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106
제106화
“안녕하세요, 백도운 A급 헌터님.”
A급 헌터….
이 얼마나 듣기 좋은 울림인가.
천천히 그 울림을 느껴보았다.
스마트폰 화면을 두드리는 것도 깜빡 잊은 채로.
“백도운 님?”
“…아, 워프 게이트 이용하려고 왔습니다.”
정신을 차린 나는 다시 화면을 두드렸다.
손끝에서 화면을 통해 마나가 전달되는 것이 느껴졌다.
“워프 게이트 이용을 원하시는 겁니까? 그럼 조금 기다리셔야 하는데, 괜찮으실까요?”
“기다려야 한다고요?”
“네, 현재 해외 워프 게이트 이용량이 많아 30분 정도 대기해 주셔야 합니다.”
“해외 이용량이 많다고요?”
고개가 절로 갸웃거려지는 말이었다.
워프 게이트는 이동하는 거리가 멀어질수록 가격이 비싸졌다.
국내 범위는 그리 비싸지 않지만, 해외에서 한국으로 오는 거라면 웬만한 B급 헌터 연봉은 써야 할 거다.
지구 반대편에서 온다면? A급 헌터 연봉 정도는 써야겠지.
그런 문제로 B급 이상의 마법사들은 워프 게이트보다 순간이동 마법을 더 애용하곤 한다.
S급 헌터들이 속한 각 나라의 연구팀이 괜히 비행기 타고 오는 게 아니다.
어지간한 일이 아니라면 워프 게이트를 통해 나라 간 이동을 하진 않을 것이다.
의문을 느끼는 날 보고는 협회 직원이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이틀 후에 있을 일을 직접 보고 싶은 거죠.”
“아.”
이틀 후에 있을 일.
그말대로다.
그건 어지간한 일이 아니다.
4년에 한 번씩 오는 월드컵이나 올림픽보다도 큰일이다.
세계사 교과서에 남을 일이니까.
현존하는 S급 헌터 전원이 모인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많은 돈을 써서라도 그 모습을 두 눈으로 직접 담고 싶으리라.
“돌아올 때는 버스 타야겠군요.”
“아마도 그럴 것 같습니다. 그럼 워프 게이트 이용하시는 겁니까?”
“네. 목적지는 무주 개미굴 던전입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네. 접수되셨습니다. 저쪽에서 대기해 주십시오.”
탑승권을 건네받은 후 협회 직원이 가리킨 곳으로 걸어갔다.
대기실은 크지 않은데도 자리가 널렸다.
이곳으로 오는 사람은 많아도 떠나는 사람은 얼마 없는 것이다.
아무 데나 앉은 후 스마트폰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1시 34분.
30분 정도 걸린다고 했으니 2시쯤 출발할 수 있을 듯하다.
원래는 아침 일찍 출발하려고 했는데….
어젯밤 일 때문에 조금 피곤했던 것인지 늦잠을 자 버렸다.
어차피 늦어진 거 밥까지 먹고 왔더니 시간은 금방 지나갔다.
나는 화면을 두드리면서 어제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수정 공방의 포션 메이커가 위험해요.”
그 경고를 받자마자 홍수정을 재이네 대장간으로 데리고 갔었다.
이상한 오해를 해서 그걸 푸느라 출발이 늦어지긴 했지만, 밤의 도로는 텅텅 비어서 금방 도착했다.
대장간 앞에 도착하자 홍수정은 조수석에서 내려 아직 불이 켜진 건물 안으로 후다닥 달려갔다.
품에 자기 몸통만 한 보따리를 끌어안은 채로.
상급 힐링 포션을 만들기 위한 도구들이 담겨 있었다.
밤이기 때문일까?
뒤에서 보따리를 끌어안은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마치 야반도주하는 사람 같았다.
물론, 저렇게 사람들 이목을 잡아끌 정도로 요란스럽다는 점에서 실패한 야반도주였다.
드르륵!
홍수정이 대장간의 미닫이문을 거칠게 열었다.
“재이야!”
“홍수정…?”
