보고. 연두는 언니 봐서 어때?”
“예뻐요!”
“으응?”
갑작스러운 연두의 돌직구에 서지혜의 볼이 빨개졌다.
좋다는 대답이 나올 줄 알았던 모양이다.
“에이.. 연두가 훨씬 예쁘지.”
“아닌데. 언니가 더 예뿐데…”
갑자기 예쁜 애들끼리 서로를 칭찬하기 시작했다.
서지혜가 연두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글자공부는 잘하고 있어, 연두야?”
“네! 아빠랑 가치 공부하고 이써요..!”
“그렇구나. 흐응.. 그럼 기역은?”
“구렁이!”
“니은.. 아니다, 이건 다음에 하자.”
또 연두의 입에서 누렁이가 나올까 걱정된 모양이다.
투둑.
서지혜는 딸기우유 세 개를 사서 계산대에 내밀었다.
딱 봐도 두 개는 나랑 연두를 주려는 거 같은데.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에요..?”
“제 첫 제자인데 딸기우유 하나는 전혀 무리 아닌데요?”
“그럼 저는요?”
“음.. 첫 제자의 학부모..?”
“하하..”
매번 얻어먹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딸기우유 세 개를 바코드에 찍고 내 카드를 긁었다.
“… 뭐예요?”
“오는 게 있으면 가는 것도 있어야죠.”
나는 그녀를 향해 딸기우유 하나를 내밀며 말했다.
“마셔요.”
“..다음엔 제가 살 거예요?”
“네. 안 말릴 테니까 걱정 마요.”
서지혜는 빙긋 웃으며 딸기우유를 건네받았다.
***
최근 들어 편의점 손님은 눈에 띄게 많아졌다.
내 입장에서는 꽤 신기한 일이었다.
연두가 어린이집에 가게 된 이후에도, 여전히 이 편의점을 찾는 손님이 많았으니까.
소위 말하는 단골손님이 많아진 것이다.
내게 이런저런 말을 건네는 손님부터, 연두의 안부를 묻는 손님까지.
그리고 오늘, 연두가 복귀했다.
‘어서 오세요..!’
연두는 지치지도 않는지, 손님이 들어올 때마다 달려가 인사를 건넸다.
양손에는 미니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들고.
‘깜짝이야! 어..! 연두네?’
‘어머! 공주님 왔구나!’
‘청소하는 거야? 아유, 기특해라…’
손님들이 들어오면서 연두의 앞으로 간식거리가 쌓였다.
과장 조금 보태면, 점심에 이것만 먹어도 배부를 거 같다.
‘말릴 수도 없고.’
아무 말 없이 계산한 다음, 간식을 연두한테 건네니 받는 수밖에 없었다.
계산할 때 ‘혹시 연두 주시려는 건가요?’라고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
한편, 연두는 여전히 청소에 정신이 팔려있었다.
“연두야. 조금 쉬는 게 어때?”
“아빠! 쓰러도 먼지가 계속 나와요..!”
“.. 그러니?”
“네!”
아무래도 연두는 편의점 내의 모든 먼지를 박멸시킬 작정인가 보다.
안 그래도 조그마한데 웅크려서 청소하는 모습을 보니 꼭 청소요정 같다.
저러다 먼지 너무 들이마시면 안 되는데.
“그만, 연두야.”
“.. 네?”
“이제 아빠가 할게. 연두는 잠깐 쉬어.”
결국 내가 개입해 청소를 시작했다.
그렇게 점심을 먹고 연두와 시간을 보내다 보니, 세 시가량이 되었다.
위이잉.
귀신같이 핸드폰이 진동했다.
다름 아닌 주연이의 메시지였다.
-아저씨.. 폰 냈다가 지금 받았는데.. 이거 뭐예요?
[뭐가?]-애들이 뻥치는 줄 알았는데 제 채널 구독자수가… 이거 꿈 아니죠?
[ㅋㅋㅋㅋ 아니야. 축하한다.]이다음에 온 메시지는 하트가 너무 많아서 일일이 세기도 힘들 정도였다.
어찌 됐든 좋아하는 거 같아 다행이었다.
[그만하고, 혹시 오늘 올 거야?]-아저씨 편의점이요?
-저 오늘 보컬 레슨 날이라 ㅠㅠ 내일 가서 절 올리도록 하겠슴다..!
[오버하지 말고 ㅋㅋ 레슨 잘 받아.]-넹!
연두가 있다는 건 일부러 말하지 않았다.
그걸 알면 주연이 성격상 레슨도 팽개치고 달려올 거 같으니까.
학창시절 끝내 본분에 충실하지 못한 인생 선배로서, 일탈을 조장할 수는 없었다.
의자에 앉은 연두가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빠아.”
“응, 연두야.”
“.. 연두 일 잘 해써요?”
나는 연두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엄청 잘했어. 너무 잘해서 아빠가 돈도 챙겨줘야 할 거 같은데?”
“헤헤.. 다행이다.”
연두는 세상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실제로 빈말이 아니었다.
‘이렇게 열심히 할 거라고는 나도 생각 못 했으니까.’
연두가 살며시 입을 열었다.
“아빠. 오늘은 언니 오빠들 안 와여..?”
“아무래도 그럴 거 같은데. 왜? 언니 오빠들 보고 싶어?”
“네에..”
“곧 다 같이 밥 먹기로 했으니까, 그때 보자.”
“조아여..!”
이후 연두는 심심한지 편의점 내부를 거닐기 시작했다.
산책하듯 걸으며 물건을 훑는 게, 어린 사장님 같기도 했다.
“으응?”
그러다 연두의 발걸음이 한 곳에서 멈췄다.
연두가 그 자리에서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빠!”
“응.”
“저 보고 시픈 게 이써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