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16
제16화
나는 인간 모양을 한 흙 분수대가 되기로 했다.
어차피 피할 수 없는 거 다 포기하고 즐기자는 생각에서였다.
그런데 왜일까.
자꾸만 폐에서부터 깊은 한숨이 푹푹 새어 나오는 건.
“에휴우푸풉! 컥, 컥!”
“퉤, 퉷!”
“눈! 눈에 흙이!”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하고 위를 올려다보던 우연후와 김지연이 다급하게 얼굴을 닦아 냈다.
흙이 그들의 얼굴을 덮어 눈이나 입에 들어가 버린 거다.
괴롭게 만들어 버려 미안하다.
나도 괴로운 건 매한가지라 사과할 수 없었지만.
한숨을 내쉬다가 흙이 입에 들어가 목구멍이 막혀 버릴 뻔했다.
컥컥거리며 목구멍 속의 흙을 빼내는데 우연후가 얼굴에 묻은 흙을 털어 내며 묻는다.
“갑자기, 갑자기 뭐 하는 겁니까?”
“미안합니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에요….”
곧바로 사과했다.
마냥 내 잘못이라고 할 수는 없어 억울했지만, 내 가슴팍에서부터 뿜어져 나왔으니 내 탓이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세계수 새싹이 그랬다고 일러바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세계수는 인간들의 서로를 위하는 진심에 감동했다면서 왜 흙을 보내온 걸까.
영문을 알 수 없는 이 상황에 스마트폰을 꺼내 확인하고 싶었으나 그럴 상황이 아니어서 참았다.
이러고 있는 사이에도 스켈레톤들이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을….
“테, 니까…?”
……어라?
스켈레톤들이 공격해 올까 무서워 바로 절벽을 올려다보았다.
올려다보았는데….
흠. 검은 연기가 솟아오르던 스켈레톤들이 보이지 않았다.
전부 보이지 않게 된 건 아니다.
스켈레톤 로드와 장군 등 등급이 높은 녀석들은 남아서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그 반응을 보고 스켈레톤들이 그들의 명령을 받고 사라진 게 아님을 알 수 있었다.
“마스터….”
“보고 있어. 스켈레톤들이-”
“아니! 그것 말고요!”
응? 스켈레톤들 말고 또 사라진 게 있나?
뭐가 사라진 건지 궁금해 김지연을 쳐다봤다.
그녀는 여기저기를 자꾸 휘둘러 살펴보고 있었다.
그 주변엔 원래 아무것도 없었….
아! 아니다.
원래 냉기와 독기가 있었다.
분명 아까 전까지만 해도 짙은 안개로 떠다녔는데, 그것들이 전부 사라졌다.
나와 같은 생각에 이르렀는지 우연후가 중얼거렸다.
“냉기와 독기가… 사라졌어?”
아까 전까지만 해도 있던 것들이 갑자기 왜 사라진 걸까.
그 이유를 알 수 없어 주변을 돌아보는데, 새롭게 떠올라온 메시지창을 발견했다.
흙이 목구멍에 들어가는 바람에 그걸 빼내느라 미처 확인하지 못한 모양이다.
[세계수 새싹이 전송한 흙은 ‘세계수 새싹의 마나를 담은 흙’입니다.] [모든 존재의 피로와 체력을 회복하고, 부정한 것을 정화할 수 있습니다.]부정한 것?
그 문구를 읽었을 때, 나는 절벽 위를 올려다볼 수밖에 없었다.
스켈레톤 로드와 스켈레톤 장군 2마리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로드는 두 주먹을 불끈 쥔 채 부르르 떨어댔다.
그 꼴을 보니 화가 턱 끝까지 차올랐음을 알 수 있었다.
저렇게 화가 났으면서 어째서 바로 공격해 오지 않는 걸까.
그 이유는 어렵지 않게 유추해 낼 수 있었다.
새싹이 전송한 흙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스켈레톤 장군들은 왠지 괴로워하는 것처럼 보였다.
마치 이곳을 멀리 떠나고 싶은 것처럼.
[부정한 것을 정화할 수 있습니다.]즉, 그 문구대로 흙이 스켈레톤들의 부정함을 정화한 거다.
힐러가 언데드에게 힐링 스킬을 쓰면 데미지를 입히게 되듯이 스켈레톤은 정화되어 유명을 달리하게 됐다.
이미 죽은 언데드에게 쓸 수 있는 표현인지는 모르겠지만.
“설마… 이 흙이 벌인 일입니까?”
“…….”
우연후가 바닥의 흙을 손에 쥐며 물었다.
대답하기 전에 스켈레톤 로드를 바라본다.
부정한 것.
아주아주 부정한 것이 저기 눈앞에 있었다.
나는 바닥에 깔린 흙을 집어 들었다.
그러고는 곧바로 스켈레톤 로드와 장군들에게 뿌렸다.
“지온 씨? 뭐 하는 겁니까?”
