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801)
화. 민홍임의 시골밥상
“이런 망할……”
귀에 꽂히는 욕의 향연.
나는 알 수 있었다.
지금껏 조대새끼를 비롯해 할머니가 했던 말들은 욕이 아니었다는 걸.
옆에 아이들이 없다는 게 다행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이해는 가.’
겉으로는 까칠할지 모르지만 연두를 누구보다 아끼는 할머니였다.
그리고 차에는 연두를 포함해서 아이들이 네 명이나 타고 있던 상태였다.
손주인 나와 아들인 김윤호도 있었고.
아마 내가 할머니였다고 해도 영상을 보면 바로 욕이 튀어나왔을 거 같다.
“하하.. 괜찮아요, 할머니.”
“괜찮긴 뭐가 괜찮아. 운전을 이따위로 하는데.”
“사고가 안 난 게 중요한 거죠. 그리고 신고하면 저희로서 할 수 있는 건 다 하는 거니까……”
솔직히 시원한 마음도 있었다.
차마 내가 입 밖에 못 냈던 말을 할머니가 다 해 주신 거 같아서.
고개를 끄덕이며 삼촌이 얘기했다.
“일단 신고는 했어.”
화면에는 떠올라있었다.
-제보가 접수되었습니다.
조금은 신기했다.
운전하며 여러 상황에 맞닥뜨리긴 했지만 신고해 보는 건 또 처음이니까.
“아마 며칠 내로 답신이 올 거야. 그때까지는 신경쓰지 말자.”
“네, 삼촌.”
“엄마도 신경쓰지 마.”
삼촌 말대로였다.
이제 우리로서 신경쓸 건 없었다.
할머니는 아직 화가 가라앉지 않은 표정이긴 하지만.
“흥.”
그만큼 우리를 위하기 때문에 나오는 반응일 거라 생각하니 미소가 번졌다.
의도적으로 화제를 전환했다.
“빨리 나가요, 우리. 너무 애기들끼리 두면 안 되니까.”
여덟살.
잠시라도 눈을 떼면 불안한 나이였다.
전에도 잠깐 한눈을 판 사이에 연두가 선동이와 함께 사라진 적도 있으니 말이다.
그 덕에 선동이의 비밀장소를 알게 되긴 했지만.
‘갑자기 불안해지네.’
문을 열고 나간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옹기종기 모여앉아 수다를 떨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 아빠!”
“뭐 하고 있었어, 연두야?”
“단비음악대 이야기여!”
뜻밖의 주제에 내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단비음악대.
확실히 어쩌다 보니 완전체가 모이긴 했다.
‘재밌을 거 같아.’
문득 떠오른다.
독일에서 버스킹을 했던 기억이.
시골을 배경으로 연주회를 하는 것도 색다른 경험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별도의 준비가 필요하겠지만 말이다.
“잠깐 나갔다 올래, 얘들아?”
“네!”
시골인 만큼 집 주변만 해도 색다른 느낌을 주는 장소들이 많았다.
더군다나 지금은 가을이다.
“제가 데리고 다녀올게요, 삼촌.”
“그래.”
오면서 아이들을 케어하느라 꽤나 힘들었을 터였다.
아들로서 할머니와 할 얘기도 있을 테고.
그렇게 나는 아이들을 데리고 잠시 집을 나섰다.
“우아..!”
“단풍 엄청 예쁘다..”
역시나 가을의 시골은 실망시키는 법이 없었다.
이든 촬영지로 이 곳을 왔어야 했는데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쉴 새 없이 사진을 찍었다.
찰칵. 찰칵.
아쉬운 대로 원스타에 업로드할 생각이다.
굳이 내가 주도해서 아이들이 무언가를 하도록 유도할 필요도 없었다.
눈을 떼지 않는 거로 충분했다.
그야, 아이들은 스스로도 잘 놀았으니까.
슥.
