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can see the bulletin board after 5 second RAW - chapter (46)
5초 후의 게시판이 보여! 046화
12. 어쩌라고? (3)
이번에도 이경훈은 어렵지 않게 유 추해냈다.
매지션즈 게시판과, 매지션즈 게시 판의 커뮤니티 사이트가 터져 버렸 다는 것을 말이다.
‘5초 후의 게시판이 보이는 거니 까, 5초 후의 게시판이 터진 상황에
는 이렇게 되는 게 맞겠지……
당황스럽기 이전에, 어처구니가 없 어서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다.
살다 살다 커뮤니티 사이트가 터져 버려서 위기에 처하게 될 줄이야.
‘아까부터 게시판이 늦게 나오길래 예상은 했지만…. 하.
하지만 이경훈은 이 정도로 우왕좌 왕하지 않았다.
‘사실, 위기라고 할 정도는 아니다. 보이던 게 잠시 안 보이게 되었을 뿐, 딱히 위험한 상황에 처하게 된 건 아니니까.’
이제 막 3회 초가 시작됐을 뿐이
다.
선두 타자로 타석에 들어서는 매지 션즈의 타자는 7번 타자.
7번 타자부터 시작하는, 매지션즈 의 하위 타선만 막아낸다면, 이 3회 초 역시 무사히 마칠 수 있다.
‘두 가지만 신경 쓰면 된다. 이 하 위 타선 타자들을 잡아내고, 이번 이닝을 아무 문제 없이 끝내는 것. 그리고……
최대한 긴 시간을 무사히 버티며 매지션즈 게시판의 커뮤니티 사이트 가 다시 정상적으로 작동할 때까지 경기를 무난하게 풀어나가는 것.
그러기 위해, 이경훈이 최선의 행 동을 시작했다.
‘우선, 사인을 생각해서 매지션즈 게시판이 제대로 나오는지 확인한 다. ……스트라이크 존 아래로 떨어 지는 커브.’
[게시판 접속이 지연되고 있습니다]
[다시 시도해 주세요]
[이용에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
사이트 운영 자금을 횡령이라도 한 건지, 매지션즈 게시판은 여전히 아
파하고 있었다.
당연히 이랬을 거라고 생각하며, 이경훈이 외쳤다.
“타임!”
“……타임! 뭔데?”
타임을 요청한 이유를 물어보는 주 심에게, 이경훈이 쓰게 웃으며 대답 했다.
“마운드 좀 다녀오겠습니다.”
매지션즈 게시판이 복구될 시간을 끌 목적도 있었지만…….
‘그게 다가 아니다.’
더 거시적인, 숲을 보는 경기 운영
을 하기 위해서였다.
“무슨 일이냐, 경훈아?”
불과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상상도 못 했을 정도로 친근하게 구는 민한 근에게, 이경훈이 미트로 입을 가리 며 대답했다.
“힘들어서요. 저도 나이 먹으니까 기운이 없네요.”
이경훈의 농담에, 민한근이 실실 웃으면서 대답했다.
“무슨……. 네 나이 서른셋이면 아 직 한창이지, 인마. 빨리 끝내버리고 들어가서 쉬자. 어차피 하위 타선이 잖아.”
“민한근 선배님. 그래서 말씀인데 요……
이경훈이 자신의 ‘계략’을 민한근 에게 전달했다.
“뭐……? 느린 템포로 가자고?”
“예. 역으로요.”
이경훈이 민한근을 설득하기 시작 했다.
“하위 타선이라고 편하게 생각했다 가 당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흠……. 그렇긴 하겠네. 우리가 달 려들면 저쪽도 달려들 테니까.”
“그랬다가 손해를 보면, 이어지는
4회 초, 5회 초 수비가 굉장히 힘들 어질 겁니다. 한 바퀴 돌고 온 상위 타선을 상대하게 되니까요.”
이경훈의 설득에, 민한근이 고개를 주억 거렸다.
“나도 이번 이닝만 던지고 내려갈 거 아니니까. 그렇지?”
“예. 길게 보시죠.”
“뭐……. 네 지시라면 따라야지. 갓 경훈이 하시는 말씀인데.”
“하하……. 감사합니다.”
이경훈과의 대립에서 졌던 덕분에 이겼던 그 경기 이후, 민한근은 이 경훈의 지시라면 무엇이든 따르고
있었다.
그 논리마저 타당하니, 민한근은 이번에도 이경훈의 의견을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경훈이 덧붙였다.
“이제는 템포를 올려야겠다 싶은 타이밍이 되면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땐……
“지금까지 던지던 대로, 빠르게 빠 르게 간다고?”