“잠깐! 당신 지금 대체 뭐 하는 거예요! 괜히 흥분하게 하지 말고….”
우연후와 김지연이 당황해서 나를 말렸지만, 난 그들의 손을 뿌리치며 흙을 3마리의 스켈레톤들에게 뿌렸다.
스켈레톤 로드는 재빠르게 망토를 휘둘러 제 몸을 가렸다.
하지만 망토 없이 육중한 갑옷만 입고 있던 장군들은 그대로 내가 뿌린 흙에 맞았다.
장군들은 내가 열심히 뿌려 대던 흙이 몸에 닿자 괴로워했다.
괴로울 수밖에.
흙이 닿은 부위가 마치 염산이 부어진 것처럼 녹아내리기 시작했으니!
“저게 무슨….”
“녹아? 아니, 왜? 이 흙이 뭐라고?”
“…뿌려!”
“뭐라고요?”
“지온 씨처럼 흙 뿌리라고!”
“아아…!”
드디어 무슨 상황인지 파악을 끝낸 우연후와 김지연이 나와 같은 행동을 했다.
바닥에 뿌려져 있는 세계수 새싹의 흙을 쥐고 스켈레톤 로드와 장군들에게 열심히 뿌리기 시작한 거다.
어린아이들이 놀이터에서 흙장난하듯이 하하 호호하며.
겨울 방학 때 눈 뭉치를 만들어 눈싸움하듯이 사이좋게.
우린 그렇게 열심히 최선을 다해 흙을 뿌려 댔다.
***
흙을 열심히 뿌려 댄 결과, 스켈레톤 장군들은 죽고 스켈레톤 로드는 도망갔다.
그것들은 흙이 깔린 곳을 밟을 수가 없어 밖에서만 공격했다.
장군 2마리 중 1마리가 분노를 참지 못하고 흙을 밟았는데, 밟자마자 정화되어 가루가 돼 버렸다.
남은 1마리는 바깥에서 검을 던졌지만 그런 거에 맞을 리 만무했다.
심지어 무기가 없어진 탓에 녀석은 우리에게 집중 공격을 당했고 몸이 녹아 죽어 버렸다.
마지막 남은 스켈레톤 로드는 역시 로드다운 모습을 보였다.
녀석은 무기를 쓰지 않고 마법을 써서 우릴 공격해 왔다.
하지만 마법을 쓰려고 할 때마다 김지연이 마법 화살을 쏘아 방해했다.
바깥에서 마법을 쓸 수 없고, 그렇다고 흙 안으로 들어올 수도 없었던 스켈레톤 로드는 결국 도망쳐 버렸다.
“하, 하하하. 말도 안 돼….”
김지연은 스켈레톤 로드가 도망간 후 주저앉아 버렸다.
그 상태로 바닥의 흙을 손으로 어루만지며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그러다가 고개를 가로저었는데, 아무래도 방금까지 자기가 한 일을 믿을 수가 없는 듯했다.
우연후도 방금 일에 관해 묻고 싶은 눈치였으나 그러지는 않았다.
그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온 씨, 부탁합니다.”
“네. 금방 끝내겠습니다.”
곧바로 절벽 아래의 웅덩이에 있는 우담화를 향해 걸어갔다.
우담화는 가느다란 뿌리로 꼿꼿하게 선 채 하얀 꽃을 피웠다.
과연, S등급 영약답게 가까이 다가가니 따스한 기운이 느껴졌다.
음기를 먹고 자라 양기를 품은 우담화.
이것이라면 분명 우연후의 동생을 구할 수 있겠지.
손을 뻗어 우담화에 검지를 갖다 댔다.
곧바로 익숙한 메시지 창이 떠올랐다.
음? 평소와 조금 다른걸.
그전까지는 무조건 100% 확률로 보정됐었는데, 우담화는 조금 달랐다.
90%에서 시작해 5%씩 두 번 증가했다.
뭐, 그래도 100%가 됐으니 문제 될 것은 없었지만.
3초가 흐른 후 지금까지 모든 식물이 그래 왔던 것처럼 우담화도 가느다란 뿌리를 튕겨 위로 솟아올랐다.
허공에 떠오른 그것을 혹시라도 세게 쥐면 바스러질까 조심스럽게 두 손바닥으로 받았다.
그대로 뒤로 돌아 손바닥 위의 우담화를 우연후에게 보여 주었다.
그는 내 손바닥의 꽃을 보고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지금까지 보여 준 적 없던 해맑은 웃음을 흘렸다.
보는 사람에게 절로 미소를 짓게 하는 그런 기분 좋은 웃음이었다.
그때, 등 뒤에서부터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설마 끌어당기는 손이…?
“조심하십시오!”
등 뒤를 보니 거대한 마법진이 강렬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아까도 본 적이 있는 것이었다.
순간 이동 마법진.
나를 데려가려는 게 분명했다.
“도망쳤으면 깨끗하게 포기할 것이지….”
마법진에서 고개를 돌렸다.