예쁜 단풍을 하나 주워들고서 입으로 바람을 불어 날리는 연두.
그러다 좋은 생각이 떠오른 듯이 또 단풍을 주워든다.
붉은기가 도는 단풍이었다.
“헤헤..”
배시시 웃으며 연두는 단풍을 든 손을 가져갔다.
유리의 귀 부근으로.
깜짝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뜨는 유리를 향해 연두는 중얼거리듯 내뱉었다.
“예쁘다…”
붉게 달아오르는 유리의 얼굴.
“거, 거짓말!”
“거짓말 아닌데… 진짜 예뻐..!”
“너도 해!”
노란색 단풍을 집어들어 연두 귓가에 꽂아주는 유리.
그러면서도 귓가의 단풍을 털어내지는 않는 모습에서 싫어하지 않는다는 게 느껴졌다.
오히려 좋아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
찰칵.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나는 또 촬영버튼을 눌렀다.
이걸 어쩐다.
찍는 사진마다 감탄이 나온다.
사진을 찍는 입장에서 이보다 즐거우면서도 곤란한 경우는 없는데.
“슬슬 들어갈까, 얘들아?”
가을공기가 차가웠다.
옷을 단단히 차려입고 나온 게 아니기에 감기에 걸릴 우려가 있었다.
우선은 들어가는 게 좋겠다는 판단이 섰다.
아직 시간은 많으니까.
끼익.
그렇게 돌아간 집.
나와 아이들을 가장 먼저 반기는 건 할머니도 삼촌도 아니었다.
세상 맛있는 냄새가 났다.
***
심부름을 마치고 돌아와 집으로 뛰어들어간 선동이.
“왜 이렇게 일찍 와? 심부름은 하고 온 거지?”
“응!”
그렇게 답하고 곧장 방으로 들어간 선동이는 거울을 바라봤다.
정확히는 엄마 화장대 앞이었다.
거울 속에는 잔디머리를 한 시골소년이 비쳤다.
“오우 노우!”
비록 사는 곳은 시골이지만 선동이는 할리우드 영어를 구사했다.
선동이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대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반영된 제스처였다.
“이건 이든 모델이 아니야. 네버.”
선동이는 기억했다.
촬영 당시에 아름이누나의 금손으로 새로이 탄생했던 영광의 순간이.
그렇게 기억할 수밖에 없었다.
노엘을 이겼으니까.
나중에 그 얘기를 노엘의 면전에 대고 한 걸 엄청나게 후회하긴 했지만.
‘멋있었어.’
그 기억 속에서 스스로의 모습은 무척이나 미화되어 있었다.
연두가 온다는 걸 알게 된 상황, 다시 한 번 그 영광의 순간을 재현하고 싶었다.
선동이의 움직임이 분주해졌다.
-아이비리그
핸드폰을 가져와서 유투브에 검색을 시작했다.
아이비리그컷.
촬영 당시에 아름이가 연출했던 스타일의 이름이었다.
아직 선동이는 그 명칭을 기억하고 있었다.
“오오, 나온다!”
영상을 보고 흥분한 선동이의 얼굴에 함박웃음이 떠올랐다.
희망이 생겼다.
다시 한 번 그때의 모습을 재현할 수 있겠다는 희망이.
스스로 머리를 손질해보는 건 처음이었지만, 선동이는 영상을 틀어두고 거울을 바라봤다.
“좋아. 먼저 머리를 감아주세요. 어젯밤에 감았고~”
벌써부터 틀렸다.
그럼에도 선동이는 싱글벙글했다.
“응? 헤어 에센스?”
처음 들어보는 것 투성이였다.
“이건가?”
그렇게 선동이가 꺼내든 건 헤어에센스가 아니라 엄마의 화장품 중 하나였다.
아무렴 어때.
그게 그거겠지 하는 생각으로 손바닥에 쭉 짜냈다.
“오오..”
