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22
제22화
북한산 인수봉 게이트에 들어서자 사람들이 해체소 앞에 모여 있다.
사냥을 끝낸 헌터들과 해체업자들이 몬스터의 값을 교섭하는 와중이었다.
아니, 교섭을 빙자해 서로의 의견이 합치되지 않는 실랑이를 하는 중이다.
해체업자 관리팀 생활을 한 지 2년이 되었던가?
습관이란 정말 무서웠다.
나도 모르는 사이 발걸음이 그들 쪽으로 향했다.
관련도 없는 사람들 일에 끼어들고 싶지 않아 다급하게 발걸음의 방향을 바꿨다.
하마터면 처음 보는 사람들한테 “또 무슨 일 있어요?”라고 살갑게 질문을 던질 뻔했다.
정신을 차리고자 고개를 붕붕 휘저으며 게이트 깊숙이 들어갔다.
습관으로는 스마트폰 화면을 두드리는 것 하나로 족했다.
“흠, 왓쳐가 어디쯤 있으려나?”
주변을 돌아봤지만 왓쳐는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다.
당연했다.
녀석들의 눈은 커다란 만큼 시력도 좋아 아주 먼 곳의 적을 볼 수 있다.
도망치려면 내가 알아차리지 못한 사이 이미 멀리 도망쳤을 거다.
더군다나 지금은 밤이다.
왓쳐는 낮이고 밤이고 아무 문제 없이 대상을 볼 수 있지만, 인간의 눈은 그렇지 못했다.
또 내겐 공중을 날아다니는 놈들을 추적할 수 있는 스킬이 없다.
그런데도 나는 여유롭게 게이트를 거닐었다.
왓쳐들은 무리 생활을 하지 않지만, 협력은 할 줄 아는 몬스터다.
1마리나 2마리였을 땐 나를 피해 도망치다가도, 5마리 이상 모이게 되면 자신감이 솟아올라 나를 죽이고자 날아올 것이다.
내 예상대로 곧 알록달록한 빛들이 나를 향해 빠르게 날아왔다.
왓쳐가 눈으로 발사한 광선이었다.
“왓쳐…!”
각기 다른 색깔의 광선들은 빠르게 날아와 각각 내 급소들을 맞혔다.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멀리 있으면서도, 녀석들은 노련한 저격수처럼 한 방에 죽일 수 있는 급소들을 노린 것이다.
머리, 목, 가슴, 두 다리, 소중한 곳까지 한 발씩.
쏘아진 광선의 수로 최소 6마리의 왓쳐가 모여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내가 쓰러지지 않았기 때문일까.
원래 2차 공격을 이어 나갈 생각이었을까.
이번에도 알록달록한 광선들이 날아왔다.
아까 맞았던 부분을 그대로 맞았다.
나무껍질을 켜 뒀기 때문에 아프지는 않았다.
기분이 매우 나쁠 뿐.
“아이고, 아파라~”
왓쳐를 속이기 위해 과장되게 두 팔을 벌리며 옆으로 쓰러졌다.
공격을 얻어맞았는데도 멀쩡히 서 있으면 자신감이 높이 치솟아 오른 녀석들이라도 도망칠 게 분명했다.
도망치지 않고 쓰러뜨린 사냥감을 확인하러 오도록 쓰러진 척을 했다.
아울러 광선이 쏘아진 방향을 등졌기 때문에 스마트폰 화면을 두드리는 모습도 보이지 않을 터였다.
어느 정도 두드리고 있었을까, 왓쳐의 찢어지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키이에엑!”
“키엑, 키에엑!”
대화하는 건지 울어 대는 건지 알 수 없는 소리가 조금씩 가까워졌다.
그 소리를 듣고 화면을 두드리는 것을 멈추고, 그 대신 전방 카메라를 통해 뒤에서 날아오는 왓쳐들을 훔쳐봤다.