대장간에는 역시나 세 여자가 널브러져 있었다.
그래도 상체를 반쯤 들어 올린 채였는데, 아무래도 시끄러운 소리를 듣고 무슨 소린가 확인할 생각이었던 듯하다.
홍수정과 뒤이어 들어온 나를 본 심윤진이 지팡이를 내려놓았다.
마나가 흩어진다.
마법엔 문외한이어서 무슨 마법을 쓰려고 했던 건지는 모르겠다.
예상하자면, 탐색 스킬을 쓰려고 했던 게 아닐까.
“홍수정. 네가 여긴 웬일이야?”
“보고 싶었어!”
홍수정이 짐을 내려놓고는 유재이에게 달려가 안겼다.
유재이는 웬일로 온 거냐는 질문에 대답하지 않는 홍수정을 보고 눈을 찌푸렸다.
하지만 품에 안긴 홍수정을 내치지는 않았다.
천천히 오른팔을 올려 홍수정의 등을 쓰다듬어 주었다.
친구 사이보다는 언니 동생 사이처럼 보였다.
김지연과 심윤진도 그렇게 보였던 모양이다.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 게 귀엽고 흐뭇한 것을 본 듯했다.
미닫이문을 닫고 그녀들 앞으로 걸어갔다.
“무슨 일이야? 왜 둘이 같이 오고.”
“그게-”
“크라우드라는 조직이 나를 노리고 있대.”
품에 안긴 홍수정이 말했다.
자신을 노리고 있다는 말을 하는데도 목소리에는 떨림이 없었다.
마치 자기 일이 아니라는 듯한 태도다.
오히려 놀란 건 다른 세 여자다.
특히, 절친한 친구인 유재이가 당황하며 나와 홍수정을 번갈아 가며 쳐다봤다.
“그게 무슨 말이야? 크라우드가 왜 너를 노려?”
“나도 잘 몰라. 도운 씨가 내가 만든 포션 때문이라고 말해 주긴 했는데….”
“포션 때문이라고?”
그러면서 날 바라본다.
설명을 요구하는 얼굴이다.
나는 바로 박우현에게 들었던 정보를 얘기했다.
걱정할지도 모르니, 수정 공방 앞으로 찾아왔었다는 얘기는 뺐다.
얘기를 들은 김지연이 놀란 듯 중얼거렸다.
“그 포션을 만든 게 도운 씨였다니….”
“정확하게 만든 사람은 수정 씨죠. 난 재료를 갖다 줬을 뿐이고.”
“도운 씨, 협회에 크라우드가 포션 유통을 막고 있다는 거 알렸어요?”
“네? 아뇨.”
“왜요?”
“…….”
왜냐고 물어도… 대답할 말이 없었다.
알리지 않은 데엔 이유가 없었으니까.
정확하게는, 알려야 한다는 생각 자체를 못했다.
질문을 받고 생각해 보니 이제야 알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도 포션이 제대로 유통되지 않고 있는 걸 보면, 정부나 협회는 이 일을 모르는 것이 분명했다.
유재이가 한숨을 내쉬었다.
“당신 아무 생각 없었지.”
“음…. 지금 당장 협회에 알릴게.”
“…….”
세 여성의 따가운 눈총을 받으며 바로 최희석에게 전화를 걸었다.
발신음이 열댓 번 울렸을 때 그가 전화를 받았다.
– 도운?
내 이름을 부르는 그의 목소리는 조금 잠겨 있었다.
마치 자다 막 일어난 사람처럼.
– 흠, 흠! 무슨 일이지?
“이런, 자고 있었습니까?”
– 아니, 아니야. 일하고 있었네. 요즘 잘 시간도 없이 바쁘군.
목소리는 자느라 잠긴 게 아니라 입을 열지 않아서 잠긴 거였나.
잘 시간도 없이 바쁘다는 것도 이해는 갔다.
최희석은 협회 소속 헌터였다.
그것도 가장 실력이 좋은 에이스 헌터로서 간부 자리에 있는.
따라서 이틀 후에 있을 일들을 준비하느라 바쁠 것이다.