바로 머리로 직행했다.
진득한 감촉이 뭔가 아름이누나가 스타일링을 해 줄 때와 비슷했다.
“그래, 이거야!”
빨라지는 손.
뭔가 잘못됐다는 걸 깨달은 건 그로부터 조금 지난 후였다.
심상치가 않았다.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이 말해주고 있었다. 완전히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걸.
“어, 어쩌지…”
순식간에 자신감이 하락했다.
그때였다.
방문을 열고 엄마인 김진아가 들어온 건.
“.. 어머!”
경악 그 자체였다.
온갖 화장품을 꺼내놓은 건 둘째치고 아들인 선동이의 꼴이 말이 아니었다.
“뭐 하는 거니, 지금?”
“엄마…”
세상 풀 죽은 얼굴이라 쏘아붙이기도 어려웠다.
선동이는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전부 다 들은 김진아가 웃음을 터트리며 얘기했다.
“호호, 그러니까 연두가 온다는 말에 꽃단장을 하려다 이렇게 됐다는 거지?”
“아니. 연두 때문이 아니라……”
이런저런 변명을 해 봤지만 설득력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혀를 차며 김진아가 말했다.
“됐고 가서 씻고 와 봐.”
“응?”
“엄마가 해 줄 테니까.”
선동이의 눈이 반짝였다.
“할 수 있어, 엄마?”
“당연하지, 엄마를 뭐로 보고. 대신 깨끗하게 씻고 와야 한다?”
“응!”
화장실로 뛰어들어가는 선동이.
아들이 씻고 나오는 동안에 김진아는 영상을 처음부터 끝까지 돌려봤다.
“그렇게 어렵지 않네.”
어느 정도 감이 왔다.
그렇게 난이도가 어려운 느낌은 아니었다.
“다 씻었어, 엄마!”
“벌써?”
물을 뚝뚝 떨어트리는 선동이의 모습.
“으휴, 수건으로 닦고 나와야지!”
“아!”
다시 뽀송뽀송해진 선동이.
의자에 앉힌 뒤에 김진아가 드라이기를 손에 들었다.
“각오해, 아들.”
“응?”
“이제부터 엄청 멋있어질 테니까.”
그렇게 선동이의 변신이 시작됐다.
***
절로 감탄사가 나왔다.
“와..”
극락의 맛이었다.
요즘 나름대로 요리실력이 늘었다고 자부하지만 역시나 시골 밥상을 이기는 건 불가능했다.
신기한 따름이다.
시골 밥상은 왜 이렇게나 맛있는 건지.
“이건 언제 다 준비하신 거예요, 할머니?”
그런 메뉴로 가득 찬 상.
신나게 놀고 온 아이들은 완전히 먹방 모드에 들어간 상태였다.
“맛있서..”
한식이 최애인 레나는 감격에 겨운 표정이다.
이런 표정은 꿀떡 먹을 때밖에 못 본 거 같은데, 그만큼 음식이 맛있다는 반증이었다.
유리는 계란찜을 집중적으로 공략하고 있다.
‘이해가 가.’
한 입 먹어봤으니 이해가 갔다.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뚝배기에 비주얼도 그리 특별할 게 없는 계란찜이었다.
소위 말하는 폭탄계란찜을 생각하면 많이 투박한 느낌이기도 하다.
허나 중요한 건 맛이었다.
‘어떻게 이런 맛이 나는 거지.’
나름 요리를 해 본 입장에서 감상을 말하자면 단순히 소금으로 간을 한 거 같지는 않다.
그럼 뭘까.
이 감칠맛을 내는 재료는.
단순히 짠맛이 나는 게 아니라, 어떤 맛이 혀에 감기듯 입 안에 머문다.
“맛있지, 유리야.”
그런 내 말에 흠칫한 유리가 숟가락을 멈춘다.
“하하, 먹어도 돼.”
“흠흠..”
