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231
제232화
“…….”
톡, 톡, 톡….
화면을 두드리며 무기를 지켜봤다.
그리움을 곱씹을 시간을 주기 위해서다.
5분 정도 흘렀을까?
「…이해했다.」
무기가 입을 열었다.
쓸쓸한 목소리다.
목소리에서 물기가 느껴졌더라면, 손을 뻗어 쓰다듬어줬을지도 모르겠다.
“뭘?”
「드래곤이 지켜보고 있다면, 리롄제가 감히 관리인에게서 날 빼앗으려 들지 못하겠지.」
“…나도 그렇게 생각해서 받아들인 거야.”
「음. 현명한 판단이었다.」
“그런데, 세계수 관리인이랑 드래곤이랑 친해?”
「친하다…기 보다, 교류를 나누는 정도라는 게 옳겠지.」
“그래?”
「드래곤은 보통 같은 드래곤하고만 교류하는 법이니.」
“아. 역시?”
왠지 그럴 것 같았다.
드래곤은 흔히 오만한 존재로 그려지곤 하니까.
드래곤이라면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세계수 관리인이라면 교류할 것이다.」
“그래?”
「관리인과 만나고 싶다고 말을 전한 것이 그 방증이겠지.」
“아, 그것도 그렇네.”
교류하고 싶지 않았다면, 리롄제를 통해 만나자고 제안하지도 않았을 거다.
하고 싶은 말이 있으니 만나자고 한 것일 터.
그나저나 드래곤이 날 만나고 싶다고 S급 헌터에게 말을 전하다니….
나도 참 뭐가 돼가고 있는 건지 모르겠네.
4개월 전만 해도 헌터를 은퇴한 사무직원이었는데.
[세계수 어린나무는 뭐가 돼가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전합니다.] [관리인은 세계수 관리인으로서 이미 무엇이 됐다고 전합니다.]아….
그 말도 맞네.
「또한.」
“응?”
「세계수는 드래곤이라고 해도 감히 함부로 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헤에…. 함부로 할 수 없다고?”
「뭐. 드래곤들이 그 진실을 인정하는 건 별개의 이야기지만.」
“아. 그럴 것 같아.”
같은 종족하고만 교류할 정도로 오만한 이들이다.
그들이 자신들보다 상위 개체의 존재를 쉽게 인정할 리 없을 터였다.
그렇다면….
“그럼 마족하고의 관계는 어때?”
「별로 좋지 못하다. 적대하는 관계였었지.」
“…였었지? 과거형이네?”
「내가 이곳으로 보내지기 전에 휴전을 맺었었다.」
“휴전을?”
「세상을 위해서다. 서로 전면전을 계속 벌이면 세상이 멸망하고 테니까. 그건 드래곤도 마족도 바라는 바가 아니었지.」
“아….”
그렇겠지.
그 리롄제가 이길 수 없다고 단언한 드래곤들과 전대 세계수마저 죽인 마족들이 끝을 볼 생각으로 싸워댄다면, 세상이 남아나지 못할 것이다.
뭐, 마족이 지배하는 세상이 과연 살만한 곳일지는 모르겠지만.
성역에서 레지나와 함께 봤던 위그드라실은 황폐하기 그지없었다.
그런 곳이라면….
최소한 나는 살고픈 생각이 들지 않는다.
위그드라실에서 사는 인간들도 나와 같은 생각이겠지.
스윽….
막사 입구에 인영이 그려졌다.
익숙한 인영의 정체는 이성훈이었다.
우리의 대화를 엿들으려고 도둑고양이처럼 다가온 건 아니다.
이쪽으로 다가오는 소리를 숨기려고 하지 않았으니까.
“저, 팀장님…?”
“…왜?”
“손님이 찾아왔어요.”
“손님?”
“네. 진지우 씨예요.”
진지우…?
그 인간이 이 밤에 날 왜 찾아온 거지?
무기를 돌아본다.
무기는 자신의 부풀어 오른 배를 가리켰다.
「난 좀 쉬고 싶군.」
“알았어.”
「음.」
막사에 무기를 두고 바깥으로 나갔다.
나가자마자 이성훈과 진지우가 보였다.
진지우는 돌돌 말린 이불을 지팡이처럼 짚고 서 있었다.
“…혼잡니까?”
진지우의 말을 이성훈이 통역했다.
녀석이 통역하는 동안 그는 내 뒤를 힐끔힐끔 바라봤다.
아주 잠깐 스마트폰을 쥔 오른손을 보기도 했지만, 더 관심이 있는 건 무기가 분명하다.
리롄제의 제자 아니랄까 봐….
이 인간도 용 오타쿠인 모양이다.
“쉬겠답니다.”
“그 큰 걸 단번에 먹어치웠으니….”
“뭡니까?”
“……?”
“무기에 관해 얘기하려고 온 건 아닐 테고.”