“예. 그렇게 부탁드립니다.”
“0K!”
용건을 마친 이경훈이 마운드에서
내려와 캐처 박스로 돌아왔다.
주심에게 양해의 묵례를 해 보이 곤, 캐처 박스에 앉으며 생각했다.
‘상황은 갖춰놨으니까, 이제 풀어 나가기만 하면 된다. 우선……
[게시판 접속이 지연되고 있습니다]
[다시 시도해 주세요]
[이용에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
쉬이 이 익.
……팡!
타자의 스트라이크 존을 헤집으며 신중한 승부를 이어갔고.
[게시판 접속이 지연되고 있습니다]
[다시 시도해 주세요]
[이용에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
쉬이이익…….
딱!
팡!
“아웃———!”
5초 후의 게시판으로 어렴풋이 습 득해낸, ‘지지 않는’ 리드를 펼치며, 매지션즈의 7번 타자를 잡아냈다.
원 아웃.
‘이런 식으로만 가면 된다. 서두르 지 않고, 차근차근, 하나씩.’
그렇게 이경훈은 매지션즈의 8번 타자와, 이어지는 9번 타자를 상대 로도 같은 리드를 가져갔고…….
“아웃—
“아웃!”
이경훈이 5초 후의 게시판이 전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3회 초 수비 를 매조지었다.
이경훈이 주먹을 불끈 쥐며 생각했 다.
‘매지션즈 게시판이 다시 나타날 때까지는 이런 식으로 버티면 된 다.’
커뮤니티 사이트의 운영자가 빠른 조치를 취해주기를 바라면서, 이경 훈이 버펄로스의 더그아웃으로 돌아 갔다.
그런 이경훈을 우러르듯 바라보며, 1루수 박승중과 2루수 박경식이 대
화했다.
“이경훈 선배님 보셨습니까, 박경 식 선배님? 지금 같은 쉬운 상황에 서도 저렇게 몰두하셔서……
“설계를 하신 거지. 여기서 퍼펙트 로 끊어놓으면 다음 수비가 훨씬 쉬 워지니까. 너도 보고 배워라.”
“예!”
고려조차 하지 않았던 후배들의 존 경까지 챙긴 이경훈이었다.
버펄로스의 더그아웃으로 돌아온 이경훈이 가장 먼저 찾은 사람은.
“카스가!”
“예, 형.”
버펄로스의 젊은 트레이닝 코치, 카스가였다.
현재 자신이 처하게 된 상황을 정 확하게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프런트 직원들한테 부탁하기는 조 금 그런 일이니까. 우리끼리 얘기로 우리끼리 끝내줄 적격자지.’
이경훈이 카스가에게 물었다.
“카스가, 너. 디지인사이드 알지?”
디지 인사이드.
‘디지털 인사이드’라는 초기의 사 이트명을 축약한 사이트명이다.
국내 야구 게시판은 물론이고, 국 내 야구 게시판에서 분리된 팀 게시 판들을 운영하는 커뮤니티 사이트 다.
오늘의 게시판인, 매지션즈 게시판 도 디지인사이드의 게시판이다.
카스가가 당혹스러워하며 되물었 다.
“디지인사이드요……? 거기 이상한 사이트 아니에요?”
‘그건 그렇지.’
“내가 며칠 전에 그 사이트에 글을 올린 적이 있었거든. 버펄로스 게시 판이라는 데에, 그…… 팬분들한테
인사를 남겨놨어.”
“며칠 전에 MVP 인터뷰에서 말씀 하신 그거요?”
“어, 그거. 그런데, 거기에 달린 댓 글들이 궁금해서 계속 생각난다. 어 제 봤는데, 아직 댓글들이 달리더라 고.”
이경훈이 남긴 게시글은 버펄로스 게시판 ‘개념게’라는 곳에 올라갔고, 여전히 노출되고 있었다.
‘성지 순례니, 뭐니, 하면서 디지인 사이드 전역의 유저들이 찾아와서 댓글을 달아대고 있지……
어쨌든.
“이상한 부탁이라는 건 알지만…… 카스가 네가 그 댓글들을 좀 확인해 줬으면 좋겠다. 나는 경기 중이라 전자기기를 쓸 수 없으니……
실로 이상한 부탁이었지만, 카스가 는 괘념치 않고 받아들였다.
“알겠어요. 그런 거 신경 쓰이기 시작하면 집중하기 어려우실 테니까 요.”
“고맙다, 진짜.”
“인쇄해서 뽑아올까요? 직접 보시 게요.”