바쁜 사람에게 신경 거리를 하나 더 얹어 줘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럼 바로 본론만 말씀드리겠습니다.”
– 그래 주게.
“포션말입니다.”
– 아, 자네도 A급 헌터가 됐지. 상급 포션을 구해 주길 바라나?
“……?”
이게 뭔 소리야.
그 포션 만든 사람이 난데 구해 주길 바라긴 뭘 바라?
포션을 제작한 사람이 나인 걸 모르나 보다.
하긴, 수정 공방에게 판매를 전부 맡겼었으니 모르는 게 당연한가?
“아뇨. 그건 필요 없습니다.”
– 응? 그럼 왜….
“정확하게는 포션 유통에 관해 말하려고 했습니다.”
– 포션 유통?
“요즘 유럽권에서 포션이랑 재료가 안 들어오고 있지 않습니까?”
– 음.
긍정도 부정도 아닌 대답이 나왔다.
아마 협회에 소속된 사람으로서 그 정보에 대해 말할 수 없는 것이리라.
고개를 끄덕이며 우연히 알게 된 정보를 말했다.
“그걸 막은 게 크라우드입니다.”
– …….
침묵이 흐른다.
10초 정도 흐른 후 그가 물었다.
– 그게 정말인가? 확실한 정보야?
“네.”
– 허…. 놀랍군. 이걸, 이걸 대체 어떻게 알아낸 건가? 우린 지금까지 몰랐는데.
“크라우드한테 직접 들었습니다.”
– 뭐!
우렁찬 목소리가 귓속을 파고들었다.
소리는 마치 공격처럼 느껴질 정도로 컸다.
귓속에 세계수의 나무껍질이 발동된 것 같은 건 그저 착각일까.
스마트폰을 반대쪽 귀에 갖다 댔다.
– 직접 들었다니? 그게 무슨 소린가?
곧바로 놀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 묻고 싶은 건 수화기 너머의 최희석뿐만이 아니다.
눈앞에 있는 사람들도 의문이 담긴 얼굴로 날 쳐다봤다.
– 혹시 크라우드를 사로잡았나? 그렇다면 지금 당장 협회로 데리고 오게.
“으음, 그럴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 그럴 수 없을 것 같다니? 왜…. 아.
“최 선배?”
– …아무 말도 하지 말게. 나는 모르는 게 약일 것 같군.
“네?”
– 다만, 부탁이니 뒤처리 잘하게.
“뒤처리요?”
– 누구도 찾을 수 없도록. 나조차도.
“…….”
후….
분위기가 좀 이상하더라니.
뭔가 오해를 한 듯하다.
말하는 걸 보면, 마치 내가 고문을 하다가 죽이기라도 한 듯하다.
그냥 크라우드가 알아서 찾아와서 말해 준 거였는데….
뭐, 어쨌든 목적은 이뤘으니 넘어갈까.
“그럼, 전 전달 드렸으니 이만 끊도록 하겠습니다.”
– 그래, 고맙네.
내가 전화를 끊기 전에 최희석이 먼저 끊었다.
지금 알게 된 정보를 상부에 보고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전화를 끊자 [세계수 키우기]가 떠올랐다.
새싹이와 엘프들이 보였다. 엘프들은 새싹이 주변에 둘러앉아 쉬고 있었다.
화면을 두드리며 고개를 든다.
“죽였어?”
“아니. 놓쳤어.”
정확하겐 놓친 것도 아니다.
쫓지도 않았으니까.
이렇다 할 탐지 스킬이 없는 나로서는 쫓을 수단도 없었다.
새싹이가 혐오스러운 기운을 느꼈다면 또 모르겠지만.
심윤진이 손을 들며 물었다.
“저, 수정… 씨? 질문 하나만 해도 돼요?”
“네. 얼마든지요오.”
유재이의 품에 안긴 홍수정은 편안한 얼굴로 대답했다.
물론, 홍수정을 안고 있는 유재이는 불편해 보였다.
홍수정을 떨쳐 내고 싶지만 억지로 떼어 내다 다칠까 봐 참는 것 같았다.
