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12
제12화
“서지혁! 천칭 길드의 서지혁!”
“그, 그 사람이 이곳엔 왜!”
내 생각보다 서지혁이 유명한 모양이다.
소환된 작은 천칭을 보자마자 흰색 가면들이 요란스러워졌다.
그들은 어떻게 할지 결정해 주길 바라듯 리더 가면을 바라봤다.
천칭을 꺼낼 땐 그를 가장할 생각이 없었지만, 알아서들 속아 주니 이 상황을 이용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합의할 생각이 좀 들었나?”
기억 속 서지혁의 말투를 따라 하며 한 발자국 앞으로 발을 내디뎠다.
흰색 가면들은 몸을 움찔거렸다.
몇 명은 뒤로 한 걸음 물러났고, 벽에 등을 기대게 됐다.
그들에게 있어 서지혁은 공포의 대상이었다.
리더 가면은 그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은 듯 혀를 찼다.
앞으로 팔을 들어 올린다.
팔목에는 암기가 숨겨져 있었다.
“……!”
아마도 그 암기는 팔을 들어 올리고 손바닥을 쫙 펼치는 식으로 발사되는 형식이었던 것 같다.
위력은 방심하고 있던 D급 헌터를 단번에 죽일 수 있는 정도?
어떻게 아느냐고?
방금 직접 맞아 봤으니까 알 수밖에.
리더 가면은 심드렁하게 말했다.
“네가 서지혁이라고? 웃기지 마라. 그놈이 이곳에 있을 리가 없-!”
녀석의 심드렁함은 말이 끝날 때까지도 이어지지 않았다.
다른 흰색 가면들도 녀석처럼 경악스러워했다.
얼굴이 보이지 않는데도 알 수 있었던 건, 그들이 ‘히익!’ 소리를 내며 주춤주춤 물러나서다.
왼쪽 눈에 박힌 암기를 천천히 뽑아내는 사람을 보고 있었으니 그런 반응을 보이는 건 당연했다.
“으흐음…!”
암기를 빼내는 동안 고통을 꾹 참으려고 했으나 신음을 흘리고야 말았다.
뽁!
다 뽑았을 때는 고통이 끝나 시원함마저 느껴졌다.
뽑히는 소리는 귀엽기까지 했다.
아픔은 사라지고 어두웠던 왼쪽 눈에 시야가 점점 보이기 시작했다.
시야가 회복되자 가면을 썼는데도 당황스러워하는 놈들이 보였다.
“재밌는 장난감이군.”
“…이놈!”
리더 가면이 손바닥을 접었다 펼쳤다.
또다시 암기가 쏘아졌다.
송곳 같은 것들이 나를 향해 날아왔다.
암기의 존재를 알고 있어서일까?
이번엔 쏘아지는 것들이 얼핏 보였다.
피하려고 작정하면 피할 수 있을 것도 같다.
내 손에 무기가 쥐어져 있었다면 흘려보낼 수도 있을 듯했다.
굳이 그러지는 않았다.
암기들이 내 몸에 박히게 내버려 둔 채 리더 가면 앞으로 걸어갔다.
나와 녀석의 거리가 1m 정도 되었을 때, 녀석은 날 향해 암기를 쏘아 대던 것을 멈췄다.
달그락달그락.
자연히 회복되는 몸에서부터 암기들이 빠져나와 바닥으로 쇳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서지혁!”
“이제 합의할 생각이 좀 드나?”
“네놈이 왜 여기에 있나?”
자신의 공격을 막으려고도 하지 않는 여유로운 모습 때문일까?
리더 가면은 나를 서지혁이라고 굳게 믿는 듯 보였다.
아마 몸에 박힌 암기가 빠져나오며 저절로 회복되는 현상도 녀석이 믿게 하는데 한몫했을 거다.
“내가 네게 설명해 줘야 하나? 네까짓 게 뭐라고.”
“말을 조심해라, 서지혁. 우리 크라우드와 전쟁을 하고 싶은 건 아닐 텐데.”
“전쟁? 전쟁이라. 네놈이 날 감당할 수는 있겠나?”
“…그래, 네가 강하다는 걸 인정한다. A급 헌터 세 명을 순식간에 죽이고 정부 요인과 합의를 하고 돌아간 네놈이니, 내가 이길 수는 없겠지.”
A급 헌터 세 명을 순식간에 죽였다고?
태천이와 비견될 만큼 괴물이잖아, 그거.
어째서 서지혁은 나를 죽이지 않고 서로 인정할 수밖에 없는 공정한 합의를 하고 돌아갔던 걸까.
그 정도로 강하다면 날 죽일 수 있었을 것이다.
회복력 때문에…?
흠. 잘 모르겠다.
“허나! 너 혼자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우리 모두를 상대할 수는 없어!”
그 말이 끝나자마자 흰색 가면들이 일사불란하게 저마다의 무기를 꺼내 들었다.