우연후와 김지연이 내 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이미 늦었다는 걸 알면서도 달려왔다.
마법진이 강렬한 빛을 발하는 걸 보면, 나는 이미 이동될 대상으로 결정된 상태다.
그것을 증명하듯, 마법진에서 무수히 많은 쇠사슬과 뼈만 남은 손들이 튀어나와 내 몸을 붙들었다.
혹시 힘으로 밀어붙이면 되지 않을까 싶어 발버둥을 쳐 봤지만, 소용없었다.
따스한 손길도 마찬가지였다.
내 힘으로는 이것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
“포기하지 마!”
발버둥 치는 것을 멈추자 포기했다고 느꼈는지 그가 외쳤다.
포기? 그런 걸 할 리가 없지 않은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 무엇일지 고민하고 있었다.
머리를 빠르게 굴렸다.
그 덕분일까?
한 가지 기막힌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세계수가 흙을 보내온 구멍을 통해 갑옷 속으로 손을 넣었다.
따스함이 느껴지는 스마트폰을 지나쳐 우연후가 줬던 마법 주머니를 꺼냈다.
빠르게 개봉한 후 우담화를 넣고 다시 밀봉했다.
그러고는 그것을 날 향해 달려오고 있는 그에게 휙 던졌다.
“……!”
그가 눈을 휘둥그레 뜨며 마법 주머니를 받았다.
놀라기는.
“동생부터 살려요.”
“백-!”
백?
안타깝게도 그의 말은 끝까지 들을 수 없었다.
눈앞의 시야가 눈 깜짝할 사이에 확 바뀌어 버린 탓이다.
턱을 끝까지 올려야 보이는 천장.
그런 천장에 비견될 만큼 거대한 왕좌.
「…….」
내 눈앞엔 스켈레톤 로드가 보였다.
그것은 거대한 왕좌에 턱을 괸 채로 앉아 있었다.
도망쳤던 주제에 뭐 잘났다고 무게 잡고 앉아 있는 걸까.
「초대에 응해 주어 고맙구나. 환영한다. 짐의 왕궁에 처음으로 발을 들인 인간이여.」
처음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네 왕궁 이미 몇 번이고 타파됐어.
냉기와 독기만 해결하면 평범한 B등급 게이트에 불과했다.
우담화가 없었다면 유명해질 수도 없었을 게이트다.
헌터들에게나 껄끄럽고 까다로운 게이트 정도로 기억됐겠지.
“별로 오고 싶진 않았는데 말이야.”
「그랬을 테지.」
하지만… 인정할 건 해야겠다.
지금의 나로서는 스켈레톤 로드를 이길 수 없다는 걸.
B등급 게이트의 보스 몬스터는 대개 A등급 판정을 받는다.
그러나 스켈레톤 로드는 검은 뿔이 자라난 진화 몬스터였다.
최소 A+등급의 몬스터라는 소리다.
지금의 나로서는 절대로 이길 수 없는.
「네놈의 정체가 무엇이냐?」
“정체?”
「그래, 무엇이기에 그리 끔찍한 흙을 소환해 낸단 말이냐!」
끔찍? 누구 마음대로 끔찍하대.
너희를 못살게 굴 수 있어서 사랑스럽기만 한데.
「정체를 밝혀라, 인간!」
“정체? 내 정체는….”
로드의 말과 겹치며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시간을 끌면서 메시지창을 빠르게 읽어 내려갔다.
[‘A+등급 전대 세계수 퀘스트’가 발생했습니다.] [퀘스트 내용 – 홍유릉 게이트 탈출 혹은 스켈레톤 로드 처치.] [성공 보상 – 결과에 따라 획득 보상 변경.] [실패 시 죽음.]후, 인생사 쉽게 되는 게 없군.
성공 보상보다 ‘실패 시 죽음’이라는 문구가 더 눈에 띄었다.
저렇게 명시된 걸 보면, 아마 내 기이한 회복력으로도 살아남을 수 없다는 뜻이리라.
게이트를 탈출하지 못하거나 로드를 죽이지 못하면 죽게 된다는 거다.
[현재 백도운 님의 상태로는 너무 어려운 난이도입니다.] [퀘스트 난이도를 바로잡습니다.]오? 듣던 중 반가운 소리다.
장난해? 나뭇가지로 뭘 하라고?
어이가 없어서 화가 나려는데, 가슴팍에서부터 무언가가 불쑥 튀어나왔다.
또야?
이럴 줄 알았으면 스마트폰을 손에 쥐고 있는 건데.
「으음! 그, 그건…!」
스켈레톤 로드가 심기가 불편한 얼굴을 했다.
내 얼굴도 녀석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가슴팍에서 거대한 통나무가 튀어나왔기 때문이다.
“아니, 나뭇가지라며?”
흠….
다시 봐도 통나무다.
「으으! 대체, 대체 그 끔찍한 건 무엇이냐!」
“뭐긴? 통나무잖아?”
전대 세계수의 나뭇가지라는 이름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