커다란 구체 모양에 몸의 절반을 차지하는 커다란 눈 6개가 빠르게 날아오고는 나를 대충 훑어보더니 동시에 몸통을 뒤로 돌렸다.
그러고는 내 몸을 먹어 치우기 위해 문어발 같은 촉수에 파묻힌 아가리를 벌렸다.
지금이다!
벌떡 일어나 따스한 손길로 가장 가까운 놈의 쫙 벌어진 아가리를 찔렀다.
입천장에 검지 끝이 닿자 녀석은 아가리가 터져 죽었다.
역시나. 왓쳐는 A등급 몬스터들 중에서도 강력한 공격력을 자랑하는 녀석이었지만, 방어력은 B등급 몬스터의 수준에 불과했다.
그런 이유로 붙은 별명도 ‘유리 대포’였으니, 따스한 손길 한 방으로도 죽일 수 있었다.
“너도, 곱게 죽어라!”
두 마리, 세 마리.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열심히 손가락을 휘둘렀다.
결국, 왓쳐들은 바닥에 아가리가 터진 채 죽은 세 마리의 동료들을 발견하고 나서야 방금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아차렸다.
남은 세 마리가 각기 다른 색의 광선들을 쏘아 댔다.
나무껍질을 발동한 상태여서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맞아 가며 남은 세 마리에게 검지를 찔렀다.
하늘 위로 도망을 쳤다면 쫓아갈 수 없었을 텐데.
동료들의 복수를 하기 위해서인지 분노를 뿜어내기 위해서인지는 몰라도 놈들은 도망치지 않고 끝까지 싸웠다.
바닥에 쓰러진 6마리의 사체들을 마법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흠. 상상 이상인데?”
나무껍질엔 왓쳐의 속성 마법이 담긴 광선들이 전혀 통하지 않았다.
유리 대포라고 불릴 정도로 위력이 강한 공격들이었는데도, 그걸 막아내며 소모하는 마나보다 회복하는 마나가 훨씬 더 많았다.
즉, 웬만한 A등급 몬스터의 공격력으로는 날 아무리 공격해도 상처를 입히기는커녕 나무껍질조차 뚫을 수 없다는 소리다.
지금이라면 그 스켈레톤 로드와 정면으로 맞서 싸워도 이길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알록달록한 광선들이 내 급소들을 노리고 빠르게 날아왔다.
머리, 목, 가슴, 두 다리, 그리고 소중한 곳까지 한 발씩.
“…….”
나는 한숨을 길게 내쉰 후 두 손바닥을 탁탁 털었다.
이미 죽인 녀석들만으로도 유재이가 원했던 눈알의 개수는 충분히 채웠다.
이대로 게이트 앞의 해체업자들에게 가면 깔끔하게 해체를 받고 재이네 대장간으로 돌아갈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감정 스킬이 없어 마법 주머니 속에 있는 것들의 품질이 어떤지 몰랐다.
좋은지 나쁜지 알 수 없다는 뜻이다.
기왕 구해가는 거 더 좋은 품질로 구해 가야지 않겠는가?
“이 인의예지 없는 눈깔 괴물 놈들….”
무엇보다, 소중한 곳의 복수를 해 줘야 직성이 풀릴 것 같다.
***
복수, 아니, 사냥을 끝내고 나서 해체소를 들렀다.
해체 기술이 있긴 하지만 A등급 몬스터를 해체할 수 있는 실력은 아니다.
약은 약사에게 몬스터 해체는 해체업자에게 맡기는 게 가장 정확하다.
해체소에 들르자 왓쳐를 해체하던 업자들이 힐끔 나를 돌아봤다.
그들의 시선은 별로 곱지 않았다.
수염이 무성하게 난 중년의 해체업자에게로 걸어갔다.
“왓쳐 해체 맡기러 왔습니다.”
“여기다 내려 두쇼.”
해체업자는 해체 칼로 자신의 뒤쪽을 가리켰다.