분명 겁을 집어먹고 주춤주춤 뒤로 물러나던 이들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리더 가면의 명령만 떨어지면 당장이라도 달려들 것처럼 보였다.
하얗게 될 때까지 무기를 꽉 쥔 손에서는 결연한 의지마저 엿보였다.
공포를 이겨내고 달려드는 놈들은 몸이 움직이는 한 끈덕지게 달라붙곤 한다.
싸움이 일어나게 되면 일이 귀찮게 될지도 모르겠다.
뭐, 그건 저 인원 전원을 상대하게 될 상황에 해당하는 일이지만.
“이비인후과라도 좀 가 보는 건 어떻겠나?”
“뭐?”
“분명 합의를 하자고 말했던 거 같은데, 안 들린 건가?”
뭣 하러 저렇게 많은 인원을 일일이 다 상대한단 말인가?
리더 하나만 무릎 꿇리면 모든 게 자연스레 해결될 일인데.
리더 가면은 내 왼쪽 어깨 위에 떠 있는 천칭을 바라봤다.
합의할지, 물리력을 행사할지 고민이 되는 모양이었다.
“…….”
나는 재촉하지 않고 녀석이 결정하길 기다렸다.
괜히 더 압박했다가 긁어 부스럼이 될까 봐서다.
10초?
그 정도 흘렀을 때 리더 가면이 결정을 내렸다.
“합의 같은 소리.”
역시 싸우게 되는 건가?
“너와 합의를 했던 놈들이 어떻게 됐는지 내가 모를 것 같나?”
응? 이놈 이거 뭔가 불안한 소릴 하네.
서지혁이 합의한 놈들이 어떻게 됐기에 저런 말을 하는 거지?
당사자라서 그런지 몹시 궁금해졌다.
그러나 리더 가면은 더 말할 생각이 없는지 내게서 시선을 떼었다.
녀석의 시선은 내 뒤에 있는 유재이를 향했다.
그녀는 어느새 뒤쪽에 갔다 왔는지 쌍검을 쥐어 들고 있었다.
“다음에 다시 오도록 하지, 유재이. 그땐 우리의 부탁을 들어주어야 할 것이다.”
“…꺼져, 다신 오지 마.”
“흥. 그때도 그렇게 표독스러운 얼굴을 할 수 있는지 지켜보마.”
잠깐만, 합의한 놈들 어떻게 됐는지는 말해 주고 가!
내 생각을 듣지 못하는 녀석은 홱 몸을 돌려 바깥으로 나가 버렸다.
남은 흰색 가면들도 자기네 리더를 따라 차례차례 대장간을 나갔다.
“저 새낀 왜 제 할 말만 하고 가?”
합의한 놈들 어떻게 됐는지도 떠들어 주고 가면 좀 좋아?
서지혁한테 찾아가서 직접 물어볼 수도 없고….
나는 소환한 천칭을 없애고 뒤를 돌아봤다.
“어때? 잘 넘긴 것 같지?”
“일단은. 또 찾아오겠지만. 지겨운 놈들.”
그러면서 유재이는 계산대에서 나와 내게로 걸어왔다.
두 손에는 여전히 쌍검을 쥐어 들고 있었다.
어째서 흰색 가면 놈들이 다 갔는데도 검을 내려놓지 않는 걸까.
보편적으로 무기를 쥐는 건 적을 상대하기 위해서다.
즉, 대장간에 그녀의 적이 남아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 적은….
생각이 거기까지 다다랐을 때 내 몸이 저절로 반응했다.
한 발자국.
딱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났고, 그 덕분에 유재이가 휘두른 검을 피할 수 있었다.
“…칫.”
“다짜고짜 뭐 하는 짓이야?”
뒤로 물러나는 게 조금만 더 늦었더라면 목이 달아났을 거다.
뭐, 목이 떨어져도 다시 달라붙게 되지 않을까.
박살 났던 머리가 회복되고, 폭발로 크게 다쳤던 내장이 치유된 걸 보면.
“…….”
유재이는 나를 노려볼 뿐 대답하지 않았다.
방금 대장간을 나간 흰색 가면들을 보던 눈빛이었다.
적을 바라보는 눈.
도와준 사람한테 좀 너무한 처사가 아닌가 싶다.
“나 방금 당신 도와준 건데!”
“고마워해야 해? 서지혁. 네가 더 나쁜 놈이잖아.”
“아….”
이런.
속은 건 흰색 가면 놈들만이 아니었다.
그녀도 속아서 나를 서지혁으로 여기고 있었다.
“어차피 죽일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어.”
그야 그렇겠지.
리더 가면이 날린 암기를 몇 발이나 맞고도 멀쩡했으니까.
그런데도 유재이는 내 목을 노리고 검을 휘둘렀다.
그건, 그녀가 내게 보이는 의지 표명이다.
“꺼져. 너 같은 놈한텐 우리 애들 절대 안 팔아!”