괜히 헛기침을 뱉은 유리가 한 숟가락을 야무지게 그릇으로 가져간다.
내가 다 뿌듯하네.
“못 찾아뵌 동안 요리실력이 더 느신 거 아니에요?”
“흥, 입 바른 소리 하기는.”
“입 바른 소리가 아니고 진짜 맛있어서 그래요. 할머니도 유투브 하셔야 하는 거 아니예요?”
“뭐시? 유투브?”
“네. 채널명은……”
피식 웃으며 덧붙였다.
“츤데레 민홍임의 시골밥상. 어때요?”
“무.. 뭔데레?”
“츤데레요, 츤데레. 할머니가 연두튜브 공식 츤데레시잖아요.”
옆에서 삼촌이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츤데레는 겉으로는 퉁명스러워서 표현을 못하지만 마음속으로는 누구보다 상대를 아끼고 챙겨주는 걸 얘기하는 거야.”
“정확해요. 그러니까 할머니가 츤데레인…… 억!”
짜악-
결국 등짝을 얻어맞았다.
오늘 한 대는 맞을 거 같은 느낌이 들긴 했는데 그게 지금이었군.
“.. 풋.”
그 모습을 보며 웃음을 터트리는 한 아이.
다름아닌 유리였다.
하기야 내가 누군가한테 맞는 모습을 보는 건 처음일 테니 새로울 만도 하다.
그리고 연두는 또 발끈했다.
“아빠 때리지 마세여, 할머니! 폭력은 나쁜 거에요..!”
“어쭈, 요 년이……”
웃음이 나온다.
애써 둘 사이를 중재하며 나는 입을 뗐다.
“근데 할머니.”
“뭐.”
“계란찜 간은 뭐로 하신 거예요?”
“간이 다 똑같지! 특별할 게 뭐 있어?”
그렇게 반응하는 할머니를 향해 몇 번이나 집요하게 물어본 끝에 답을 들을 수 있었다.
“소금.”
뜻밖의 답에 놀란 나는 말했다.
“소금이요? 그게 전부예요?”
절대 그럴 리 없다.
아니나 다를까, 짤막한 한 마디가 더 들려왔다.
“새우젓.”
역시나 필살기가 있었다.
새우젓.
그게 입 안에 맴돌던 감칠맛을 만들어낸 비장의 무기인 거 같았다.
할머니는 의도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썼겠지만.
“근데 이것도 할머니가 하신 거예요?”
파래무침.
역시나 맛있긴 했지만 왠지 모르게 다른 음식과는 결이 다른 느낌이었다.
할머니 손맛이 느껴지지는 않는다고 해야 하나.
놀랍게도 내 추측은 적중했다.
“아니.”
고개를 저으며 할머니는 말했다.
“그건 진아가 한 거야.”
“진아라면……”
바로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다.
“선동이 어머니 말씀이시죠?
고개를 끄덕이는 할머니.
놀라웠다.
이 많은 음식 중에서 할머니가 만든 게 아니라는 걸 알아차렸다는 사실이.
다른 메뉴도 아니고 파래무침인데 말이다.
‘혹시 나, 절대미각.. 그런 건가?’
어쩌면 미식 업계는 한 천재를 놓친 걸지도 모르겠다.
그때였다.
옆에서 목소리가 들려온 건.
“보고 싶다..”
“응?”
“선동이오빠, 보고 싶어여.”
연두의 말이었다.
하긴 그랬다.
선동이를 볼 수 있다는 것도 연두가 기뻐했던 이유 중 하나였다.
“뭐, 보러……”
보러 가면 되지, 라고 말하려는 참이었다.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
그 말처럼 문 밖에서 우렁찬 목소리가 귀에 꽂히듯 들어왔다.
“할머니!!”
“저 놈의 새끼를 진짜……”
화가 난 할머니와 세상 반가워하는 표정의 연두.
제 발로 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