“뭐로 만들었기에 포션에서 그런 맛이 나요?”
“아, 그게….”
홍수정은 대답하지 않고 나를 쳐다봤다.
포션의 재료가 세계수의 나뭇잎이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함부로 타인에게 말할 수 있는 정보가 아니다.
나는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어차피 두 사람에게 홍수정의 보호를 요구할 생각이었다.
또 세계수의 솔방울을 거래할 때도 함께 있었다.
이미 내가 세계수 관련 아이템들을 구할 수 있는 걸 안다.
“세계수의 나뭇잎으로 만들었어요.”
“……네?”
두 사람은 놀란 토끼 눈이 되었다.
시선이 홍수정에게서 내게로 옮겨진다.
포션을 만든 사람은 홍수정이라고 해도, 그 재료를 구해 온 사람은 나였으니까.
그 모습을 보고 유재이가 만족스럽다는 듯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왜 네가?
“그래서 말인데, 수정 씨 경호도 해 주실 수 있을까요?”
“아, 네, 네!”
둘 중에 대답한 건 김지연이다.
심윤진은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뭐라고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목소리가 너무 작아 뭐라고 하는지 알아들을 수는 없었다.
마법사이니만큼 세계수의 나뭇잎이라는 것에 많은 관심이 생길 수밖에 없었던 것이리라.
“1명 늘었는데도 괜찮습니까?”
“괜찮아요. 크라우드가 이곳을 공격하면 저흰 순간이동으로 바로 도망갈 거거든요.”
아, 그렇군.
그런 거라면 보호 대상이 1명이든 2명이든 상관없을 거다.
순간이동 마법만 제대로 발동하면 되니까.
“그럼 며칠만 더 부탁합니다.”
“아, 들었어요. 중순 좀 넘어서 이사할 듯하다고.”
“네.”
“재촉하려는 건 아닌데, 왜 중순 넘어서죠?”
“음. 이틀 후에 S급 헌터들 오는 거 알죠?”
“당연히 알죠. 그걸 모르는 사람이 어딨겠어요?”
“제가 거기 경호원으로 따라가게 됐어요. 한진환 선배 옆에서.”
“……네?”
김지연은 또다시 놀란 토끼 눈이 되었다.
이번엔 유재이와 홍수정도 마찬가지였다.
심윤진은 아직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있었다.
“도, 도운 씨가… 그 자리에…?”
“네. 그러니 그 일이 끝나면 이사하시죠.”
“…그렇게 해요.”
“괜찮지? 괜찮죠?”
“난 아무래도 상관없어.”
“저도요.”
차례대로 묻자 둘은 고개를 끄덕이며 바로 대답했다.
유재이는 대답한 후 질문을 덧붙였다.
“근데 당신 예복은 있어?”
“어?”
“예복 말이야. 말하는 걸 보니 만찬 회장도 갈 거 같은데, 거기 입고 갈 옷은 있냐구.”
“그냥 정장이면 되는 거 아니야?”
“…진심이야?”
그럼 거짓일까.
그리 생각하고 있는데 그녀가 한숨을 내쉬었다.
홍수정도 “도운 씨….”하고 중얼거렸고, 김지연도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흠. 그냥 정장을 입고 가면 안 되는 이유라도 있는 걸까.
“그냥 정장이면 안 돼?”
“안 될 건 없지. 평범한 만찬회라면.”
“……?”
“하지만 당신이 가는 곳은 전 세계 모든 방송국이 떠들어 댈 세기의 만찬회야. 그런 곳에 그냥 정장을 입고 가는 멍청이가 어딨어?”
“어디 있냐니. 여기 있잖아.”
“후우…. 내가 어쩌다 저….”
유재이는 한숨을 푹 내쉬며 중얼거렸다.
목소리가 너무 작아서 끝에 말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다만, 날 바라보는 얼굴이 아주 익숙했으므로 좋지 못한 말이라는 것만은 예상이 되었다.
도희가 나와 태천이를 향해 자주 짓곤 하던 얼굴….
그렇다.
한심스러워하는 얼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