후우, 내 연기가 그렇게 그럴듯했나?
나는 한숨을 내쉬고 처음 만났을 때처럼 두 손을 들었다.
“나 서지혁 아니야.”
“…….”
못 믿는 눈치다.
내 정당한 주장에도 그녀는 날 노려보는 태도를 고수했다.
다행히 더 공격할 것 같지는 않았다.
상처를 순식간에 회복한 모습을 봤기 때문인 듯했다.
공격해도 소용없는 짓이라고 판단한 거겠지.
나한텐 잘된 일이다.
“진짜야. 얼굴 보여 주면 믿을래?”
“보여 주면 뭐 달라져? 천칭 소환하는 걸 내가 직접 봤는데.”
“일단 한 번 봐봐.”
말하는 것을 보면, 그녀는 서지혁의 얼굴을 모르는 게 분명했다.
그러니 내가 가면을 벗어 얼굴을 보여 준다고 해도 달라지는 게 없을 거라고 했겠지.
그녀의 말은 맞는 말이었다.
내가 평범한 전직 D급 헌터였다면 말이다.
공격할 의사가 없다는 듯 천천히 가면을 벗어 얼굴을 보여 주었다.
“……?”
내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던 그녀는 고개를 천천히 기울어뜨렸다.
저것이 나를 본 사람들이 흔히 하는 행동이다.
‘어라,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어렸을 적에 알았던 사람인가?’
‘아, 거래처 사람…은 아닌데?’
하고, 고개를 갸웃거리게 하는 사람.
그게 바로 나였다.
“…나 당신 알아?”
인상까지 써 가며 날 보던 그녀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디서 본 사람 같은데 기억나지 않아 짜증이 난 것 같았다.
그래도 가면을 벗은 게 도움이 되긴 했다.
날 지칭하던 게 적대심을 담은 ‘너’에서 경계심을 담은 ‘당신’으로 돌아왔다.
“어쩐지 낯이 익은데….”
“스마트폰으로 백도운이라고 검색해 볼래?”
“백도운?”
그녀는 검들을 왼손에 모은 후 스마트폰을 꺼내 내 요구에 따라 이름을 검색했다.
곧 스마트폰 화면과 내 얼굴을 번갈아 가며 쳐다본다.
화면에 떠오른 내 얼굴과 현실의 내 얼굴을 비교해 보는 것이다.
이어 그녀는 화면을 터치했는데 유추해 보건대 연관검색어를 클릭한 듯싶다.
그녀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날 쳐다봤다.
아마 화면에는 도희나 태천이가 떠올라 있겠-
“아! 기사에서 본 적 있다. 여동생 등골 브레이커!”
“…맞아. 내가 바로 그놈이야.”
하필이면 그 별명으로 날 알 줄이야….
시무룩한 마음에 고개를 푹 숙였다.
그래도 길드 외부인에겐 도희 오빠나 태천의 친구로 더 알려진 줄 알았는데.
“…나 방금 너무 무례했지? 미안해.”
“후우….”
차라리 여동생 등골 브레이커라고 신랄하게 말하던 게 나았다.
입을 가리며 사과하는 모습은 마음을 더 어수선하게 했다.
그때, 그녀가 정중한 태도로 다시 사과를 해왔다.
“정말로 미안해. 오해해서 공격한 거랑 널 그렇게 부른 거, 진심으로 사과할게.”
거듭된 사과로 그녀가 진심으로 미안해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뭐, 공격받은 건 내가 서지혁 흉내를 냈기 때문이니 자업자득이었다.
다행히 다친 곳도 없었고.
날 좋지 않게 부른 것도 다음부턴 그러지 않으면 될 일이다.
그러므로 나는,
“괜찮아.”
라고 말했다.
그런데 왜일까.
괜찮다고 말했는데도 그녀의 표정은 별로 좋지 못했다.
“…그렇게 말할 것 같더라.”
“응?”
“헌터 복귀한다고 했지?”
“응.”
“좋은 재료 아이템 얻게 되면 가져와. 사죄의 마음을 담아 최선을 다해 원하는 거 만들어 줄게. 보수는 받을 거지만.”
그리 말하고는 그녀는 내게 손을 불쑥 내밀었다.
망치질로 인해 굳은살이 잔뜩 배긴 오른손을.
참 예쁜 손이었다.
유재이는 드러낸 이마처럼 시원한 미소를 지었다.
“이것도 인연인데 정식으로 인사나 해, 우리. 난 재이네 대장간의 유재이.”
“난 여동생 등골 브레이커-”
“아이, 미안하다니까!”
“…헌터. 2년 만에 복귀하는 헌터, 백도운.”
나는 씩 웃으면서 유재이의 손을 맞잡았다.
헌터, 백도운.
울림 좋고.
이제 정말로 시작한 거다.
두 사람과 파티를 맺기 위한 여정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