고개를 끄덕이며 마법 주머니에서 왓쳐를 꺼내려는데, 한 해체업자와 눈이 마주쳤다.
그 해체업자는 해체소에서 가장 젊었고 혈기가 왕성해 보였다.
하던 일을 멈추고는 이쪽으로 다가온다.
헌터의 난동 같은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하고 싶은 듯했다.
좀 오버하는 거 아닌가 생각할 수 있었으나 마냥 그렇게 생각할 수만은 없었다.
헌터와 해체업자들은 서로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았다.
헌터들은 해체업자들을 바가지 씌우는 사기꾼으로 보기 일쑤고, 반대로 해체업자들은 헌터들을 멋모르는 애송이로 보기 일쑤다.
게다가 이들은 아까 헌터들과 실랑이를 했었다.
아무 짓도 안 했지만, 헌터라는 것만으로 나도 곱게 보이지 않을 터였다.
“좀 많이 잡아 왔는데, 괜찮습니까?”
“일단 상태부터 봅시다.”
고개를 끄덕이며 마법 주머니에서 왓쳐를 꺼내 한 마리씩 내려놓았다.
눈앞에 있는 중년의 해체업자와 젊은 해체업자가 탄성을 흘렸다.
두 사람은 쪼그리고 앉아서는 내가 꺼내는 왓쳐들을 천천히 살펴보았다.
“오….”
“그래, 그래. 그렇지.”
두 명의 해체업자들은 죽어서 눈에 빛을 잃은 왓쳐들을 보며 히죽 웃었다.
그게 좀 무서워서 잠깐 몸을 움찔거리고 멈췄다.
두 명이 동시에 나를 돌아보고는 물었다.
“많이 잡아 왔담서?”
나는 나머지 녀석들도 꺼냈다.
마법 주머니에서 한 마리씩 꺼내 바닥으로 내려놓을 때마다 해체업자들도 한 명씩 모이기 시작했다.
앞선 두 명이 그랬던 것처럼 그들도 왓쳐를 보곤 감탄한 듯 탄성을 흘려 댔다.
뭐지?
이들의 행동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루에 수백 마리의 왓쳐를 해체하는 이들이 뭐가 그렇게 놀라워서 모여들고 감탄까지 하는 걸까.
젊은 해체업자가 일어나 내게 질문을 던졌다.
“이 녀석들은 눈이 약점인데 왜 눈을 찌르지 않은 겁니까?”
“네?”
이게 무슨 새롭고 놀라운 개소리지?
내가 이곳에 온 건 왓쳐의 눈알을 구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눈을 찌르면 어떻게 눈알을 구할 수 있겠는가?
“눈알 구하러 왔는데 눈을 왜 찔러요?”
“그래요! 바로 그겁니다!”
“……?”
“요즘 헌터 새끼들은 그걸 몰라! 그냥 왓쳐가 비싸다는 소리만 듣고 찾아와서는 힘들게 사냥했는데 왜 그것밖에 안 주냐고 지랄만 해 댄단 말이지. 사기 치는 거 아니냐면서!”
젊은 해체업자는 눈을 반짝이더니 말을 다다 쏟아 냈다.
그 말을 듣고, 해체업자들이 아까 헌터들과 무엇 때문에 실랑이하고 있었는지도 알 것 같다.
아마 이들이 수없이 해체했을 왓쳐를 보며 놀라워한 이유도 같을 거다.
“왓쳐는 이 눈알 때문에 비싼 건데! 그 눈알을 찌르고 베서 갖고 오면 어쩌잔 거야? 자기들이 잡는 게 어째서 비싼 것인지는 알아야 할 것 아니냐고!”
“하, 하하. 그러게 말입니다….”
“박일석, 진정해. 이 헌터분이 그런 것도 아닌데.”
“아…, 네. 대장님 말씀이 맞네요. 미안합니다.”
“아뇨, 아뇨. 괜찮습니다.”