“아냐. 그냥, 욕 안 달렸나 확인만 해줘.”
“네. 그사이에 무슨 일이 생길 수 도 있으니까, 빠르게 다녀오겠습니 다.”
공수교대를 틈타, 서둘러 버펄로스 의 더그아웃을 나서는 카스가에게 고마움을 느끼며, 이경훈이 생각했 다.
‘제법 그럴듯한 핑계였다.’
매지션즈 게시판이 정말로 터져 버 린 거라면 매지션즈 게시판은 물론, 버펄로스 게시판도 접속되지 않을 터다.
카스가가 이경훈이 남긴 게시글을 확인할 수 없을 거라는 거다.
아니나 다를까.
“사이트 전체가 터져 버렸대요.”
“그래? 왜 그렇게 됐대?”
“안 그래도 초록창에 검색해 봤죠. 중국인들이 디도스로 테러했다나 봐 요. 되놈들 하는 일이 다 그렇죠, 뭐.”
“그런 말 쓰는 거 아니야, 카스 가……
일본인이 한국어로 중국을 욕하는 기묘한 상황은 그렇다 치더라도.
‘디도스 테러라고…? 복구하는
데 오래 걸리지는 않았으면 좋겠는
데..
어쨌든, 5초 후의 게시판이 나타나 지 않는 이유는 확실해졌다.
그저 디지인사이드가 터졌을 뿐이 었다.
이경훈이 머쓱하게 웃으며 말했다.
“별걸 다 시키네. 고맙다, 카스가. 끝나고 밥 살게.”
“기대하겠습니다. 하하! 그리고, 불 편한 데 생기시면 바로 말씀하시고 요. 경훈이 형 다치면, 저 잘려요.”
라고 당부한 뒤, 카스가가 자신의 책무를 다하러 갔다.
이경훈 역시 자신의 책무를 다하기 위해, 타격 장비를 갖추기 시작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디지털 분야는 아는 게 없지 만…… 원인을 찾았다는 건, 머지않 아 복구할 수 있다는 거겠지.’
애초에 생각했던 대로, 디지인사이 드와 매지션즈 게시판이 복구될 때 까지만 버틴다면 모든 것이 해결된 다는 거다.
‘그때까지,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걸 하면 된다.’
5초 후의 게시판 없이 수비를 했 던 이경훈이, 이번에는 5초 후의 게
시판 없이 공격을 하게 되었다.
3회 말.
2사 1루 상황에서, 버펄로스의 3번 타자 이경훈이 타석에 들어섰다.
이경훈이 상황을 파악했다.
‘2번 타자 경식이가 우익수 앞에 떨어지는 안타로 출루했다. 1루가 비지는 않았으니까 나를 무작정 거 를 수는 없는 상황이다. 승부를 걸 겠지. 그럼……
이경훈이 스트라이크 존 안으로 들 어오는 변화구를 밀어친다는 노림수 를 떠올렸다.
일말의 기대를 했지만…….
[게시판 접속이 지연되고 있습니다]
[다시 시도해 주세요]
[이용에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
매지션즈 게시판은 복구되지 않았 다.
‘어쩔 수 없지. 그럼…… 웅?’
그때, 이경훈에게 무언가가 보였다.
5초 후의 게시판이 아닌, 매지션즈 의 선발 투수인 변진석의 무언가였 다.
지난 몇 년 동안 변진석의 투구를 받았던 이경훈이기에 발견할 수 있 었던 미세한 차이였다.
‘진석이, 저 자식. 저 버릇 아직도 못 고친 건가.?’
버펄로스의 선수였던 시절부터, 변 진석은 한 가지 버릇을 갖고 있었 다.
가끔, 포심 패스트볼을 던지기 전 에 팔을 꿈틀거리며 힘을 추스르는 동작이 나오는 것이었다.
그 버릇이 다시 나온 것인지, 아무 런 의미 없는 동작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걸어볼 만하다.’
그렇게, 이경훈이 자신의 노림수를 수정했다.
그리고.
쐐애애액…….
‘왔다! 포심!’
딱!
배트의 중앙, 스위트 스폿에 볼을
맞혔을 때의 그 특유의 손맛을 느끼 며, 이경훈이 생각했다.
‘이거, 버릇 나왔다고 얘기를 해줘 야 하나 말아야 하나……
부상에서 구해준 것으로 강호의 도 리는 지켰다고 자기합리화하며, 이 경훈이 배트 플립을 했다.
확실했기 때문이다.
텅!
이경훈의 2020 시즌 스물한 번째 홈런은 투런 홈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