“바로 본론으로 넘어가는 겁니까?”
“생각지도 못한 휴식이라서요. 쉬고 싶군요.”
“알겠습니다. 본론만 바로 말하도록 하죠.”
“그래 주면 고맙겠네요.”
“당신에게 조언하러 왔습니다.”
“조언…?”
그에게서 고개를 돌려 이성훈을 바라봤다.
올바르게 통역한 것인지 묻기 위해서다.
이성훈은 어깨를 한 번 으쓱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진호우도 그러더니….
남매가 똑같이 조언하길 좋아하는군.
다시 고개를 돌려 진지우를 바라봤다.
시선이 닿자 그가 말했다.
“스승님을 조심하십시오.”
“리롄제 님을 말하는 겁니까?”
“그 인간은….”
그 인간?
“악마입니다.”
“…….”
그 인간.
악마….
스승에게 할 표현으로는 적절치 않은걸.
사이가 별로 좋지 못하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표현하는 걸 보니 안 좋은 사이가 아니라 증오하고 있다고 보는 게 옳겠다.
리롄제와 무슨 일이 있었기에 스승을 악마라고 부르는 걸까.
“그를 믿지 마십시오.”
“당연히 안 믿는데. 그런 능구렁이 영감.”
“……!”
말을 전해 들은 진지우가 눈을 동그랗게 뜬다.
능구렁이라는 말에 놀란 것 같다.
중국인 중에서는 리롄제를 향해 대놓고 능구렁이라고 말하는 사람 따위 없었겠지.
픽…!
그의 입에서 웃음이 새어 나왔다.
“…당신에게서 이무기를 빼앗으려고 들 겁니다.”
“네. 그럴 것 같더라고요.”
홀로그램으로 통화할 때 리롄제는 신선인 척 웃고 있었다.
물론 웃고 있는 건 입뿐이었다.
눈에서는 무기를 향한 탐욕이 느껴졌다.
집착에 가까운 탐욕….
날 죽여서라도 무기를 갖고 싶으리라.
그럴 수 있는가.
가능 여부는 차치하고서라도.
“그럴 것 같았다?”
“네.”
“그런데…. 그런데도 만나러 갈 생각이냐?”
“…….”
말투가 바뀌었다.
이성훈은 줄곧 존댓말로 통역했었는데….
갑자기 진지우의 어투가 달라진 것과 연관이 있는 것 같다.
아마 분위기를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서일 테지.
이성훈을 바라보자 녀석이 눈썹을 들썩였다.
어휴, 느끼한 새끼.
“만나러 갈 생각이다만.”
“똑똑한 건지 멍청한 건지 모르겠군. 아니면 그냥 오만한 건가?”
“둘 중에 굳이 고르자면 멍청한 편이지. 하지만 오만한 건 아닌 거 같은데.”
“……?”
“난 내게서 무기를 빼앗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네놈이 더 오만할걸.”
“……!”
진지우의 얼굴에 놀람이 묻어났다.
아까와 같은 이유에서다.
“스승님이 너한테서 빼앗지 못할 것 같으냐?”
“같은데.”
“오만하군.”
“그러니까. 그걸 오만으로 치부하는 네놈이 더 오만하다니까.”
“…리롄제란 말이다. 그, 리롄제.”
“미안하지만, 나 한국인이야.”
“……?”
그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갑자기 왜 국적을 말하는지 모르겠다는 얼굴이다.
네가 한국인이라는 건 알고 있다고 말하는 듯한 표정이기도 했다.
옆에 선 이성훈도 비슷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리롄제 따위 하나도 안 무서워.”
“……!”
“내게서 무기를 빼앗으려 들면, 똑같이 빼앗아줄 뿐.”
“빼앗는다고…?”
“그래.”
“미친놈…. 상대를 봐가면서 싸움을 걸어! 이길 수 없는 자와 싸우는 건 바보 같은 짓이야!”
그렇군. 알겠다.
이 녀석은 포기한 녀석이야.
생각하기를.
상상하기를.
놈의 머릿속에선 그려지지 않겠지만, 내 머릿속에선 잘 그려진다.
리롄제와의 싸움이.
이기는 수보다 패배하는 수가 더 많기는 했지만.
슥….
화면을 두드리던 검지로 진지우를 가리켰다.
“스승한테 전해.”
“…뭐냐?”
“내게서 무기를 빼앗으려 들면 나도 소중한 걸 빼앗을 거라고.”
“……!”
진지우는 이제 당황을 넘어 경악한 얼굴을 지었다.
아마 지금까지 리롄제에게 방금 같은 말을 하는 사람은 없었겠지.
한진환도 그러지는 못했으리라.
한진환의 통역가는 이성훈이 아니었을 테니까.
평소라면, 이성훈은 스미르노프의 통역가처럼 말을 수정해가며 통역했을 거다.
상황을 크게 만들지 않기 위해서라도.