사과하는 박일석에게 손사래를 쳤다.
그가 열분을 토하는 것도 이해가 갔다.
백운천에서 관리팀장 일을 할 때 주 업무 중 하나가 헌터와 해체업자들의 관계를 조율하는 거였다.
같은 길드 사람들인데도 그렇게 싸우는데, 소속되지 않은 헌터들과 해체업자들의 사이는 오죽할까.
“헌터들이 너무 무턱대고 사냥해 오긴 하죠.”
그리 말하면서 해체업자들이 작업하고 있던 왓쳐를 바라봤다.
그것들은 대부분은 눈을 찔리고 베어져 있었다.
눈이 비싼 건데 눈을 약점이랍시고 마구 공격해 댄 것이다.
저러면 촉수나 이빨 말고는 왓쳐에게서 얻을 수 있는 재료가 없었다.
즉, 힘겹게 잡아 놓고선 값도 제대로 받을 수가 없는 거다.
정말이지 멍청한 짓이 아닐 수 없다.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지 주변에 모인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저 눈이 아니면 왓쳐를 사냥할 필요도 없는데 말입니다.”
그렇겠지.
왓쳐의 촉수나 이빨도 쓸 수는 있다.
사용처가 있는 정도지만.
불티나게 잘 팔리는 건 아니라 제대로 된 값을 받을 수는 없었다.
가성비 대비 더 효율적인 효과를 보이는 것들이 많다.
“그런데 당신은 눈동자에 상처 하나 없이 죽여 갖고 와서 놀랐습니다.”
“뿐이야? 여기를 봐.”
박일석에게 대장이라고 불린 사람이 왓쳐의 촉수를 붙잡아 들어 올렸다.
아가리가 축 늘어져 안의 상태를 볼 수 있었고, 사람들이 그걸 자세히 들여다봤다. 안쪽은 폭탄이라도 터진 듯 난리가 나 있었다.
“왓쳐가 죽은 건 이 상처 때문인데, 전부 아가리나 눈 아래쪽이야. 이건 이 녀석들에게 가까이 접근했다는 뜻이라고.”
“맞습니다. 가까이 접근해 일격으로 해치웠습니다.”
“그래! 그게 진짜 놀라운 점이야. 왓쳐가 유리 대포라고 해도 공격력 때문에 가까이 다가갈 생각을 잘 못 하는데 말이야.”
“사냥한 마릿수는 어떻고? 이 친구, 아까 우리가 풋내기 놈들이랑 실랑이할 때 지나가는 걸 봤었어.”
“허? 그럼 3~4시간도 안 돼서 이만큼이나 사냥해 왔다는 소린데. 왓쳐는 다치면 도중에 도망치는… 아, 일격에 해치웠으니 도망칠 수도 없었겠군.”
해체업자들은 나를 덩그러니 내버려 두더니 자기들끼리 떠들어 댔다.
그래도 그 덕분에 별로 곱지 않게 바라보던 이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흐뭇한 얼굴로 바뀌어 있었다.
그 대상인 나는 너무 민망해서 자리를 피하고 싶었지만.
아무래도 이 분위기를 좀 바꿔야겠다.
그러지 않으면 앞으로 몇십 분 정도는 더 수다를 떨어 댈 듯하다.
“저, 해체는 얼마나 걸립니까?”
“응? 아! 이런, 우리 정신 빠진 것 좀 보게.”
“제대로 된 헌터를 너무 오랜만에 만났으니, 그럴 만하지.”
“하하, 걱정하지 마쇼. 최우선으로 금방 해 드릴 테니!”
대장이 그렇게 말하자 해체업자들은 서로 빠르게 눈짓을 주고받았다.
그러고는 일사불란하게 왓쳐들을 하나씩 챙겨가 해체 작업을 시작했다.
아까 박일석과 대장이 그랬던 것처럼 히죽히죽 웃어 대면서.
후우…. 어떡하지? 이 사람들 좀 무서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