하지만 지금 같은 상황이라면 이성훈은 그러지 않는다.
알고 있기 때문이다.
진지우가 스승인 리롄제에게 내 말을 곧이곧대로 전하지 않으리라는 걸.
[세계수 어린나무가 의문을 느낍니다.] [제자인데 왜 스승에게 전하지 않을 거로 생각하는지 질문합니다.]사이가 좋은 사제 관계라면 전했을 거야.
하지만 진지우는 스승을 악마라고 비난했어.
리롄제가 무기를 빼앗으려 들 거라고 경고해주려고 찾아오기까지 했고.
제 스승에게 엿을 먹이고 싶은 마음이 있는 거야.
좋은 사이가 아닌 데다가 둘 사이에 앙금까지 있다는 거지.
아마 평생이 가도 풀 수 없는 앙금일걸.
그러니, 진지우는 방금 내 한 말을 전달하지 않고 그냥 넘길 게 분명해.
리롄제가 내게서 무기를 빼앗으려고 하다가 오히려 빼앗기게 되는 상황이 오기를 바라면서.
[어린나무는 관리인의 설명을 이해했다고 전합니다.]“경고는 끝?”
“…….”
“그럼 돌아가 주지 않겠어? 이만 쉬고 싶은데.”
“실례… 많았습니다.”
어라.
처음의 공손한 말투로 돌아왔네.
그럼 나도 다시….
“별말씀을. 대화 즐거웠습니다.”
“…….”
“…….”
“…좋은 밤 보내시길.”
“당신도.”
그 인사를 끝으로 진지우는 돌아갔다.
지팡이처럼 짚고 서 있던 이불을 짚으면서.
정말 이불을 지팡이처럼 사용하네….
“…팀장님.”
“응?”
단둘이 남게 되자 이성훈이 날 부른다.
돌아보니, 녀석은 답지 않게 진지한 얼굴로 날 바라봤다.
“솔직하게 대답해주세요.”
“그거야 질문에 따라서 정해지겠지.”
“아무튼 밉살맞다니까.”
“새삼?”
“질문은 이거. 팀장님 진짜 리롄제랑 싸워서 이길 수 있어요?”
“이길 수 있어.”
“단언하시네요?”
“열 번 싸워서 한 번 정도겠지만.”
“…….”
“왜?”
“지금이라도 한국으로 도망쳐야 하나 해서요.”
“걱정하지 마.”
톡, 톡.
왼손으로 관자놀이를 살짝 두드렸다.
“아무리 상상해도 상상이 안 되니까.”
“상상이요?”
“그래. 도망치는 거에 실패하는 상상.”
“…자랑이에요? 그게?”
“아니. 사실을 덤덤하게 말한 건데.”
“질 상상이 안 된다고 말했으면 멋있기라도 했을 텐데 말이죠….”
이성훈은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한숨을 내쉬며 시무룩한 모습이 가여워서 마음에 든다.
“민주 씨랑 통화나 할래요.”
“이 시간에?”
“누구 때문에 황급히 통화를 끊어야 했거든요. 아마 저 걱정해서 잠도 못 자고 있을 거예요.”
“아아….”
“그런 이유로, 산책이라도 다녀오시죠.”
“뭐?”
“괜히 들어와서 통화 방해하지 마시라고요.”
그리 말하며 이성훈은 막사 안으로 홱 들어갔다.
반박할 시간도 주지 않는 모습이 몹시 얄밉다.
확 들어가서 최대한으로 방해해버릴까 보다.
그리 생각하기도 했지만,
“민주 씨 봐서 참는다….”
생각을 고쳐먹고 몸을 돌렸다.
막사 안이 아닌 다른 곳을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이성훈은 마음에 들지 않아도, 그 때문에 민주 씨까지 피해를 줄 순 없었다.
피해받는 건 이성훈만이어야 내 마음이 편하다.
무기도 쉬게 해주고 싶었고.
“이제 어쩐다….”
혼자 산책하는 걸 선호하는 편은 아니다.
밤중에 성역에 찾아가는 것도 별로고….
엘프들이 날 맞이하겠다고 편히 쉬지 못할 테니까.
그렇다고 송욱진이나 장첸 소장을 찾아가고 싶지도 않다.
송욱진은 딱딱한 소리나 해댈 테고, 장첸 소장은 반대로 부드러운 소리만 해댈 테니까.
그럼….
이렇게 된 거, 나도 오랜만에 지인들이랑 통화나 좀 해야겠다.
[어린나무가 관리인을 바라봅니다.]갑자기 왜?
[두근두근 설레는 마음으로 바라봅니다.]이상한 생각하지 말아 줄래?
지인들한테 걸 거라고 했잖아.
누구라고 말하진 않았어.
[관리인의 건물에서 사는 대장장이도 지인이라고 전합니다.]“…….”
뭐….
그렇기는 하지.